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56)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56화(356/388)
356화. 해외 파견 (8)
커피만 사서 돌아온 병원.
기안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안 왔나 본데.”
“뭐, 밥 먹으러 갔겠죠. 아직 점심시간이잖아요.”
“시간도 남는데. 우린 어떻게 하죠.”
“일단 혈종에서 대기하죠.”
“그럴까요.”
“가시죠.”
입간판을 보며 걸어가는 길.
곧바로 익숙한 전경이 나왔다.
이미 왔던 곳.
당연한 일이다.
물론 달라진 건 있었다.
그건 동물원 원숭이를 보듯. 아니, 신경도 쓰지 않던 간호사들의 태도.
그들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거였다.
“한 건 했다던데?”
“뭐?”
“아직 못 들었어? 어려운 케이스를 해결했대.”
“외과 의사 아니야?”
“뭐, 천재라잖아. 한국에선 엄청 유명하대.”
“그래?”
“어, 외과 쪽도 난리라더라.”
“와, 같이 일하면 편하긴 편하겠다.”
뒤늦게 호감을 표하는 이들.
실력 있는 의사를 싫어하는 간호사는 없었다.
세 번 일할 걸 한 번으로 줄여 줄 수 있으니까.
그렇게 기분 좋은 수군거림을 들으며 앉아 있을 때.
그 자신을 가리켜 닥터 로보라고 부르면 된다고 했던 사내가 다가왔다.
“식사는요?”
“대충 먹었습니다.”
“입맛에 맞던가요?”
“아직 맛집은 못 찾았습니다.”
“이런……. 메일 주소 좀 알려 주십쇼. 입맛에 맞을진 모르겠지만, 맛집으로 소문난 곳들을 보내 드리죠.”
“오오. 좋지요.”
진혁이 반색하며 메일 주소를 불렀다.
사실 인트라넷에서 확인하면 될 일.
아직 접근 권한이 없기에 생긴 일이었다.
수첩을 다시 안주머니에 넣은 로보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자, 진혁이 말꼬리를 흐렸다.
“근데…….”
“네네.”
“종양표지자 검사는 언제쯤 나올까요?”
“왜요? 궁금해서요?”
“혹시 모르니까요.”
“……?”
“간암으로 오인된 게 아니라 둘 다 왔을 가능성도 배제하진 않고 있습니다.”
“음……. 그런 케이스는…….”
“보고된 적이 없죠.”
간암 환자가 방선균증도 같이 앓는 경우.
리포트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배제할 순 없는 일.
항상 열린 마음으로.
모든 가능성을 철저히.
의사가 갖춰야 할 자세였다.
그러니.
“애티튜드도 훌륭하군요. 감탄했습니다.”
로보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감정을 표현하는 걸 극도로 자제하는 독일인답지 않은 모습.
이 정도면 최고의 칭찬이었다.
로보가 말했다.
“사실 아까 일이 있었습니다.”
“일이요?”
“페니실린이랑 아목시실린을 투약하고 보호자랑 환자한테 노티했는데. 너무 울어서 투약이 힘들 정도였습니다.”
“아…….”
“정말이지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암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 뭐, 그럴 수도 있지요. 그래서 검사실에 계속 푸시하고 있었습니다.”
결과를 빨리 내놓으라고 닦달하고 있다는 말.
진혁이 잘게 웃었다.
그도 그럴 게.
기안 같은 놈도 있었지만, 정상적인 의사도 많았다.
물론 48%가 넘는 세율에 공무원처럼 구는 의사도 많아 보였지만.
“보통은 얼마나 걸리죠?”
“느릴 땐 24시간도 걸립니다.”
“정말 느리군요.”
“한국은 얼마나 걸리는데요?”
“2시간이면 됩니다.”
“2시간이요? 정말 2시간입니까?”
“네.”
“어떻게 그렇게 빨리…….”
“그건……. 음…….”
진혁이 곧바로 대답하지 못 하고 버벅거렸다.
뭐든지 빨리하는 문화.
