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1)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1화(31/388)
31화. 차트 조지기 (2)
이진태가 시작이었다.
새벽이면 타과 레지던트를 콜하는 데 애를 먹던 진혁이 줄줄이 레지던트를 불러내기 시작했다.
물론, 때로는 장혁준을.
때로는 김현수를 써먹었다.
오태상으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보다 못한 오태상이 김현수를 호출했다.
“김현수 선생.”
“네, 선생님.”
“많이 한가한가 봐?”
“네?”
“헬퍼만 뛰고 다니는 거 같은데?”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방금도 이진혁 선생이 부탁한 거 들어준 거 아니야.”
오태상이 으르렁거리자 김현수가 바짝 얼어붙었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더니.
다른 레지던트보다 기타 동아리 선배였던 오태상이 제일 부담스러웠다.
“그, 그게.”
“어떻게 된 거야.”
“네?”
“왜 갑자기 도와주냐고.”
“!!”
순간 김현수가 오태상의 기색을 살폈다.
이진혁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
그렇다면 곧이곧대로 이진혁과 거래했다고 대답해서는 안 됐다.
“사실, CS 한동수 교수님이 면접장에서 시키셨습니다.”
“뭐?”
“그게 그러니까…….”
김현수가 면접 때 일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타교생이라고 배척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한동수의 엄포가 있었다는 말에 오태상이 황당해했다.
‘대체 이진혁이 뭐라고 이러는 건데.’
정진석의 경고까지 떠오르자.
오태상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했다.
“하. 참.”
“선생님, 저는 그럼…….”
“가 봐.”
싸늘한 말투에 김현수가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자, 오태상이 재차 진혁을 바라봤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환자를 처치하고 있는 이진혁.
그 능숙함이 거북함으로 다가왔다.
* * *
차트를 입력하러 스테이션으로 돌아온 장길만.
그가 오태상을 발견한 건 그즈음이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이상해. 아니, 희한해.”
“뭐가.”
“저놈 말이야. 저놈.”
“누구? 이진혁?”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면…….”
오태상의 설명을 들은 장길만이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얼굴을 했다.
“벌써 동기들을 구워삶았다는 거잖아. 그것도 타교생이.”
“그러니까 이상하다고.”
“그냥 신경 꺼. 어차피 한 달 있으면 갈 놈이잖아.”
“그래도.”
“그냥 신경 쓰지 말라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뭐?”
의아한 낯빛을 띠는 오태상.
장길만은 말을 아꼈다.
하지만, 사실 그를 진심으로 말리고 싶었다.
‘저놈 무서운 놈이라니까!!’
이진혁과 잘못 엮이다간 어떤 꼴을 당할지 몰랐다.
* * *
그 시각.
오태상의 시선을 느낀 진혁은 웃고 있었다.
‘내가 너랑 기 싸움할 짬이 아니다, 인마.’
그러다 곧.
김지연 간호사가 진혁을 호출했다.
“이 선생님! 11번 베드요!”
“네. 갑니다!”
또다시 찾아온 환자.
진혁이 재빨리 문진을 시작했다.
“어르신, 어디가 아프세요?”
“넘어졌지, 뭐.”
“어떻게 넘어지셨는데요?”
“그냥 뒤로 쾅! 뭐, 별거 아냐.”
별거 아니라는 말과 다르게 환자가 뒷머리를 가리켰다.
머리를 부딪쳤다는 말.
뇌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어 곧바로 촉진을 시도했지만, 당장 문제는 없어 보였다.
“부어오른 곳도 없고. 외상은 없으신데요. 혹시 어지럽거나 두통이 있진 않으세요?”
“그런 건 없지. 아들놈이 응급실이라도 가 보라 해서 오긴 왔는데……. 그냥 집에 갈까?”
“음.”
진혁이 묘한 눈빛으로 환자를 바라봤다.
그의 나이는 60대 후반.
아들이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지만, 아무런 증상도 없으면서 새벽에 혼자서 응급실을 찾아왔다는 게 이상했다.
“평소랑 다른 점은요?”
“음?”
“특이한 증상 같은 건 없으세요?”
“증상은 무슨.”
“잘 생각해 보세요.”
“뭐, 살짝 토하기는 했는데……. 원체 자주 토하거든.”
구토(Vomiting) 증세가 있었다는 말.
순간 진혁이 얼굴을 굳혔다.
어지럼증과 두통 등 뇌 손상에 따른 신경학적인 증상은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구토는 뇌 질환의 대표적인 증상.
