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31)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31화(331/388)
331화. 오더 쳐 내기 (13)
짧은 소동.
오지호가 별말 없이 다시 객석으로 돌아가자, 진혁이 그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평생 외과 걱정만 하고 살았을 오지호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밥그릇 지키기가 너무 심하지.’
어떠한 말을 해 봤자, 소용없을 거라고 여기는 게 틀림없었다.
뭐, 잃을 게 많기도 했고.
사실 그랬다.
당장 그가 증원 얘기를 꺼내 실각이라도 한다면, 부원장인 부재일이 병원장이 될 터.
외과에 대한 지원은 확연히 달라질 게 뻔했다.
진혁이 짧게 침묵하자, 당장 정성욱이 다가와 물었다.
“뭐라고 말씀드렸는데? 어?”
“별말 안 했습니다.”
“별말 안 했다고?”
“예.”
“에이, 아닌데?”
“아, 뭔데요? 진짜. 왜 그러시는 건데요?”
정성욱과 장혁준의 추궁.
진혁이 나 몰라라 하며 곧바로 PPT를 열었다.
낭만적인 주제를 발표하려고 했지만, 생각을 바꿨다.
증원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상대를 깎아내리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낭만적인 얘기는 앞선 교수님들이 전부 했으니까.
다다다닥.
다다다닥.
빠르게 써 내려가는 증례.
내과가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하기 위해 준비해 뒀던 증례였기에, 쉽게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모습에 장혁준과 정성욱이 동시에 고개를 내저었다는 거였다.
“뭐, 뭐야. 이게 뭔데?”
“참여형 수업? 야. 강연을 해야지.”
“아후. 이런 증례는 또 어디서 본 건데?”
“듣도 보도 못한 건데…….”
한참 계속된 투덜거림.
가볍게 무시한 진혁이 쉬는 시간이 끝나자마자 단상에 올라섰다.
“지금까지 외과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만 살펴봤는데요. 너무 외과만 한 거 같은데. 내과도 살펴보죠.”
“자, 이번 시간은 참여형 수업입니다.”
진혁이 컨트롤러를 조작하자, 곧바로 PPT가 띄워졌다.
[환자 현황]– 30세 남환, 서핑 후 허리 통증을 주소로 내원.
– 서핑 중 양다리 뒤쪽에 당기는 느낌이 들었음.
– 넘어지거나 부딪힌 적 없음.
– 기저질환 없음.
– 6시간 후 자력으로 소변 보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됨.
케이스 리포트를 띄운 진혁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좌중을 훑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한동수가 말했다.
“저놈, 저거. 악마입니다. 악마. 아주 어려운 문제만 가져온다고요.”
“뭐?”
“제가 저놈 후배가 아닌 게 다행이라니까요.”
“언제는 우리 애라며?”
“뭐. 그렇다고요.”
오지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또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검사 결과]힌트 1. 척추 MRI에서 흉추 9번부터 척수원뿔 T2 고신호강도.
“힌트는 조금씩 공개될 거고. 정답을 맞히면 평가는 만점입니다. 그렇죠? 병원장님!?”
진혁의 진행에 다들 고개를 돌려 오지호를 바라봤다.
영문도 모르던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소란이 일었다.
평가 만점.
일전에 일반내과를 돌던 폴리클 조를 상대로도 내걸었던 상품이었지만, 말도 안 되는 특전이었다.
당장 수선스럽게 떠드는 좌중을 보며 진혁이 웃었다.
“자, 이럴 때는 어떻게 하죠? 거기, 실습생.”
“네? 저요?”
“네, 참여형 강연이니까. 대답해 볼래요?”
“음……. 섬유륜 파열(Central annular tear)을 의심해야 합니다.”
“왜 그렇죠?”
“MRI를 찍었을 때 고신호강도가 잡혔다는 건 수분이나 액체가 많다는 말이고. 음……. 다른 부위보다 밝게 보인다는 건데……. 염증, 종양, 감염 등 이상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섬유륜 파열을 의심했다? 그 원인이 주로 노화인데요?”
“그, 그건.”
30세 남환이라는 가정과 맞지 않다는 말.
당장 객석이 술렁였다.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을 억지로 짜내는 것이다.
뒤늦게 또 다른 실습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 반복적인 행동으로도 유발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정답. 섬유륜 파열은 인저리(부상)로 유발될 수도 있고. 척추가 퇴행성 변화를 겪으면서도 생길 수 있죠.”
“그럼 방금 말씀하신 건…….”
“그냥 물어본 건데요? 주로 노화로 유발되는 건 맞으니까요. 이런 일은 엄청 흔한데. 내과 도는 분들은 아시죠?”
“…….”
