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0)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0화(30/388)
30화. 차트 조지기 (1)
손으로 한참 부채질을 하던 어머니가 말했다.
“눈감아 줄게.”
“네?”
“이상한 거 봐도 못 본 척해 준다고.”
“?”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뜻 모를 표정.
이상한 거라니.
대체 뭘 말하는 걸까.
하지만.
“어머, 얘가 얼마나 됐다고 모른 척해!”
“네?”
“비키니.”
“?”
“크음. 큼.”
“아!!!”
순간 진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옛날. 아니, 지금은 회귀했으니 얼마 전이겠지만, 흑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일이 있었다.
‘천리안으로 비키니 사진을 보다가 걸린 적이 있었지.’
“그, 그건…….”
“아이. 됐다니까!”
뭐라 변명을 할 틈도 주지 않으려는 어머니.
민망함을 감추려는 그녀의 무리수에, 감동의 파고는 산산조각이 났다.
* * *
또다시 찾아온 출근 날.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인턴만의 안식처라 할 수 있는 인턴 휴게실에 진혁이 앉아 있었다.
혈흉 환자의 차트를 보기 위해.
조금 더 일찍 출근한 것이다.
딸깍.
딸깍.
‘이럴 거면 진작에 할 것이지.’
자연 지혈을 기다리다, 뒤늦게 수술한 상황.
늦지 않게 수술했으니 다행이었지만, 그 행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EMR을 끈 뒤, 인트라넷에 접속했다.
한동수 교수가 메일을 확인했는지 체크하려 함이다.
딸깍.
그가 메일을 열어 본 시간은 불과 몇 시간 전인 새벽 4시.
답장까지 와 있었다.
[우리 막내! 이걸 이해하고 만든 걸까, 그냥 짜깁기만 한 걸까? 발표 기대하마. 10월에 보자.]정진석에게 근무 월까지 확인한 모양.
한동수의 집착이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그대로 창을 닫은 뒤, 다시 발표 자료를 체크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완벽하게 발표하고 싶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문이 열리며 삼인방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어. 일찍 왔네?”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요.”
“확인? 뭘 확인해?”
“그런 게 있어요. 커피 마실 사람 있어요?”
“난 블랙.”
“오오. 나도 블랙.”
장혁준과 이태희의 주문.
자리에서 일어난 진혁이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수는 네 잔.
세 잔은 블랙.
한 잔은 프림 가득한 밀크 커피였다.
타악.
따로 말을 하지 않았던 김현수 앞에도 커피를 내려놓자 그의 표정이 흔들렸다.
‘진짜 언제까지 이럴래.’
김현수를 가볍게 무시한 뒤.
진혁이 이태희에게 말을 걸었다.
“연습은 많이 했어요?”
“아니, 많이는 못 했지.”
“얼마나 했는데요?”
“한 스무 번 정도?”
“그렇게나 많이 했다고요? 부모님 손목을 난도질한 거예요?”
“엄마, 아빠, 동생 세 명. 돌아가면서 딱 네 번씩만 했거든?”
“대가족이면 동생들한테만 하지 그랬어요. 이런 게 불효예요, 불효. 아침밥이 아니라.”
아침밥 때문에 쿠사리를 먹은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를 타박했다.
허나 이태희는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뭐래. 다들 흔쾌히 협조해 줬거든?”
“흔쾌히?”
“전부 환자를 위한 일이었어.”
“네네, 그러시겠죠.”
“와. 이게 진짜! 또 선 넘으려 한다!”
이태희가 도끼눈을 뜨자.
진혁이 고개를 휙 하니 돌렸다.
그러자 장혁준이 매가리 없이 입을 열었다.
“그냥 개업이나 할까.”
맥락 없는 말에 김현수가 혀를 찼다.
“또 그 소리냐.”
“발표 자료 때문에 잠도 못 잤다고!”
“아…….”
“넌 다 했냐?”
“뭐. 대충 했지. 시간도 없는데 뭘 더 어떻게 해.”
김현수마저 넋두리에 동참하자 이태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왜 벌써 해?”
“우리 내일 발표잖아요.”
김현수의 대답에 이태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이, 목요일은 B조가 하는 거고. 우린 금요일에 하는 거지. 우린 목요일에 퇴근하잖아.”
“퇴근하고 상관없이 발표하는 거예요.”
“정말? 컨퍼런스를 그렇게 길게 한다고? 한 사람당 10분씩이라며.”
“장길만 선생님한테 따로 확인했어요.”
“아!”
이태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의 표정을 본 진혁이 끼어들었다.
“발표 준비 안 했어요?”
“목요일에 퇴근하면 하려고 했지.”
“!!”
“아!”
“헙!!”
