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43)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43화(343/388)
343화. 라면의 힘 (1)
전문의 시험을 보는 곳은 세 곳.
서울은 삼육고, 삼육중, 삼육대로 나뉘어 있었고.
덕분에 배치표부터 확인해야 했다.
‘삼육대면 멀리 갈 필요도 없네’
곧바로 고사실을 확인한 진혁이 셔틀버스를 같이 타고 온 동기들의 배치표를 확인했다.
장혁준과 김현수는 삼육대 안에 있는 삼육고등학교로.
이태희와 최재성은 삼육중학교로 배정돼 있었다.
“이따가 운동장에서 보면 될 거 같은데요.”
“으으. 그래요. 파이팅합시다.”
“시험, 잘, 보고, 와요,”
“파이팅!!”
전의를 불태우며 흩어진 동기들.
진혁이 곧바로 고사실로 향했다.
잠시 후.
보조 감독관 두 명과 주 감독관이 들어와 소리쳤다.
“자자, 120분 시험 후 30분 쉬는 시간, 다시 120분 시험입니다!”
“…….”
“야마(족보) 만드는 분들! 문제 복원하려는 분들! 전부 빵점 처리할 겁니다! 쉬는 시간에도 필기구는 꺼내지 마세요!”
“저, 쉬는 시간에 공부도 못 하는 겁니까?”
“왜요? 야마(족보) 만들게요?”
“아니, 그건 아닌데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쉬는 시간에 필기구, 핸드폰 전부 쓰시면 안 됩니다! 화장실? 화장실 갈 때도 필기구는 가져가시면 안 됩니다!”
엄격한 시험 규정.
감독관의 선언에 진혁이 쓰게 웃었다.
저렇게 한다 한들 화장실까지 가서 문제를 복원하는 사람도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만만한 시험이 아니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5개월 넘게 열외를 받고 공부하는 게 전문의 시험이었다.
객관식과 주관식이 뒤섞여 있었기에 보통 어려운 게 아닌 것이다.
곧.
“자,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방송 알림음마저 울리자, 진혁이 빠르게 문제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먼저 객관식 문제.
헷갈리는 건 X자 표시를.
다시 볼 필요도 없는 건 ○ 표시를 한 다음에 하나씩 문제를 풀어 갔고.
그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천재라고 오인당하며 끝없는 시험에 시달렸던 게 바로 그 자신.
회귀 전에 있었던 임상 경험과 회귀 후에 있었던 임상 경험을 전부 녹여 냈기에, 그 전보다 진일보해 있었다.
그러니 진혁이 펜을 내려놓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0분.
딱 30분 만에 모든 문제를 풀어낸 진혁은 곧바로 창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 *
한편 그 시각.
전문의 시험 감독 기관을 맡고 있는 보건복지부 소속, 김수민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수련 기간을 졸속으로 줄였다며 온갖 반발과 욕을 먹고 있던 상황.
수련 기간 축소를 1년 차부터 적용한 게 아니라 3년 차부터 적용했기에,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거짓이었다.
3년 차와 4년 차.
둘 다 보드를 따며 동시에 빠져나갈 테니까.
덕분에 일종의 의료 공백 사태가 재연될 거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었고.
보건복지부도 한참 변명해야 했다.
세부 전문의를 하는 이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커버할 수 있다고.
전문의를 딴 이들이 군대에 바로 가지 않으면 된다는 말로 속된 말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한데, 그런 그녀의 귓가에 상관인 시험본부장이 목소리마저 울렸다.
– 3년 차가 공부 시간이 부족한 건 사실이야. 출제 위원이 문제를 유출할 수도 있어. 왜, 병원이 얼마나 합격률에 목매는지 잘 알고 있잖아.
– 문제 복원을 못 하도록 철저하게 감독해야 돼.
– 더 이상의 잡음은 안 돼. 저쪽에 괜히 책 잡힐 일은 주지 말란 말이야!
사실 그만큼 윗분들의 우려는 지대했다.
간신히 파열음을 봉합한 상황.
안 그래도 높은 전문의 취득률이 더 높아진 상황에서 괜한 말이 나올까 봐 다들 우려하고 있었다.
한데 한 응시생이 30분 만에 문제를 푼 다음 창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너무 여유롭게.