“임상에서 의사를 현혹하는 증상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되죠.”
진혁이 씨익 웃어 보이자, 이를 지켜보던 한동수가 또다시 속삭였다.
“제 말이 맞죠? 저놈 악마입니다. 악마.”
“그나저나 저거 무슨 문제인데? 서핑하다가 왜 다쳐? 넘어진 것도 없다며?”
“엥. 모르세요?”
“모르는데? 나 외과의야, 외과의.”
“저도 모르는데요? 저도 흉부외과 의사입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숙덕거림.
오지호가 고개를 돌려 진혁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또다시 증원을 언급한 이진혁.
어쩌면 한동수 말대로 악마일지도 몰랐다.
병원장을 괴롭히는 레지던트라니.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경우였다.
하지만.
“천재인데…….”
그 재능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꺼져 가는 외과의 빛.
그게 바로 진혁의 존재였다.
* * *
한참 계속되는 오답 행진.
뒤이어 두 번째 힌트가 화면을 메웠다.
힌트 2. 급성횡단척수염으로 진단. 신경학적 결손은 2시간 후 AIS D로 판정.
“AIS D면 심각한 거 아니야?”
“에이, 아니지. A도 아니고. D 등급이면. 근력은 살아있다는 거잖아.”
“그런가? ABCD에서 끝나면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너, 바보냐? AIS는 E 등급까지 있잖아.”
자기들끼리 투덕거리며 치고받을 때.
진혁이 또다시 누군가를 지목했다.
“거기 실습생?”
“네, 저……. 급성횡단척수염은. 단순 염증성 질환인데요.”
“단순 염증성 질환은 아니죠. 신경 기능 장애로 인한 건데요.”
“그, 그래도 AIS D가 나왔으니까. 스테로이드 투약하고. 재활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건 2시간이 지난 후 결과죠. 6시간 후에는 자력으로 소변 보는 것도 불가능해졌는데요?”
“그럼, 음……. 구체적인 증상이 궁금합니다.”
진혁이 곧바로 컨트롤러를 조작했다.
그러자 추가 증상이 화면을 메웠다.
[3시간 후 확인된 증상]– 바빈스키 징후 미관찰.
– 발목간대 없음.
– 양다리 심부건반사 정상.
– 뇌척수액 검사 정상.
– 시각유발전위검사 정상.
이에 또다시 좌중이 술렁였다.
“바빈스키 징후가 뭐였지?”
“야, 그거잖아. 중추 신경계 손상 징후.”
“그래? 그럼 양다리 심부건반사가 정상이라는 건 뭔데?”
“너 이 새끼. 신경 수업 때 졸았냐. 신경 손상이 광범위하지 않다는 거잖아.”
“야, 그럼 시각유발전위검사는 왜 하는데? 허리를 다쳤는데. 시신경을 왜 점검하냐고.”
“맞아. 정상인데 6시간 후에는 왜 소변도 못 보게 됐냐고.”
한참 계속된 토론.
어느새 협동해서 문제를 풀고 있었고.
이는 커닝이나 다름없었지만, 진혁도 만류하지 않았다.
잠시 후, 결론을 내리지 못한 누군가 손을 들었다.
“저, VEP(시각유발전위검사)는 왜 찍어 본 건지 궁금합니다.”
“시신경을 왜 쓸데없이 확인했냐?”
“예.”
“그야 중추 신경계 질환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본 거죠. 다른 신경계 영역에 이상이 있는지 봐야 하니까요.”
“음.”
“뭐, 그것도 그렇지만.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인지 확인차 봤다고도 할 수 있겠죠.”
면역 매개 질환인 다발성 경화증에 대한 얘기까지 나오자.
당장 한동수가 오지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놈, 저거 문제를 꼬고 또 꼬았어요.”
“일부러 오답을 유도한다?”
“네.”
“에이, 설마.”
“아, 제 말이 맞다니까요.”
“아니라니까.”
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실습생 중 누군가 진행성 재발형 다발성 경화증이 아닌지 물어봤다.
완전히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오답 행진은 끝도 없이 진행됐다.
서핑 중에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왜 허리를 다쳤는지.
기저질환은 진짜 없는 건지.
서핑이 허리에 무리를 주는 게 맞는 건지.
질문과 대답이 빠르게 오갔다.
잠시 후,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자 진혁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8시간 후 확인된 증상]– 요추부 1번 이하로 촉각 및 위치와 진동 감각 모두 소실.
“서핑이 허리에 무리를 주는지 물어본 친구가 있는데. 무리를 주죠. 몸을 뒤로 젖혔다가 타니까요.”
“아직 모르겠나요? 그럼 정답은…….”
