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34)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34화(334/388)
334화. 적폐 청산 (2)
“뭐, 시세랄 게 있나요. 장사가 잘되면 더 받고. 안 되면 줄여야죠.”
예비 개원의를 돕는 컨설팅 업체 직원의 대답.
이태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진혁의 뜻대로 개원의를 털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지만, 아직 모르는 게 많았다.
“장사가 잘 안 되면, 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그럼요. 도망가면 안 되죠. 약사도 자영업자인데요.”
“도망이요?”
“폐업이요, 폐업. 적당히 조율해야죠. 더불어 사는 사회 아닙니까. 하핫.”
능글맞은 대답.
이번엔 이태희가 뒤늦게 따라 웃었다.
“장사가 잘되면, 얼마나 높일 수 있죠?”
“일 평균 200명. 내원객이 많으면 높이셔도 되죠. 사실, 이 병원지원금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우리 의사 선생님들 노고에 참 감사하다, 이런 느낌으로 드리는 건데. 너무 과하면…….”
“약사가 신고할 수도 있다?”
“에이. 신고는 못 하죠. 그럼 바로 블랙리스트에 등재되는데요.”
“블랙리스트요?”
“네, 그게…….”
한참 계속된 설명.
약사가 의사한테 헌납하는 병원지원금을 공개하면 의사 커뮤니티에 공개되고.
그렇게 되면 다른 곳에서 개업하는 게 힘들어진다는 말이 이어졌다.
이진혁한테 적당히 듣긴 했지만, 이태희로선 놀라운 일.
그녀가 오롯이 감정을 드러내자, 컨설팅 직원이 웃었다.
“병원지원금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선생님, 허헛. 참. 너무 욕심부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또 뭐가 있는데요?”
“많죠. 이런 말은 실례지만. 흠흠. 일단 마스크가 좋으셔서 개원하면 환자도 많이 올 거 같은데요. 흐음. 어디까지 말씀드려야 할지.”
“에이. 다 말씀해 주셔야죠. 여차하면 그만둔다니까요?”
이태희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관심을 표하자, 컨설팅 직원이 커피를 쭉쭉 빨아 먹었다.
어디까지 말해도 되나 싶은 눈치.
잠깐의 침묵 끝에 그가 웃었다.
“쪽지 처방도 있죠.”
* * *
컨설팅 업체 직원과 만나고 돌아온 이태희가 털썩 주저앉았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기가 질린다는 표정.
진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자신은 암암리에 행해지는 모든 걸 알고 있던 상황.
『영닥터』를 수시로 탐방하며 저울질하던 장혁준과 다르게 이태희는 아무것도 몰랐다.
예비 개원의를 돕는 컨설팅 직원을 만나기 전에 설명을 해 줬건만, 그 반응은.
– 말도 안 돼. 그렇게까지 한다고?
한심했다.
허나 현실을 깨달은 모양.
진혁이 침묵하자, 이태희가 뾰로통한 얼굴을 했다.
“이게 말이 돼?”
“뭐가?”
“쪽지 처방. 이거. 불법 아니냐고.”
“불법 아닌데?”
“진짜?”
“어. 건강기능식품이니까. 규제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진짜 웃기는 짬뽕이네.”
“원래 법이 그래.”
너무도 태연한 반응.
이태희가 어이없어했다.
“너, 알고 있었지?”
“뭘?”
“의사가 포스트잇에 따로 건강기능식품을 적어 주고. 환자는 의사가 적어 준 거니까 약국 가서 구매하고. 제약사는 의사한테 리베이트 주고. 이거 다 알고 있었던 거 아니냐고.”
“알고 있었지. 너무 흔하니까. 쪽지 처방. 그거 업계 은어야.”
“근데 왜, 미리 말 안 했어? 쪽지 처방은 말 안 해 줬잖아.”
“어차피 알게 될 거니까.”
“와…….”
“안과에서 루테인 영양제 추천하고. 피부과에서 마사지 크림이나 탈모 샴푸 추천하고. 뭐, 흔하잖아. 쪽지 처방하고. 돈 받고. 남는 장사지.”
