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39)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39화(339/388)
339화. 눈에 땀이 나는 곳 (3)
보호자의 난동.
왕왕 있는 일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이뤄지는 사망 선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차원이 달랐다.
갓 돌이 지난 환자가 죽은 상황.
뒤늦게 달려온 아이 아빠의 분노가 얼마나 클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그러니 무거운 침묵이 장내를 휘감는다.
속절없이 죽어 버린 김주성도 기구했지만, 소아외과가 처한 현실 또한 가혹했다.
밀려드는 환자.
부족한 의료진.
끝없는 수술.
안 그래도 지쳐 있던 의료진이었다.
침묵이 계속되자, 진혁이 일어섰다.
“제가 보호자를 만나고 오겠습니다.”
“뭐?”
“김주성 환자 주치의는 저였습니다.”
“주치의는 무슨. 주치의 맡은 지 하루도 안 지났어. 환자는 죽었고.”
“일차적인 책임은 저한테 있습니다.”
“자네가 뭘 했다고 그래! 어! 수술 중이라서 아무것도 못 했는데!”
“그래도 일단 만나야 할 거 같습니다.”
진혁이 물러서지 않자, 다들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게.
이진혁의 잘못은 없었다.
분과에 배정된 후,
수술만 했을 뿐.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하지만 의지를 굽히지 않은 진혁이 그대로 문밖으로 나가려 하자.
“나도 같이 가지.”
지정의 또한 일어섰다.
수술방에서 수다쟁이처럼 굴던 교수. 그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던 그 교수님이었다.
이에.
“좀 진정된 다음에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맞습니다, 교수님.”
“일단 방호원이 온 다음에 가시는 게…….”
더한 만류를 하는 좌중이었다.
흥분한 보호자.
일단 감정을 추스른 후에 만나는 게 좋았다.
괜히 나섰다가 멱살만 잡힐 테니까.
하지만.
“지정의가 왜 지정의입니까. 최종 책임자 아닙니까.”
교수는 단호했다.
주치의는 여러 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다시 지정의가 그런 주치의 여럿을 부리는 게 병원 시스템.
책임자다운 태도였다.
거기에 더해.
“나도 같이 가지.”
소아외과장 또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또한 분과의 장.
총책임자가 나서는 게 당연하단 태도였다.
그렇게 다들 뒷문으로 걸어가자, 그간 조용하던 펠로우가 일어섰다.
“저희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뭐?”
“해야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희가 잘못한 건 없지 않습니까.”
“…….”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수술할 사람은 없고. 환자는 많고.”
“그래도 환자가 죽었어.”
“아뇨, 전부 수술 중이었습니다. 막말로 놀다가 그런 것도 아니고. 학회로 자리를 비운 것도 아니고. 전부 수술 중이었단 말입니다!”
억울하다는 말.
일리 있는 변명이었다.
허나 진혁도, 지정의도, 소아외과장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사과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격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어찌 됐든 아이가 죽은 건 사실이었다.
* * *
추레한 옷차림.
흙이 잔뜩 묻은 신발.
보호자의 행색은 엉망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게 분명한 일용직.
IMF로 인한 구조조정.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내몰린 그저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런 그가 악에 받쳐 소리치고 있었다.
“나와! 나오라고!”
“우리 애가 죽었다니까! 나와!”
“니들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어! 사람이냐고!”
그는 악을 쓰고 또 악을 썼다.
자식을 잃은 참척의 고통.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소란이 길어지고.
간호사들이 어쩔 줄 몰라 할 때.
진혁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당장 보호자가 달려들었다.
“너야! 어! 너냐고!”
“죄송합니다. 제가 주치의였습니다.”
“너구나! 너가 죽였어! 그런 거지! 어!”
“죄송합니다.”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
“왜 그랬냐니까! 왜 말을 못 해! 어! 왜 죽였냐고!”
진혁이 고개만 숙이자.
보호자가 멱살을 잡았다.
“너가 그랬다며! 괜찮을 거라고! 어! 애 엄마한테 그랬다며! 괜찮을 거니까 3일 후에 수술만 받으면 된다고!”
“…….”
“왜 그랬어! 어! 왜 그랬냐고!!”
그가 진혁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어댔다.
그리고 그런 그 앞에, 진혁은 고개를 숙인 채 몸에 힘을 풀었다.
얼마든지 분풀이를 하라고. 그래서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렇게 하시라고.
그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그때.
“저, 보호자분. 제가 지정의였습니다.”
“제가 총책임자입니다. 할 말이 있으시면 저랑 얘기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만.”
소아외과장과 지정의가 나섰고.
보호자의 화살은 그들에게 향했다.
왜 그랬냐.
왜 당장 수술하지 않았냐.
애 상태가 악화됐는데, 뭐 하고 있었냐.
왜 의사가 없었냐.
