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99)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99화(299/388)
299화. 차세대 EMR (9)
일이 술술 풀리고 있다는 말.
그건 최고 연장자이자 내과 교수인 박병찬이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러니.
“약 봉투 제대로 확인해!”
“예, 교수님.”
“뭐야! 단순 다이아레아(설사) 아니야!”
“예, 3일 전부터 시작된 다이아레아로 병원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뭐야 근데, 크라비트랑 씨프로바이, 타리비드면 됐지. 왜 지스로맥스랑 티로파, 스타빅까지 다 같이 먹는다는 거야!”
“그게…….”
“잠깐 나와 봐!”
“넵.”
직접 상담하는 박병찬.
그는 좀생이로 통칭되는 내과 의사답게 꼼꼼했다.
그 이유를 따져 묻고.
병원 잘못인지.
환자가 과한 약을 요구한 건지.
일일이 체크할 정도!
거기서 그쳤다면 모를까.
전화까지 한다.
“아니, 환자가 요구해도 그렇죠. 이게 말이나 됩니까.”
의대생이라고 속이며 전화했던 진혁과 항의하는 수준이 다른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거기에 더해.
“으으. 이게 뭐야. 왜, 약이 다 개봉돼 있어!”
“그게, 원래 이렇게 드셨다고 합니다.”
“원래? 원래라는 게 어딨어! 약사는 뭐 한 거야! 복약 지도를 제대로 안 했다는 거야, 뭐야!”
“그, 그게…….”
“당장 전화해!”
“예, 알겠습니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박병찬.
같이 봉사하러 내려온 이들의 표정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어르신도 돕고.
술도 마시고.
바닷바람도 쐬고.
빨리 끝내고 놀아야 했거늘.
그들이 생각했던 의료 봉사가 아니었다.
‘이러다 술도 못 마시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으으. 이제 그만 좀 하자, 그만 좀 해.’
소리 없는 아우성도 잠시.
박병찬 교수가 계속 난리를 쳤다.
투약 실수 한 번에 환자가 죽는 내과 의사다운 모습.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한 적임자나 다름없었다.
* * *
어느덧 늦은 저녁.
술을 깔아 놓고 놀 시간이다.
본원과 분원의 인적 교류뿐 아니라, 다 같이 고생한 봉사단이 친목의 시간을 가질 때인 것이다.
하지만.
“…….”
“…….”
“…….”
“…….”
침묵이 이어진다.
최연장자이자 의료 봉사단을 이끄는 박병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
한참 말이 없던 그가 고개를 휙 하니 돌렸다.
“허진명이.”
“예, 교수님.”
“아니다, 이진혁이.”
“예.”
“톤실리티스(Tonsilitis, 편도염) 환자. 처방 오더가 뭐야!”
“증상에 따라 다른 오더를 내야 합니다.”
“제너럴하다고 가정해! 어큐트(급성)도 아니야!”
뜬금없는 질문.
그 자신을 테스트하고.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의도.
진혁이 빠르게 대답했다.
“GABHS(Group A beta-hemolytic streptococcus, 세균 중 하나) 인펙션(감염)이라고 가정하면, 먼저 파목신을 투약합니다.”
“파목신이 없으면?”
“대체재로 오구멘틴을 투약하면 됩니다.”
“오구멘틴도 없으면?”
“아목시클정을 처방하면 됩니다.”
매끄러운 대답.
응급실에 오래 있었고.
누군가 물어볼 수 있다고 생각해 달달 외운 보람이 있었다.
그러니 응당 감탄사가 나와야 했지만, 다들 박병찬의 눈치를 살피기 바쁘다.
당장 박병찬도 한숨을 내쉬었다.
“소를 100마리나 키운다는 할머니 말이야. 왜 파목신이랑 오구멘틴. 아목시클정까지 다 같이 먹고 있지?”
“…….”
“약봉지를 딱풀로 붙여서 밀봉해 놓은 다음, 예전에 받은 약이랑 이번에 받은 약이랑 같이 먹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냐 이 말이야!”
