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11)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11화(311/388)
311화. 바이스 레지던트 (7)
복강경 집도는 처음이라지만, 여타 수술처럼 어시로 들어온 교수가 봐주고 있었다.
그러니 참관자 따윈 없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 이진혁 선생 말이야. 박선정 환자랑 비슷하지 않아? 연주만 하면 왼손 검지가 굳는다는데, 이진혁도 집도만 하면 멈칫거리잖아.
– 뭐?
– 어시를 설 때는 멀쩡하고. 집도할 때는 머뭇거린다니까.
– 그건…….
– 봐 봐. 환경도 똑같잖아. 과도한 관심.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스포트라이트. 천재에 대한 기대감. 책임감까지. 뭐, 다 똑같다니까.
환자인 박선정과 똑 닮았다는 말이 뒤늦게 퍼졌고.
대수롭지 않게 진혁에게 집도를 맡겼던 교수들은 얼굴을 굳혀야 했다.
물론 할 말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박선정은 뇌 신경에서 기인한 문제.
그러니까 국소성 근긴장 이상증 의심 소견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신 병원은 서운대와 카톨릭 병원이 그러했듯, 다른 진단을 내렸고.
그 결과로 인해 다들 참관실에 모일 수밖에 없었다.
“박선정 환자, 포칼 디스토니아(국소성 근긴장 이상증)가 아니라는 겁니까?”
“뭐, Autonomic dysfunction(자율신경 실조증)에 가깝다지요?”
“스트레스에 따른 자율신경 장애라니. 끄응. 포칼 디스토니아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뭐, 정확한 진단 방법은 밝혀진 게 없으니까요. 아닐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지요.”
“허허.”
“의사마다 진단이 같다면 암 환자들이 병원을 옮겨 다니지도 않았겠지요.”
결국, 심리적인 문제로 진단했다는 말.
바이올린을 켠 상태로 뇌파 검사도 했고.
정신과 정형. 수부와 신경까지 붙어서 내린 결론은 다른 것이었다.
문제는 외과 계열의 희망.
이진혁 또한 마찬가지라는 거였다.
“우리 이 선생도 박선정 환자와 같은 증상을 보인다니……. 큰일입니다. 큰일.”
“완벽할 순 없는데. 본인이 너무 몰아붙이는 거 같습니다.”
“잠깐 머뭇거리는 거야 생각이 많아 그런가 보다 했는데. 하, 참.”
“허허. 잠도 안 자고. 수술 영상만 보고. 너무 부담을 줬나 봅니다.”
일주일 전과 달라진 태도를 보이는 이들.
확신이 없었기에 눈치를 보던 진혁의 행태를, 박선정이 보이는 증상과 연결시켜 우려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들 진혁을 놓고 시끄럽게 떠들 때.
심리학의 대가인 박운혁이 물었다.
“위 출구가 폐쇄됐는데. 위공장 문합술을 하는 이유는 뭡니까. 바이탈이 흔들리거나. 캔서(위암)거나, 중증일 때 하는 수술이 아닙니까.”
“…….”
“GOO(Gastric outlet obstruction, 위 출구 폐쇄)면 유문성형술로 끝내도 될 거 같은데 말입니다.”
“그게, 유문(Pylorus, 위와 십이지장 연결 조직)만 손댄다고 끝날 상황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폐쇄 정도가 심하다? 그만큼 비쩍 마른 것도 아닌데요.”
“박선정 환자, 원래 소식했다지요? 그래서 음식물이 소장으로 내려가지 않았던 것도 티 나지 않았던 거고, 또 지금…….”
한참 계속된 설명.
그 순간, 메스를 손에 쥔 진혁의 절개가 시작됐다.
배꼽 바로 아래.
피부 절개를 시작한 것이다.
“앗, 시작했습니다! 근데 너무 바짝 붙인 거 같은데요. 조금 밑에서 했어야 했는데…….”
“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복강경 수술을 집도하는 건 또 처음인데. 흠.”
한번 걱정되기 시작하니.
모든 게 염려되는 상황.
다른 병원 교수들이 보일 법한 반응을 보이며 다들 얼굴을 굳히자.
시시포스 신화를 꺼냈던 서상수 교수가 나섰다.
“알바(Linea alba, 백선). 그러니까 백선을 일부러 노린 거 같습니다.”
“굳이 어렵게 갈 이유가…….”
“여자 환자지 않습니까. 흉터도 예민하고……. 뭐, 백선은 근육층도 없고 섬유조직만 있어 회복도 빠르고. 뭐. 생각이 있겠지요.”
“그야 그렇긴 한데…….”
