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52)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52화(352/388)
352화. 해외 파견 (4)
기안도 의사라면 의사.
바보천치는 아니었고.
기시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과한 칭찬을 하는 흉부외과장.
수술 프로토콜을 읊는 이진혁.
뭔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분명 1년 차라고 했는데.’
제 입으로 말했다.
1년 차라고.
잘 부탁한다고.
연차를 속였을 리 만무할 터.
특히나 응급실에서 같이 일할 사이.
속일 이유 따윈 없었다.
그렇게 영문을 몰라 고심할 때.
“으음.”
이진혁이 짙은 침음성을 내뱉자, 정신을 차린 기안의 고개가 수술방을 향했다.
여전히 멈추지 않는 심장.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지 못 하고 있었다.
물론 이제는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 따윈 들지 않는다.
흉부외과장도 인정한 상황.
틀린 처방은 아닐 터.
다른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심장 수술에 문외한이었던 기안이 다시 고개를 돌려 이진혁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의 손이 꿈틀거리는 게 보인다.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눈치.
메스를 대신 잡고 수술하고 싶은 기색이다.
그러니.
‘미친놈인가?’
기시감과 함께 반감이 솟구친다.
쫄딱 망했다던 한국.
그저 그런 후진국.
아니 패망한 국가였다.
IMF 체제를 졸업했다지만, 아르헨티나 같은 곳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런 나라에서 온 동양인.
아니, 그저 그런 의사.
선진 의료 기술을 배우러 온 게 분명한데.
진짜.
아니, 정말이지 이상했다.
* * *
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관상동맥에 플라크(지방 덩어리)가 축적된 모양인데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차트를 정확히 보지 못 해서……. 바이탈 상태는 괜찮았던 건지요.”
“전해질 불균형은 아니야.”
“그럼 심장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반응할 이유가 없을 텐데요.”
“그렇지. 흐음.”
“일단 칼륨을 추가 투약해야 하지 않을까요.”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영어로 말하는 이진혁.
그리고 가만히 고민하는 흉부외과장.
의견 교환이 자연스러운 독일이었지만, 가만두고 볼 수 없던 기안이 나섰다.
“그러다 세포 손상 옵니다. 세포 손상.”
“그 정도로 많이 투약하자는 건 아니었는데요.”
“고칼륨혈증이 올 수도 있다고요.”
“일단 전해질 균형이 추가로 틀어진 거 같은데. 맞춰야죠. 온도도 더 낮추고요.”
“아니 진짜…….”
“어, 투약 준비하네요.”
진혁의 말에 기안의 고개가 휙 하니 돌아갔다.
발아래에 있는 수술방.
마취과 의사가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어시를 서던 교수마저 소리쳤다.
“온도 더 낮춰!”
“넷!”
“마취! 뭐 해! 뭐라도 해 보라고!”
“넷! 칼륨 추가 투약하겠습니다!”
“일단 용량 최소화해!”
“그럼요! 반응 보고 가야죠!”
머쓱해진 상황.
기안이 이젠 그냥 입 닥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침묵을 유지했다.
상식이.
상식이 무너지고 있었다.
* * *
칼륨 농도를 조금씩 올려 간다.
반응을 보며.
그런 만큼 반응은 미세했고 심장은 여전히 멈출 줄 몰랐다.
이에 진혁이 다시 의견을 개진했다.
“이 정도면 관상동맥 자체에 저항이 있는 거 같은데요.”
“흐음.”
“심장 머슬(근육) 전부에 관류되지 못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심장 근육을 겉돌고 있다?”
“예. 일단 RCP(역행성 심정지액)로 바꿔야 할 거 같습니다.”
흉부외과장이 고개를 저었다.
“겸자를 풀고. 심실세동 상태에서 수술할 수도 있어.”
“그럼 심실을 들어 올려야 하는데요.”
“역류가 더 심해지려나?”
“네, 좌심실 팽창. 그리고 그로 인한 동맥관류압 저하도 우려됩니다.”
“흐음.”
흉부외과장의 고민은 짧았다.
그가 곧바로 마이크를 잡았다.
“RCP로 돌리는 게 나을 거 같은데.”
그제야 고개를 들어 참관실을 확인하는 이들.
참관 중이라는 것도 몰랐다는 듯, 그들이 낯선 동양인을 보며 놀라워했다.
물론 그들도 듣긴 들었다.
흉부외과 전문의인 김현수가 온다는 걸.
허나 단체 관람이라니.
어시를 서던 교수가 대응했다.
“미리 말씀 좀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뭐, 그게 중요한가?”
“일단 RCP로 바꾸죠.”
“그래. 그냥 바꿔.”
“빌어먹을 심장이 멈추질 않네요.”
“어차피 해 볼 만큼 해 봤잖아.”
진혁의 제안대로 움직이는 이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들이었다.
* * *
역행성 심정지액을 통한 관류.
말그대로 정석은 아니었다.
관상동맥이 아니라.
관상정맥으로.
혈류 흐름과 반대로 주입하는 방식이니까.