끝도 없는 추궁이 계속됐다.
뒤늦게 방호원이 달려와 그를 떼냈지만, 난동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 애를. 어! 우리 애를……. 우리 주성이! 불쌍해서. 흐으윽. 살려 내! 살려 내라고!”
“살려 내란 말이야!!”
“살려 내라니까!! 끄으윽. 흐으윽. 살려 내라고!”
“제발! 살려 내라고! 흐으윽.”
호통을 치다가 이제는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기 시작하는 아이 아빠.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정신이 나간 듯 보이는 아이 엄마.
그 모습에 진혁은 천장을 올려다봤고.
교수는 먼 산을 보듯 창가를, 소아외과장은 탄식을 내뱉었다.
눈에 땀이 나는 순간이었다.
* * *
한바탕 소동.
정규 수술은 지연됐다.
덕분에 뒤늦게 수술방에 들어가야 했고.
밤늦게서야 끝났다.
물론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안 그래도 개원가 중심으로 진행된 끝없는 갑질.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역적으로 몰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해야 할 건 해야 했기에, 건조한 문답이 이어졌다.
“고생하셨습니다.”
“회복실로 옮기고. 바이탈은 2시간마다 체크하라고 전해.”
“옙.”
“그리고……. 아까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예…….”
여운이 남는 대답.
환자를 회복실로 옮긴 다음 진혁이 한참 아이를 내려다봤다.
김주성과 엇비슷한 나이.
장중첩증으로 들어온 건 매한가지였다.
다른 게 있다면 상태가 더 안 좋았고 급성으로 진행됐기에 수술 일정이 빨리 잡혔다는 거.
그 차이가 생사를 갈랐다.
“하…….”
진혁이 깊은 한숨을 내쉰 채 터벅터벅 걸어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얼마나 더해야 필수과에 사람이 들어올까.
많은 걸 바꿨고.
바꾸고 있다고 여겼건만.
절로 욕이 나왔다.
시발.
한참 멈춰 서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진혁이 레지던트 휴게실의 문을 연 건 한참 뒤였다.
하지만 당직도 아닌 이태희가 아직 집에 안 가고 있었다.
꿀꿀했던 진혁이 애써 기분을 숨겼다.
“아직 안 갔어? 당직도 아니잖아.”
“정리할 게 있어서.”
“정리? 무슨 정리?”
“있어. 중요한 거. 근데 괜찮아?”
“나보다 보호자들이 걱정이지. 장례도 치러야 하는데…….”
“소송할 분위기던데. 어떻게 할 거야?”
“조사에 응해야지. 분쟁 조정 위원회로 넘어갈 테니까.”
진혁의 대답에 이태희가 쓰게 웃자,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진혁이었다.
수척해 보이는 얼굴.
그녀 또한 수술에 시달리다 온 게 틀림없었다.
한데 눈가가 붉은 것이 감정의 편린이 남아 있었다.
그 자신과 다르게 아직 감성이 살아 있는 이태희.
남몰래 눈물을 흘린 게 분명했고.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수없이 많은 환자의 죽음을 봐 왔던 그 자신과 다르게 아직 한참 성장통을 겪고 있을 그녀.
눈물을 한참 쏟을 때였다.
진혁이 애써 그녀를 모른 체하며 말했다.
“잠깐 눈 좀 붙일게.”
“당직실에서 자지. 왜.”
“다시 올라가 보려고.”
“깨워 줄까?”
“아니. 알람 맞췄어.”
불편한 침묵도 잠시.
진혁이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 자신이 만든 분쟁 조정 위원회.
이젠 아신 재단 산하에 없었다.
정부 산하 단체가 됐으니, 좀 더 디테일한 조사가 들어올 터였다.
‘하…….’
진혁이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조사 따위가 두려운 게 아니었다.
그저 죽은 김주성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알람이 울리자 진혁이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아직 새벽 3시.
중환자실 담당이 바이탈을 2시간마다 체크하고 있겠지만, 혹시 몰라 가 보려고 했다.
한데 갈 수가 없었다.
이태희가 책상 앞에서 잠들어있었기 때문.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작업하던 문서.
해선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었다.
* * *
[의사 증원의 필요성]문서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파란을 일으킬지.
진혁이 당장 그녀를 깨웠다.
“이 선생.”
“어어. 아직 안 갔어?”
“그보다 이거 뭐야?”
“왜, 뭐.”
“이거 뭐냐고.”
진혁이 따져 묻자, 이태희가 아무렇지도 않게 반문했다.
“왜? 이거 거론하면 안 돼? 일본은 치과가 편의점보다 많다며.”
“그래도 이건…….”
“위해성보다 유익성이 높으면 쓰는 게 약이라며. 왜. 뭐가 문젠데.”
너무도 직설적인 물음.
진혁이 짧게 침묵했다.
미래에 벌어진 무분별한 파업.
