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04)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04화(304/388)
304화. 차세대 EMR (14)
공자는 말했다.
사람인 이상 도리를 다 해야 한다고.
체면과 부끄러움을 아는 것. 즉, 염치를 지키는 게 마땅히 할 도리라고.
물론,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었고.
평생 직장은 없어졌다며, 울부짖는 사람이 천지인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각자도생과 배금주의라는 말이 화두로 떠오르고.
공자의 도리 따윈 적폐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고 있는 세상인 것이다.
그렇기에 한순간에 변해 버린 세태처럼 굴 수 있었다.
보약을 먹고 입을 싹 씻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신 병원 봉사단은 염치를 아는 이들이었다.
80포도 모자라, 박스를 더 얻어 온 상황.
인당 2포에서 3포의 녹용을 들이켠 만큼, 시비를 거는 일을 멈춘 것이다.
그리고 그건 경의 한의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봉독으로 죽을 뻔한 환자의 처리를 도와줬기에, 괜한 적개심을 표출하는 일 따윈 없었고.
진혁이 그토록 바라던 평화가 찾아왔다.
다 같이 사진도 찍고.
해단식도 갖고.
인사도 나누고.
떠나면 그만인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 늘 그렇듯 염치를 아는 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당장 보령으로 근무지를 옮긴 오태상만 해도 염치가 없었다.
* * *
공자는 무려 500년 전 사람.
기원 후도 아니고 기원 전 사람이다.
즉, Before Christ(B.C) 시대의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종교를 떠나 Anno Doimin(A.C)이라고 명칭된 시대를 살아가는 오태상 또한 알고 있었다.
시대를 초월해 격언으로 내려오는 만큼 염치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걸.
여기서 선을 넘으면 끝이라는 걸.
지금 하는 행위는, 폭탄에 버튼을 누르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나만 이대로 끝날 순 없어.’
분통이 터지고 답답함이 몰려와 참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너무도 열악한 환경이었다.
병상 또한 적었고.
환자 또한 다약제 처방 연구에 적임지나 다름없을 정도로 노인밖에 없었다.
그뿐이랴.
안동 분원과 다르게 보령 분원은 읍내와 한참 떨어져 있었다.
뒤편엔 청천 저수지가.
앞쪽엔 탁 트인 논밭밖에 없는 외진 곳인 것이다.
그러니 글을 쓰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다다다닥.
다다다닥.
‘김현수의 복수든 뭐든, 니가 시작한 일이야. 네가 시작한 일이라고!!’
[저는 아신 병원에서 근무하는 오태상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진혁 선생의 아이디어를 훔쳤습니다. 본원으로 올라가고 싶어…….]한참 계속된 자기 고백.
공에 눈이 멀어 잘못을 저질렀다는 폭로 글을 썼다.
물론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증례를 드는 건 기본.
그 자신이 각색한 보고서와 이진혁이 만든 원본 파일을 까페 자료실에 올렸다.
[증빙 첨부합니다. 별첨#1은 이진혁 선생이 만든 원본이고, 별첨#2는 제가 도용해서 보고한 문서입니다.]워드에 기본적으로 저장되는 ‘문서 정보’가 틀리다고 누군가 지적할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출력된 문서를 받아 적은 것.
이진혁에게 스크래치만 낼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고 여겼다.
* * *
일찍이 공자는 사람을 가렸다.
돌담에서 몰래 방뇨하는 자를 향해 “이게 뭐 하는 짓이야!”라고 호통을 쳤지만.
대놓고 방뇨하는 자에겐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염치를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내려 봤자, 소용없다고 여긴 것이다.
한데 오태상이 그런 짓을 해 버렸다.
도로 한복판이 아니라.
시장 한복판.
그것도 기사화돼서 전 국민이 볼 수 있는 곳에 대놓고 똥을 싼 것이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어느새 집에 도착해 컴퓨터를 켠 진혁이 헛웃음을 켰다.
핸드폰에 불이 날 정도로 연락이 오길래, 어떻게 글을 썼나 했더만.
