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03)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03화(303/388)
303화. 차세대 EMR (13)
“진짜 아파서 온 건데요.”
“맥을 잡아 봐도 됩니까?”
“옙.”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생각에 진혁이 곧장 베드에서 일어나 손목을 걷어붙였다.
한참 계속된 촉진 끝에 사내가 말했다.
“멀쩡한데요?”
“그래요? 그래도 아픈데요.”
“흐음…….”
“심전도에 찍히지 않는 통증. 원인 불명의 병. 뭐, 이런 것들 많잖아요. 병원에서 안 되니까 한의원을 찾는 환자도 많고요.”
“그렇긴 한데…….”
“에이~ 얼른 해 주세요.”
“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침을 맞을 수 있었다.
그 대상은 오른쪽 어깨.
따끔한 통증 뒤,
시원한 느낌이 뒤따른다.
그렇게 15분은 됐을까.
침을 빼내는 한의사를 보며 진혁이 웃었다.
“서비스도 있죠?”
“서비스요?”
“네, 부항도 몸에 좋다던데. 그냥 컨디션이 좀. 찌뿌둥해서요.”
“넉살이 좋은 건지……. 진짜 아픈건지. 흐음.”
“오랜만에 봉사 왔는데, 굳이 싸울 필요 있나요. 친하게 지내야죠.”
“사천당가 같은 개소리나 해 대는데. 어떻게 친하게 지낼 수 있습니까. 우릴 아주 개무시하고 있는데요.”
“에이. 그건 일부의 생각이에요. 일부의 생각. 원래 목소리 높은 사람은 소수. 침묵하는 다수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진혁이 어깨를 으쓱거리자, 한참 미간을 찌푸렸던 한의사가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옷 좀 벗어 보실래요. 아프면 말씀하세요.”
“네. 이게 음압으로 어혈을 제거하는 거죠?”
“뭐, 신진대사도 원활해지고. 세포도 활성화되고. 아, 됐어요. 됐어.”
한참 효능에 관해 설명하다 말을 멈추는 사내.
상대가 의사라는 생각에 괜한 설명을 했다는 눈치였다.
뭐, 이 또한 당연한 반응.
그 자신이 직접 찾아왔다 한들.
적대감이 줄어들 리도 없었고.
무의미한 행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하루만 조용히 지내 보자.’
그 자신이 원하는 건 조용한 마무리였다.
굳이 어르신들 앞에서 티격태격하고 싶지 않은 거다.
그러니 굳이 찾아온 것이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볼록하게 피부를 잡아당기던 부항기가 전부 제거되고, 옷을 입을 차례가 됐다.
고맙다고 말하던 그때.
옆 텐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어어! 이게 왜 이래”
“스킨 테스트는 했어!?”
“네, 멀쩡했습니다!”
“근데 왜 이래! 왜 쇼크가 오냐고!”
“앗! 경련이 더 심해집니다!”
심상치 않은 목소리.
그리고 다급한 반응.
진혁의 표정이 굳었다.
스킨 테스트.
항생제 반응을 보기 위해 병원에서도 진행한다.
피부 반응 검사(AST, After Skin Test)를 해서 거부 반응을 확인하는 거다.
문제는 안 잡히는 경우가 있다는 거.
소량으로 테스트했을 때는 거부 반응이 없지만, 약제가 많이 들어가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다.
‘설마 그런 경우가…….’
당장 옆 텐트로 뛰어간 진혁의 눈에 전경이 훤히 들어온다.
경련하는 환자.
그리고 봉침으로 보이는 앰플.
당장 진혁이 소리쳤다.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 과민성 쇼크) 같은데, 어떻게 된 겁니까!”
“봉, 봉침(꿀벌 독낭에서 봉독을 정제해서 추출한 약)을 놨는데……. 갑, 갑자기 이렇게.”
“AST 제대로 한 거 맞습니까.”
“특이 반응 같은 건 없었습니다! 딱히 올라오는 것도 없었고요!”
봉독 내에 있는 아톨라핀으로 통증 치료를 하다 사달이 벌어진 모양.
만성 통증 치료로 유명한 봉독이었지만, 리스크가 있었다.
사정을 대번에 파악한 진혁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딸깍.
