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38)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38화(338/388)
338화. 눈에 땀이 나는 곳 (2)
시간을 돌려 그날 오전.
진혁이 또다시 병실을 돌았다.
“안녕하세요, 이진혁입니다. 우리 수애 주치의가 됐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궁금하신 건 언제든지 물어보셔도 됩니다.”
“저, 근데.”
“예, 편하게 말씀하세요.”
“혹시 주치의 선생님은 왜 바뀐 건지…….”
“지정의. 아니, 교수님은 그대로인데요. 주치의만 바뀐 거예요. 저희가 분과별로 로테이션을 돌거든요.”
“그래서 어제 오신 거군요.”
“네, 어제는 인수인계 전에 한번 쭉 둘러본 거였습니다.”
진혁이 밝게 대답했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
사소한 것에도 민감했고 어떻게 보면 진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보면 당연한 일.
한참 민감해 할 시기다.
그렇게 병실을 돌며 인사를 나누고 한담을 하던 진혁이 김주성 앞에 멈춰 섰다.
소아외과는 말그대로 유아부터 소아까지 수술을 앞둔 환자를 관장하는 곳.
차트를 빠르게 훑은 진혁이 아직 유아라 할 수 있는 김주혁을 보며 장난을 쳤다.
“까꿍!! 얼레리 까꿍~!”
“까꿍!!”
“으으.”
곧바로 반응하는 아이.
인상을 찌푸리는 정도가 심해지자, 진혁이 서둘러 물러섰다.
물론 엄마의 얼굴을 확인한 아이는 곧바로 안정을 찾았으니, 어제와 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허나 계면쩍은 건 계면쩍은 거였다.
“제가 무섭게 생겼나 봐요.”
“우리 애가 좀 낯가림이 심해서요. 근데 선생님.”
“네네.”
“우리 애는 언제 수술할 수 있을까요. 제가 찾아보니까 장중첩증이라는 게 급성으로 번질 수도 있다고 들어서요.”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우리 주성이, 3일 뒤로 수술 잡혔습니다.”
“더 빨리는 안 되는 거죠?”
“네, 수술 일정이 꽉 차서요. 주성이보다 아픈 아이가 너무 많아서…….”
진혁이 말꼬리를 흐리자, 보호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제 아이가 빨리 수술 받기를 원하는 마음.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았다.
허나 응급 환자를 중심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수개월 전에 예약된 환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병원.
좀 더 상태가 안 좋은 아이가 우선권을 갖는 게 맞았다.
진혁이 불안해하는 보호자를 달랬다.
“혹시 이슈 있는 환자가 있을 수도 있거든요. 갑자기 수술을 거부하거나. 뒤로 미루거나. 수술을 받을 수도 없을 정도로 안 좋아진다거나. 일단 대기 명단에 넣어 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우리 주성이, 괜찮을 거예요. 주성아. 그렇지?”
또다시 큼지막한 얼굴을 베드 위로 드러내자, 아이가 손을 휘저었다.
낯선 얼굴이 보기 싫다는 몸짓.
진혁이 금세 몸을 뺐다.
“그래도 빨리 오신 편이라……. 이게 진단이 어려운 경우였거든요. 보통 장중첩증이면 자지러지듯이 울거나. 복통도 심하고. 혈변도 보는데요. 그런 증상도 없었는데. 아무튼 잘하신 겁니다.”
심한 복통도 없고.
구토만 있을 뿐.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김주성이었다.
특히 혈성 점액 대변(Currant jelly stool, 장에서 분비되는 점액과 결합된 대변.) 또한 발견되지 않았기에.
널리 알려진 증상과 다른 양태를 보인다고 할 수 있었다.
“일단 정복술로 끝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 케이스는 수술을 해야 하니까…….”
한참 계속된 설명.
진혁이 곧바로 시계를 확인했다.
마지막 환자까지 라뽀를 쌓은 상황.
이젠 수술을 하러 가야 할 때였다.
* * *
사건 발생 두 시간 전.
진혁은 여전히 수술방에 있었다.
그의 역할은 보조.
소아 환자는 장기 크기부터 신체 사이즈까지 모두 달랐기에, 함부로 집도를 맡을 순 없었다.