의도를 놓고 한참 떠드는 이들.
딱 하나 분명한 건 있었다.
다들 걱정과 염려의 시선으로 이진혁을 바라보고 있다는 거였다.
* * *
일부러 어렵게 가는 건 아니었다.
복강경 수술.
흉부외과에서 숱하게 해 봤다.
그 자신이 망설이는 건 ‘이 정도면 됐다’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
기본만큼은 철저했다.
그렇기에 피부 절개를 끝낸 진혁이 곧바로 손을 내밀었다.
“모스키토.”
곧바로 건네지는 모스키토 겸자.
이를 이용해 절개된 피부 면의 가장자리를 잡고.
부드럽게 잡아당겨 박리하길 반복했다.
지방층을 분리해 내는 것이다.
“보비(Bovie, 전기소작기).”
이어진 건 근막 절개.
전기소작기를 연필 잡듯이 잡은 다음 손을 위아래로 놀렸다.
한 번에 깊게 걷어 낼 순 없기 때문.
전기소작기로 보풀을 걷어 내듯 근막을 조금씩 걷어 내고 또 걷어 냈다.
물론 근육층을 일부러 피했기에, 그 속도는 빨랐다.
어느덧 검붉은 복막이 보이자, 진혁이 또다시 손을 내밀었다.
“켈리포셉(Kelly Forceps). 절개 부탁드립니다.”
“절개는 내가 하지.”
“예, 절개한 순간 바로 밀어 넣겠습니다.”
곧, 혈관 지혈을 위한 끝이 뭉뚝하고 홈이 파인 포셉이 건네진다.
투관침(Troca)을 넣기 위한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쓸 생각.
퍼스트 어시가 손을 놀리자, 곧바로 복막이 열렸고.
망설일 법도 했지만, 진혁이 냉큼 켈리포셉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저항감이 느껴졌지만, 망설이지 않는다.
오히려 좋았다.
투관침을 넣을 때는 되레 안전해진다는 말이니까.
“11mm Troca.”
곧바로 두꺼운 투관침이 걷네진다.
배꼽 절개로 복막을 열었기에, Veress Needle을 이용한 장기 손상 확인.
그러니까 복벽이 제대로 뚫렸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이 투관침을 삽입했다.
이어진 건 또 다른 부위의 절개.
복직근 바깥쪽 경계에 하나.
다시 그 경계 너머에 하나.
반대편은 배꼽 오른쪽 상단.
그러니까 원위부 절개를 위한 대각선. 배꼽과 조금 떨어진 곳, 두 곳에 투관침을 삽관했다.
그 간격은 5cm.
정석에 가까운 움직임이었지만, 탄성이나 놀라워하는 이는 없었다.
다들 이진혁이 또다시 머뭇거리는지 아닌지만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기본적인 수술을 위한 준비.
복강 안쪽에 가스를 집어넣어 공간을 확보하고.
시야를 위한 카메라 거치까지 끝났다.
그뿐이랴.
진혁과 어시스트가 쓸 복강경 도구까지 투관침을 통해 밀어 넣어졌고 환자의 포지션 또한 바뀌었다.
베드를 살짝 조정해 중력으로 장기가 눌리는 일을 피하는 거까지 끝낸 것이다.
이젠 본 수술에 들어갈 시간.
그때, 참관실에 있던 서상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왼손 위치가 조금…….”
“뭐가 말입니까?”
“집도의 왼손 위치 말입니다. 복직근 바깥쪽 경계에 너무 바짝 붙어 있는 거 같은데. 창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 다들 편한 대로 하는 게지요. 나야 전액와선에 붙이는데, 그게 편하니까 하는 거고.”
“저도 전액와선까지 낮춰서 합니다만.”
“뭐,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그래서, 아…….”
순간 서상수한테 질문을 받았던 교수가 탄식을 내뱉었다.
집도의라면 누구나 있는 습관.
야구로 따지면 쿠세(버릇) 같은 게 있기 마련이었다.
한데 이진혁도 쿠세가 있다니.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개복수술이야 많이 해 봐서 그런다지만, 복강경을 집도하는 건 오늘이 처음.
복강경 수술에선 어시만 해 왔던 진혁이 쿠세가 있다는 게 조금 이상했다.
“…….”
“…….”
“…….”
“…….”
조용한 침묵만 이어지며 다들 의아해할 때.
Liver retraction(간 견인)이 시작됐다.
* * *
복강경은 장단이 뚜렷하다.
개복하지 않는 만큼 회복이 빠르고.
흉터 또한 적다.
하지만 시야가 완전히 차단됐다고 할 만한 상황.