증원에 따른 기대 소득이 없어질 바에는 전공의를 안 하고 지금부터 로컬에서 뛰는 게 낫다며 떠나 버린 전공의가 만 명이 넘었다.
그러니 그 자신 또한 증원이 필요하다며 언급을 간간이 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두려웠다.
그 와중에 환자가 수없이 죽어 나갔으니까.
물론 보수 성향을 띤 언론은 정부 정책에 협조하며 죽어 나가는 환자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지만.
진혁이 대답하지 않자, 이태희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주성이, 안 죽을 수도 있었어.”
“…….”
“급성으로 넘어갔을 때. 아무도 없었잖아. 경련? 그래. 경련이 있었지. 근데 아무도 신경 안 썼잖아.”
사실이었다.
블리딩이 시작된 후 발생한 경련.
간호사가 달려왔지만, 그러려니 했다.
장중첩증의 전형적인 증상이 경련과 발작이었으니까.
1분 혹은 2분간 발작이 일어난 다음에 다시 짧게는 5분.
길게는 15분간 무증상 현상이 이어지니까.
그러니 발작과 무증상이 반복되는 전형적인 증상이 뒤늦게 발현됐다고 여긴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 중요한 건.
‘의사가 없었지. 공백 상태가 됐으니까.’
콜을 할 의사가 전부 수술방에 있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진혁이 계속해서 침묵하자, 이태희가 날 선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병동 담당 선생님도 이머전시로 수술방에 불려 갔었어. 내 말이 틀려?”
“…….”
“코드블루 떴을 때? 우리 과 애들 아무도 없었어. 아니, 다들 몰랐어. 수술방은 방송이 차단돼 있으니까.”
“…….”
“그래서 다른 분과 애들이 달려온 거야. 그래. 성인이었으면 달랐겠지. 근데 죽었잖아. 왜? 아이라서. 아직 돌도 안 지나서 죽은 거라고. 출혈을 못 버텼으니까!”
눈시울까지 붉히는 이태희.
틀린 말이 하나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지호와 상황이 뒤바뀐 진혁은 그녀를 달랬다.
“아직은 아니야. 상황이…….”
“상황이 뭐? 개원의들이 꿀통 찬 거. 그래. 하나씩 부수고 있지. 그래서. 그래서 지원율이 올라갔어?”
“더 부수면…….”
“더 부수고. 언제 할 건데. 5년 뒤? 10년 뒤? 지금 증원해도 늦었어. 걔들 입학하고 졸업하면 6년 뒤야. 6년 뒤에는 어떨 거 같아? 당장 소아외과장님 정년이 4년 뒤야. 4년 뒤라고!”
이번에도 진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필수과 의사라면 증원을 바라는 건 누구라도 원하는 일.
증원만 된다고 해서 기피 현상이 해결되진 않겠지만.
최소한 열 명.
아니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날 게 뻔했다.
왜? 개원 시장 하방이 더 무너질 테니까.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정해지는 P(가격).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아, 아닌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만 모를 수도 있었다.
* * *
보름 후.
당직이 아니었기에 이른 새벽에 출근했지만, 기자들이 쫙 깔려 있었다.
“이진혁 선생님, 소아외과에서 과실이 있었다는데 사실입니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늘 조사가 시작되는데.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이십니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는 건 의료 과실을 인정한다는 겁니까?”
“이 선생님!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도 말씀하셔야 합니다!”
파리떼처럼 달라붙는 기자들.
안 그래도 제약회사 상대로 리베이트를 받고.
약사를 상대로 병원 지원금을 받고.
영업 사원을 하인처럼 부리던 의사들의 민낯이 까발려진 상태에서, 지난 보름간 대열 차게 까였다.
아신 병원 또한 어쩔 수 없다고.
환자를 제대로 케어하지 못해 갓 돌이 지난 아이가 죽었다고.
물론 언론은 김주성의 안타까운 죽음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필수과가 얼마나 망했는지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보호자의 눈물.
그리고 천재 의사로 유명한 이진혁이 주치의라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자극적인 기사를 써 왔다.
그렇게 기자들 틈바구니 속에 앞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을 때.
뒤늦게 방호원들이 달려왔다.
“기자님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선생님!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아아. 밀지 마세요! 기자님들! 이러다 다칩니다!”
“국민의 알 권리입니다!!”
아귀다툼.
혼란.
그리고 몸싸움.
뒤늦게 방호원의 보호 아래 병원으로 향하던 진혁이 등을 돌렸다.
곧바로 플래시 세례가 터져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진혁이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이번 분쟁 조정 위원회 조사에 기자분들도 참석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확인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진혁이 다시 등을 돌렸다.
한 말씀만 더해 달라는 외침이 들렸지만, 이 또한 가볍게 무시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사고를 칠 생각.
증원 얘기를 꺼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