진혁의 대답에 이태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은 이진혁.
이현아와 사귄다는 말을 듣고 어렵사리 마음을 끊어 냈지만, 이럴 때마다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균형을 맞춰야 외과 계열에 더 지원할 거라는 말에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더 앞섰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녹음하긴 했는데. 일이 커질 텐데?”
“균형은 맞춰야 하니까. 사명감 하나로 일하는데. 애들이 지원을 안 해. 지원을 안 하니까 더 힘들어지고. 그러니까 그만두는 사람이 생기고. 그래서 더 지원을 안 하고.”
“그래서 많이 바꿨잖아.”
“아직 부족해서. 왜 이번에 봤잖아. 추가 모집 결과. 꽝이지. 꽝. TO를 채우지도 못했어.”
이미 한차례 설명했던 사항.
이를 거듭해서 말하자, 이태희가 침묵했다.
그녀의 침묵이 길어지자, 진혁의 목소리가 진중해 졌다.
“폭로해도 신원이 드러나는 일은 없을 거야. 따로 생각해 둔 게 있거든.”
“야. 지금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잖아.”
“뭐, 아무튼.”
“근데 약사는 어떻게 돈을 벌어?”
“뭐?”
“아니, 그렇잖아. 인테리어비를 협찬하거나, 처방전 발행 건수마다 얼마씩 의사한테 낸다는 건데. 걔네는 뭐 먹고 사냐고.”
“약사도 백마진을 받아.”
“뭐?”
“제약사한테 백마진을 받는다고. 왜, 타이레놀 같은 거 있잖아. 다른 것도 많고.”
“의약외품이나 건강기능제품을 팔 때 백마진을 받는다고?”
“어, 약사한테 물어보고 추천해 주는 걸로 보통 사니까.”
일반 시민의 행태까지 얘기하자, 이태희가 눈을 뻐끔거렸다.
정글도 아니건만.
포식 관계가 명확했다.
개원한 의사는 상위포식자.
제약사, 약사, 건물주한테 돈을 챙기고.
차상위 포식자인 약사는 제약사한테 백마진을 받았다.
이 모든 게 약값에 반영되어 있으니.
건보료가 줄줄 새는 일.
이태희가 소리쳤다.
“이게 정상이야? 어! 정상이냐고!”
* * *
원래 사회는 비정상적인 구조를 가지는 법.
모순은 쌓이고 쌓인다.
그리고 그 모순과 비정상적인 상태가 비가역적으로 계속될 때, 혁명이 일어난다.
프랑스 혁명이 그랬고.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민란이 그랬다.
그러니 누군간 바꿔야 했다.
아니,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허나, 최소한 도화선은 돼야 하지 않겠는가.
회귀를 했고.
두 번 사는 인생.
과거처럼 필수과의 몰락을 지켜볼 생각도.
모든 걸 갈아 넣어 그 자신의 삶을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이유를 묻는 말엔.
“얄미워서.”
“뭐?”
“얄밉다고. 의사도 사람이야. 사촌이 땅을 사서 배 아픈 거? 그거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고.”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차마 어머니의 임종마저 외면했다고 말할 순 없으니까.
거기에 더해.
“그냥 다들 좋은 사람이잖아.”
“뭐?”
“한동수 교수님. 주 120시간 넘게 일하다 쓰러졌어. 병원장님은 안 그랬을 거 같아? 외과장님, 지금도 메스를 놓지 않아. 왜? 안 그러면 전공의가 도망갈 테니까.”
“…….”
“애들을 좀 더 편하게 해 줘야 명맥을 이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래. 다들 좋은 사람인데. 애가 몇 살인지, 몇 학년인지, 생일은 언제인지. 전부 기억 못 하고 살아.”
외과 계열의 참혹한 현실.
이태희가 무겁게 침묵했다.
사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소아외과 세부 전문의가 되는 게 꿈.
응급실에서 일할 때 죽었던 어린아이를 보며 다짐했고.
