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18)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18화(318/388)
318화. 바이스 레지던트 (14)
잘 모르면서 주워 들은 걸 내뱉는 환자.
의사가 제일 싫어하는 환자 유형 중 하나다.
괜히 설명이 길어지니까.
그런 면에서 최예린은 선을 넘었다.
어설프게 아는 체를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발랄했던 처음 모습이 그리울 정도.
최예린 앞에 선 장혁준이 크게 심호흡했다.
“저기. 후배님. 아니, 예린아.”
“네.”
“항생제는 바꾸기로 했어. 베타락탐 계열이랑 아미노 계열은 뺄 거고. 아즈트레오남이랑 레보플록사신이 들어갈 거야.”
“네.”
“왜 이렇게 하는지 궁금하지? 의심 가는 질환이 많아서, 소거법으로 접근하는 거야.”
“…….”
“피버(열)가 튀는 이유를 모르니까. 하나씩 지워 갈 거고. 지금 당장은 약물 때문에 혈구 수치가 까인 건지 확인한다는 얘기야.”
“네.”
마지못해 하는 대답.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다.
가정사는 감히 캐묻지 못했지만, 불안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서 생긴 정서적 균열은, 자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커질 수 있으니까.
‘거짓말이라도 정신적 지지대를 다시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진짜 쉽지 않네.’
“너 지금, 좀 이상한 거 알지? 이 선생이 연애한다니까. 표정도 안 좋고. 말도 없어지고. 실연당한 여자애처럼 굴고.”
“그런 거 아니에요. 몸이 아파서. 간단한 줄 알았는데. 수술 후에 예후도 안 좋고. 그래서 그런 거예요.”
“이거 봐. 이 선생 얘기만 나오면 발끈하고. 그러다가 다시 침울해하고. 이거 병이다, 병.”
“그런 거 아니라고 했는데. 진짜 저, 괜찮아요. 괜히, 이 선생님한테 말씀드리고 그러시면 안 돼요. 이제 별로 보고 싶지도 않아요.”
“나 입 무겁다. 아신 병원 자물쇠가 내 별명이야. 별명.”
그 자신이 말해 놓고도 설득력이 없었지만.
뭐, 상관없었다.
어차피 방송에 나간 모습만 알고 있을 그녀.
이진혁의 왼팔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이태희처럼 아신 병원 여신으로 유명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삼류 엑스트라처럼 나왔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예린이 반박하지 않고 침묵했다.
‘박 교수님이 희망 고문이 꼭 나쁜 건 아니라고 했지.’
“근데 그거 알아?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거 아니다.”
“그건 골대가 클 때 얘기죠. 쉽게 마음 주고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선생님도 잘 아시잖아요. 이 선생님. 그런 사람 아니에요.”
“골대가 큰지 작은진 어떻게 알고. 남자는 다 똑같아.”
“이 선생님도 똑같다고요?”
“그럼. 이 선생도 그냥 흔한 남자라고.”
최예린이 또다시 침묵하자.
장혁준이 뒤로 물러섰다.
아주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아냐고?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던 그녀가 조금씩 길게 말하고 있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 * *
[글로 배우는 연애] [내 남자로 만드는 법] [화성에서 온 남자] [연애, 참 쉬웠다]등등.
장혁준이 10권이 넘는 연애 서적을 최예린한테 건넸다.
누군가를 만난 적이 없는 그녀.
저 정도 얼굴이면 학기 초부터 대시하는 놈들이 수두룩했겠지만, 거절했을 게 분명했다.
“이건 선물. 이거 보면서 공부나 하라고. 그리고 나. 곧 결혼한다.”
“축하드려요.”
“와, 영혼 없는 것 좀 봐. 정아름이라고. 술자리에서 만났어. 지목 게임 알지? 원래는 이 선생을 지목했어.”
“근데 그분이랑 결혼하시는 거예요?”
“응. 뺏었어. 사랑은 쟁취하는 거니까.”
“어떻게요? 어떻게 뺏었는데요?”
“사람 마음. 그거 아주 쉽게 변해. 계속 연락하다 보면 허물어지고. 경계심도 누그러지고. 아주 쉽다고.”
“다 그런 건 아니죠. 안 그런 사람도 있어요.”
“아니, 대부분 그래. 내가 사 온 책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고. 그리고 나. 열 명 넘게 만나 봤다. 산증인이라고 산증인.”
장혁준이 두 손을 펼쳐 보였다.
공부에 치여 사는 애들과 한참 다른 경력.
자랑스럽다는 듯 어깨마저 으쓱거렸다.
“또래 남자애들. 솔직히 우스워 보이지? 남자로 보이지도 않고. 하나같이 찐따처럼 보이고. 옷도 잘 못 입고. 공부만 해서 말도 못 하고.”
“그건 그렇죠.”
“나는 달라. 연애? 쉬어 본 적도 없어. 압구정 오렌지족. 그게 바로 나야.”