검사를 해 봐야 했다.
* * *
잠시 후, 확인한 검사 결과는 모호했다.
모든 수치가 경계 선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 애를 먹이는 건 환자의 의식이 명료하다는 거다.
차라리 기면(Drowsy, 대화는 가능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자극에 덜 예민해진 상태) 상태라면 모를까.
의식이 너무도 뚜렷했다.
‘그래도 토했다는 건 증세가 발현된 거나 마찬가진데.’
진혁이 계속 말을 걸어 봤지만, 환자의 반응은 여전했다.
“아이, 괜찮다니까. 그만 갈까?”
“아뇨, 혹시 몰라서요.”
“뭐가 혹시 몰라?”
“잠깐 여기 계셔야 할 거 같습니다.”
아직 킵하라는 지시는 없는 상황.
오태상에게 냉큼 보고했지만 그도 똑같은 판단을 내렸다.
킵을 하기에도.
그냥 내보내기도 아리까리한 것이다.
다른 환자의 처치를 이어 가면서도.
진혁은 그를 계속 신경 썼다.
업무 로딩이 걸리지 않으려면 한 환자에게 매달려 있을 순 없었지만, 틈틈이 돌아와 상태를 확인했다.
그렇게 다시 환자에게 말을 걸고 있을 때.
그가 눈앞에서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웁!”
“어르신!”
“우우우웁!!”
“괜찮으세요?”
“웩!!”
괜찮냐는 말이 무색하게 노랗게 뜬 토사물이 환자의 옷을 적셨다.
간호조무사가 달려와 토사물을 치우는 사이, 진혁이 오태상에게 달려갔다.
“환자가 보미팅(Vomiting, 구토)을 했습니다.”
진혁의 노티에 오태상이 곧바로 움직였다.
환자를 살핀 그가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브레인 CT 찍어 봐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CT 결과를 확인한 진혁의 얼굴이 굳었다.
‘정중선 편위가 2mm라고? 설마……!’
블리딩(출혈)을 확인한 순간 떠오르는 병명이 있었다.
급성 경막하 출혈이었다.
자칫 상태가 악화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블리딩(출혈)이 멈췄을 수도 있었기에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었다.
이를 오태상에게 보고하자.
그 또한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일단 NS(신경외과) 콜해요.”
“알겠습니다.”
진혁이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딸깍.
“선생님, ER 인턴 이진혁입니다. 진종호, 남자 67세. Acute Subdural Hemorrhage(급성 경막하 출혈)이 의심돼서 연락드렸습니다.”
[CT는 찍어 봤어요?]“네. 블리딩(출혈)이 확인됩니다. 정중선 편위는 2mm입니다.”
[멘탈(Mental, 의식 수준)은요.]“아직 Drowsy(기면)까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럼 일단 킵하고 있어요. Brain CT는 30분 뒤에 한 번 더 찍어 보고요.]뚝.
또다시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
진혁이 쓰게 웃었다.
NS 레지던트는 보존적 치료.
그러니까 환자를 좀 더 지켜보자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물론, 그의 선택이 틀렸다고만은 볼 수 없었다.
의식이 명료하기도 했고.
두개강 내압 상승 징후도 없었다.
하지만, 출혈이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면 치사율이 높아 환자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었다.
* * *
환자가 또다시 구토했다.
“우웨에에엑.”
거기에 그쳤다면 모를까.
환자의 반응 또한 이전 같지 않았다.
“어르신.”
“으으음?”
“괜찮으세요?”
“여기가 어디야?”
“병원입니다.”
“병원? 내가 왜 여깄어?”
환자가 딴소리를 늘어놓자 진혁이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곧장 청진을 시도했다.
이전과 다르게, 느리고 깊지만 불규칙한 호흡음이 들렸다.
‘Bradypnea(비정상적으로 느린 호흡)!’
거기에 더해 BP(혈압)마저 흔들리자.
진혁이 곧장 김지연 간호사를 호출했다.
“김 간호사님, Mannitol(만니톨, 삼투성 이뇨제) 좀 주세요. 혹시 모르니까 Penytoin(항경련제)도 주시고요.”
“오 선생님한테 보고하실 거죠?”
“당연히 보고해야죠.”
환자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김지연이 다급히 움직였고.
진혁은 오태상에게 투약 오더를 받아 냈다.
물론, 순서가 뒤바뀐 일이었지만 말이다.