돌아가는 낌새가 이상하다고 여겼던 이들이 다들 얕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신고식을 겸하는 첫 발표.
이를 준비하지 않았다니, 평가에 직결될 뿐 아니라 한 소리 들을 게 분명했다.
연대 책임이라는 말을 떠올린 장혁준이 곧바로 안색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준비한 건 구찌가 작은데.”
“제 것도 좀. 같이 준비했다고 하면 둘 다 죽을 거예요.”
이태희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지자, 진혁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내 건 구찌가 큰데.”
“정말?”
“네, 구찌가 커서 오히려 공격받을 수 있거든요. 같이했다고 하면 공격이 덜 하겠죠?”
“뭘 준비했는데?”
“Hemopneumothorax(혈흉) 환자의 선제적 치료에 따른 증례 분석이요. 미국 논문을 중심으로요.”
“!”
“오 마이 갓!”
“말도 안 돼!”
발표 주제를 꺼내자 삼인방의 반응이 엇갈렸다.
당장 김현수가 따지고 들었다.
“언제 했는데요?”
“언제 하긴 언제 해요. 어제 쉴 때 했죠.”
“그걸 하루 만에 다 했다고요?”
“네.”
“말도 안 돼. 괜히 욕심부렸다고 대박 깨질 거예요. 누나, 차라리 저랑 같이했다고 해요.”
곤란하다며 발을 뺐던 김현수가 이태희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자, 진혁이 희게 웃었다.
“뭐. 선택은 본인 자유죠. 일단 보여 줄게요.”
딸깍.
딸깍.
진혁이 슬라이드를 내릴수록, 김현수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덮여 갔다.
미국 논문을 단순히 긁어 온 게 아니라, 나름의 의견과 결론마저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 말도 안 돼.’
“이걸 전부 이해하고 만들었다고요?”
“네.”
“시간이 없었잖아요.”
“뭐, 믿고 안 믿고는 본인 선택이죠.”
진혁이 이태희를 향해 눈을 찡긋거렸다.
뭐, 도와주는 대가는 별거 없었다.
앞으로 반말하기로 한 정도?
* * *
또다시 시작된 응급실 근무.
ER은 여전히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이 선생님, 33번 환자 폴리(소변줄) 좀 넣어 주세요.”
“여기 블러드컬쳐(혈액배양검사) 있어요!”
“18번 베드 ABGA 있어요!”
진혁은 쉼 없이 처치를 이어 갔다.
로딩이 걸리지 않도록 재빠르게 일을 쳐 내는 것이다.
물론, 기계적으로 응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될 수 있으면 환자와 충분한 대화를 나눴고, 라뽀 형성에도 힘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길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무 능숙하단 말이야.’
가까이하지 않기로 했지만, 호기심이 솟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 *
시간이 흘러 또다시 새벽이 찾아왔다.
각 과의 당직들이 잠을 잘 시간.
타과를 콜할 때 가장 애먹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선생님! 15번 베드요!”
“알겠습니다.”
간호사의 호출에 진혁이 재빨리 움직였다.
그러자 얼굴이 피범벅인 환자가 보인다.
‘술 냄새가 나는데?’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환자.
술에 취한 주취 환자였다.
‘단순한 Laceration(열상)으로 보이는데.’
진혁이 곧바로 문진을 시도했다.
“환자분, 어떻게 다치신 겁니까.”
“몰라. 모른다고!”
“넘어지신 겁니까?”
“그래. 넘어졌다. 왜!”
“따로 아프신 곳은 없고요?”
“없어.”
“잠깐, 피 좀 닦겠습니다.”
술에 취해 다짜고짜 반말부터 하는 환자.
진혁은 개의치 않고 처치를 시작했다.
찢어진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선 식염수를 듬뿍 묻힌 솜으로 핏물부터 제거해야 했다.
하지만.
“아아악! 너 이 새끼 뭐야!”
인상을 찌푸린 환자가 대뜸 고성을 내질렀다.
상처가 따갑다는 이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터.
진혁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조금만 참으시면 됩니다.”
“너 이 새끼! 뭐냐니까!”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너도 날 무시하는 거야! 어! 내가 인마! 대우건설 부장이었어!”
계속된 환자의 주정.
진혁은 묵묵히 손을 놀릴 뿐이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그에게,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어설픈 위로는 안 하느니만 못했다.
“다행히 깊게 파이진 않았는데요. 일단 꿰매야 할 거 같습니다. 성형외과 의사분을 불러오겠습니다.”
“뭐야. 너! 왜 대답을 안 해!”
“잠시만요.”
“대답하라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진혁은 환자를 무시한 채 그대로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오태상에게 오더를 받은 진혁이 수화기를 들자, 그가 비릿하게 웃는 게 보였다.
