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화(3/388)
3화. 인턴 면접 (1)
아신 병원 지하 강당.
면접 대기실로 변한 지하 강당은 시장통처럼 시끄러웠다.
“야, 잘 쉬다 왔냐.”
“죽겠다. 죽겠어. 술독 올랐나 봐.”
“술독은 무슨. 얼굴이 뽀얀데.”
“알코올로 소독해서 그래, 인마.”
“어쭈. 이제 학생 아니다 이거냐.”
6년간 친해질 대로 친해진 이들.
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기 바빴다.
대부분 자교생인 만큼 불합격에 대한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합격을 자신하는 건 진혁 또한 마찬가지.
진혁은 갓난아기를 처음 안아 보는 아빠처럼, 흐뭇한 얼굴로 햇병아리들을 바라봤다.
이른바 아빠 미소다.
‘좋다. 좋아! 좋아 미치겠다!’
부모님이 살아 계신 과거로 돌아왔으니 뭐가 문제겠는가.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물론 약간의 문제가 있긴 했다.
어젯밤, 어머니는 불안감에 못 이겨 유난을 떨었다.
– 아신 병원은 인턴 붙기도 쉽지 않대.
– 워낙 유명하니까요.
– 그게 아니라, 아신대 출신만 붙여 준다더라.
–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 수정이 엄마가 그랬대도.
– 저 안 떨어져요.
– 몰라! 아빠나 너나 아주 똑같아!
결국, 면접을 보러 나온 날 아침.
어머니는 미용실에 갔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부부 싸움을 할 때면, 항상 파마를 하러 가시던 어머니다웠다.
히죽.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좋아 절로 웃음이 나왔건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저…….”
“네?”
“혹시 타교생이세요? 혼자 계시길래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어오는 그녀.
목걸이 명패를 통해 확인한 그녀의 이름은 이태희였다.
“네, 저 서신대 출신이에요.”
“혹시 아닐까 봐 걱정했어요. 괜히 말 걸었는데, 아니면 민망하잖아요.”
“그쪽도 타교생이세요?”
“네, 저는 광인대 나왔어요.”
출신 학교가 자기소개가 되는 시기.
젊을 때라 더욱 그랬다.
기분이 좋았던 진혁이 희게 웃었다.
“타교생인데 아신 병원에 지원하셨네요?”
“최고의 병원에서 수련하는 게 제 꿈이거든요.”
“아!”
“농담이에요, 농담. 사실, 집이 가까워서요. 면접장에선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죠?”
“전 그렇게 말할 건데요?”
“네?”
“진짜 집이 근처라서요.”
“어머, 저도 그런데. 어디 사세요?”
이태희가 눈을 반짝였다.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 아닐 거다.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긴장감과 졸지에 친목회가 돼 버린 이곳이 주는 고립감 때문일 거다.
“저는 풍납동 살아요.”
“저는 성내동이요.”
“오. 그럼 잠인고?”
“설마 동문? 저는 31기예요. 혹시 몇 기세요?”
“!”
순간 말문이 막혔다.
같은 학교는 맞는데 졸업 기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몇 기였지……. 우리 기수에 나 말고도 의대 간 사람이 있었나.’
진혁이 뜸을 들이자 이태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재수? 삼수? 뭐, 오픈하기 싫으면 나중에 오픈해요. 붙으면요.”
“그러죠. 뭐.”
대수롭지 않다는 대답.
이태희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공부는 많이 했어요?”
“아뇨, 그냥 왔어요. 야마(족보)도 못 봤으니까 말 다했죠.”
“어머, 저도 그래요. 진짜 아신 병원 너무한 거 아니에요? 야마 오픈을 안 하더라고요. 어떻게든 구해 보려고 했는데 다 실패했어요.”
“뭐, 워낙 유명하니까요.”
“다들 미안하다고만 하더라고요. 덕분에 놀지도 못했죠, 뭐.”
야마(족보)를 구하지 못해 단단히 뿔이 난 모양.
사실, 아신 병원을 상징하는 말이 있었다.
폐쇄성, 순혈주의, 타교생 배척, 자교생 우대.
어머니가 알면 뒷목을 잡으실지도 몰랐다.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5년간 괄시를 당할 게 분명하다며 방방 뛰었을 거다.
