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10)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10화(310/388)
310화. 바이스 레지던트 (6)
이른 새벽, 프리라운딩을 돌 시간이다.
다들 좀비처럼 비척거리며 움틀댔다.
“으으. 졸리다, 졸려.”
“근무 줄어든 거 맞냐. 왜 이렇게 힘드냐.”
“으으.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며. 이건 왜 적응이 안 되냐고…….”
다들 눈을 반쯤 감고, 차트를 집어 들었다.
곧 있으면 적용될 차세대 EMR.
종이 차트가 완전히 사라질 거 같진 않았지만, 당분간 병행한다고 했다.
이젠 잠을 자는 환자를 깨우고.
커튼을 걷어 내며.
밤사이 발생한 이벤트를 기록할 차례.
드레싱도 하고.
우징이 있는지도 확인하고.
교수님들이 샤우팅을 터트리지 않도록 모든 준비를 끝내야 했다.
그렇게 어기적거리며 흩어질 때.
단 한 명.
펜더처럼 눈 주위가 검게 변한 장혁준만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별사탕, 별마당, 별사탕, 별마당, 별사탕, 별마당. 으으. 정신병 올 거 같다. 으으. 궁금해 미칠 거 같다고!”
좀비 중의 좀비.
변이 좀비로 변해 버린 장혁준이 멍한 표정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정성욱이 당장 소리쳤다.
“야, 장혁준!”
“예, 치프.”
“뭔가 이상한 거 없냐! 어! 기시감! 뭐, 그런 거 없냐고!”
“네?”
“너만 남았다! 너만 남았어! 어! 빨리 안 움직여!”
“아니, 그보다, 별마당, 별사탕.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그게······.”
한참 계속된 설명.
되도 않는 헛소리에 정성욱이 짜증을 냈다.
“에이씨. 야. 그냥 장난이잖아!”
“아뇨. 이 선생, 성격 아시잖아요. 항상 진지하고. 심각하죠. 환자한테도 진심이고요.”
“근데.”
“이런 거로 장난치겠어요? 안 그래요? 그런 스타일이 아니잖아요.”
“…….”
“평소 행적이 그렇다니까요. 잘 생각해 보세요. 진짜 뭐가 있다니까요.”
거듭된 주장.
1년 차부터 재간둥이로 소문났던 정성욱이 뒤늦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마당, 별사탕, 그리고 3인칭 대명사.
대체 무슨 소리일까.
왜 말을 하다 말았을까.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아주 애늙은이처럼 구는 놈인데.’
교수님 같은 레지던트.
그게 바로 이진혁이었다.
그러니 뭔가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는 장혁준의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면 또다시 사고 칠 준비를 하고 있거나.
그렇게 정성욱마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저 멀리서 이진혁이 나타났다.
라운딩을 돌다가 장혁준이 안 보이자 돌아온 모양.
눈을 찡긋거리고.
장혁준을 몰래 가리키며 웃는 이진혁.
한 번, 두 번, 세 번.
과한 제스처에 담긴 함의를 대번에 깨달은 정성욱의 눈이 커졌다.
‘뭐야, 그냥 장난이잖아.’
“야, 혁준아. 너, 진짜 모르냐?”
“네?”
“아니, 이걸 왜 모르지?”
“뭔, 뭔데요?”
“야, 이걸 모르면 대체 어쩌자는 거야. 너, 인마. 아주 잘난 척은 다 하고. 트렌드를 선도한다며!”
“그, 그게.”
“남들 워크맨 쓸 때, MP3 플레이어 쓰고. 무스는 촌스럽다며 왁스 쓰고. 요샌 비비크림도 바른다며. 근데 이걸 몰라?”
정곡을 찌르는 타박.
장혁준이 고개를 푹 숙였다.
“뭔데요. 아시면 좀 알려 주세요.”
“프리라운딩 끝나면 알려 줄게.”
“진짜죠?”
“자, 10분 준다! 실시!”
“실시!!”
10분 만에 끝낼 수 있는 양이 아니었지만, 장혁준이 번개처럼 튀어 나갔다.
어떻게든 알아내고 만다는 집념이 담긴 몸짓이었다.
* * *
20분 후.
장혁준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다 끝냈습니다!”
“완벽하지?”
“예!”
“자, 이거. 나는 간다.”
“웬 쪽지를……. 치프! 이게 뭡니까! 아니, 이게 뭐냐고요!”
교수님을 호종해야 하는 정성욱이 손을 휘적거리며 사라지자.
