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4)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4화(34/388)
34화. 컨퍼런스 (2)
과장과 치프(의국장)가 점수를 나눠 매기는 인턴 평가.
각각 50점씩 점수 배정이 되어 있다지만, 평가의 키는 치프가 갖고 있었다.
과장은 인턴 개개인에 대해 잘 모르기에.
치프가 쓴 평가 의견서를 참조해 점수를 매기기 때문이다..
허나, 평소와 달라진 상황.
치프인 김상혁이 장길만과 오태상을 콜했다.
“이진혁이 어때? 일은 잘해?”
“…….”
“뭐야. 왜 대답이 없어?”
“그게…….”
“바쁘다는 핑계로 너네한테만 맡긴 건 쏘리. 그래도 평가서는 내 이름으로 나갈 텐데, 쓸 말이라도 있어야지. 안 그래?”
인턴에게 무관심했던 김상혁의 재촉.
곧이곧대로 말했다가 후배 하나 컨트롤 못 한다는 말을 들을까 싶어 고민하던 오태상이 결국 입을 열었다.
그러자 김상혁이 화들짝 놀라 반문했다.
“뭐? 말리그라고?”
“네, 그것도 아주 보통 놈이 아닙니다.”
“정말이야?”
“정말입니다. 오죽하면 제가 말리그라고 부르겠습니까.”
“차트 좀 보자.”
김상혁이 곧장 EMR을 확인했다.
종이 차트는 이미 전산에 입력해 둔 상황.
환자 번호만 치면 언제든지 볼 수 있었다.
딸깍.
딸깍.
“흐음. 자세히도 썼네.”
“이놈, 일부러 이런 거예요.”
“그래?”
“NS(신경외과)에서 안 내려오니까 아주 작정하고 쓰더라고요. 말리그도 이런 말리그가 없습니다.”
울분을 토해 내는 오태상.
허나, 김상혁의 반응은 그 궤가 달랐다.
어차피 떠날 인턴.
귀찮기도 했고.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뭐. 환자가 걱정돼서 그랬겠지.”
“아닙니다. 진짜라니까요.”
“야. 아까 발표 못 봤냐?”
“네?”
“밤새고 출근했을걸? 잠도 못 잤을 텐데 일부러 이렇게까지 하는 놈이 어딨어.”
중증처치구역에 있어 진혁의 행태를 모르는 김상혁.
오태상이 답답해했다.
“그게 아닌데. 아…….”
“꼼꼼하게 환자를 케어했다? 뭐 이런 식으로 스토리 잡고 쓰면 되겠네.”
“치프!!!”
“왜.”
“하…….”
오태상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은 걸 싫어하고 후배들한테 별 관심 없는 그의 성격을 오태상도 아는 거다.
허나, 자그마한 미련이 그의 입을 열게 했다.
“정말 만점인 겁니까?”
“뭐?”
“한 교수님이 도와주신 거잖아요.”
“도와주긴 무슨. CS가 얼마나 바쁜데.”
“그, 그래도.”
“어차피 CS로 갈 놈 아니야. 그냥 신경 꺼. 신경 끄면 속 편하다.”
결국, 오태상이 고개를 숙였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 * *
퇴근 보고와 인수인계를 할 시간.
오태상을 기다리던 A조와 B조 인턴들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첫 발표부터 너무 가차 없는 거 아냐?”
“망했어. 망했다고!!”
“원래 이런 건가.”
“내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
첫턴으로 ER이 걸린 것도 억울한데.
첫 발표부터 죽 쓴 상황.
다들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다.
그때, 누군가가 진혁을 향해 화살을 돌렸다.
“CS로 가는 건 좋은데, 조언까지 받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 말이 도화선이 됐을까.
다들 진혁을 보며 수군댔다.
“우린 뭐 아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한 줄 알아?”
“튀려고 작정한 거야 뭐야.”
“선배 찬스도 아니고. 교수님 찬스라니. 참나.”
쏟아지는 비난들.
졸지에 같이 만점을 받은 이태희의 안색이 누렇게 떴지만, 진혁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무대응이 옳았던 걸까.
아무런 반응이 없자 B조 인턴들도 제풀에 지쳐, 다시 제 신세를 한탄했다.
조금 장내가 진정되자.
이태희가 얕게 속삭였다.
“치프 선생님한테 말씀드려야 할 거 같아.”
“?”