“그거 자랑 아닌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나이도 한참 어리고. 앞으로 같이 근무할 거고.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까 그냥 뺏어. 뺏으면 그만이야.”
“제가 졸업하고 병원에 오면. 그땐 만나기 어려울 텐데요.”
“이 선생, 트리플 보드 밟는 거 몰라? ER이든 CS든. 레지던트 때 만날 건데. 같이 붙어 있다가 휘리릭! 그냥 확! 어! 무슨 말인지 알지?”
한참 계속된 썰.
최예린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감정 기복이 심한 게 이럴 땐 좋았다.
설득이 쉬웠으니까.
* * *
POD #3.
흔히 말해 수술 3일 차다.
장혁준이 당장 차트를 확인했다.
RBC 570,000/uL
WBC 1,470/μL.
Protein 2.9g/dL.
Albumin 1.9g/dL.
.
.
.
아직 올라오지 않는 백혈구 수치.
정상치를 한참 하회하고 있었다.
그뿐이랴.
프로테인과 알부민 수치 또한 간이 여전히 좋지 않다는 걸 드러내고 있었다.
차트를 마저 살핀 장혁준의 시선이 최예린을 향했다.
“일단 약물 영향은 아니라는 건데. 가능성 하나는 소거됐다. 그치? 폐 CT 찍은 건 소견 나왔거든. 엑스레이랑 똑같이 GGO가 확인되는데. 뭔지 알지?”
“Ground glass opacity(간 유리 음영). 그건 저도 알아요. 그래서 담배도 안 하고. 조심하고 있어요.”
“Interlobular septal thickening(특발성 간질성 폐렴) 소견도 나왔어.”
“그건 단순 염증 때문에 생긴 거죠? 소엽 사이에 있는 분리막이 두꺼워진 거잖아요.”
“그레잇! 완벽해! 우리 이 선생. 지적인 여자 좋아한다.”
“진짜요?”
최예린이 또다시 반응하자, 장혁준이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있었다.
두드리면 언젠간 열리리라.
지금 상황에 딱 맞는 표현이었다.
“안경 끼고 가운 입고. 딱이야, 딱. 의사-의사 커플만큼 좋은 게 어딨냐고. 안 그래? 아, 참. Pulmonary interstitial edema(간질성 폐 부종) 소견도 나왔어.”
“인펙션(감염) 때문에 리버(간)도 그렇고 렁(폐)도 영향을 받았다는 거죠?”
“어. 이퓨전(삼출액)이 조금 찼는데. 아직 드레인할 정도는 아니야.”
“아직 호흡은 괜찮고. 불편한 것도 없어요. 힘들어지면 말할게요. 삼출액이 쌓이면 당장 불편해지잖아요.”
다시 아는 척을 하는 최예린.
틀린 말은 없었다.
이제 때가 됐다는 걸 깨달은 장혁준이 승부수를 던졌다.
“우리 곧 있으면 대회진인데. 알지? 분과 별로 회진 돌다가. 외과장님 모시고 도는 거. 그때 이 선생이 너 알아보는지. 한번 확인해 볼래?”
“어차피 이름이 쓰여 있는데요.”
“이름표는 내가 빼 놓을게.”
“짜고 칠 수도 있잖아요.”
“지금 그런 분위기가 아닌데. 이 선생 스케줄이…….”
한참 계속된 설명.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진혁이라는 말에 최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만으로 19살.
한국 나이로 이제 갓 스무 살이 됐다지만, 애는 애였다.
* * *
외과장인 최재원과 함께하는 대회진.
모든 환자를 관장할 수 없었고.
병동이 워낙 산재해 있어, 한 달에 한 번 진행된다.
그러니 바짝 긴장하는 날이기도 했다.
실수라도 한다면 탈탈 털릴 테니까.
기나긴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병실을 돈다.
어느덧 최예린 차례가 되자, 당장 최재원이 인상을 썼다.
“이 환자. 누구지? 누가 이름표를 뺏어?! 어!”
“이,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프리라운딩 때 전부 확인했는데. 죄송합니다!”
“어떤 미친놈이 이런 짓을 한 거야! 어! 투약 실수나면 그대로 의료 사고인 거 몰라!”
“죄송합니다!”
대장항문외과 치프가 고개를 숙였지만, 외과장인 최재원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대로 챙겼어야 했고.
최소한 병실 담당 간호사는 조치를 해야 했다.
약이 뒤섞이면 안 되니까.
“주치의는 누구야!”
“접니다!”
“장혁준 선생?”
“옙.”
“환자 제대로 안 봤나? 사고 나면 어쩌려고 이렇게 놔뒀지! 담당 간호사는 누구야! 아니, 간호사야 그렇다고 쳐도! 환자를 책임지는 건 의사야! 의사!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환자가 있든 말든 장혁준이 개같이 털리기 시작했다.
내과보다 군기가 덜한 외과라지만, 납득할 수 없는 실수였다.