“교수님! 제가 지금 경의 의료원 봉사단 텐트에 있는데요. 아나필락시스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뭐?]“기관삽관 하게 물품 좀 챙겨 주셨으면 합니다. 에피(에피네프린)랑 덱사메타손. 항히스타민제. 스테로이드까지 전부 필요합니다!”
[뭐? 하, 이 선생. 대체 언제 거길 간 거야! 아니, 그보다 거기서 나와!]“네!?”
[봉침 사건 몰라! 그냥 나오라고!]“아…….”
순간 진혁의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봉침 사건.
일반인은 모르지만, 의료계에선 크게 화제가 됐던 사건이었다.
한의원에 침술 진료를 받으러 갔던 가정의학과 의사.
봉침을 맞은 환자가 지금처럼 아나필락시스 증상을 보였고.
한의사의 요청에 따라 응급 처치를 하다 같이 기소됐다.
결과는 집행유예.
환자가 죽었다는 이유로 금고 10개월을 받았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 그냥 나오라는 게 말이 돼!?’
“저, 이미 옆에서 봤는데요. 지금 가도 걸면 걸립니다.”
뚜욱.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은 진혁이 서둘러 문자를 보냈다.
상대는 외과 3인방.
그리고 최재성과 김현수다.
다급했기에 대충 보낸 문자.
이 정도면 알아들으리라 여겼다.
그사이 한의사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얼음찜질을 하고.
하의와 상의를 벗겨 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침까지 놓는다.
하지만.
“끄으으윽!”
경련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입에 거품까지 인다.
중증으로 넘어가는 상황.
아나팔락시스답게 빠르게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다.
이에, 한의사가 소리쳤다.
“약, 약은! 가져온답니까!”
“갖고 올 겁니다!”
“아……. 야! 혹시 모르니까 얼른 뛰어! 약부터 달라고 해!”
대답이 못 믿어웠는지, 몇몇이 후다닥 천막을 나선다.
100m 정도 떨어진 아신대 천막으로 뛰어가는 거다.
식당에서 보여 줬던 호기로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
정말이지 모순된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식당에서 우연히 발견한 환자와 달리 봉침을 놓는 환자가 죽는 건 차원이 다른 일.
의료 과실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외과 3인방. 그리고 최재성과 김현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제는 괴랄한 소리를 했다는 거다.
“우리, 진혁이! 진혁이는요!”
“진혁아! 이 자식이!”
“야야! 어딨어! 우리 진혁이 살려 내!”
그 자신의 문자를 보고 오해한 모양.
환자 옆에 딱 붙어 있던 진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피(에피네프린)! 에피는요!”
“어!?”
“인튜베이션(기관삽관)도 해야하는데! 빨리요!”
“아…….”
다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움직인다.
항히스타민제.
그리고 승압제를 동시에 투약한다.
그와 동시에 기관삽관을 하고 호흡까지 잡는다.
그사이 한의사도 가만있지 않았다.
옆에서 팔과 다리를 주무르며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 * *
“야야. 진짜. 난, 네가 죽은 줄 알았다. 문자를 그렇게만 보내는 게 말이나 되냐고.”
“박 교수님한테 보고드렸더니, 반응이 좀…….”
“왜? 뭐라고 하셨는데?”
“그, 봉침 사건요. 그냥 돌아오라고. 그러다 기소되면 큰일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그거. 아휴. 암튼. 난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 거린다.”
“맞아. 이 자식이. 진짜, 문자를 보낼 거면 제대로 보내야지. 어!”
한의사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며 굳이 천막까지 찾아간 그 자신이 쓰러진 줄 알고 무작정 달려온 선배와 동기.
다들 진땀을 흘려 했다.
100m가 넘은 거리를 전력질주 해 달려오기도 했고.
환자가 안정을 되찾자, 긴장이 풀리며 진이 빠져하는 것이다.
하지만.
“야야. 여긴 적지야, 적지. 명문세가의 자제가 사파의 땅에 온 거나 다름없다고.”
또다시 헛소리를 하는 건 변함없었다.
진혁이 기막혀 할 때.
침을 놔 줬던 한의사가 다가왔다.
“저, 이것 좀 드십쇼.”
“네? 이건 보약 같은데요.”