지금도 새롭게 생긴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그렇게 이태희가 무겁게 침묵할 때.
뒤늦게 다른 이들이 들어왔다.
최재성과 장혁준.
그리고 김현수였다.
* * *
커피를 주문한 다음 앉은 이들
하나같이 말이 없었다.
김현수는 개원한 선배와 함께 제약사 영업사원을 만나고 왔고.
장혁준과 최재성은 또 다른 컨설팅 업체 직원을 만나고 왔다.
그러니 다들 말이 없는 것이다.
보통 충격을 받은 게 아닌 모양.
이미 보고 들은 게 있었지만, 직접 누군가를 대면해 적나라한 속사정을 전해 듣는 건 차원이 다른 일.
그때,
“이렇게 심각할 줄 몰랐는데.”
“몰랐는데?”
“심각하더라고요.”
장혁준이 푹하니 한숨을 내쉬었다.
진혁이 커피를 마시며 웃었다.
“개업도 염두에 두고 있었잖아요.”
“아, 진짜 몇 번이나 말해요. 그건 결혼하니까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 거고. 아무튼. 아, 싫어요. 이건 싫다고요.”
“왜요?”
“내가 흡혈귀예요?”
“……?”
“여기저기에 빨대 꽂아서 쭉쭉 빨아먹으면 된다던데. 이러려고 의사 된 건 아니잖아요.”
“정의감 때문이다?”
“아, 그놈의 알량한 정의감. 별로 발휘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럼요?”
“그냥, 맘에 안 들어서요.”
가만있을 순 없다는 말.
진혁이 고개를 돌려 김현수를 바라봤다.
뿔테안경의 마마보이 김현수.
그도 어엿한 R3였다.
“엄마가 요즘도 그래요. 내 말 듣고 피부과 갔어야 한다고요.”
“그런데요?”
“피부미용 시장 개방하고 수익 주니까. 요샌 내과로 갔어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근데 그거 알아요? 이제 그런 말 듣기 싫어요.”
“왜요?”
“지금까지 CS에서 어떻게 버텼는데요. 이제 포기 못 해요.”
이제 와 포기하기엔 기회비용이 크다는 말.
최재성한테까지 동의를 받은 진혁이 밝게 웃었다.
“무성이, 잘 지내죠? 김무성이부터 부릅시다.”
복지부 차관의 아들.
말썽꾸러기 김무성.
그의 힘이 필요했다.
* * *
2주 후, 또다시 찾아온 오프날.
장혁준과 최재성이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최재성이 말을 절었기 때문.
하지만.
“하핫, 진짜 그렇다는 거죠.”
“그럼요, 고객님. 하핫.”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압구정동 오렌지족답게 온몸에 명품을 휘감은 장혁준.
시계, 넥타이핀, 신발, 벨트, 옷까지.
명품이 아닌 게 없을 정도.
당장이라도 개원할 기세였기에, 컨설팅 업체 직원은 저자세를 유지했다.
“선생님, 제가 이런 거까진 얘기 안 드리려고 했는데, 특별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오오. 형님.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죠? 말 편하게 하시죠…….”
“아이, 그러시면 곤란하죠. 오히려 제가 형님으로 모셔야죠. 나중에 잘 풀리시면, 크음, 큼. 이 아우에게 명부만 주시면 됩니다.”
“명부요?”
“왜, 그, 뭐냐. 인트라넷에 연락처가. 크음, 큼.”
“아, 인적 사항이 적힌 명부가 필요하다는 거죠?”
눈치 빠른 장혁준의 질문.
컨설팅 직원이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크음, 큼. 일반 내과나 소아청소년과. 대장항문외과랑 정형외과. 재활외과도 좋고요. 이게, 참. 영업이 쉽지 않아서요.”
“연락처가 없어서 그러시는구나. 개원할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그렇죠?”
“네, 하핫. 뭐. 졸업앨범도 있긴 한데. 이게 참.”
“헛! 졸업앨범도 구하셨어요?”
“그럼요. 아는 형님이 주셨죠. 하핫. 이게 참. 영업 자산이라…….”