일부러 숨을 고른다.
청중의 집중도를 유도하기 위한 잔기술.
한참 침묵하며 그 반응을 유도한 다음 진혁이 컨트롤러를 조작했다.
[정답]Surfer’s Myelopathy(파도타기 척수병증)
정답이 띄워지자마자, 좌중이 술렁였다.
생소한 병명.
오지호와 한동수조차 들어 보지 못한 병명이었다.
당장 한동수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씨발, 저걸 어떻게 알아.”
이에 오지호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 내가 선배라서 다행이야.”
* * *
어려운 문제를 낸 다음 맞추지 못하면 논문 리뷰를 시키거나.
나머지 공부를 시키는 경우는 빈번했다.
환자를 향한 사명감.
그건 한동수와 오지호의 윗세대일수록 심했다.
그러니 둘 다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바르르 떨 때, 누군가 물었다.
“저, 처음 들어 보는 질환인데.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파도타기 척수병증. 척추 MRI에서 T2 고신호강도가 관찰되고. 서핑을 즐기다 생겼을 때 붙이는 병명입니다.”
“…….”
“심하면 하반신 마비. 경미하면 몇 달 정도 치료받는 걸로 끝나죠.”
“한국에서는 그럼…….”
“외국에선 흔한 병이죠. 한국은 아직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 없다지만, 곧 있으면 생기겠죠.”
“이런 거까지 알아야 할까요?”
누군가 손을 들어 용기 내 소리치자, 진혁의 표정이 굳었다.
이런 거라고 치부할 병명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의사한테는 수많은 질환 중 하나일지도 몰랐지만, 환자한테는 오롯이 그 자신에게 닥친 병.
애티튜드는 똑바로 가져가야 했다.
“알아야죠. 하와이에 다녀왔던 환자. 71년에 삼선 병원에서 증례를 보고한 적이 있습니다.”
“7, 71년이라고요?”
“네.”
다들 무겁게 침묵했다.
71년이라니.
그 자신들이 태어나기 전 증례였다.
이에 당장 한동수가 중얼거렸다.
“71년이면 해외여행 자유화도 되기 전인데. 시발. 저런 걸 어떻게 알아?”
“이봐 한 교수.”
“예, 병원장님.”
“욕 좀 그만해. 그러니까 내과 놈들이 우리보고 무식한 놈들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도…….”
“뭐, 높은 분 자식이었나 보지.”
한동수가 대답을 하기 전에, 진혁의 설명이 시작됐다.
“91년도에 비슷한 사례가 한 번. 다시 94년도에 비슷한 사례가 한 번 더 있었죠. 99년도에는 두 번이나 있었고요.”
“……!”
“알게 모르게 서핑 인구가 늘고 있죠. 발리에서 놀다 왔는데. 갑자기 하반신이 마비되고. 뭐. 그런 거죠.”
그렇게 시작된 설명.
내과는 이런 질환까지 알아야 한다는 말부터.
곧 있으면 IMF가 끝나고 점점 서핑을 즐기는 인구가 늘 거라는 말까지 한참 계속됐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증상을 가지고 수수께끼를 찾듯이 움직이는 게 내과 의사입니다.”
“끝없이 공부해야 하죠. 아, 술기도 그런 거 아니냐고요? 아니죠. 절차기억이라는 게 있으니까. 스타 해 봤죠? 스타랑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한번 단축키를 외우면 저절로 손이 움직인다는 말.
특별한 노력이 필요 없다는 말까지 계속됐다.
이에 다들 눈을 끔뻑거렸다.
미래에는 양양을 위주로 서핑이 대중화되며 널리 알려진 병.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듣도 보도 못한 병명을 가지고 이런 설명을 하는 진혁의 모습은 천재 그 자체였다.
* * *
마지막 강연.
한동수 차례였다.
PPT를 확인한 진혁이 당장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는 땅, 후배는 하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의국] [후배 사랑, 나라 사랑] [심장이 주는 낭만]너무 뻔한 캐치프레이즈.
오죽하면 저런 걸 내세울까 싶어 할 게 분명했기에 그를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네? 라이브 수술을 연결할 거라고요?”
“어, 왜? 문제 있어?”
“아뇨, 그건 아닌데요.”
“그럼 됐어. 연하불능을 주소로 내원한 환자야. 21년간 위루를 통한 섭식만 했고. 식도 재건술을 하는 걸 보여 줄 거야. 주치의는 유태광 교수고.”
한동수의 설명에 순간 진혁이 멈칫거렸다.
21년간 위루를 통한 섭식만 했던 환자.
주치의 유태광.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아니,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어……. 수술에 실패했다?’
환자가 죽을지도 모르는 라이브 수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