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5)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5화(35/388)
35화. 컨퍼런스 (3)
[아이고, 과장님. 어쩐 일이십니까.]“그놈의 호들갑은 여전하구만.”
[에이, 우리 과장님이 좋아서 그렇죠. 요즘 어떠십니까? 평안하십니까?]“평안은 무슨. 사는 게 다 그렇지. 자넨?”
[저야 뭐, 죽지 못해 살지 말입니다.]한동수의 너스레에 박영진이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 우리 아이한테 조언을 해 줬다고?”
[네?]“이진혁이 말이야. 오늘 아주 잘했어.”
[그렇습니까? 역시 제가 찍은 놈답습니다. 크크.]“뭐, 한 교수가 도와줬으니 못하는 게 이상한 거겠지.”
[오옷!!]기괴한 감탄사.
박영진이 미간을 더 찌푸렸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던 한동수는 여전히 하이톤이었다.
[그놈이 제가 도와줬다고 했다는 거죠? 도와준 거 일절 없습니다.]“뭐? 도와준 게 없어?”
[에이. 그럴 시간이 어딨습니까. 잠잘 시간도 부족한데요.]“그럼 그놈이 왜 그래?”
[뭐, 저격으로 오해할까 봐 무서웠나 보죠. 오해하지 말라고 메일까지 보낸 놈입니다.]“하!”
박영진이 기막힌 듯 탄식했다.
[우리 막내가 아주 싹수가 있어요. 하하. 저였으면 그냥 발표했을 텐데요. 아주 예의 바른 놈입니다.]“나중에 연락하지.”
[오오옷! 안 됩니다.]“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부탁?”
[하하. 그러니까 그게…….]한참 이어지는 한동수의 수다.
전화를 끊은 박영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놈 이거, 아주 재밌는 놈일세.’
오랜만에 흥미가 돋는 인턴이 들어왔다.
* * *
박영진은 곧장 치프인 김상혁을 콜했다.
이진혁에 대한 궁금증이 돋았기 때문이다.
서둘러 과장실로 들어온 김상혁이 허리를 굽혔다.
“부르셨습니까.”
“나한테 뭐 할 말 없나?”
“네?”
“이진혁.”
“!”
“보고할 게 있을 거 같은데?”
“!!”
한동수의 도움을 받지 않은 걸 알고 있냐는 말이었지만, 김상혁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이진혁이 사고 친 걸 벌써 알고 계신다!!’
박영진이 크로스체크를 한다고 생각한 김상혁이 한참 동안 설명을 이어 갔다.
어차피 직접 확인하진 못한 상황.
오태상에게 들었던 진혁의 행태를 덤덤히 보고했다.
예상 밖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박영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혀를 찼다.
“재밌는 놈이야.”
“어떻게 할까요.”
“일단 지켜봐. 내가 적절히 개입할 거야.”
“알겠습니다.”
“그보다 한동수 교수가 재미난 부탁을 하던데?”
“예?”
“평가를 나쁘게 주라고 하더군. 다른 과로 도망갈까 봐 애타는 모양이야. 아주 애가 닳았어.”
“아.”
김상혁이 얕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사실, 납득하기 어려웠다.
고작 인턴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공들인단 말인가.
“평가는 그럼 수정할까요?”
“수정? 그대로 진행해.”
“알겠습니다.”
박영진은 한동수의 부탁을 들어줄 마음이 없었다.
이미 한번 내뱉은 말.
이제 와 되돌린다면, 위신이 서질 않았다.
거기에 더해.
“관심 없던 물건도 남이 탐하면 관심이 생기는 법이야.”
“……!!”
“주머니 속 사탕 같은 거지. 이진혁이 잘 관찰하고, 후배한테 관심도 두고. 치프가 그러면 되겠어?”
“죄, 죄송합니다.”
“관심이 없더라도 관심 두는 척을 해야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법이야. 위로 올라갈수록 리더십을 키워야지.”
김상혁의 평소 행태에 대한 지적을 더한다.
치프이기에 나름대로 후배들에게 관심 갖는 척을 했지만, 그 저변에는 무관심이 깔려 있으니까.
괜히 후배한테 무관심하다고 인계장에 쓰여 있는 게 아니었다.
“가 봐. 애들 잘 챙기고.”
“예, 과장님.”
김상혁이 나간 뒤 박영진이 수간호사를 콜했다.
원래 크로스체크는 기본이었다.
* * *
박영진과 면담을 마친 수간호사가 스테이션으로 돌아오자, 간호사들이 몰려들었다.
“수쌤~! 과장님이 왜 부르신 거예요?”
“이 선생님에 대해 물으시더라.”
“어머, 그래요? 과장님 반응은 어땠어요? 솔직히 이 쌤이 잘못한 건 없잖아요.”
“반응이야 뭐. 컨퍼런스 때 이 쌤이 워낙 잘했으니까.”