한국은 2시간도 길다고 성화였다.
못 해도 열 번.
아니, 수십 번도 더 물어본다.
언제 결과가 나오냐고.
그만큼 암일 가능성을 알려 주는 종양표지자 검사 결과에 목매는 환자나 보호자는 많았다.
인생이 걸린 일이니까.
뭐, 정확도는 그리 높지 않았고.
추가 검사도 해야 했지만.
진혁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로보가 검사실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밥 먹으러 갔나 보네요.”
점심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이들답게 자리를 비운 모양.
모래주머니를 올려놓고 울고 있을 환자를 생각하면 딱한 일이었다.
그러니.
“잠깐 환자나 보러 갈까요?”
진혁의 말에 로보가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확인한 환자.
모래주머니를 올린 채 연신 기도하고 있었다.
신을 찾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찾는 모습.
여느 환자와 다르지 않았다.
원격 전이가 일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90% 이상으로 높았지만, 아직 종양표지자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
극히 드문 확률도 환자를 다시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저, 환자분. 아까 뵈었죠? 여기 한국에서 온…….”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보호자와 환자의 감사 인사.
끝없이 계속되자, 다들 어깨를 으쓱거렸다.
알력다툼이야 늘상 있는 일.
환자의 칭찬만큼 의사를 춤추게 하는 일도 없었다.
* * *
어느덧 끝난 점심시간.
여전히 자리는 휑했다.
“왜 아직 안 오죠?”
“게이트 찍고 있을 겁니다.”
“네?”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만 찍으면 되니까요. 출입증 카드요.”
“아…….”
탄식을 내뱉기 무섭게.
동기들이 숙덕거렸다.
“독일 의사들은 공무원처럼 일한다더니……. 진짜네.”
“우리도 칼퇴근할 수 있는 건가.”
“어차피 환자도 많아 보이지 않고. 연구 의사만 아니면 진짜 딱이다, 딱.”
한참 수선거리는 이들.
진혁이 로보를 상대하고 있기에, 한국말로 떠드는 게 실례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로보가 전화를 걸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계속된 독촉.
한국은 2시간 만에 되는데 너넨 왜 못 하냐는 말까지 이어졌고.
한참 뒤에 전화를 끊은 로보가 환히 웃어 보였다.
“결과 나왔습니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웃음이 대답을 대신하고 있는 상황.
진혁과 동기들이 마주 보며 웃었다.
“다행이네요.”
“다행이죠. 보통 암이 전이되는 걸 가장 고통스러워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기껏 고통을 참아 가며 항암 치료를 받았는데. 전이되면……. 더 큰 좌절을 하는 법이죠.”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직 독일어도 익숙지 않고 영어로 대화할 때가 더 많을 겁니다.”
인사 끝에 자리를 뜨는 로보.
진혁과 동기들이 기안을 찾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뒤늦게 다가왔다.
“아까 잘 봤습니다. 전 레비예요.”
“전 리나라고 불러 주세요.”
“천재라고 들었는데.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믿지 않았는데……. 뭐. 장난 아니네요.”
쏟아지는 인사.
그리고 악수 요청.
진혁과 그 일행도 웃으며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실력을 내보인 게 벌써 효과가 있었다.
* * *
‘실수했네…….’
의료진에게 둘러싸인 코리안 닥터를 멀리서 지켜보던 기안의 표정이 똥 씹은 얼굴로 변했다.
혈종.
외과의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
괜히 골랐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들은 결코 범상치 않았다.
지난 몇 년간 그 자신들이 정규 근무 시간을 채워 가며 공무원답게 일할 때 장시간 근로를.
그것도 아주 치열하게 생활한 게 분명했다.
천재고 뭐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닥터들 또한 이진혁의 주장에 동조하며 나서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크리스티가 옆구리를 툭툭 쳐 와도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머리를 굴렸다.
모든 과를 잘 알 순 없을 테니 눈치를 봐가며 찍어 눌러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곧.
