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93)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93화(293/388)
293화. 차세대 EMR (3)
자신을 이끌어 준 이진혁한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또 연습했다.
술기도, 수술도, 의학적 지식도.
부족하고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했다.
결국.
– 우리 최재성 선생, 일은 참 잘해.
이런 류의 칭찬도 듣게 될 정도로 발전했다.
토끼가 된 거북이.
아니, 토끼를 이긴 거북이가 그 자신이었다.
하지만.
“참말로 뭐 하는겨!”
“저,,, 그,게.”
“퇴원하믄 뭘 조심혀야 허냐니께.”
“저…….”
“아효. 깝깝혀. 깝깝혀 죽겄네. 참말로.”
보호자한테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의사는 서비스직.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
보통 사람도 아니고.
아프고, 힘들고, 짜증 나서 잔뜩 화가 나 있는 환자나 보호자를 상대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니.
– 음, 최재성 선생은 말이야. 다 좋은데. 음……. 어차피 전공도 GS잖아. GS에서 일하는 게 좋겠어.
파견 나온 이들 중에 유일하게 근무처가 바뀐 사람이 돼 버렸다.
ER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
히스토리 테이킹도 못 하고 보호자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배제된 것이다.
그간 진혁이 알게 모르게 커버를 쳐 줬기에 생기지 않았던 문제.
문제는 GS에 가서도 트러블이 계속됐다는 거다.
“아니, 참말로. 깝깝혀 죽겄네. 주치의가 돼서. 그래, 뭐, 어쩌라는겨.”
“그, 그게.”
“지대로 알려 달라고 했잖여!”
“일단 운,동,은, 하,시,면, 안 되고, 그, 그냥.”
“그냥, 뭐?”
“간,호,사, 선,생,님,한,테, 말씀,드,릴,게요.”
“아이코~ 참말로! 지금 뭔 소릴 하는겨!!”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결국.
“이,모,님,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혼자 술을 마시러 왔다.
분원 앞 술집에.
진혁이 『의사형제』 작가인 박연수를 만났다던 그곳이었다.
한 병, 두 병, 세 병, 네 병.
마시고 또 마신다.
술잔을 기울이고 또 기울인다.
그러다 술잔에 비친 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한참 못나 보이는 얼굴.
축 늘어진 어깨.
통제되지 않는 혀.
유리병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못나 보여 견딜 수 없었다.
일도, 사랑도.
제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 처지.
장혁준처럼 여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결혼도 못 할 거 같았다.
말더듬이 병신한테 시집올 여자가 어딨겠는가.
정말, 정말이지.
미칠 지경이었다.
* * *
하늘이 빙빙 돌고.
땅은 거꾸로 보인다.
별은 빠르게 움직이고.
달은.
그러니까 달은…….
“안, 보,이,네. 히끅!”
보이지 않는다.
멈출지 모르고 계속되는 딸꾹질.
잡히지 않는 택시.
오들오들 추위에 떨다 간신히 기숙사에 들어왔다.
동기들이 깰까 두려웠던 최재성은 조용히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을 시작했다.
말더듬이.
Stuttering.
말더듬병.
말더듬증.
한참 제 증상을 찾아보고 또 찾아본다.
검색어를 바꿔 가며 자신이 알지 못하는 해결책이 있는지 찾아보는 성의까지 보였다.
하지만 유전과 발달 장애, 그리고 심리적 요인으로 발현된다는 허접한 설명만 있을 뿐.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유아라면 Speech therapy를.
심리적인 이유라면 심리 치료를 하면 된다는 글은 있었다.
‘도움 안 되는 글밖에 없네.’
“하…….”
최재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쥐어뜯다가 홀로 방을 서성였다.
그러다 이번엔 『영닥터』에 접속했다.
[개원의를 위한 실전 마케팅!] [내과 개원의 시작은 마케팅부터!] [한정된 예산으로 신환 창출하기!] [7개월 만에 건물을 산 개원의!]광고로 덕지덕지 뒤덮인 다음 까페.
이곳 또한 개원의 열풍에 휩쓸려 있었다.
새로운 면허법이 입법됐고.
피부미용시장이 개방되며 수익은 줄었다지만, 내과 계열은 여전히 잘 먹고 잘살고 있는 것이다.