게다가 장혁준의 변명은 통합외과장이나 다름없는 최재원의 화를 부추겼다.
“일부러 뺐다고? 왜 이런 짓을 했지? 자네 미쳤나!”
“그게.”
“말 똑바로 안 해!”
“이진혁 선생이 환자를 알아보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뭐?”
최재원이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입을 벌리자.
다른 이들 또한 다 같이 혀를 찼다.
당장 대장항문외과를 맡은 유성만 과장이 나섰다.
“제가 따끔하게 혼내겠습니다. 장 선생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하. 죄송합니다.”
“이걸 변명이라고. 하, 참.”
“장 선생은 뒤로 빠져!”
“죄, 죄송합니다.”
개같이 털린 장혁준이 사색이 돼 몸을 숨기자, 행렬 중간에 있던 진혁이 고개를 쭉 내밀었다.
그러고선 한참 누워 있는 환자를 가늠한다.
그 와중에 최예린과 눈이 마주친 건 당연한 일.
곧 진혁의 눈이 커지며 입 모양이 벙긋거렸다.
– 최예린, 네가 왜.
뒤늦게 자신을 알아보는 이진혁을 보며 최예린의 표정이 밝아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 * *
늘 그렇듯 대장항문외과 치프가 브리핑했다.
“Dependent portion에 passive atelectasis가 관찰됐습니다.”
“뭐, 수동성 폐쇄증이야, 누워 있다 보면 그럴 수 있고. 다른 건?”
“골수검사 결과 HLH 가능성이 있어 지금 팔로업 하고 있습니다.”
면역 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돼 정상 세포를 공격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
혈구 수치가 감소한 원인을 언급한 치프가 말을 이어 갔다.
“Hepatis viral marker(간염 바이러스 진단) 모두 음성으로 확인되었고. Viral hepalis(바이러스성 감염) 가능성은 배제했습니다.”
“그런데도 수치가 튄다?”
“예. Toxic hepaitis(약물 등 독성 물질로 유발되는 간염) 가능성이 있어 면밀히 추적할 예정입니다. 내과에서도 팔로업하고 있습니다.
“페리틴(Ferritin) 수치 잘 체크하고. 이틀 정도 더 지켜보다가 도저히 안 잡힌다 싶으면 내과로 보내.”
“옙.”
최재원이 병실을 나서자, 행렬이 다시 꼬리를 물고 움직였다.
밖에 서 있던 이들이 다시 안쪽으로 들어왔다 나가는 기이한 움직임.
진혁이 최예린을 찾은 건 회진이 끝난 직후였다.
* * *
그날 밤.
레지던트 휴게실.
장혁준이 진혁에게 다가와 물었다.
“속은 거 같아요? 뭐래요?”
“다행히 잘 넘어간 거 같아요. 그냥 반가워하죠. 나 때문에 의사가 됐다는 말도 들었고. 다시 밝아졌어요.”
“와. 무사히 넘어간 거 맞죠? 그나저나 외과장님.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러게요. 연기인지. 진짜인지. 나도 헷갈리던데. 그래도 그거 알아요? 우리 병원. 참 좋은 병원이에요.”
“뭐, 아신이니까요.”
장혁준이 씨익 웃어 보이자, 진혁이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한바탕 연기를 한 상황.
윗분들까지 합심해 장혁준을 개같이 터는 모습을 보이며 최예린을 속이고, 그 자신까지 한몫 보탰다.
여기서 더 상태가 안 좋아진다면 내과로 보낼 터.
그녀의 예후가 빨리 좋아지길 바랄 뿐이다.
아, 희망 고문은 나쁜 거 아니냐고?
왜 단체로 연기를 했냐고?
장혁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고 일을 저질렀지만.
희망 고문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날짜를 받은 암 환자.
희망 고문 속에 생을 연명하고 끝내 완치된 경우도 많았다.
미리 짐작하고 포기하는 거.
기약 없는 기다림 만큼 나쁜 것도 없었다.
25년형을 받은 노역 수가 무기 징역을 받은 노역 수보다 훨씬 밝은 모습으로 복역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희망 고문이 꼭 나쁜 게 아니라는 걸.
* * *
소거법으로 진행된 각종 검사.
병명이 드디어 밝혀졌다.
조직구 탐식증.
이른바 HLH.
면역 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돼 다른 혈액 세포를 파괴하는 병으로 확진된 것이다.
곧바로 타겟 약물 치료가 이뤄졌고.
내과로 전원 돼 열흘이 지나서야 최예린은 퇴원했다.
물론.
“저, 나중에 꼭 본원으로 올게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이 모든 얘기를 전하자, 이현아가 질투를 했다는 거다.
“오늘도 라면 먹고 갈래요?”
진혁이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계란 넣어 주는 거죠?”
당직을 설 때면 달고 살았던 라면.
요즘 들어 라면이 더욱 좋아진 진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