“나까지 점수 잘 받는 건 아니잖아.”
“와, 그거 바보짓이에요. 바보짓.”
“됐어. 정정당당하게 해야지.”
장혁준이 옆에서 만류했지만, 이태희는 강경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모양.
한참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진혁이 입을 열었다.
“글쎄. 말해 봤자 소용없을 거 같은데?”
“왜 소용없어? 아닌 건 아닌 거지.”
“성군과 폭군은 한 끗 차이야.”
“뭐?”
“그냥 한 끗 차이라고.”
이태희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진혁은 말을 아꼈다.
그러고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딸깍.
딸깍.
곧, 진혁이 B조 인턴들을 보며 말했다.
“한 교수님이 어떻게 코칭해 주셨는지 궁금하죠? 한번 볼래요?”
그 말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B조 인턴들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곧.
“어. 어떻게…….”
“뭐야. 이게 다라고?”
“코칭 받은 게 없잖아?”
“에이, 전화로 코칭해 준 걸 수도 있잖아.”
다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진혁이 쐐기를 박았다.
“CS가 얼마나 바쁜데 타과 인턴을 챙겨요?”
“그래도 거기서 이 선생을 찜했잖아요. 타겟이라면서요.”
“에이, CS는 성적 안 나와도 충분히 갈 수 있는데요?”
“그건 그렇지만.”
“허어!! CS 사정 몰라요?”
반박의 여지가 없는 말.
B조 인턴들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진혁이 강경하게 나갔다.
“자, 이제 사과하시죠.”
“네?”
“그럼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어요?”
“그건, 이 선생이 먼저 한 교수님께 도움받았다고 해서 오해한 거잖아요.”
“그거야 분위기상 그냥 한 말이고요.”
“그래도요.”
“다들 이대로 넘어갈 거예요? 뒷담화도 아니고 앞담화를 그렇게 해 놓고? 앞으로 불편하지 않겠어요?”
강경한 어조에 B조 인턴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억하심정에 대놓고 욕하긴 했지만, 곧바로 사과하기엔 자존심이 상했던 탓이다.
하지만, 곧.
“오해해서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크음. 큼.”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변명과 사과가 뒤섞인 말이 쏟아져 나왔다.
앞으로 계속 봐야 할 사이.
자존심이 상했지만, 한발 물러나는 거다.
진혁이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든 싫든 앞으로 5년은 더 볼 거 아닙니까.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 * *
이태희는 고집스러웠다.
오태상이 오지 않자, 결국 김상혁을 찾아 나섰다.
스스로 생각건대 떳떳하지 않은 결과였으니 이를 바로잡고자 한 것이다.
“사실, 이진혁 선생이 혼자서 준비한 겁니다. 죄송합니다.”
“아……!”
갑자기 찾아온 이태희의 고백.
치프인 김상혁이 얕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그러자 오태상이 끼어들었다.
“이진혁 선생 혼자 준비했다는 거죠?”
“네, 제가 날짜를 착각해서 준비를 못 했습니다.”
“진짜예요?”
“예.”
“허허.”
어이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토해 내는 오태상.
그를 대신해 김상혁이 말했다.
“한 교수님한테 자문받은 건 맞아?”
“그…… 그건.”
“CS가 얼마나 바쁜데 신경이나 쓸까. 우리도 어차피 안 믿었어. 편하게 말해 봐.”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그러니까…….”
이태희의 설명이 계속되자.
레지던트 삼인방이 눈빛을 교환했다.
‘발표 허락만 받고 그렇게 말했다? 왜?’
‘뭐야. 혼자서 그걸 다 했다고?’
‘역시 무서운 놈이었어. 무슨 꿍꿍이인 거야?“
엇갈리는 반응.
김상혁이 피곤하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래서 점수 받을 자격이 없다?”
“예, 저까지 좋은 점수를 받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이제 와서 바꿀 순 없어.”
“왜, 왜요?”
“양심에 가책을 느꼈던 거 아니야? 그게 아니면 주변 시선이 부담됐거나.”
“…….”
이태희가 침묵하자 김상혁이 피식 웃었다.
“그건 이 선생 사정이고.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괜히 일 키우지 말자.”
“아.”
“그만 가 봐.”
“그, 그래도.”
“뭐, 정 마음에 걸리면 죽어라 일하든가. 주변에서 인정할 만큼 일하면 될 거 아냐.”