자리만 잡는다면, 소아과나 내과를 차려도 큰돈을 벌 수 있는 게 현실.
물론.
‘나랑 상관없는 얘기네…….’
옆집 아저씨 얘기나 다름없었다.
일반외과를 전공해서?
아니, 아니었다.
말을 더듬기 때문이었다.
잘생긴 의사일수록 돈을 더 잘 버는 시대.
말더듬이 의사한테 내원할 신환 따윈 없어 보였다.
퇴원 후 주의 사항도 설명하지 못하는 주치의.
그게 바로 자신이니까.
“흐윽, 흑흑.”
서럽고 두렵고, 슬픈 마음에 눈물이 절로 나온다.
인터넷 창을 끈 뒤 한참 훌쩍이고 또 훌쩍였다.
휴지를 찾다 눈에 들어온 건 바탕화면에 있는 아이콘.
그건 삼국지4 파워업키트였다.
* * *
CS에서 근무하는 김윤택.
별종으로 소문난 김윤택이 하도 권유해서 깔아 본 게 전부였다.
실행 한번 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물론, 김윤택이 했던 말은 생생히 기억났다.
– 진혁이랑 수술하면 기분이 좋다니까. 삼국지 파워업키트를 설치하고 게임 하는 느낌이라고.
– 파,워,업,키,트,가, 뭔,데,요?
– 에디터야, 에디터. 추가 시나리오도 있고. 통솔, 무력, 정치, 지력, 매력. 그냥 다 100으로 고칠 수 있어.
– 그,래,요?
– 최 선생은 게임도 안 해? 질병도 치료할 수 있고. 수명도 연장할 수 있다니까?
게임 덕후이자 애니메이션 덕후인 김윤택.
그는 이진혁과 함께라면 버프를 받을 수 있다고 지껄이거나.
상태창을 외치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그런 장면이 나온다는데…….
제목은 기억이 안 났다.
그렇게 게임 때문에 예전 일이 떠오른 최재성이 다 죽어 가는 얼굴로 거울 앞에 섰다.
그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외쳤다.
“상,,태,,창!”
물론, 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었다.
* * *
외래 시간을 잡고.
처방 약을 어디서 받는지.
다음에 올 때 검사는 어디서 해야 하는지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설명은 주로 간호사가 한다. 하지만 주치의가 할 때도 많았다.
상태가 어떤지.
어떤 수술을 해야 하는지.
부작용은 뭔지.
보호자나 환자한테 알려 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
또다시 한숨이 들리고 혀를 차는 소리마저 들렸다.
“일할 때는 매사 빈틈이 없는 기 꼭 차돌이다라. 근디 와 저리 말하는 긴데.”
“그, 그게.”
“내 참말로 답답햐 못 살 것다.”
“죄,송합,니다.”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사과.
그리고 변명.
본원에서도 겪었던 일이었지만, 분원에서는 더 큰 자괴감으로 다가왔다.
다들 본원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는데, 그 자신만 병신처럼 굴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꾹 참았다.
정말 참고 또 참았다.
최소한의 도리는 하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일주일 후.
상태창까지 외쳐 봤지만, 아무런 희망도 찾지 못한 최재성은 사표를 쓴 채 짐을 쌌다.
* * *
날이 갈수록 좋아지는 아버지의 상태.
여전히 휴가를 쓰고 퇴원한 아버지 옆을 지키던 이현아는 틈만 나면 문자를 했고.
진혁 또한 이에 부응하려 애썼다.
문자를 하다 짬이 난 진혁이 곧바로 전화를 했다.
“영화는 다음 주에나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뭐, 상관없어요.]“수요일 어때요?”
[예매는 내가 할까요?]“아뇨. 어떻게 될지 몰라서요.”
[알았어요. 부담 갖지 말아요. 뭐, 나중에 봐도 되니까요.]“고마워요.”
한참 계속된 통화.
전화를 끊은 진혁이 기분 좋은 얼굴을 했다.
아직 호감뿐이었지만, 연애를 한다는 건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아니, 종족 번식의 본능을 가진 인간의 DNA에 뿌리 깊게 박힌 본성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아냐고?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좋았고.
웃음이 절로 나오고 있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지.’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릴 순 없었다.