“저도 이해 안 되고. 답답해 죽겠습니다.”
“하. 내가 말이야. 의료 봉사를 처음 온 게 아니야. 근데 이렇게 심한 곳은 처음 봤어!”
“어르신들을 단속할 자식들이 전부 외지에 나가 있어서 그런 거 같습니다.”
IMF로 귀향하는 이들이 늘었다지만, 아무것도 없는 섬.
모 드라마가 대박 나기 전까진 멸치잡이나 농사를 짓는 거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던 낙후된 섬이었다.
“4형 알레르기인데 팔렉신과 듀리세프를 먹고 있고. 거기에, 바난이랑 옴니세프까지 챙겨 먹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 참.”
“의사 처방도 무시하고 마음대로 먹고 있다는 건데, 약사의 복약 지도 또한 의미 없는 거 같습니다.”
“근원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예. 방법을 강구해야 할 거 같습니다.”
박병찬이 말없이 눈살을 찌푸리자, 다른 이들 또한 나섰다.
“역류성 식도염 환자인데, 라스톤 15mg이랑 라미나지액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 정도는 상관없잖아?”
“거기에 스토가 10mg이랑 센시발 10mg, 알마겔 현탁액도 같이 복용 중이었습니다.”
“하, 시발. 진짜. 또 있나?”
“예, 전부 말씀드리진 못했는데 그게…….”
줄줄이 이어지는 노티.
약을 혼용 또는 과다 복용 중이라는 보고가 한참 계속되자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 * *
연질캡슐은 가루약을 감싼 캡슐 형태.
유통기한은 24개월이다.
물론 고체형 알약보다 기간이 길다지만, 방심할 순 없었다.
세균에 노출된다거나.
피막이 경화되고 공기에 노출되면.
그 기간이 짧아지니까.
문제는 복약 태도를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거.
아파도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어르신도 문제였지만, 아프다고 약을 한 움큼 먹는 어르신도 문제.
그에 부응해 처방하는 것 또한 이슈였다.
한참 고심하던 박병찬이 소리쳤다.
“내일부터는 전화번호도 수집해!”
“네?”
“서울에 살고 있든, 부산에 살고 있든. 자식들 전화번호 받아서 연락드리고! 말씀부터 드려!”
“부모님을 단속하게 만들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이렇게라도 해야지. 어쩌겠어.”
“알겠습니다!”
일차원적인 대응.
진혁으로선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그의 결정을 유도할 생각.
조급히 굴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건 인지시켰으니까.
곧.
“적당히 마셔!”
“넷!”
“경의 의료원 놈들한테 부끄럽지 않게, 잘들 하라고!”
“알겠습니다, 교수님!”
박병찬이 자리를 뜨자.
찬 바람이 훤히 불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진다.
눈치를 살금살금 살피고 눈짓을 한참 주고 받던 이들이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났다.
어르신들이 주신 해산물을 세팅하고 소주를 깔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에 진혁 또한 가만있지 않았다.
아직 R2에 불과한 신분.
당연히 세팅을 도와야 했다.
그렇게 술자리가 시작되려 할 때.
진혁이 입을 열었다.
“저는 TF 업무 때문에, 빠져야 할 거 같습니다.”
“일하러 간다고요?”
“예, 일이 밀려서 좀…….”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한 거짓말.
박병찬의 대응이 너무 일차원적이기에,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적 교류안까지 냈는데. 가면 안 되죠. 일단 술 한잔 받으시죠.”
“맞아요. 우리 그렇게 나쁜 사람들 아닙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한잔합시다.”
반응이 예전과 달랐다.
본원과 분원의 인적 교류안을 낸 덕분에 호감을 산 게 분명한 상황.
잠시 고민하던 진혁이 곧바로 폭탄주 제조에 들어갔다.
* * *
문학으로 따지면 사문난적.
무협으로 따지면 사마외도 격인 경의 한의원 봉사단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진혁은 한의학을 배척하지 않았지만, 다들 운기조식을 한 것처럼 몸을 정갈히 하고 멀쩡한 자태를 뽐냈다.