이는 플라크 때문에 관상동맥이 막혔다는 판단에서 기인한 일.
새롭게 카테터를 설치하고.
바이탈 체크를 하는 등.
빠른 조치가 이뤄졌다.
곧바로.
“분당 150cc로 넣어.”
“넷!”
“관류압 모니터하고.”
“40mmHg 넘으면 노티하겠습니다.”
“심근표면 확인해!”
“네!”
집도의 대신 교수가 연신 소리쳤다.
심근 표면 정맥에 혈액이 차는지.
관상동맥 개구부로 혈액이 나오는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
연이어.
“심정지액 투입합니다!”
“다시 카운트 시작해!”
“넷!”
“30초, 25초, 20초!”
또다시 시작된 투약.
그리고 반응을 지켜보는 이들.
서서히.
아주 서서히 심장 박동이 느려진다.
그러다 곧.
“심장 멈췄습니다.”
“바이패스는?”
“정상 작동 중입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본격적인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음…….”
진혁이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 있던 흉부외과장이 물었다.
“왜, 뭐.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나?”
“좌상대정맥(LSVC)이 걸립니다.”
“뭐?”
“드문 케이스긴 한데……. 사실 과한 우려일 수도 있습니다.”
“과한 게 어딨어.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야.”
“그렇죠.”
“가능성은 희박한데. 혹시 모른다 이거군. 역시. 역시야. 애티튜드도 됐고. 역시 천재야, 천재라고! 하하. 닥터 한이 말한 대로라고!! 하하하하.”
흉부외과장이 시원스럽게 웃어 재꼈고.
어떤 상황인지 모르던 기안은 눈만 뻐끔거렸다.
물론 그가 아는 건 딱 하나 있었다.
다들 미쳤다는 거.
그래.
둘 다 미친 게 분명했다.
1년 차나 흉부외과장이나.
* * *
좌상대정맥.
혹은 좌측 상대정맥이라 부르는 혈관.
심장 뒤편에 위치해 있었고.
우상대정맥(RSVC)과 함께 우심방에 혈액을 환류시키는 혈관이다.
한데 드물게 좌심방으로 환류되는 경우도 있었으니.
그렇게 되면 심정지액이 배액 될 수 있었다.
지금은 심장이 멈췄다지만, 계획했던 시간보다 일찍 깨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수술방에 일러 주의를 준 흉부외과장이 또다시 진혁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천재야, 천재.”
“아닙니다. 아직 한참 배워야 합니다.”
“한번 보면 다 따라 할 수 있다는 말. 정말이었어. 진짜였다고.”
“꼭 그런 건 아닌데…….”
“허허, 이 사람이. 겸손도 참. 동양인은 참 달라. 우리랑 다르게 교만하지 않고. 다 좋아. 다 좋다고. 근데 말이야. 굳이 그럴 필요 없어. 철저한 능력주의! 그게 맞다고. 하하.”
연신 호탕하게 웃는 흉부외과장.
장혁준을 비롯한 동기들은 늘상 있는 일이었기에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는 태도를 보였고.
오로지 닥터 기안만 연신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 댔다.
한번 보면 다 따라 할 수 있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란 말인가.
그러다 곧.
“어?”
기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었다.
한국의 닥터.
CPR 알고리즘을 완전히 바꿔 놓았고 세계응급의학회에서 수상까지 했던 의사가 있었다.
그것도 고작 레지던트가.
물론 외계어같이 들리고 발음조차 따라 하기 힘들었기에, 이름은 정확히 몰랐지만 말이다.
“서, 설마?”
“이봐. 기안. 왜 그런 반응이지?”
“과장님, 혹시 제가 들었던……. 그 한국 의사가 이 친구입니까? 이름은 모르지만. 아니, 그럴 리가 없죠. 이 친구는 1년 차인데요.”
닥터 기안이 뒤늦게 부정하자, 흉부외과장이 웃었다.
“아, 모르고 있었나? 여기 닥터 리가 바로 그 친구야. 왜. CPR 알고리즘도 바꾸고. 크게 상도 받고. 지금 더블 보드에 도전하고 있다고.”
쐐기를 박는 발언.
닥터 기안의 눈이 진동했다.
1년 차라더니…….
1년 차라고 소개하더니.
빌어먹을!
진짜 1년 차가 아니었다.
* * *
어느덧 끝난 수술.
기안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진혁이 물었다.
“저, 안내인한테 들은 말이랑 좀 달라서 그렇습니다만…….”
“응?”
“잔뜩 기대하고 있다고. 다들 오기만 기다린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아, 온다는 건 알지만. 자네 정체는 윗사람들밖에 몰라.”
“네?”
“이게 참, 요즘 젊은것들. 다 외국으로 나갈 생각만 해. 그러니 늙은이들만 기대 중이지. 뭔가 활력을 불어 줄 거라고 말이야.”
“아아…….”
“일부러 말 안 했어. 놀라는 재미도 있어야지. 안 그런가?”
“그래서 그랬군요.”
“뭐, 알력 다툼이야. 잘 이겨 낼 테고. 그냥 그러려니 하게.”