장혁준이 당장 쪽지를 펼쳤다.
하지만.
[■■■ ■■■ ■■■ ■■■■ ■■■ 별마당 ■■■■ ■■■ 별사탕■■■■]사인펜으로 지저분하게 덮어써 무어라 쓴 건지 알 수도 없는 쪽지만 있을 뿐.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정성욱의 장난질.
화가 난 장혁준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포효했다.
“크아아아악!!”
* * *
“뇌절이네, 뇌절. 뭘, 이렇게까지.”
정성욱이 만든 쪽지를 건네받은 진혁이 당장 혀를 찼다.
한 번이면 재밌지.
두 번은 재미없는 법.
정성욱의 행동은 뇌절이나 다름없었다.
뭘 이런 쪽지까지 만든단 말인가.
진혁이 잔뜩 화가 난 변이 좀비, 장혁준에게 말했다.
“그냥 장난이었어요, 장난. 왜, 어제 김지환 선생님이…….”
“그래서 그랬다고요? 진짜 장난이었다고요?”
“네네.”
“하……. 그럼 뇌절은 뭔데요?”
“네?”
“아니, 방금 그랬잖아요. 뇌절이라고. 뇌절이 무슨 뜻이냐고요.”
“아, 그건…….”
이 시대에는 쓰이지 않는 용어.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진혁이 혀를 찼다.
의도치 않게 장혁준의 궁금증을 키운 상황.
정말 의도치 않았다.
아, 이제 어떻게 하냐고?
모르겠다, 모르겠어.
한동수였다면 그저 껄껄거렸으리라.
아, 아닌가.
꺼억.
뭐, 이런 트림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 또한 추억으로 남을 게 분명했다.
* * *
곧바로 시작된 컨퍼런스.
박선정의 차례가 되자, 진혁이 나섰다.
주치의는 아니었지만, 풀어야 할 게 많았다.
“회진 때 말씀드린 것처럼, 노작성 호흡 곤란은 아니었습니다.”
“그야 이미 알고 있고. 환자 앞이라 물어보기 그랬는데 말이야. 디프레션(Depression, 우울증)은? 그것도 거짓말인가?”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그래?”
“예, 관심을 끌려고 과한 행동을 한 것도 맞지만, 우울증인 것도 맞습니다. 그게 그러니까…….”
한참 계속된 설명.
박선정의 사정을 전해 들은 교수들이 하나같이 혀를 찼다.
날개가 꺾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니.
그 사정이 딱하기만 했다.
아직 한창 나이지 않던가.
“핸드 크램프(Hand cramp, 손 경련)야 습관일 수도 있고.”
“예.”
“결국, 포칼 디스토니아(Focal dystonia, 국소성 근긴장 이상증)냐 아니냐인데. 확인할 방법이 없지 않나?”
“기전도 밝혀진 게 없고. 진단 방법도 특별히 공표된 게 없습니다.”
“임상적 판단이 중요하다?”
“예.”
“음, 이게 말이야. 브레인(뇌)이랑 머슬(근육)까지 연결된 문제라. 중간에 신경 작용이 정확하게 밝혀진 것도 없고. 그럼 괜히 실수한 게 아닌가 싶은데…….”
“…….”
“과한 기대는 실망만 부르는 법이야.”
환자한테 너무 희망적으로만 말한 게 아니냐는 말.
진혁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무너진 환자.
희망 섞인 말로 독려하는 게 맞다고 여겼다.
물론 그냥 넋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장혁준처럼 밤을 꼬박 새우며 만든 자료가 있었기에, 진혁이 준비한 PPT를 띄웠다.
“포칼 디스토니아에 대한 발표 논문입니다.”
“미국?”
“예, 1년 전에 발표된 논문으로. 투수,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속기사, 뭐. 손가락을 자주 쓰는 직업군을 대상으로 통계를 낸 자료라고 보시면 됩니다.”
“피아니스트는 오른쪽 네 번째, 그러니까 약지에 증상이 집중된다?”
“아무래도 힘을 많이 주는 부위 중심으로 발생하는 거 같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왼손 약지랑 새끼손가락이군.”
“네, 근데 박선정 환자가 짚은 곳은 왼손 검지. 통계와 차이가 있습니다.”
“왼손 검지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
“예, 연주만 하면 굳어 버리는데. 일반적인 경우는 아닙니다.”
진혁의 대답에 당장 교수들이 고개를 저었다.