좌석 배치도를 확인할 틈도 없이.
김수민이 다가가 물었다.
“저, 선생님. 문제는 다 푸셨나요?”
“네, 다 풀었습니다.”
“진짜 다 푸셨어요?”
“네.”
고작 30분밖에 안 지났는데 다 풀었다는 말.
말도 안 되는 개소리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빨리 풀 수 있는 문제라면 시험 준비를 하는 이들이 무단으로 수련 병원을 이탈해 절에 들어가거나.
호텔에 처박혀 공부만 했을 리는 만무했으니까.
하지만.
“어……?”
뒤늦게 상대가 누군지 알게 된 김수민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창가를 바라보던 수험생은 그 유명한 이진혁.
한번 보면 다 따라 할 수 있다는 능력을 갖춘 천재였다.
그렇다면 다 풀었다는 말도 거짓은 아닐 터.
괜히 시끄럽게 했다며 다른 수험생의 사나운 눈초리를 받은 채 돌아온 김수민은 무겁게 침묵해야 했다.
안 그래도 사람이 많아 같은 과도 다른 시험일로 배정되었는데.
한번 보면 다 기억할 수 있다는 인간이 여유롭게 앉아 있다니.
이럴 때는…….
정말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지침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거 망했는데? 외과는 전부 합격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 *
순식간에 끝난 쉬는 시간.
필기구도 꺼내지 못하게 했고, 수험 서적 또한 꺼내지 못하게 했으니.
할 일 없이 30분은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렇게 다시 2교시가 시작됐고.
요주의 인물로 격상된 이진혁은 또다시 30분 만에 볼펜을 내려놓았다.
한데 그의 태도가 참으로 묘했다.
한참 창가를 바라보더니.
다시 시험지를 펼쳐 드는 게 아니겠는가.
X자 표시를 해 둔 문제만 점검하는 것이었지만, 이를 모르던 김수민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120분이나 준 문제를 30분 만에 다 풀었는데도 다시 보는 이유.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야마를 만들려고? 외과 의사들한테 전부 뿌리려고?’
덜컥 겁이 난 김수민이 안절부절하지못했다.
그도 그럴 게.
– 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규정이 없다고요? 아니, 유출되면 안 된다면서요.
– 한번 보면 다 외운다는 선생님을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요.
시험 본부 또한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결국.
“저, 다 푸신 거죠? 시험지부터 걷어 갈게요.”
김수민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미 다 외웠을지도 몰랐지만, 문제지를 뺏어 가는 거.
그게 유일한 대책이었다.
물론 그 사정을 모르던 진혁은 그저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왜 이러나 싶었기 때문.
문제는.
‘와……. 눈초리가 사나운데.’
감독관 때문에 사나운 눈초리로 뒤덮였다는 거였다.
그렇게 잠시 후.
시험이 끝났지만, 진혁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그 자신을 쳐다보는 응시생들의 시선이 묘했기 때문.
어차피 삼육고와 삼육중에서 시험을 본 동기들을 기다려야 했기에.
진혁은 또다시 창가만 바라봤다.
그렇게 얼마 뒤.
아무도 없는 빈 교실.
진혁이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운동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돌아갈 계획.
동기들과 만나 병원 앞에서 내린 다음 밥이나 먹고 헤어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핸드폰의 전원을 켜기 무섭게.
[이 선생님, 1교시랑 2교시 전부 30분 만에 풀었다면서요? 문제 좀 알려 주세요.] [야마(족보) 만들어서 뿌려 주세요. 공부도 제대로 못 했다고요.] [나는 너 믿고 하나도 공부 안 했다. 어? 그러니까 알지?] [선배님, 믿고 있었습니다! 하핫!]선후배를 가릴 것 없이 문자가 쏟아져 들어왔다.
같은 고사실에 있던 이들한테 들었는지, 그야말로 문자가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의대를 다닐 때 방대한 시험 분량에 지쳐 야마만 쫓던 이들다운 태도긴 했지만.
이런 상황을 전혀 예견치 못한 진혁은 한참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천재가 아닌데.
한번 보면 사진을 찍는 것처럼 기억한다는 포토그래픽 메모리 능력 또한 없었는데.