자충수를 둬 버린 오태상이었다.
‘이러면 부원장도 속았다는 생각에 열받을 테고. 박병찬 교수는 말할 것도 없고. 박영진 과장은 뭐.’
헛웃음을 켜던 진혁이 당장 혀를 끌끌 찼다.
때로는 좌고우면하기보다 경주마처럼 눈가리개를 한 다음에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좋다지만,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막말로 그런 자료를 만든 적이 없다고 부인하면 그만인 것이다.
물론 쌓아 온 업보가 있는 상황.
혹시 몰라 반응을 살핀다.
딸깍.
딸깍.
의사 커뮤니티는 욕으로 도배돼 있었지만, 대중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미국에서 상을 받고 돌아온 게 불과 얼마 전.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다약제 부당 사용에 대해 칼을 빼 든 정부!] [복지부와 심평원이 나선다! 협동 조사 예정!] [부당지원금 반환나서나!] [궁지에 몰린 파업 찬성파!]기사 또한 호의적이었다.
칼을 빼 든 정부.
다약제 처방을 빌미로 여전히 파업 중인 개원의를 잡을 생각이 분명해 보였다.
이대로라면 파업도 끝날 터.
이젠 대응할 차례였다.
* * *
“저, 그때 말씀드린 인세요. 그거 기부해도 되겠죠?”
일부러 안방까지 찾아가 말씀드리니, 당장 부모님이 빤히 쳐다보신다.
또다시 구설수에 휘말린 아들.
내색하진 않으셨지만, 내심 걱정되는 눈치였다.
뻔히 그 속내를 짐작한 진혁이 웃어 보였다.
“어차피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법이니까요. 아까워하지 않으려구요. 금방 벌 수 있어요.”
“구주(유럽)에서 받은 선인세라고 했지? 아빠는 찬성이다.”
“뭐, 나도 찬성이긴 한데.”
“엄마는, 음, 뭐, 걸리는 거라도 있으세요?”
“기부야 좋긴 한데. 여자 친구는? 여자 친구는 뭐래?”
“얘기 안 했는데요.”
“어머, 얘가! 그래도 상의는 해야지.”
“아직 결혼할 것도 아닌데요.”
진혁이 계면쩍게 웃자, 어머니가 얼굴을 굳혔다.
연애는 결혼을 전제로 한다고 여기시는 어머니.
연세가 있으시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몰랐다.
냉큼 알겠다고 대답한 진혁이 방으로 돌아와 통화 목록을 살폈다.
오지호와 우용만.
그리고 박영진을 비롯해 동기들과도 통화를 마친 상황.
당장 연락 올 것이라 여겼던 이현아만 연락이 없었다.
‘일부러 연락을…….’
그 자신을 배려하는 게 분명한 이현아.
새삼 마음이 따뜻해진 진혁이 곧장 전화를 걸었다.
딸깍.
“아버님은 괜찮으세요? 어떠세요?”
[지금 아빠 얘기를 할 때가 아니잖아요. 괜찮은 거죠?]“일부러 전화하지 않는 거 같길래요. 뭐, 저야 괜찮아요. 어디 하루이틀인가요.”
[진짜 못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오태상이면 그때 박 과장님이 테이프 달라고 했던 그 사람이죠? 그 사람,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통화를 하다 보니 이현아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그만큼 속상하다는 말.
진혁이 서둘러 그녀를 달랬다.
“얌체라는 말 알죠? 염치에서 어형이 변형돼서 생긴 말이에요. 염치를 모르는 놈들을 가리키는 말이죠.”
[알긴 아는데…….]“얌체처럼 구는데. 뭐, 혼 좀 내 줘야죠.”
[어떻게요?]“일단 기부할 건데요.”
한참 계속된 통화.
동의를 받을 필요는 없었지만, 순순히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는 진혁이었다.
여자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속담도 있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생각지도 못한 소득이 있었다.
“아직 그게 남아 있었어요? 전부 폐기한 줄 알았는데요.”
진혁의 눈이 커졌다.
