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45)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45화(345/388)
345화. 라면의 힘 (3)
임신 진단 키트.
정확도가 95%에 달했지만, 위음성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었다.
소변 내 임신 호르몬(hCG)을 감별해서 진단하는 방식.
그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치솟거나 소변량이 부족하면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산부인과를 찾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소아외과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픽스턴처럼 굴었던 지난 몇 달.
그 자신을 예뻐했던 과장님이었다.
그러니 곧.
[뭐, 다녀와. 그간 제대로 오프도 못 했잖아. 그놈의 휴가. 내려면 내라고. 그래, 일주일이면 되겠나?]“일주일이나요? 그렇게 오래 비우는 건…….”
[뭐, 실기 시험이다 뭐다, 다들 휴가 내는데. 그냥 다녀오라고. 어차피 30분 만에 풀었다며? 차라리 전화 끄고 잠수를 타.]뜬금없는 권유.
진혁의 의아한 듯 반문하자, 소아외과장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1교시가 130문제, 2교시가 120문제였다며.]“예, 과장님.”
[그걸 그렇게 빨리 풀었으면. 문제 복원해 달라는 애들도 많을 거 아니냐고.]“…….”
[그거 안 해 줬다고 욕먹고. 해 줘도 욕먹는 짓이야. 책 잡힐 일은 아예 하지도 말라 이 말이야.]“아…….”
[아직 조심해야 돼. 처신 똑바로 하고. 말이 나올 만한 행동은 아예 하지도 말라고!]곧바로 끊긴 전화.
걱정과 염려. 그리고 그 자신을 향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아니, 그보다.
‘책잡힐 일은 아예 하지도 말라고?’
뒤늦은 깨달음이 밀려온다.
그래.
문제 복원은 말이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다.
한동수야 3년 차 걱정에 호들갑을 떨었다지만, 출제위원이 문제를 유출해서 뉴스에 보도된 적도 있지 않던가.
그것도 외과 전문의 시험에서.
물론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
허나 간신히 파업을 막은 마당에, 자그마한 리스크라해도 피하고 봐야 옳았다.
그러니 당장.
“저, 교수님. 그게…….”
한동수한테 전화해 사정을 설명했다.
사고 쳤다고.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이에.
[이야. 이진혁이. 어! 너 인마! 축하한다! 아들이야? 딸이야?]“그건 아직 모릅니다.”
[그래? 일단 CS다. 알지? 잘 키워야 한다고. 잘 키워서 의대 보내고. 꼭 CS인으로 만들라 이 말이야.]“네? 벌써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왜? 의사 안 시킬 거야?]“아직 생각도 안 해 봤습니다.”
[당연히 시켜야지! 손재주도 타고났고! 그놈의 능력인가 뭔가도 물려받았을 거 아니냐고. 아버지가 수술하고! 자식이 스크럽 서고! 얼마나 좋냐 이거야!]벌써부터 설레발인 한동수.
진혁이 혀를 내두르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같이 수술한다고?’
저도 모르게 상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메스를 건네는 딸.
그리고 실수를 지적하는 아빠.
같이 심장을 사부작사부작하며 수술하는 건 꿈에 나올 만한 일.
정말이지 낭만적인 일이었다.
유독 의사 집안이 많은 이유.
그 이유야 많겠지만, 부녀지간, 아니 부자지간에 같이 수술하는 건 다들 꿈꾸는 일이 아니던가.
그러니.
‘돌잡이 용품은 일단 메스랑 포셉, 시저, 시린지랑 청진기를…….’
벌써 돌잡이 용품까지 생각하게 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판사봉?
축구공?
마이크?
전부 필요 없었다.
아니, 너무 많은 걸 놔둬도 위험했다.
그래.
메스. 메스만 깔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 * *
꼰대처럼 굴기도 하고.
애늙은이처럼 처신하기도 하는 이진혁.
단 하나 부족한 게 있다면 연애 경험이 별로 없다는 거였다.
그러니.
“메스를 깔아 두면 된다고요? 지금 애 잡을 일 있어요?”
이현아가 당장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장소가 장소인 만큼 그녀가 초인적인 인내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긴장하지 말고, 잘해요. 알았죠? 이제 들어가요.”
그렇게 들어간 식당.
이현아의 부모님이 먼저 와 계셨고.
동파는 아니었기에, 환대받을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나는 반대일세. 군대 말이야. 상근은 좀 그렇지 않은가?”