발생 부위로 판단할 수 있는 병증이라면 미지의 병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통계에서 벗어났다고, 증거가 될 순 없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돼.”
“예, 그래서 레보도파 트라이얼(Levodopa trial, 레보도파 검사)을 진행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레보도파를 투약하고 반응을 본다?”
“파킨슨병 환자한테 쓰는 방법이긴 한데, 도파민 수준을 높이고 중추 신경계의 움직임을 관찰하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신경이랑 얘기는 됐고?”
“예. 얘기는 끝났습니다.”
투약 전후 손가락의 움직임을 보겠다는 말.
평소에는 멀쩡하다가 특정 행동.
그러니까 연주라든지, 노래라든지, 공을 던진다든지, 타자를 친다든지.
뭐, 이런 반복적인 행동에만 반응하는 증상이었으니, 의미는 있었다.
만약 진짜 국소성 근긴장 이상증이 맞다면, 브레인, 그러니까 신경 문제일 테니까.
진혁이 PPT를 끄며 다시 차트를 띄웠지만, 다들 한마디씩 보탰다.
“항콜린제랑 항히스타민제 추가하고. 바클로펜(중추성 근이완제)도 투약하지.”
“예, 처방 오더 내겠습니다.”
“서운대는 확실하지 않다고 했고. 카톨릭 병원은 아니라고 했다며. 우리도 명성에 맞는 소견은 내 줘야겠지.”
“…….”
“바이올린을 켠 상태로 뇌파를 검사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그것도 신경 쪽이랑 협의해 보겠습니다.”
“그래. 주치의랑 같이 움직이고. 그건 그렇고 정신 쪽은 어떻게 됐나?”
“박운혁 교수님, 일정 픽스했습니다.”
“박 교수님이 직접? 뭐, 그럼 걱정은 안 해도 되는데 말이야. 어린 천재일수록 원래 스트레스가 심해. 부담감에 알게 모르게 주눅 들어있다고.”
정신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말.
그 자신의 판단을 편드는 말.
컨퍼런스는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됐다.
* * *
이제 5분 남짓한 시간만 남은 상황.
다들 수술실로 갈 시간이다.
뭐, 누군간 외래를 보러 가야 했지만.
진혁이 빠르게 설명을 이어 갔다.
“트리거 핑거(Trigger finger, 방아쇠 수지증후군)는 약지와 새끼손가락. PIP joint(손가락의 두 번째 관절)에 페인(통증)을 호소하고 있고.”
“…….”
“방치한 지 너무 오래돼서 수술해야 할 거 같습니다.”
“손가락이야 그렇고. 손바닥은? 안쪽이야? 바깥쪽이야?”
“안쪽입니다.”
“그래? 종창이 있는 거 아니야? A1 도르래(A1 pulley, 손가락 굴곡 조절 기관)는?
“힘줄이 통과하기 힘들 정도로 두껍습니다.”
“그 정도인데, 참고 연습했다?”
“환자도 아직 포기한 건 아닙니다. 주로 쓰는 손을 바꿔 가며 연습까지 했습니다.”
“허허.”
손가락을 구부렸다가 필 때마다 잠김 현상도 발생하고 있었고.
힘줄에도 문제가 있었으며, 인대조차 손상돼 있었지만, 연습을 했다는 말.
치료를 받지 않는 행태와 대비되는 것이었지만, 다들 혀를 찰 뿐 놀랍다고 여기진 않았다.
그만큼 인간은 원래 이해하기 힘든 존재니까.
그렇게 끝난 컨퍼런스.
수술실로 향하며 교수들이 한마디씩 건넸다.
“역시, 이 선생이야.”
“바쁠 텐데. 에티튜드, 아주 훌륭해.”
“그건 뭐. 정평이 나지 않았습니까. 그보다 Gastrojejunostomy(위공장 문합술)은 어떻게 합니까?”
“뭐, 모의 수술 때 이 선생이 해 봤으니, 직접 집도를 시키시지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의 교수들.
압빼 같은 간단한 것만 시키고.
아직 멀었다며 꼰대처럼 구는 게 다른 병원의 외과 의사들이었다면.
확실히 아신 병원은 달라졌다.
이 모든 건 초집도의 상시화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한동수 때문에 벌어진 일.
아니, 그 자신이 신뢰를 듬뿍 받고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 * *
일주일 후.
위공장 문합술만 주야장천 파며 공부했던 진혁이 손을 내밀며 소리쳤다.
“메스!”
완벽한 집도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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