* * *
메시지가 타당하면, 메신저를 공격하면 된다는 말.
그건 메시지가 타당할 때나 쓰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메세지도 오염됐어. 의도 자체가 의심받고 있다고.’
메시지 자체도 문제가 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다약제 처방은 명백히 해가 되는 일.
환자도, 건보 재정도 전부 도움되지 않는 최악의 행태였다.
한데 이걸 단순히 본원으로 올라가려는 수단으로 썼다고 고백하다니.
메세지 자체도 순수성을 의심받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메신저마저 공격하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저는 아신 병원 레지던트 김현수입니다.]당장 김현수가 오태상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박영진의 지시로 묻어 두었던 일을 공개한 것이다.
물론, 거기서 그쳤다면 미약한 반응에 그쳤으리라.
워낙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으니까.
하지만 이현아가 따로 카피해 둔 테잎이 있었다.
박영진이 전부 파기해 달라고 했고, 테잎마저 가져다줬지만, 일부러 사본을 떠놓은 모양.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 때문에 오태상의 민낯은 낱낱이 까발려졌다.
메신저의 신뢰성이 땅에 굴러다니는 돌보다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젠 자신이 나설 차례.
먼저.
“소아암 환자에게 인세를 기부할 예정이며, 그 금액은 10억으로 미약하지만…….”
기부 금액을 밝혔다.
현업 복귀 면담을 할 때 오지호에게 밝혔던 계획을 그대로 실행한 것이다.
어차피 판교에 땅을 사 둔 상황.
부모님 덕분에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당장 기자들이 난리를 친 건 말할 것도 없는 일.
기부금에 대해 한참 물어보던 그들의 관심사는 대번에 오태상의 폭로로 이어졌다.
“저, 이번 폭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태상 선생님이 기획안을 배꼈다고 자백했습니다. 진위 여부를 알고 싶습니다!”
“왜 말씀이 없으신 겁니까! 사실입니까! 거짓입니까!”
“사실상 자폭이나 다름없는 폭로였는데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질문.
한참 침묵하던 진혁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저, 아닌데요?”
* * *
기자들은 집요했다.
하지만 아닌 걸 맞다고 밝혀낼 순 없는 일.
작업은 전부 최재성의 집에서 했으니, 증거 또한 남아 있지 않았다.
피시방?
애초에 비회원으로 출력만 하고 나왔을 뿐.
CCTV도 없었다.
결국, 같이 자폭하고자 했던 오태상만 아작났다.
다약제 사용 현황 연구에서 배제됐고.
사표를 쓰라고 종용 받게 된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젠 파업도 끝난 건가.”
정말 질질 끈다는 말이 딱 어울렸던, 개원의들의 파업 또한 끝났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면허가 박탈되는 상황.
경검이 합동으로 수사까지 하게 됐으니,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 결과.
“참의료지원단은 금일부로 해산한다!”
오랫동안 유지되던 참의료지원단은 해단식을 가질 수 있었다.
대강당에 따로 모여, 성대하게 행사를 치른 것이다.
갑작스러운 변화.
이 모든 게 다약제 행태를 보고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젠 마침표를 찍기 위해 분원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게 의미없어진 상황.
진혁은 서둘러 마무리에 나섰다.
차세대 EMR 오픈 일정이 픽스되고,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게 되자 곧장 강릉행 버스를 탔다.
함께 근무했던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와 인사를 나누고 박연수 작가와 만나 술도 마셨다.
물론 단순히 술만 마신 건 아니었다.
“음주운전으로 부모를 잃은 주인공이 복수할 거예요.”
성태선과 협의해 일종의 사회고발물을 뒤섞는다는 말.
전작만큼 파급 효과가 클지는 몰랐지만, 진혁은 응원의 말을 남겼다.
엄벌주의 대신 교화주의를 채택한 한국 법조계가 조금은 전향적인 시각을 보여 주길 바란다고.
* * *
어느덧 찾아온 봄.
바이스 레지던트가 된 진혁이 차트를 챙겨 들었다.
이젠 R3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