예비 장인어른이 되실 분이 군대 문제를 걸고넘어졌다는 거였다.
진혁이 침묵하자, 그가 말을 이었다.
“군의관으로 가면 어차피 대위야, 대위. 다이아 3개라고. 출퇴근도 가능하고. 월급도 나오고. 뭐가 문제냐 이 말이야.”
“그렇긴 합니다.”
“남자는 말이야. 제대로 다녀와야 돼. 그래야 철드는 법이라고.”
상근은 안 된다는 말.
웃어른들의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었다.
물론 이미 한번 다녀온 적이 있었던 진혁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군대를 두 번 가는 건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었다.
꿈에 나오기만 해도 식은땀을 흘릴 정도가 아니던가.
하지만.
“자네, 환자 보는 게 그렇게 좋다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벌어 먹고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 거 같나? 별로 없어. 아니, 아예 없어. 정말 흔치 않다고.”
“그렇죠. 다들 꿈을 잊고 사니까요.”
“그래. 그래서 하는 말이야. 상근으로 가면 진료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한다며. 국군수도병원, 어차피 분당 아니냐고.”
설득은 계속됐고.
책잡힐 일은 아예 하지도 말라는 소아외과장의 말까지 귓가를 맴돌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할 때.
장모님이 되실 분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태명은 지었는가?”
“네, 그게……. 음…….”
“……? 왜? 아직 안 지었는가?”
“저……. 그게, 라, 라면이라고 지었습니다.”
“뭐? 라면이? 왜? 라면 먹는 태몽이라도 꾸었는가?”
“그, 그게…….”
차마 속사정을 말할 수 없었던 진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될 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버린 게 틀림없었다.
* * *
결혼은 언제 하는 걸까.
사랑은 뭘까.
그 자신도 모른다.
그냥 때가 되었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이랑 평생 함께하는 게 결혼이라는 사람도 많으니까.
그리움, 편안함, 정, 열정, 열망, 애증.
모든 감정의 편린이 전부 사랑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갈 테니까.
짧은 상념도 잠시.
이번엔 아버지가 반대했다.
“안 그래도 말이 많은데. 아빠도 반대다. 공중보건의는 시골로 간다며. 그럼 그냥 군의관으로 가는 게 더 좋을 거 같다.”
“그럴까요.”
“그래. 국군수도병원. 분당으로 이전한 지 2년밖에 안 됐다며. 사돈어른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럼 그렇게 해.”
“…….”
양가 어르신의 반대.
진혁이 침묵하자.
이현아마저 나섰다.
“아버님, 생각해 보니까 저도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음?”
“괜히 자식 핑계로 상근 갔다느니. 일부러 뺐다느니. 일부러 사고 친 거 같다느니. 악성 댓글이나 루머가 생길 거 같아서요. 제가 생각이 너무 짧았어요. 미안해요.”
안 그래도 적이 많은데, 빌미를 줄 필요는 없다는 말.
당장 대장항문외과 소속의 이지훈조차 난장을 피웠던 게 생각난 진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도 그럴 게.
악의를 품은 누군가가 군대 문제를 거론한다면 기자들은 당장 제목 장사부터 하려 들 터.
아이까지 다칠 수 있으니 그건 절대로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정의의 사도처럼 굴었던 그 자신이 아니던가.
‘역시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닌 건가.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어야…….’
이런 생각이 절로 들 때.
평생 노총각으로 살 줄 알았다며 큰 시름을 놓았다고 좋아하던 어머니가 나섰다.
“그건 그렇고. 태명은 뭐니?”
“네? 태명이요?”
“아후, 너는 좀 가만 좀 있어 봐. 우리 며느리한테 물어보는 거야. 응?”
“그, 그게.”
“아직 안 정했니?”
“아뇨, 정하긴 했는데요.”
“뭐라고 정했어? 응?”
“…….”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얼굴만 붉히는 이현아.
그녀도 ‘라면이’의 정체를 밝히는 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이에 진혁이 나섰다.
“태명은 ‘CS’예요.”
“뭐?”
“‘CS’라고요.”
“어머! 얘가 진짜! 무슨 흉부외과 이름을 애한테 붙여!!”
어머니가 기겁해 소리쳤지만, 진혁은 꿋꿋했다.
“나중에 커서 의사가 되면 같이 수술도 해 보려고요. 그래서 ‘CS’로 지었어요.”
그 자신의 소망이 담긴 태명이었다.