“예, 뭐 어딜 가나 있는 일이니까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는 경우도 다반사.
파견의의 처지는 원래 하기 나름이었다.
짧게 있다 가는 사람.
길게 있다 가는 사람.
전부 그 상황이 달랐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
혹은 뿌리 깊게 박힌 인식.
뭐든 좋았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러자고. 우리 병원을 외면하는 환자. 널리고 널렸어. 환자라도 다시 데리고 와야 돼.”
* * *
이쯤 되면 말투가 변할 만도 했다.
고년 차.
아니, 전문의 보드까지 있는 그 자신이니까.
하지만 어디 사람이 그렇던가.
제 잘못을 인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는 법.
되레.
“왜 1년 차라고 소개했죠?”
그 자신한테 따지고 드는 기안이었다.
이젠 인종 차별이라기보다…….
뭔가 뒤틀려 있어 보였다.
왜.
어째서.
대체 왜.
흉부외과장과 헤어진 후 곧바로 따지고 드는 기안을 보며 진혁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독일에 오며 이런저런 조사를 많이 했다.
의사가 되고자 하는 이유.
한국과 달랐다.
첫째. 환자를 치료하고 싶어서.
둘째.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 싶어서.
셋째. 명예 때문에.
넷째. 돈 때문에.
돈이 후순위라는 게 의외였고.
그 대우가 형편없다는 건 현지에 와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청소부와 비슷한 임금.
최저임금 제도 때문인지 몰라도.
혹은 3D 업종에 정당한 돈을 주는 게 당연한지 몰랐지만, 의사 대우가 형편없었다.
‘억울해서 그러나?’
이유는 짐작도 안 됐지만, 진혁이 말했다.
“참관 때문에 늦어졌는데. 밥이나 먹고 하죠.”
“밥은. 음.”
“왜요? 바로 가야 하나요?”
“그건 아닌데요. 음. 그럼 먹고 오시죠.”
“저희끼리요?”
“네.”
“뭐, 그러죠.”
진혁과 동기들이 곧장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식당.
병원 인근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아이고. 잘했어요. 라면 동지!!”
“큭큭. 그놈 표정. 사진 찍어 놨어야 했는데.”
“아주 죽여주더라.”
“잘, 했,어,요.”
좋아 죽는 동기들.
그들도 알고 있었다.
한번 기 싸움에서 밀리면 피곤해진다는 걸.
문제는.
“근데 왜 이렇게 안 와?”
주문을 받아야 할 웨이트리스가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5분, 8분, 10분.
중간에 몇 번이나 불러봤지만, 모른 척하고 쌩하니 지나가기 일쑤.
그 모습에 진혁이 쓰게 웃었다.
서독 출신은 동독 출신을 개무시하고.
동독 출신은 동양계를 개무시하고.
어쩌면 인간사의 당연한 단면이었지만, 피곤한 건 피곤한 거였다.
그렇게 간신히 한 주문.
이젠 음식이 나오질 않는다.
화가 난 이태희가 말했다.
“녹음기 켜 놓자.”
“녹음기? 갑자기 그건 왜?”
“어차피 쉐도우 스피킹 한다고 가져왔잖아. 일단 꺼내 놓자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자는 말.
진혁이 이현아가 선물해 줬던 녹음기를 얼른 꺼내 들었다.
* * *
“왜 이렇게 늦었죠?”
기안은 잔뜩 뿔나 있었다.
쉬는 날 끌려온 것도 짜증 나는데.
밥 먹으러 간다는 이들이 돌아오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물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음식을 늦게 주던데요.”
“뭐라고요?”
“주문도 늦게 받더니 30분 넘게 음식이 안 나왔다고요.”
짜증이 날 때로 난 이태희가 성난 어조로 대답했다.
이에 기안이 침묵했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통일 후 경제력 격차로 인해 파생된 음울한 분위기.
동베를린은 그나마 덜했으면 덜했지, 다른 지역은 최악이라 할 수 있었다.
다들 고향을 떠나고 있었고 온갖 핍박을 받고 있었으니까.
오죽하면 억울하면 성공하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던가.
그러니 괜한 파열음이 튄 게 분명할 터.
하지만.
‘흥. 한번 보면 다 따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말이지. 논문? 윗사람이 밀어줬나 보지.’
그 자신 또한 굽힐 생각은 없었다.
되레 따지고 들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원래 이렇게 약속을 안 지키냐고.
이에.
“야, 꺼내.”
“라면 동지! 다시 출동!”
“와, 진짜. 진상이네.”
“이, 정,도,로 바,보,는 없,었,는,데…….”
동기들이 진혁의 등을 쿡쿡 찔렀다.
진혁이 뒤늦게 녹음기를 꺼내 들었고.
그 모습에 기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병원장한테 노친네라고 욕했던 그 자신.
전부 녹음한 거 같았다.
그가 멍한 표정을 짓다 휘청거리자.
장혁준이 말했다.
“뭐야. 왜 저래. 어디 아픈가.”
애초에 식당부터 녹음했으니.
괜한 오해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