곧, 투약을 끝낸 진혁이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NS 레지던트의 반응은 여전했다.
[아, 블리딩이 멈췄을 수도 있다니까요.]“그래도 한번 내려와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CT도 다시 찍기로 했잖아요.]“상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그래도 조치를…….”
[아, 끊습니다.]뚜욱.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끊기는 전화.
급하게 김현수를 찾아갔지만, 실패.
장혁준도 콜을 시도해 봤지만, 실패였다.
“뭐래요?”
“좀 더 지켜보라는데요. NS도 지금 환자가 너무 많대요.”
“그래요?”
“네,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정해진 프로토콜대로 해야죠.”
“?”
진혁의 말에 장혁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해진 프로토콜.
오태상이 항상 강조하는 말이었지만, 진혁이 그 말을 어떻게 실행하려는지 가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이젠 콜을 거부하는 레지던트를 불러내기 위한 계획을 실행할 때였다.
무엇보다 환자가 걱정돼 가만있을 수 없었다.
물론, 중증으로 치닫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먼저, 베드 끝머리에 걸려 있는 종이 차트를 꺼내, NS 레지던트가 콜을 거부한 일을 전부 기록했다.
거기에 더해, 환자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1분 단위로 바이탈을 적었다.
그런데 그때.
간호사가 진혁을 찾았다.
“이 선생님! C라인 좀 제거해 주세요.”
“네.”
킵하라는 지시는 받지 못한 상황.
진혁은 그 어느 때보다 재빨리 움직였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면 가서 액팅을 하고, 다시 11번 베드로 돌아와 차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다른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김지연 간호사뿐만 아니라, 오태상과 장길만도 묘한 눈빛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급한 거 하나 없어 보이던 양반이 웬일이래.’
‘뭐야. 왜 갑자기 뛰어다녀?’
‘대체 무슨 꿍꿍이야.’
다른 인턴과 한참 달라 보이던 진혁이, 그제야 인턴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 눈에는 이상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 * *
진혁의 행동이 계속될수록, 스테이션에서 차트를 입력하고 있던 장길만은 의구심을 더해 갔다.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사실, 이진혁을 신경 쓰지 말라고 오태상에게 말하긴 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그의 움직임이 무척 거슬렸다.
그렇게 한참 진혁을 관찰하던 중.
무언가를 깨달은 그가 옆에 있던 오태상을 불렀다.
“이진혁이 자꾸 11번 베드에 가는데?”
“뭐? 그냥 뛰어다니는 게 아니고?”
“잘 봐. 다른 환자를 보고 나면 다시 11번 베드로 가잖아.”
그 말에 오태상이 진혁의 행동을 곰곰이 따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요청이 오면 곧장 뛰어간다.
빠르게 처치한 뒤.
다시 뛰어가서 11번 베드를 지킨다.
게다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한 뒤, 차트에 적기까지 했다.
“뭐 하는지 가 볼까.”
“아, 아니. 그냥 신경 끄자.”
“아냐, 가 봐야지.”
“음.”
“나한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어도, 장 선생도 신경 쓰이는 거 아니었어?”
잠깐의 고민.
장길만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오태상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 * *
장길만의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차트에는 NS를 콜한 일부터, 환자의 바이탈 상태가 분 단위로 적혀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비어 있는 시간도 있었지만, 이 정도면 킵을 서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일부러 차트를 자세히 적었어? 설마……. 그래서 뛰어다닌 건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의구심.
그건 곧 확신으로 변했다.
진혁이 핸드폰을 들어 전화했기 때문이다.
“선생님, 제발 내려와 주시면 안 될까요.”
[아. 진짜. 너 이 새끼. 벌써 몇 번째 전화야!! 어!!]뚜욱.
또다시 끊기는 전화.
진혁이 차트를 손에 들고 있는 장길만을 빤히 쳐다보자 그가 말을 더듬거렸다.
“왜, 왜요?”
“선생님, 차트 주시면 기재하려고 합니다.”
“뭐, 뭐를요?”
“네?”
“지금 뭐 하는 거냐고요.”
“프로토콜대로 하고 있습니다만.”
“프로토콜?”
“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순진한 얼굴로 반문하는 이진혁.
장길만이 기함했다.
‘지금 일부러 적고 있는 거야. 일부러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거고.’
개인 폰으로 전화한다는 건 통화 기록을 남기겠다는 의지.
장길만이 고개를 돌려 오태상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