‘오늘 PS 당직이면 이진태인데. 그놈이 내려올 리가 없지. 고생 좀 해 봐라. 재수 없는 놈.’
오태상은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그의 예상이 맞았을까.
진혁이 얼굴을 굳힌 채 수화기를 내려놨다.
“환자가 술이 깨면 내려온다고 합니다.”
“그래요?”
“네, 수처(봉합)할 때 방해해 놓고, 나중에 흉터 생겼다고 클레임 거는 게 싫다고 합니다.”
“그럼 이 선생이 옆에서 킵해요.”
“네?”
“저기 안 보여요? 다른 환자들이 불안해하니까 옆에 있으라고요.”
고개를 돌리자 다른 환자를 상대로 주정을 부리는 환자가 보였다.
‘고생 좀 해 봐라 이거지? 일도 밀릴 테니까.’
속내가 뻔히 보이는 지시.
진혁이 침묵하자 오태상이 비릿하게 웃었다.
“왜? 킵하기 싫어요?”
“아뇨, 다시 콜해 보겠습니다.”
“뭐, 그러든가요.”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
진혁이 곧장 중증처치구역으로 향했다.
오태상의 기대를 다시 한번 밟아 줄 때였다.
* * *
“장 선생님, PS 콜 좀 부탁해요.”
“벌써 써먹는 겁니까?”
다른 이들을 의식했는지 장혁준의 말투는 딱딱했다.
“빨리 써먹어야죠.”
“몇 번 환자예요?”
“15번이요. 환자 상태는 그러니까…….”
한참 이어진 설명.
장혁준이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딸깍.
곧바로 다시 걸려 온 전화에 화가 났는지, PS 당직인 이진태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하지만.
“선배님, 저 혁준입니다.”
[뭐? 누구?]“장혁준입니다.”
[아……. 혁준이냐. 병원 오고 나서 한 번도 못 봤네. 어때? 할 만해?]“죽겠습니다. 정말 만만치 않네요.”
[뭐. 원래 그런 거지. 근데 왜 전화했어? Laceration(열상) 환자 때문에?]“네, 선배님, 웬만하면 전화 안 드리려고 했는데요. 환자가 난리 쳐서요. 저 한 번만 살려 주세요.”
[아이씨. 알았어.]뚝.
수화기를 내려놓은 장혁준이 으스댔다.
“이제 카운트 하나 빼는 겁니다.”
“와, 조금 놀랐는데요.”
“자교생이라고 항상 통하는 건 아니에요. 진태 선배랑은 그래도 친분이 깊거든요.”
“아뇨, 그거 말고요. 살려 달라고 한 거요.”
“아. 비전이 효과가 좀 있어서요. 오늘 성공률이 조금 높아요.”
실패만 했던 ABGA에 성과가 있다는 말.
많이 해 보면서 실력이 늘고 있는 거겠지만, 진혁은 그의 오해를 바로잡지 않았다.
* * *
까막머리를 한 채 급하게 내려온 이진태.
그가 내려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오태상이 다급히 다가갔다.
“이 선생.”
“어어. 오 선생.”
“이진혁 선생 콜 받고 온 거야?”
“아니, 장혁준이 살려 달라고 하던데?”
“뭐? 장혁준이?”
“어. 15번 베드라며? 아, 진짜 귀찮은데. 흉터 생겼다고 민원 넣으면 장혁준을 조져야지.”
벅벅.
귀찮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이진태.
오태상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중증처치구역을 바라봤다.
‘장혁준이 왜?’
오태상이 영문을 몰라 할 때.
15번 베드에 도착한 이진태가 장혁준을 찾았지만, 그를 맞이한 건 진혁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인턴 이진혁입니다.”
“아, 아깐 뭐. 사정이 있어서요. 혁준이는요?”
“잠깐 다른 선생님이 부르셔서요.”
“그래요?”
“네.”
거짓으로 범벅된 대답.
안 그래도 졸음이 가득해 보였던 이진태는 따질 생각도 없이 환자에게 곧장 말을 걸었다.
“환자분, 상처 봉합해 드리겠습니다.”
“뭐야! 넌!!! 너도 날 무시해!!”
“에이. 무시하긴요. 금방 끝내 드리겠습니다.”
소독과 세척은 이미 끝난 상황.
만취한 환자의 술주정과 고함이 계속됐지만, 이진태의 손놀림은 능숙했다.
어떻게든 환자를 달래 가며 수처하는 거다.
그 모습을 오태상이 벙찐 얼굴로 바라봤고.
진혁이 빙긋 웃으며 응대했다.
‘뭘 이 정도로 놀라? 컨퍼런스 때는 어떻게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