결국, 이태희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뭐, 그렇다고 쓰러질 만큼 하진 말고. 오 선생하고 장 선생은 얼른 애들 퇴근시켜.”
“예, 선배님. 그럼 고생하십쇼.”
“가 보겠습니다.”
다들 허리를 굽혀 인사하자 김상혁이 피곤하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 * *
뒤늦게 시작된 퇴근 보고.
환자에 대한 처치와 경과.
못다 한 일에 대한 인수인계를 직접 점검하는 시간이었지만, 오태상은 매가리가 없었다.
“됐어요. 다음.”
“네, 선생님. 저는…….”
“됐어요. 다음.”
그 모습에 인턴들이 의아해했다.
‘뭐야. 왜 이렇게 축 늘어져 있어?’
‘지난번이랑 다른데.’
겨우 퇴근 보고를 끝낸 오태상이 말했다.
“이제 퇴근들 하세요.”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쏟아지는 인사.
오태상은 말이 없었다.
* * *
아직 3월 첫 주 차.
삼한사온이라는 말처럼 날씨는 어느새 돌변해 있었다.
“출근할 땐 안 그랬는데. 왜 이렇게 춥지?”
이태희가 몸을 웅크리자.
장혁준 또한 가슴을 부여잡았다.
“내 마음도 추워요.”
“뭐?”
“시베리아 한복판 같다고요. 왜 노역장에 끌려온 노예 있죠? 지금 그런 느낌이에요.”
“너 또 이상한 드립 치려는 거지?”
“오늘 하루 자고 나면 내일 또 출근이잖아요. 이건 현대판 노예라고요. 노예. 우리 노예 해방 운동 할래요?”
“해방 운동? 그게 뭔데?”
이태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장혁준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of the intern(인턴의), by the intern(인턴에 의한), for the intern(인턴을 위한)!!”
“와……. 그건 또 무슨 드립이야.”
“링컨 몰라요? 에이브러햄 링컨.”
“몰라.”
“와. 알잖아요.”
장혁준이 황당해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단 말인가.
“게티스버그 연설 몰라요? 링컨이 한 연설인데. 학교 다닐 때 배웠잖아요.”
“모른다고.”
“와. 그럴 리가 없는데.”
“해방 운동은 무슨. 뜨끈한 거나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
화제를 돌리는 이태희.
장혁준이 곧장 소리쳤다.
“오오. 콜!”
“진혁이 넌?”
“갈비탕?”
“콜!!”
이태희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평가를 좋게 받은 상황.
갈비탕으로 퉁치기엔 한없이 부족했다.
* * *
그렇게 오게 된 갈비탕집.
올림픽공원 앞에 있는 전통 있는 맛집이다.
진혁은 뜨끈한 국물부터 들이켰다.
“으. 시원하다~!”
“와. 진짜 또. 또.”
“완전 아저씨라니까.”
“…….”
엇갈리는 삼인방의 반응.
진혁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갈빗대를 집어 들었다.
육수를 제대로 고아 냈는지 국물도 끝내줬지만, 갈빗살도 입에 넣자마자 살살 녹았다.
그때, 이태희가 입을 열었다.
“말씀드렸는데 안 된다네.”
“……?”
“그게, 뭐라고 하셨냐면…….”
한참 계속된 얘기.
진혁이 갈빗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죽어라 하면 되겠네.”
“안 그래도 소문날 테니까 죽어라 해야지.”
“뭐, 소문이야. 금방 가라앉겠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고마워.”
이태희의 어색한 사의 표현.
진혁이 희게 웃었다.
“고맙긴. 그럼 갈비탕 세 개 추가. 콜?”
“여기서 또 먹는다고?”
“포장해서 가져가려고.”
“?”
“어머니도 드리려고. 여기 맛있잖아.”
“아……!”
진혁이 마마보이라는 게 생각난 이태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모습에 장혁준이 눈을 부릅떴다.
“와! 현수랑 같은 마마보이였어. 마마보이. 오! 쉣!”
“마마보이 아니거든요?”
“뭐래. 너 마마보이야. 맨날 엄마만 찾잖아.”
이태희가 질색하자 진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미 깊어진 오해.
풀어낼 방법이 없었다.
* * *
그 시각.
박영진은 한동수에게 전화하고 있었다.
미리 동의를 구했다는 게 사실인지 확인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