그렇게 시작된 건 물론 어르신과의 전쟁이었다.
“머꼬. 와, 약을 가져갔쌌노.”
“아, 이건 주셔야 해요.”
“와, 뭐, 문제 있나?”
“아니, 계속 말씀드렸잖아요.”
“참말로, 와 그라는데!”
“왜 그러긴요. 지금 이걸 다 드시면 안 된다니까요.”
꼬불쳐 둔 쌈짓돈을 뺏으려는 의료진과 뺏기지 않으려는 어르신.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졌고.
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했다.
‘작장리의 아들’에서 ‘서면의 아들’로 격상된 최재성마저 거센 눈초리에 시달릴 정도!
물론, 애를 먹는 건 진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르신, 코데인이 감기에 좋은 건 맞는데요. 부작용이 있어요.”
“부작용? 무신 부작용?”
“졸음도 유발하고, 변비랑 소화 장애도 일으키고. 이게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게 아니라서요.”
“무신 소리고. 그 증도는 괘안타.”
“테오브로민도 같이 드시고 계시잖아요. 이것도 감기약인데, 오심이나 구토를 유발해서 너무 남용하면 안 되거든요.”
“그래도 괘안타.”
“아뇨, 이건 주셔야 해요.”
약 봉투를 움켜쥐고 있는 어르신에게 강제로 약을 빼앗는다.
부작용이 없는 약은 그 어디에도 없었고.
약효가 부작용보다 더 효능이 있을 때 우린 그 약을 상업적으로 판매한다.
그러니.
‘이건 미친 짓이지.’
이렇게 많이 먹는 건 말도 안 됐다.
하지만.
“아니. 내 괘안테도!”
“무시라. 자꾸 뭐랬쌌노.”
“강도가, 의사가!!”
이런 말을 들어야 했고.
한참 입씨름을 해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일 때.
또다시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아신대생이 도착한 것이다.
‘생각보다 많이 왔는데? 설마 경의 한의원 때문에? 문제나 해결하자고 했더니, 이 사람들이 진짜!’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는 생각에 진혁이 당장 3인방을 찾았다.
“왜 이렇게 많이 부른 거예요? 혹시 싸우려고 부르신 건 아니죠?”
“야야, 내가 부른 거냐. 위에서 보낸 거지.”
“이렇게 많이 보낼 이유가……. 쟤들 다 강제로 끌려온 거 같은데요.”
“뭐래. 의료 봉사 동아리가 제일 크고 인기 많은데? 다 자발적으로 온 거야.”
“그래요?”
“그럼, 나도 『해열』 출신이라고.”
“『해열』이 뭔데요?”
“뭐긴 뭐야. 봉사 동아리 이름이지. 아신대 봉사 동아리라고.”
“아…….”
이름 하나는 기막히게 지었다는 생각도 잠시.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후발대도 온다면서요. 대체 얼마나 일을 키우려고. 아니, 그보다 위에 뭐라고 하신 거예요?”
“응? 아, 그거…….”
“전화할 땐 이 정도 반응 아니었잖아요. 저 보고 일주일 동안 같이 있다가 올라오라던데. 조금 이상해서 그래요.”
“그냥 나중에 문자 하나 더 보냈을 뿐인데?”
“……?”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3인방이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그들도 몰랐기 때문.
그렇게 확인한 문자는 기가 막혔다.
[진혁이가 또 사고 치려 하고 있습니다!]딱 한 마디.
정말 저 문장만 떡하니 적혀 있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나를 대체 뭘로 보고!
그간 쌓아 온 업보가 일을 키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 * *
자중해야 할 거 같다는 걱정에, 최재성의 계획대로 움직였다.
한데 사고는 또 무슨 사고를 친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나를 대체 어떻게 보고…….’
진혁이 말없이 혀만 차자.
3인방이 움직였다.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간 최재성과 함께 왕진을 돌았다지만, 재진 온 환자도 많은 상황.
진혁 또한 당장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신대 42기 이수찬입니다!”