서신대 CS에서도 소아 심장 분과가 있었다지만, 폐식도처럼 맡은 적이 없었고.
아직 외과 수술은 익숙치 않았다.
그러니.
서걱.
서걱.
집도의를 보조하며 수술 도구를 건네고 시야 확보를 위한 일만 할 뿐이다.
그렇게 한참 손을 놀릴 때.
집도의가 입을 열었다.
“오늘 몇 탕째지?”
“네 번째 수술입니다.”
“쉬지도 못했겠군.”
“괜찮습니다.”
“그래도 무리하진 마.”
“…….”
진혁이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도 그럴 게.
그 자신은 마지막 수술.
그러니까 10시간 연속 수술이 끝나 가고 있었지만, 주치의는 다른 수술이 예정돼 있었다.
무리하면 안 된다는 말.
오히려 자신이 해야 옳았다.
한데 전공의 걱정이라니.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필수과 교수다운 태도였다.
“애들은 말이야. 사이즈도 다르고. 대사율도 다르고. 면역 시스템도 달라.”
“아무래도 한창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그래. 기관도 작고. 혈관도 작고. 다 다르지. 메젠바움 시저.”
“여깄습니다.”
진혁이 곧바로 14cm가 넘는 메젠바움 시저를 건넸다.
끝이 뭉툭하고 길었지만, 손잡이는 짧아 정밀한 조작이 가능한 도구.
티슈(조직)를 잘라 내는 주치의의 손길은 거침없었다.
뭐랄까.
신속함 속에 정교함이 녹아 있다고 해야 할까.
짧은 상념도 잠시.
그가 말을 이었다.
“단순히 수술만 잘해선 안 돼. 아직 애들이야. 애들. 자, 여기 포셉.”
“심리적인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그래. 그래야지. 아직 모든 게 두려울 나이야. 이 군은 안 그랬나?”
“…….”
“왜, 있잖아. 무서워서 불 켜고 자고. 문 열어 놓고 자고. 화장실도 문 열고 일 보고.”
“저도 그랬던 거 같습니다.”
진혁이 짧게 대답했다.
말이 많은 집도의.
누군간 음악을 틀고.
누군간 한마디도 안 하고.
뭐, 저마다 스타일이 달랐으니 특이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그런 애들이 수술대 위에 올라와 있는 거야. 낯선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거고. 그러니까 심리적 안정. 성장 가능성. 그에 따른 부작용. 전부 고려해야 해.”
“예, 교수님.”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야.”
“애들을 사랑하시는군요.”
“그럼, 사랑해야지. 얼마나 사랑스럽냐, 이거야.”
진혁이 대답 대신 석션을 하며 수술대 위에 누운 아이를 바라봤다.
귀신이 있을까 봐.
유령이 나올까 봐.
분리 장애가 아니더라도,
엄마를 찾고,
아빠를 찾는 아이.
그런 아이들이었지만, 병이란 게 참 모질었다.
사람을 가리지 않기에.
아이도, 어른도, 노인도.
전부 아플 수 있었다.
문제는.
‘사람이 없지.’
소아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인력이 한정적이라는 거.
소아외과 또한 망해 가는 건 매한가지라는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집도의가 비통한 자기 고백을 해 왔다.
“얼마 전에 학회가 있었어. 정회원만 모였지. 고작 서른 명이 왔더군. 불참자는 6명. 고작 36명밖에 없어.”
“…….”
“우리가 그만두면 끝이야. 끝.”
“…….”
진혁이 또다시 침묵했다.
미래에는 전국을 통틀어 20명밖에 안 남는 소아외과 세부 전문의.
CS 또한 노교수들이 은퇴하며 같은 처지에 놓인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저 침묵하고 또 침묵할 뿐이었다.
아직은 전국에 36명이나 있는 셈이니까.
그렇게 계속된 수술.
얼마 지나지 않아 진혁이 고개를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했어!”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스텝들의 연이은 인사.
주치의로 나선 교수와 함께 손을 씻으며 한참 얘기를 나누고.
그 자신은 밖으로.
교수는 또 다른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통제 구역 밖으로 나왔건만.