이러다 역적이 될 판이었다.
아니, 당장.
CS 소속인 한동수마저 이런 문자를 보내오자.
진혁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거, 참.
진짜 천재 아니라니까!
망했다.
정말이지 대차게 망해 버렸다.
* * *
다른 이들은 몰라도 한동수한테는 대답을 해야 했다.
“저, 교수님.”
[어, 왜. 벌써 만들었어?]“아뇨, 보통은 붙었냐? 감이 좋냐? 이렇게 말씀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너 합격이잖아. 아니야?]“그건 그런데요.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야, 수석 합격 아니면 CS로 올 생각도 하지 마! 어! 너 인마. 나도 수석이야! 수석!]“…….”
진혁이 무겁게 침묵했다.
한동수가 에이스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바쁜 CS에서 근무하며 수석으로 합격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수석합격자는 신문에도 날 정도로 어려운 게 전문의 시험이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저, 기억이 안 나서요.”
[벌써 기억이 안 나? 방금 시험 끝났는데?]“네, 원래 전문의 시험이 과별로 일자가 달랐지만, 과별로는 응시 일자는 같았잖아요.”
[근데?]“지금은 3년 차 때문에 응시생이 많아서 같은 과도 날짜가 다르게 된 건데요. 이게 부정행위인 것도 그렇고…….”
되도 않는 변명을 주저리주저리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어차피 원 역사에서도 인원이 많아 일자를 다르게 봤던 전문의 시험.
3년 차까지 시험을 보며 같은 과도 나뉘었다는 게 사달을 부른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야야. 합격률 낮아 봐. 어! 애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CS는 개같이 고생하는데 합격률도 낮다. 저기 가 봐야 재수해야 한다. 이럴 거 아니냐고!]“…….”
[괜히 교수님들이 열외를 허락하는 게 아니라니까! 삼선 병원 CS보다 낮아 봐! 어!]“시험 문제가 완전히 똑같진 않은데요.”
[그래도 중복되는 게 있다니까?]계속된 설득.
결국.
“으으. 일단 하는 데까지 해 보겠습니다.”
진혁이 되도 않는 대답을 해 버렸다.
당장 보름 후에 실기 시험도 있는 마당.
문제 복원 요청에 응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뭐라도 해야 했다.
* * *
전화를 끊고 뒤늦게 도착한 운동장.
이태희가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여기!”
“어어.”
진혁 또한 손을 흔들어 화답한 다음 곧바로 동기들한테 다가갔다.
10kg 이상 빠진 장혁준.
그리고 삐쩍 마른 김현수.
이태희와 최재성까지.
전부 광대가 보일 정도로 얼굴이 핼쑥했다.
이 모든 게 지난 6개월간 고생한 덕분에 생긴 일.
근무도 하면서 평점도 맞추고, 논문도 쓰고, 공부도 해야 했으니, 정말이지 개같이 고생한 이들이었다.
동기들과 문제를 대략적으로라도 복원해 볼 생각인 진혁이 장혁준을 바라봤다.
“시험은요? 잘 봤어요?”
“잘 봤겠어요? 못 봤죠.”
“어느 정도로 못 봤는데요. 문제를 같이 좀 복원…….”
“아, 몰라요. 몰라. 망했다고요.”
“뭘 얼마나 망했길래 그래요.”
“아, 열외도 못 받았고. 따로 공부할 시간도 안 줬고. 몰라요. 진짜. 망했어요. 아, 벌컨 동지랑 시험일이 달랐어야 했는데.”
장혁준이 당장 입을 댓 발 내민 채 툴툴거렸다.
그러다 고개를 치켜든 그가 소리쳤다.
“으으! 하늘이시여! 땅이시여! 신이시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재수는, 재수는 안 되나이다!”
큰 소리로 외치는 장혁준.
불합격할 경우 재수를 해야 했기에, 그 간절함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벌써 소문을 듣고 문자 폭탄을 보내온 이들처럼 다들 합격에 목매고 있는 것이다.
그의 난동을 한참 바라보던 진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나 지금이나 장혁준은 한결같았다.
도움은커녕 뭘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이다.
그러니.
“아……. 망했네.”
그 자신 또한 망했다는 말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