“저는 아신대 41기 박점례입니다!”
“저는 아신대 43기 서인혜입니다. 『해열』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면접 때와 같은 인사 세례가 그 자신을 막는다.
한없이 멀쩡한 얼굴들.
공부만 해서 피부 또한 하얗고 하나같이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쓴 것이 여러모로 정상인처럼 보였다.
‘이런 애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변한다는 거지?’
스트레스 때문에 담배에 손을 대거나, 술을 마시거나,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다거나, 이익 집단에 동조하는 무식쟁이가 되거나.
뭐, 아무튼.
“후…….”
짧게 한숨을 내쉰 진혁이 소리쳤다.
“나한테 인사하지 말고! 교수님한테 인사부터 드려요!”
“알겠습니다!”
쏜살같이 흩어지는 아신대생!
진혁 또한 그 뒤를 쫓아 곧바로 움직였다.
* * *
감기는 코와 인두에 생기는 염증 질환.
바이러스 종류가 너무 많아, 약이 없다.
인플루엔자.
리노바이러스.
파라인플루엔자.
기타 등등.
끝없이 변이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푹 쉬고, 잘 먹고, 잘 자고.
뭐, 이런 것들이 약이다.
한데 약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많이 남용하는 약으로 표출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코데인, 리나치올, 뮤테란.
비졸본, 엘도스, 소부날.
뮤코펙트, 설포라제.
움카민, 시네츄라.
등등.
자녀와 통화하고 압수한 거담제. 그리고 감기약으로 일컬어지는 각종 항생제가 수북히 쌓였고.
다들 기진맥진한 얼굴을 했다.
“와, 힘들다. 힘들어.”
“억세신 분들이 왜 이렇게 많냐.”
“나, 맞을 뻔했다.”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이들.
그들을 뒤로하고.
진혁이 곧장 서운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이진혁인데요.”
[아, 의료 봉사 때문에 잠깐 자리 비우신다고 들었는데요.]“사정이 있었습니다.”
[예, 근데 이 시간엔 왜…….]“저, 기능을 추가했으면 하는데요.”
[여기서 또 추가한다고요?]“네, 처방 오더 낼 때 중복되는 약이 들어가면 워닝을 줬으면 하는데요. 그게 그러니까…….”
한참 계속된 설명.
약을 효능별로 묶고 데이터베이스화시킨 다음
중복 처방이 안 되게 만들자는 취지를 한참 설명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B2B만 하실 건 아니죠?”
[네?]“B2B2C는 아닌데. 뭐, B2C라고 하죠. 약국을 대상으로도 같은 기능을…….”
약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또한 만들고.
라이트한 EMR을 만들어, 개원의 또한 쓸 수 있게 만들자는 말까지 하자.
[저, 저는 영업 대표인데요.]“네, 알죠. 영업만 하시는 거. 지금, 컨택 포인트를 늘릴 여유가 없어서 그래요.”
[아…….]“PM님께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약사는 병원에 고용된 분들도 많아서. DB 만드는 건 문제 없을 겁니다. 방금 말씀드린 건 메일로 정리해서 드릴게요.”
곧바로 끊은 전화.
노트북을 켜서, 방금 말했던 부분을 정리해 메일까지 보냈다.
그 목적은 의료급여 노인의 다약제 사용을 막기 위한 것.
의료 쇼핑 방지에 있었다.
* * *
작장리를 떠나 덕월리에 도착했을 때.
2차 후발대가 도착했다.
경의 의료원 버스는 한 대.
아신 병원은 두 대.
최재성에게 족쇄를 채우고.
민심도 되찾으며.
한의사들을 물량으로 찍어 누를 생각.
일석삼조.
아니, 그 자신이 나서지 않게 만드는 것까지 포함하면 일석사조나 다름없는 행보였다.
문제는 분원으로 쫓겨난 오태상도 모습을 드러냈다는 거.
아직 악감정이 많이 남아 있어 보이는 오태상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일차원적인 생각에만 머물고 있는 박병찬을 자극할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그래. 그거면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