뭔가 어수선했다.
초조해 보이는 얼굴.
어두운 표정.
낮은 속닥거림.
고개를 모로 젓던 진혁이 아직 통성명도 하지 않았던 간호사를 붙잡았다.
“저, 혹시 무슨 일 있나요?”
“아, 선생님. 방금 전에 코드블루 떴어요.”
“네?”
“수술방은 방송 차단돼서 못 들으셨죠. 지금 5분 넘었고. 김주성 환자예요.”
“네? 누구라고요?”
“김주성이요. 지금 다들 하고 있을 텐데. 앗, 선생님!!”
채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진혁이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 * *
장천공, 장폐쇄, 장괴사.
혹은 복막염.
아니면 급성 패혈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연이은 수술로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기에 정확한 건 몰랐다.
다다다다닥.
다다다닥.
진혁이 생각을 지우고.
달리고 또 달렸다.
순식간에 도착한 병실.
진혁의 고개가 휙휙 돌아갔다.
EKG 그래프는 이미 가라앉은 지 오래.
기저귀를 사러 가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던 보호자는 패닉 상태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선생님! 제발! 제발! 우리 애 좀 살려 주세요!”
“흐으으윽!!”
“제발! 제발요!”
울부짖는 보호자.
그리고 그 앞에서 묵묵히 CPR을 하는 인턴과 레지던트.
전부 다른 분과 소속이었다.
방송을 듣고 달려온 모양.
오늘 갓 주치의를 맡은 진혁의 목소리는 컸다.
“서 선생! 에피(에피네프린)는?”
“1분 전에 0.01mg/kg 슈팅했습니다!”
“한 번 더 슈팅해.”
“네? 아직 시간이 안 지났는데요.”
“그래도 슈팅해. 어서!”
진혁의 고성에 즉각 반응한 건 일반외과에 근무하는 R1이었다.
짧게는 3분.
길게는 5분 간격으로 슈팅해야 했고.
돌이 갓 지난 만큼 몸무게에 맞게 용량도 최소화해야 했지만, 상급자의 명령.
이대로 죽는 거보다 부작용을 겪더라도 어떻게든 살리는 게 좋을 거라는 판단이 분명했다.
하지만.
“반응 없습니다!!”
미리 준비해 둔 에피네프린을 투약하고.
CPR을 하고 있음에도 한번 꺼진 그래프는 돌아올 줄 몰랐다.
“60초 지났습니다!”
“정 선생! 나와! 교대해!”
“넷!”
순식간에 바뀐 포지션.
진혁이 곧장 CPR을 시작했다.
고작 손가락 2개.
깊이는 4cm.
소아 환자인 만큼 성인과 그 행태가 달랐다.
얕게.
또 얕게.
하지만 또 강하게.
분당 약 100회.
아니 120회까지 올려 가며 압박을 했다.
물론 중간중간 인공호흡을 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성인 CPR은 인공호흡이 없어졌다지만, 소아 환자는 병행하는 게 원칙.
훅훅.
훅훅.
하고 또 하고.
다시 교대를 한 다음 계속 CPR을 했다.
그렇게 20분이 지났을 때.
진혁이 허망한 얼굴을 했다.
갓 돌이 지난 아이.
김주성이 속절없이 죽었다.
* * *
진혁이 한참 말이 없자, 누군가 뒤에서 속삭였다.
“선생님, 사망 선고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
“저, 선생님?”
듣기 싫은 재촉.
해야 할 건 해야 한다는 건 알기에 진혁이 곧바로 청진기를 꺼내 들었다.
미련? 미련 같은 건 아니었다.
으레 하는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그렇게 시작된 청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시 손목.
그리고 경동맥.
사타구니.
손을 짚어 봤지만 맥 또한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런 움직임도.
아무런 박동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청진을 해 봐도.
촉진을 해 봐도.
눈으로 살피며 시진을 해 봐도 아이의 죽음은 명백했다.
이번엔 진혁이 가운에 꽂혀 있는 펜라이트를 꺼내 들었다.
이어진 건 동공 반응 확인.
초점 없는 눈.
손을 떼면 곧바로 감기는 눈꺼풀.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그래프까지.