“녹용입니다. 중국산도 아니고, 전부 국산이에요. 서천이 녹용 산지로 유명한 건 아시죠. 고농축으로 우려냈습니다. 뭐, 경품으로 쓰려던 건데. 고마워서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는데요. 그래도 사양하면 안 되겠죠? 잘 먹겠습니다.”
“당연한 건 아니죠. 아까 봉침 사건 얘기하는 거 다 들었습니다.”
“그야, 뭐. 트라우마 같은 일이니까요.”
진혁이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고선 그 자리에서 박스를 뜯었다.
80포가 들어 있는 박스.
먼저 한 포를 뜯어 마신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연이어 또다시 한 포를 들이킨다.
“캬, 쓴데요.”
“원래 몸에 좋은 게 쓰죠.”
“와. 갑자기 힘이. 효과가 직빵인데요.”
“뭐, 유독 잘 받는 사람이 있는데. 여하튼 감사합니다.”
“한 포 더 먹어도 되죠?”
“음, 그건 좀.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되는데요.”
“에이, 하나 더 먹을게요. 몸이 좀 그래서요.”
적정 용량이라는 게 있었지만, 3인방과 김현수. 그리고 최재성이 보길 바라고 하는 행동.
의도가 적중했을까.
당장 누군가 볼멘소리를 했다.
“야야, 너만 입이냐.”
“한의학, 그거 별로라면서요.”
“별로긴 인마. 남자한테 얼마나 좋은데.”
“에이. 저만 먹을 겁니다.”
“와, 이 자식이 진짜. 여친 있다고. 너, 그러는 거 아니다. 나도 몸이 허하다고.”
보약을 챙겨 드는 3인방.
사천당가라고 비웃을 때는 언제고 한 방울이라도 흘릴까 싶어 쭉쭉 빨아 먹고 또 빨아 먹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처럼 보약을 하나 더 챙겨 먹는다.
의료 과실로 이어질까 싶어 약을 구하러 뛰어갔던 한의사나.
보약이라면 환장하는 의사나.
차트로 수많은 사람을 조졌으면서 코웍이 중요하다고 하는 그 자신이나.
전부 모순된 건 마찬가지.
어쩌면 모순덩어리나 마찬가지기에 인간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그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채.
한참 그들을 놀려 대는 진혁이었다.
* * *
잠시 후.
베이스캠프나 다름 없는 이동 진료소로 돌아오자 다들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는데, 차마 다가오진 못한 모양.
곧 그들의 시선이 녹용 그림이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는 보약 박스를 향했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건만, 진혁이 씨익 웃어 보였다.
“녹용이 남자한테 엄청 좋다던데……. 이거 도와줬다고 해서 받은 건데요.”
“그냥 공짜로 줬다고?”
“네, 하나씩 먹으면서 하라던데. 아, 다들 한의학 싫어하지. 그냥 제가 혼자 먹을게요.”
말로만 그치지 않고 또다시 한 포를 뜯어 원샷을 때린다.
벌써 다섯개 째.
쓴맛이 올라와 사탕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고.
적정 용량을 초과해 심장에 무리를 주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도 됐지만, 진혁이 또다시 웃어 보였다.
“아, 배부르네요. 벌써 다섯 포나 먹었거든요.”
“크음, 큼. 이 선생. 좋은 건 나눠 먹어야지.”
“아, 그럴까요. 그럼 하나씩 가져가세요.”
진혁이 박스를 열어젖히자, 다들 슬그머니 다가와 한약을 챙기기 시작했다.
사천당가라더만.
안면을 몰수하고 보약을 챙기는 모습.
이를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한참 헛웃음을 켠 진혁이 또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만 한 게 문제인 걸까.
아니면 돈을 잘 벌어서 문제인 걸까.
약사랑도 싸우고, 한의사랑도 싸우고, 간호사랑도 싸우고, 국민과도 싸우는 의사.
뭐가 문제인진 모르겠다.
이렇게 보면 똑같은 사람인데.
아, 모르겠다, 진짜.
진혁이 또다시 보약을 집어 들자, 누군가 소리쳤다.
“야! 너 인마! 혼자 몇 개나 먹는 거야! 어!”
보약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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