* * *
그 시각.
강당 한편에 서 있던 장혁준이 선언했다.
“프리인턴(Pre-Intern) 끝나면 찾지 마라.”
인턴 합격 후 진행되는 두 차례의 합숙 교육이 끝나면 바로 잠수를 타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를 들은 김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어디 가냐?”
“하와이.”
“뭐? 하와이?”
“어. 내가 간다 그 하와이.”
“와! 이 시국에 하와이를 간다고?”
“왜? 부럽냐!?”
금수저인 장혁준이라 가능한 일.
다들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있었지만, 그에겐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김현수가 부러움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혼자 갈 건 아닐 테고. 여친이랑 가냐?”
“여친 아니야, 인마.”
“뭐? 그럼 가족 여행?”
“제수씨라고 불러.”
“?”
“제수씨라고. 제수씨.”
“와. 진도 빠른 거 봐라.”
“그러니까 너도 만나라니까.”
“있어야 만나지. 없어. 없다고.”
짜증 섞인 대답.
장혁준이 김현수의 허리를 콕콕 찔렀다.
“저기 있잖아. 저기.”
순간 시선을 돌린 김현수의 눈이 커졌다.
‘뭐야! 너무 이쁘잖아!’
짧게 친 단발머리.
오뚝한 코.
오밀조밀한 눈.
하얗기만 한 피부.
자신이 찾던 이상형이 저기 서 있었다.
“누군지 아냐?”
“너도 모르는 걸 나한테 묻냐. 타교생이겠지.”
“아……!”
절로 나오는 탄식.
접점이 전혀 없음을 깨달은 김현수의 어깨를 장혁준이 감쌌다.
“이야. 너 혹시 뭐 그런 거냐?”
“뭐. 인마.”
“첫눈에 반한 거. 뭐 그런 거 있잖아.”
“지랄. 반하긴. 개뿔.”
“강한 부정은 뭐다?”
“아, 됐어.”
“근데 둘이 같이 온 건가? 너무 친해 보이는데?”
장혁준의 반문에 김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자신이 한눈에 반한 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내가 거슬렸다.
여유 있게 웃는 것도 싫었고, 뭐랄까.
사람 싫어하는 데 이유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그냥 재수 없었다.
“여자만 붙었으면 좋겠다.”
저도 모르게 나오는 본심.
장혁준이 음흉하게 웃었다.
“왜? 영웅 노름이라도 하게?”
“?”
“구박받는 타교생을 구한 김현수. 뭐 그런 거 아니냐고.”
“유치하게 그게 뭐냐. 그냥 도와주는 거지.”
“그게 그거 아니야?”
“아. 됐어.”
정곡을 찔린 김현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 그런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타교생이라면 아무래도 적응하기 힘들 테니까.
그 기회를 틈타면…….
어쩌면…….
말없이 기회를 가늠하던 김현수의 허리를 장혁준이 콕콕 찔러 왔다.
“야마라도 건네주고 오든가.”
“뭐? 그러다가 걸리면?”
“뭐, 어때.”
“?”
“따로 불러내서 살짝 알려 주면 되지. 바로 눈도장 콱. 어. 아주 호감 콱! 사랑은 쟁취하는 거야, 인마!”
“!”
순간 김현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엄마가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고 했는데.’
곧, 결심을 굳힌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한참 이태희와 대화를 나누던 진혁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향해 누군가가 똑바로 걸어오고 있던 탓이다.
뿔테 안경을 낀 사내.
이태희에게 첫눈에 반한 마마보이.
김현수였다.
이 사실을 모르던 진혁이 의아한 듯 물었다.
“저한테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아뇨, 그쪽 말고요.”
“그럼 저네요?”
“네, 잠깐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말씀하세요.”
이태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영문 모를 상황.
굳이 배척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여기서 말고요.”
“네?”
“잠깐 다른 쪽으로 좀…….”
“!”
순간 이태희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었다.
‘뭐야, 면접장에서. 아, 짜증 나.’
일그러진 이태희의 얼굴을 확인한 김현수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
“그쪽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라고요.”
“그럼 뭔데요?”
“아, 이게 걸리면 좀 그런 거라서요.”
김현수가 다급히 가방을 열어서 야마(족보)를 보여 줬다.