죽었다.
아직 삶을 채 펼쳐 보지도 못한 채 아이가 죽어 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간까지 확인한 진혁이 덤덤한 어조로 사망 선고를 하려 했다.
하지만.
“아니에요, 선생님. 우리 주성이. 아직 아니에요.”
“아직 아니라고요! 선생님! 이렇게 포기하시면 안 되잖아요! 네! 우리 주성이! 아직 2살이에요! 얼마 전에 돌잔치 했다고요!”
“선생님!! 아아악. 선생님!!”
불과 오전만 해도 그 자신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던 보호자가 달려들었다.
열 달 배 아파 나은 아이가 졸지에 죽은 상황.
진혁이 당장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떤 변명도 필요 없는 순간.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보호자가 경기를 일으키더니 곧바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 * *
보호자는 한순간에 늙어 있었다.
수술을 끝내고 뒤늦게 달려온 지정의가 당장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계속된 설명.
장중첩 때문에 심정지가 일어난 건 아니었다.
애초에 비특이적 증상을 보였던 김주성.
결장과 결장이 겹친 상태로, 복통을 동반하지 않는 특이케이스였다.
한데 급성으로 진행되며 출혈이 생겼고.
급격히 상태가 안 좋아지다가 죽었다.
그렇게 지정의가 나서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 봤지만, 보호자는 말이 없었다.
아무런 원망도.
어떠한 말도 쏟아 내지 않는다.
이에 한참 설명하던 교수도.
진혁도.
다른 펠로우와 레지던트도.
전부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아이가 죽는다는 거.
보기만 해도, 아니 듣기만 해도 괴로운 일이다.
그러니 하나둘 지쳐서 떠나가는 것이기도 했고.
그렇게 다들 침묵할 때.
“우리 애가 이걸 좋아했어요.”
보호자가 손에 쥔 노란색 오리배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목욕할 때 오리 없으면 울고. 그랬는데.”
“선생님, 이젠 필요 없는 거겠죠? 네?”
“이제 좀 키가 커서 옷도 잔뜩 물려받고. 바지도, 셔츠도. 동네 언니들한테 다 물려받았는데요. 신발만. 신발만 새 걸로 샀거든요.”
“근데 다 의미 없는 거지요? 신발도, 오리배도. 옷도. 전부. 전부…….”
허망한 중얼거림.
다들 눈을 질끈 감았다.
* * *
바로 다음 날 모탈리티 컨퍼런스가 열렸다.
환자가 왜 죽었는지 토의하고.
실수를 되짚어 보는 일.
분명 새벽에 진행한 프리라운딩.
그리고 오전 회진만 해도 멀쩡했던 김주성이었다.
하지만.
“결장과 결장이 꼬인 케이스라 복통도 없는 특이한 경우라고 하지 않았나?”
“예.”
“근데 왜 이렇게 됐지?”
“차트상 오후 3시까지는 어떤 이상 증상도 없었고. 오히려 멀쩡했습니다.”
“근데?”
“장이 중첩된 게 프레셔(압박)되며, 장벽이 손상된 거 같습니다.”
“결국, 블리딩으로 이어졌고. 손도 쓰지 못하고 죽었다?”
“전부 추측이긴 합니다만…….”
사망 선고 후 검사를 따로 해 보지 못했기에 하는 말.
매서운 일갈을 날리던 소아외과장도, 교수도, 부교수도, 레지던트도, 전부 침묵했다.
사실 살릴 수 있는 환자였다.
대기 없이 바로 수술만 했어도.
이상 증상이 있을 때 당장 수술만 했어도.
살릴 수 있는 김주성이었다.
하지만 전부 수술에 들어가며 생긴 일종의 진료 공백.
그러니까 일종의 진공 상태가 이어지며 어큐트로 번진 질환을 잡을 사람도 없이 죽었다.
장중첩 합병증으로 인한 심정지.
사망.
안타까운 사고.
아니, 인재였다.
그렇게 회의를 할 때.
뒤늦게 누군가 뛰어들었다.
“김주성 환자 부친이, 부친이 지금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의료 사고라고! 당장 소송하겠답니다!”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