“다행이네요.”
“사실, 잘 모르겠어. 내 앞에서만 그러셨을 수도 있거든.”
20년이 넘는 근무 경력을 자랑하는 수간호사.
그녀는 이 병원의 누구보다 박영진을 잘 알고 있었다.
같이 근무한 게 벌써 십수 년이 넘었으니까.
‘변덕이 심한 사람이란 말이야. 뭐, 맘에 들면 모든 걸 내주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지.’
박영진의 성격을 떠올린 그녀가 쓰게 웃었다.
사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진혁을 옹호했다.
술기를 능숙하게 잘한다는 것도.
환자와 라뽀 형성을 제대로 한다는 것도.
타과 레지던트와의 충돌 또한 진혁의 입장에서 대변하고 왔다.
간호사들 사이에서 진혁의 평판이 워낙 좋기도 했고, 자신도 보고 들은 게 있으니까.
하지만, 박영진이 어떤 행동을 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 * *
소문은 빠르게 돌았다.
진혁이 평가에서 만점을 받았다는 것도.
이태희가 치프를 찾아가 고백했다는 사실도 금세 소문이 났다.
거기에 더해, NS 레지던트인 이상민과 충돌한 것까지 퍼져 나가자 병원이 시끄러웠다.
안 그래도 유명했던 이진혁이 아니던가.
그 파급력은 온라인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신인 37기 모임방』
아신대 출신만 모여 있는 천리안 동호회.
인턴 시작과 함께 조용해졌던 게시판이 불이라도 난 듯 시끄러웠다.
[ER 평가 원래 후하기로 유명한 곳임?]└ ㄴㄴ 평가 안 주기로 유명한 곳임.
└ 근데 어떻게 첫 주 차에 만점 받음?
└ 이진혁이 자료를 전부 외워서 발표함. 내 생각엔 미리 준비한 거 같음. 그게 아니면 불가능함.
└ 와씨. 나도 미리 준비했어야 했나.
└ 자유 주제 아니면 쓰지도 못할 걸 왜 준비해?
평가에 민감한 이들이 쓴 글과 댓글이 줄지어 올라왔다.
상대평가로 이뤄지는 인턴 평가.
결과에 따라 지원할 수 있는 과가 달라졌으니, 다들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첫 주 차에 평가 만점 주는 거 문제 삼아야 하는 거 아님?]└ 교육수련부에 항의해야 하지 않을까?
└ 상대평가는 공정해야지. 안 그래?
└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
└ 정작 항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 그냥 언론 탔다고 점수 잘 준 거 아님?
└ 나도 유명해져야 하나.
└ 나도 첫턴 ER이나 갈걸.
└ ER이 좋아 보이냐?
└ 모르겠고. 나도 평가 잘 받고 싶다고.
계속해서 올라오는 댓글.
다들 피똥 싸며 일하고 있었지만, 워낙 인턴의 숫자가 많다 보니 글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른 의미에서 시끄러워졌다.
진혁의 발표 자료를 장혁준이 올렸기 때문이다.
[이진혁 선생이 발표한 자료 올림.]└ 와. 이걸 진짜 외워서 발표했다고?
└ ㅇㅇ 하나도 안 보고 발표함.
└ 대답은? 대답도 잘하고?
└ 막힘없이 답변 잘함. B조 인턴들이 대놓고 까다가 이 선생한테 사과했음. 그러니까 까지 마라. 해방 운동을 같이할 동지들끼리 싸우는 거 아니다.
└ 야. 장혁준. 그 드립 좀 그만해.
└ 너도 동참하자.
└ 이거 동의는 구하고 올린 거냐?
└ 아니, 그냥 올렸는데?
발표 자료의 수준이 높았기에 평가를 잘 받은 걸로 진혁을 깔 수는 없는 상황.
곧, 다른 방향으로 글이 번져 갔다.
[이진혁이 말리그라며?]└ 나 지금 NS 돌고 있는데 죽을 맛이다.
└ 이진혁 때문에 이상민 선배 완전히 빡돌았어.
└ ㅅㅂ 일부러 차트로 조진 건가?
└ 그냥 원래 그런 성격 아니야?
└ 이유야 어쨌든 말리그는 사절이다.
└ 하극상은 질색인데.
└ 조직 생활을 잘 못하는 거 아니야?
NS 레지던트와 충돌한 걸 이유로 진혁을 까는 이들.
이 문제만큼은 진혁을 옹호하는 이들이 별로 없었다.
깔 게 별로 없기도 했고.
얽히고설킨 인맥 관계 때문이었다.
* * *
다시 돌아온 출근 날.
주변 시선이 따가웠지만 진혁은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신환(신규 환자)를 맡아 히스토리 테이킹을 한 뒤 기본 검사 중 하나인 혈압을 체크했다.
하지만, 그 수치가 너무 낮았다.