컨설팅 업체 직원이 말꼬리를 흐렸다.
룸에 데려가서 비싼 양주를 실컷 사 먹이고.
간신히 구했다는 걸 말할 순 없었다.
돈만 많아 보이는.
소위 있는 집 자식처럼 생긴 장혁준.
혹시 모를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장혁준이 호탕하게 소리쳤다.
“아이, 참. 자리만 잡으면, 뭘 못 해 드리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형님. 하핫.”
“이게 참, 저희 일이 좀 그렇긴 한데. 그래도 선생님도 좋고. 저희도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공무원이나 의사나. 세상 물정 모른다는 말. 얼마나 많이 듣는데요. 사기도 많이 당하고요.”
“말씀 참 잘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있는 거죠! 개원을 도와드리는 컨설팅! 이게 괜히 성행하는 게 아닙니다! 하핫.”
한참 대화하고 웃고 떠드는 사이.
홀로 침묵하던 최재성이 끼어들었다.
“저, 근,데, 약,사가, 말을, 안 들,으면. 그, 그러니까, 병원,지원,금을 안 주,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처방 약을 바꾸면 되죠.”
“다,른, 약,국에, 가게, 유도한다,고요?”
“그럼요. 보름, 아니 딱 일주일만 하시면 됩니다. 환자한테 직접 말씀하셔도 되고. 뭐, 이 약은 1층 약국엔 없으니까. 다른 건물에 있는 약국에 가라고요.”
“재,고,를 채워, 넣,으면,요?”
“에이. 그럼 또 바꾸면 되죠.”
“또,요?”
“선생님도, 참. 그거 오래 못 버팁니다. 약국 입장에서는 다 재고인데. 반품받아 주는 제약사도 있긴 한데, 안 받아 주는 제약사도 있어서요.”
의약분업 후 약사는 완전히 을이 되어 버렸다는 말.
병원지원금 명목으로 돈을 토해 내지 않으면 징치할 방법은 수없이 많다는 말이 이어 졌다.
파업까지 하며 의약분업을 반대했던 의사가 거꾸로 상위포식자가 된 세상인 것이다.
최재성이 혀를 차자, 장혁준이 나섰다.
“제약사 리베이트는 어떤 구조죠?”
“앗, 그건. 제가 영업 직원이 아니라서……. 라고 하실 줄 아셨으면 오산입니다. 하핫. 제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오. 역시!! 하핫.”
“이게 참. 판관비 아시죠? 판매관리비. 제약사도 영업에 적극적입니다.”
“대충 듣기는 했는데…….”
“일단 학회나 심포지움에 부스 차리고 지원하는 건 아시죠?”
“네네. 임상관찰연구비 명목으로 돈도 내던데요?”
“그건 종합 병원 얘기고. 개원의 대상으로는…….”
한참 계속된 설명.
제약사 명의의 법인카드를 건네받을 수 있다는 거.
한 달에 쓸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고.
해외학회 지원금 명목으로 여행도 보내 준다고 했다.
심하면.
“픽업도 해 드립니다. 우리 의사 선생님들. 자녀분들 유학 많이 보내시죠? 공항에 모시러 가는 경우도 있어요. 하핫.”
“그래요? 그거밖에 없나요?”
“에이~ 많죠. 술자리 때 불러만 주십쇼! 가오 안 상하게! 시원하게 긁어 드립니다! 뭐, 이런 영업 사원. 천지입니다, 천지.”
제약회사에서 나온 약만 써 준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
한참 설명이 계속됐다.
* * *
한 시간 후.
옆방에서 모든 걸 전해 들은 김무성의 부친이 무거운 표정으로 물었다.
“들으라고 부르셨군요. 이 선생님, 진짜 이게 현실인 겁니까?”
잔뜩 화나 있는 얼굴.
진혁이 질린 표정으로 앉아 있는 김무성을 흘깃거리더니,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아뇨, 아직 다 들으신 건 아닌 거 같은데요.”
모두를 위해서라도 적폐를 청산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