* * *
신혼집으로 정한 곳은 잠실 시영아파트.
아신 병원과 둑방길을 마주 보고 있어,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재건축을 해야 한다며 한참 시끄러웠지만 말이다.
그렇게 여러 일을 끝내고 돌아온 첫날.
장시간 수술을 한 뒤에 휴게실을 찾은 진혁한테 장혁준이 다가왔다.
“벌컨 동지! 사고 쳤다면서요?”
“어? 그거 누구한테 들었어요?”
“소문 쫙 퍼졌던데. 몰랐어요? 아무도 아는 척 안 해요?”
“와……. 어쩐지 다들 눈초리가…….”
진혁이 황망한 마음에 눈을 뻐끔거리자, 장혁준이 씨익 웃었다.
“와, 진짜 연락하고 싶어 죽는 줄 알았네.”
“누구한테 들었어요? 설마 한 교수님?”
“빙고! 벌써 CS에 오기로 했다던데요?”
“아니, 진짜.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야마(족보) 안 만들어 준다고 섭섭해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일부러 소문내신 거 같아요.”
깊은 뜻이 있었다는 말.
어쩐지 문제 복원을 요청하던 연락이 뚝 끊겼다고 했는데 그런 속사정이 있었다.
이젠 군대 문제까지 정리한 마당.
진혁이 장혁준이 보는 가운데 작업에 들어갔다.
다다다닥.
다다다닥.
곧 있으면 있을 실기 시험.
실기 시연뿐만 아니라 구술시험도 있었기에, 수술기록지부터 제출해야 했다.
그것도 서른 건이나.
왜 그렇게 수술했는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면접관과 문답을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다.
진혁이 예전 사례를 뒤져가며 수술기록지를 채워 가자, 장혁준이 궁금해했다.
“왜 이렇게 어려운 것만 골라요?”
“전문의 시험은 성적 발표 안 하는 거 알죠?”
“알죠. 점수는 비공개잖아요.”
“수석 빼고는 전부 2등이죠. 그래서요.”
“꼭 수석을 해야겠다? 왜요? 그놈 때문에요? 이지훈인가 뭔가. 왜, 그때 시비 걸었잖아요.”
“그것도 그렇고……. 알게 모르게 적대하는 사람이 다시 늘어서요. 그리고…….”
“그리고?”
“아직 딸인지, 아들인지는 모르는데요. 나중에 말해 주려고요. 아빠는 수석이었다. 그러니까 너도 열심히 공부…….”
진혁이 말을 멈춘 채 말꼬리를 흐렸다.
말을 하다 보니 부끄러움이 엄습했기 때문.
사실 부모의 역할은 명확했다.
자식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서포트하고 지원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참된 부모의 역할이었다.
어렸을 때는 거주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친구를 오래 사귈 수 있게 도와주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게 옳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 자신은 회귀 전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꼰대처럼 굴고 있었다.
물론.
‘그래도 같이 수술해 보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아직 미련은 버릴 수 없는 진혁이었다.
* * *
원인, 해부, 병리, 생리.
정의, 증상, 진단.
적응증, 치료, 합병증.
예후까지.
세부 분과별로 모든 걸 물어봤던 1차 시험.
2차 시험은 일반외과 소속 레지던트만 모여 시험을 봐야 했고.
호텔에서 시험 보는 내과 계열과 다르게 외과 의사들은 전부 건대 병원으로 향했다.
임상술기 센터가 생각보다 컸기 때문.
뭐, 부지가 넓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아 수험표를 목에 맨 진혁이 거대한 강당으로 들어가자 시선이 집중됐다.
수선스럽게 동기들과 떠들던 각 병원 소속 외과 의사들이 빠짐없이 진혁의 외관을 훑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시선 속에 담긴 건 호기심.
아니, 호의였다.
아주 극소수.
그러니까 대장항문외과 소속으로 보이는 이들만 빼고 전부 진혁을 바라보는 눈빛이 부드러웠다.
그런 연유로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진혁이 곧장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 자신의 번호는 139번.
단체로 모여 주의 사항을 듣고 임시 고사실이 된 곳으로 이동할 테니.
대기가 답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진행 요원이 소리쳤다.
“136번부터 140번까지! 저 따라오시면 됩니다!”
진혁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다 그가 씨익 웃어 보였다.
삼육대 운동장에서 시비를 걸었던 대장항문외과 소속 이지훈.
그의 번호가 하필 138번이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참으로 공교로웠다.
아, 원수도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