“서 간호사님, 콜로이드(Colloid) 좀 주세요. 제가 라인 잡을게요.”
몸이 좋지 않아 내원한 고령의 환자.
기저 질환으로 당뇨까지 있으니 언제 상태가 나빠질지 몰랐다.
진혁의 얼굴에 긴장감이 물씬거렸다.
“어르신, 팔 좀 뻗어 보시겠어요.”
“오른팔? 왼팔?”
“오른손잡이시죠?”
“그럼 왼손잡이게? 왼손잡이는 재수 없어? 그것도 몰라?”
“왼팔에 놔 드릴게요. 그래야 오른손을 쓰시기 편해요.”
일부러 말을 걸어 봤지만, 환자의 의식 레벨은 명료했다.
환자가 말라비틀어진 팔을 내밀자 곧장 토니켓(Tourniquet, 지혈대)을 묶었다.
알코올스왑으로 소독한 뒤, 니들을 찔러넣었다.
“말은 하고 찔러야지!!”
“조금 따끔하셨죠?”
“따끔은 무슨. 아프잖아!”
“마무리 좀 하겠습니다.”
스틸렛(Stylet) 허브(Hub)에 피가 맺히자.
각을 낮춘 뒤 조금 더 밀어 넣는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노화로 인해 탄력을 잃어버린 피부가 밀린 것이다.
“제대로 하는 거 맞지?”
“그럼요.”
왼손으로 피부를 당겨 팽팽하게 만든 뒤.
한 손으로 카테터를 재차 밀어 넣었다.
이번엔 성공.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토니켓을 풀고 카테터 밑에 알코올스왑을 깐 뒤 스틸렛을 제거한다.
그렇게 라인을 잡기 무섭게.
서 간호사가 달려왔다.
“선생님, 여기 콜로이드랑 크리스탈로이드요.”
“죄송한데, 노르에피네프린도 부탁드려요.”
“아.”
“오 선생님한텐 제가 말씀드릴게요.”
“네!”
서 간호사가 다시 뛰어가자.
진혁이 곧장 수액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드르륵.
조절기를 최대치로 조정해 수액을 급속 정주시킨 뒤, 오태상을 찾았다.
“선생님, 8번 베드 환자 노르에피네프린 투약해야 할 거 같습니다. BP가 90/60으로 낮고, 피버(열)가 39도가 넘습니다. 그리고…….”
진혁이 한참 설명을 이어 갔지만, 오태상의 반응은 덤덤했다.
“투약하세요.”
“알겠습니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반응.
진혁의 기를 꺾는 걸 완전히 포기한 태도였다.
* * *
혹시 모를 패혈성 쇼크에 대비해 수액을 대량으로 밀어 넣고 있었고.
BP(혈압)를 케어하기 위한 약물도 투약했지만 수치가 올라오지 않았다.
“IM(일반내과)에 일단 노티해요.”
“알겠습니다.”
오태상의 지시에 진혁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뭐, 소문을 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상대는 또다시 보존적 치료를 권했다.
사실, 그가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의사는 부족하고 환자는 넘치는 곳.
모든 환자를 잠재적 중증 환자처럼 치료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에 따른 판단과 생각이 의사별로 다르다는 거다.
미간을 찌푸린 진혁이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환자 상태를 체크했다.
노르에피네프린을 투약해도 혈압이 올라오지 않자, 장혁준과 김현수를 찾았다.
하지만 또다시 실패.
이번엔 직접 다시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ER 인턴 이진혁입니다.”
[아, 조금 더 지켜보자니까요.]“환자가 고령인 데다가 피버(열)도 높고, BP도 90/60으로 낮습니다.”
[SBP(수축기 혈압)가 낮아서 걱정된다?]“네. Septic Shock(패혈성 쇼크)가 염려됩니다.”
[일단 더 지켜보자고요. 투약도 했고 수액도 정속 주행 중이라면서요. 기본 처치는 한 거잖아요.]“그래도 한번 봐주시면 좋지 않을까요.”
[아. 의식 레벨도 명료한데 왜 이렇게 전화질이에요.]뚜욱.
전화를 끊은 진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소문 때문이라도 금방 달려올 줄 알았건만, 역시 병원은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10분 뒤.
환자를 살피던 진혁의 얼굴이 굳었다.
혈압이 되레 떨어졌기 때문이다.
‘패혈성 쇼크로 진행될 수도 있다.’
수분 공급이 되는 중에도 떨어지는 혈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될 수도 있었다.
그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진혁은 차트를 분 단위로 기록했다.
그러고는 전화도 멈추지 않았다.
계속 애원하는 전화를 했다.
결국, IM에서 내려온 레지던트.
차트를 확인한 그가 고성을 내질렀다.
“이 새끼가! 진짜!!!”
원래 소문으로 듣는 것과 직접 겪는 것은 다른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