그 모습에 이태희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보여 줄 거면 같이 보여 주든가. 아, 진짜 뭐 하는 거야!’
“괜찮아요.”
“네? 어, 어째서.”
“괜찮다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단호한 거절에 김현수가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터벅. 터벅.
전쟁에서 진 패잔병이 저런 모습일까.
바닥만 바라보며 돌아가던 김현수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진혁을 바라봤다.
분노가 가득한 얼굴에 진혁이 황당해했다.
‘뭐야. 저놈 왜 저래.’
뜬금없는 적개심 표출.
놀랄 겨를도 없이, 진혁이 얼굴을 폈다.
어딜 가나 삐뚤어진 놈은 있기 마련.
괜한 감정 소모를 할 필요는 없었다.
진혁의 눈에 비친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 * *
갑자기 어색해진 분위기.
침묵이 계속되자, 진혁이 물꼬를 텄다.
“그냥 따라가서 보지 그랬어요.”
“뭔 줄 알고요.”
“가방 안쪽을 보여 주던데, 야마 아니에요?”
“어떻게 알았어요?”
“뭐, 뻔하죠. 저 나이 때야 한참 영웅 놀이에 심취할 때잖아요. 뭐, 여자한테 관심도 많을 때고요.”
“어머. 대체 몇 수 한 거예요? 사수? 오수? 저 선배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예요?”
“!!”
순간, 진혁이 흠칫거렸다.
김현수를 어린애 취급하는 게 조금 이상하게 들린 모양이었다.
‘이거 조심해야겠는데.’
안 그래도 어머니한테 계속 지적받지 않았던가.
애늙은이 같은 말투 좀 고치라고.
좀 더 말투에 신경 써야겠다는 다짐을 할 때.
“41번부터 45번까지 이동할게요~!!”
진행 요원이 다음 면접자를 호출했다.
그러자 이태희가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42번 이태희, 그녀의 차례였다.
그 모습을 진혁은 말없이 지켜봤다.
‘그래도 의리는 있네.’
사실 욕심을 냈다면 자신이 없는 곳에서 야마를 본 뒤, 모른 체해도 됐다.
하지만, 그녀는 의리를 택했다.
고교 동문인 자신을 생각해 거절한 거다.
“면접 잘 보세요. 파이팅입니다!”
진혁의 응원에 이태희가 속내를 드러냈다.
“저 사실…… 집이 가까워서 지원한 거 아니에요.”
“네?”
“친목질이 싫어서 지원한 거예요. 모교 병원 가면 귀찮을까 봐요.”
“그래서 야마도 거절한 거예요?!”
“네, 뭐. 보여 줄 거면 같이 보여 주든가. 그런 것도 아니라서요.”
고교 동문에 대한 의리가 아니라 친목질이 싫어서라니.
정말 상상도 못한 이유였다.
* * *
한참 후.
진행 요원이 소리쳤다.
“121번부터 125번까지 들어갈게요!!”
어느덧 진혁의 차례.
진혁은 옷깃을 한번 가다듬고는 면접장에 들어섰다.
물론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놈.
그러니까 122번 김현수가 거슬렸지만 상관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 작은 병원에서 유치하게 자리싸움하고 지지고 볶는 건 마찬가지.
그 덕이라고 해야 할까.
나름 이골이 나 있었다.
그렇게 면접장에 들어서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교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각 과에서 어렵게 시간을 빼낸 이들이다.
“안녕하십니까. 이진혁입니다.”
덤덤한 인사 끝에 시작된 건, 모교생들이 선배들에게 건네는 인사 퍼레이드였다.
“안녕하십니까. 아신대 37기 김현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신대 37기 이예슬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신대 37기 장혁준입니다.”
“아신대에서 공부하는 동안, 이 순간만 꿈꿨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준철입니다.”
타교생이 있기는 한 걸까.
의문도 잠시.
면접관들의 화답이 시작됐다.
의사 생활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을 위한 덕담은 당연하겠지만 자교생에게만 쏟아졌다.
‘이건 좀 심한데?’
진혁이 남몰래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타교생이라도 그렇지.
투명 인간 취급은 너무하지 않은가.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실컷 무시당하던 진혁이 희게 웃었다.
실기 면접의 첫 과목은 수처(Suture, 봉합술).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줄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