물론, 같은 업계 종사자.
그러니까 간호사도 상관없다고 할 정도로 배포가 큰 어머니였다.
허나, 동성동본 간의 만남.
어떻게 생각하실지 걱정되는 건 사실이었다.
1997년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지만, 아직 법이 개정되지 않았고.
어른들 인식 문제도 있었으니까.
‘후, 일이나 하자, 일이나 해.’
고개를 뒤흔들어 잡념을 떨쳐 버린 진혁이 화면 정의서를 고치고 여러 작업을 해 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직 분원에 있을 장혁준한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계속 울리는 전화.
진혁은 이를 무시했다.
이현아의 후배는 정아름.
정아름은 장혁준의 여친.
그러니.
‘벌써 얘기한 건가.’
소식을 듣고 전화한 게 분명하다고 여겼다.
수다쟁이 장혁준.
으으.
생각만 해도 싫었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장혁준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
이 정도면 집착.
아니, 스토커가 따로 없을 정도.
진혁이 나직이 혀를 차며 전화를 받았다.
‘침착하자, 침착해.’
“왜요? 뭔 일 있어요?”
[2호 동지! 큰일 났어요!]귀가 먹먹한 외침.
그래.
큰일이긴 큰일이었다.
수십 년 만에 연애를 하는 자신이니까.
하지만.
[최 선생이 사표 쓰고 잠수 탔어요!]“뭐, 뭐라고요?”
[오늘 만우절 아닌 거 알죠? 진짜라고요!]잘 지낼 거라고 여겼던 최재성이 추노했다는 소식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 * *
곧 있으면 3년 차.
바이스 치프가 되는 시기다.
한데 그만둔다니.
말이 안 됐다.
황망한 마음에 꼬치꼬치 따지고 들었고.
저간의 사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 아무리 노력해도 반쪽짜리 주치의밖에 안 되니까 떠나는 게 맞는 거 같다니…….’
물론 그 심정은 이해됐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때 사람은 좌절하는 법.
한참 해결 방안을 고심하던 진혁이 차세대 EMR 구축계획 파일을 열었다.
통합 뷰 디자인 화면을 띄운 뒤.
대배너 문구를 다시 한번 살핀다.
[회진 전 알림 문자 함께 전송해요!] [전일 퇴원 예고 처방 함께 실시해요!]서신대에서 쓰던 대배너.
미래에는 [신포괄 재원일 함께 준수해요!]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지만, 그 자신이 바꿔 버렸다.
아직 신포괄 수가 제도는 시행되기 전이니까.
진혁이 다시 휘리릭 피피티를 넘겼다.
회진 전 알림 문자.
응급실 대시보드처럼 환자나 보호자한테 일러 주는 기능을 한다.
환자나 보호자도 좋았고.
‘회진 전이니까 준비하세요!’라고 돌아다녀야 하는 의료진을 위해서도 좋은 일.
그러니.
“여기랑 여기. 그리고 여기에 추가로 넣으면 될 거 같은데.”
문자 보내기 기능을 곳곳에 추가하면 최재성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퇴원 시 주의 사항도 문자로 알려 주고.
수술 후 경과 사항도.
주의 사항도.
부작용도.
전부 문자로 보내게 하면 된다.
거기에 더해.
“SICU나 EICU에 있는 환자 상태도 알려 주면 좋을 거 같은데.”
예전 기억을 떠올려 환자와 격리된 보호자에게 문자를 넣어 주는 기능까지 추가했다.
그뿐이랴.
의사나 간호사가 차팅할 때 쓰는 메뉴.
전부 다 빠짐없이 기능을 추가하기 시작한다.
물론 거기서 그친 건 아니었다.
아신 IT와 급하게 미팅을 잡았고.
서운태를 비롯한 PM, 그리고 개발자에게 통보까지 했다.
그렇게 일을 전부 처리한 진혁은 곧장 최재성한테 전화를 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어 일부러 늦게 전화했건만.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화한다.
장혁준이 자신한테 했던 것처럼.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헤어지자고 할 때 남자 친구가 잡아 주길 기대하는 모순된 심정처럼.
최재성도 누군가 잡아 주길 기대하고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
단단히 결심했는지 최재성은 그 자신의 전화조차 받질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