위를 가리고 있는 간, 그러니까 좌엽을 먼저 치워야 했다.
진혁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무미건조한 어조로 지시했다.
“아래로.”
“넷.”
“다시 위로.”
“…….”
“아니, 거기서 다시 아래.”
“네.”
카메라를 맡은 건 그 자신보다 후배.
R1이었기에 가능한 반말이었다.
물론 그만큼 무빙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지도하면 그만.
진혁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지시하기를 반복했고, 무혈관 부위.
그러니까 혈관이 많이 지나지 않는 간 인대를 찾는 데 주력했다.
이제 됐다고 여기던 그 순간.
어시를 서던 교수가 입을 열었다.
“간 좌엽을 위로 들어 올릴 거야. 너무 높이 들어 올리면 안 되고. 적당히. 시야만 확보할 수 있게 들어 올려. 할 수 있겠나?”
“예. 일단 간을 붙잡고 있는 인대부터 전부 절제하겠습니다.”
“블리딩 최소화하고. 적당히 떼네.”
“알겠습니다.”
또다시 그놈의 적당히라는 말이 나왔지만.
진혁은 그러려니 했다.
진단이 의사마다 다르듯, 수술 방법도 의사마다 달랐다.
위를 볼 수 있는 시야.
그러니까 누군간 확실하게 간의 좌엽을 들어 올리기 바랬고.
또 다른 누군간 적당히 위만 보이면 된다고 여겼다.
어떻게 아냐고?
지난 일주일간 위공장 문합술 영상만 수십, 아니 수백 개를 돌려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어차피 정답은 없어. 그냥 최선을 다하는 게 정답이야.’
이를 악문 진혁이 곧장 하모닉(복강경 초음파 절삭기)을 움직였다.
먼저 왼쪽 삼각 인대.
좌엽과 횡경막을 고정하는 인대를 절제했다.
다시 전복벽에 부착된 인대를 하나씩 끊어 간다.
곧, 좌엽이 덜렁거릴 수 있는 수준으로 흔들리자, 진혁이 모니터를 바라본 채 지시했다.
“펜로즈드레인(Penrose drain, 고무 튜브). 2-0 프롤렌(Prolene, 비흡수성 봉합사) 주세요.”
“준비됐습니다.”
진혁의 예고에 다들 분주히 손을 놀렸다.
초음파 에너지를 이용해 응고와 동시에 절제한 인대.
이를 다시 열어 봉합사를 삽입하고.
펜로즈 드레인으로 배액도 해야 했으며 고박도 해야 했기에, 도구를 빠르게 교체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혁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헤모락(수술용 클립)을 이용해 봉합사를 고정시키고.
다시 겸상인대 우측으로 좌엽이 견인될 수 있도록 펜로즈 드레인을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빨랐기에 참관실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허허, 역시, 우리 이 선생이야.”
“천재는 천재입니다.”
“하하. 역시! 역시! 천재입니다!”
만족스러운 듯 웃는 교수들.
그들이 웅성거린 건 좌측 부분 대망 절제술을 시작할 때부터였다.
* * *
분명 잘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R3가 보여 줄 수 없는 손놀림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한데, 또다시 머뭇거린다.
사실 그건 머뭇거린다고 말할 수도 없는 찰나의 망설임에 가까웠다.
진혁 또한 그 자신의 단점.
그러니까 가치 판단 문제에 있어 머뭇거린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해 왔으니까.
그러니 망설임이라 칭하면 안 됐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 그렇던가.
이미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던 상황.
박선정처럼 진혁도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릴 거라고 여겼던 교수들이 당장 수선스럽게 떠들었다.
“아니, 저……. 허허. 위체하부 전벽을 겸자로 들어 올렸으면. 바로 어블하면 되는 게 아닙니까.”
“대망으로 가는 혈관이 다 보였는데. 왜. 허허. 잠깐 망설였어요. 망설였어.”
“바짝 붙여서 어블(절제)할지. 아니면 조금 떨어져서 절제할지 고민하는 게 아닙니까. 저 정도는…….”
“아니에요, 아닙니다. 횡행결장은 자연스럽게 중력으로 떨어지게 내버려 두고. 위대망혈관만 주의하면서 잘라 내면 그만 아닙니까.”
한참 어수선한 참관실.
누군간 망설였다고 주장했고.
누군간 당연히 고심할 타이밍이라고 여겼다.
지난 이 주일 동안 보여 줬던 망설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당장.
“끄으으으응.”
뒤늦게 참관실로 들어온 병원장 오지호부터 이런 소리를 냈다.
전부 이진혁을 천재로 오인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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