“HNO-Arzt를 만나러 가려는데요.”
“HNO-Arzt요?”
“네, 음…….”
기안이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침음성을 토해 내자, 기시감이 든 진혁이 고개를 돌렸다.
“HNO-Arzt가 뭔지 아는 사람 있어요? 약어 같은데요.”
“음…….”
“김 선생도 몰라요?”
“모르죠.”
“장 선생은요?”
“내가 알겠어요?”
“나도 모르겠어.”
“저,도,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고개를 젓는 이태희와 최재성.
진혁의 고개가 다시 기안을 향했다.
“HNO-Arzt가 뭐죠?”
“Hals-Nasen-Ohren-Arzt의 약어죠.”
“아, 이비인후과 의사.”
“…….”
“뭐, 만나러 가시죠.”
“흠.”
“……?”
“잠깐, 잠깐만요.”
기안이 머뭇거리자.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작 점심을 먹었을 뿐인데.
달라진 반응이었다.
어떤 전공을 했느냐에 따라 의사의 명칭이 완전히 다른 독일.
과를 부르는 것도 아니고 의사를 만나러 간다는 것도 이상했다.
진혁과 그 일행이 침묵하자.
기안이 입을 열었다.
“차라리 Gynäkologe(부인과 의사)를 만나러 갑시다.”
“뭐, 가시죠.”
“…….”
“왜요? 뭐 문제 있어요?”
“…….”
흔쾌히 대답했건만, 또다시 침묵하는 기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혁준이 나섰다.
“이 자식, 지금 간 보는데요?”
“간 본다고요?”
“어떤 과로 가야 우릴 밟아 줄 수 있을지 간 보는 거 같은데, 아닌가요?”
“나도 같은 생각.”
“사,람,이, 왜, 이리, 유치,하지.”
“어효. 귀엽다, 귀여워.”
덩치는 산만 한 놈이 머리를 굴리는 게 퍽이나 귀여운 일이었다.
아니, 이런 놈을 한국에 있는 여느 종합 병원에 데려다준다면 일주일 만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 게 분명했다.
의전도 해야지, 잠도 제대로 못 자지, 당직도 서야지, 진상 환자도 많지, 논문도 대신 써 줘야지, 샘플도 찾아야지, 평생 공부만 해서 사회성이 결여된 의사도 많지…….
진성 코리안 닥터 맛을 본다면 학을 떼리라.
* * *
Endokrinologe.
Arbeitsmediziner.
Hämatologe.
Angiologe.
.
.
.
한참 계속된 질문.
그 끝에 시작된 투어.
관심도 두지 않는 과는 그저 그런 대로.
어디 한번 실력 좀 볼까 싶어 하는 과는 말 그대로 실력을 제대로 뽐내고 왔다.
회귀 전과 회귀 후를 합치면 업력만 30년이 넘은 상황.
서당개 3년이면 풍월도 읊는 법.
진혁은 여전히 압도적인 실력을 뽐냈고.
그건 다른 동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개같이 구른 4년.
단기간에 온갖 케이스를 욱여넣는 한국식 교육 방법이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의료과학이나 논문의 질 부분에 있어서는 처참한 수준을 달리고 있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기안을 열받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잘 모르겠는데요.”
“몰라요?”
“네.”
“진짜 몰라요?”
“부인과 과목을 모르는 게 잘못된 건 아닐 텐데요.”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했고.
그 태도는 너무도 떳떳했다.
기안으로선 당황스러운 일.
오히려 크리스티가 물어 올 정도였다.
“모른다고 해도 돼요?”
“왜 안 되죠?”
“…….”
“모르면 공부하고 배우고, 전문가한테 협진 의뢰하고. 그게 의사 아닌가요?”
이런 간단한 말로 찍어 누르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이어진 투어는 사흘 내내 계속됐고.
기안이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는 표정으로 수그렸다.
“……이제 투어는 끝났습니다.”
완전 쭈글이가 된 기안.
고생했다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은 진혁 일행이 그대로 휴게실로 향했다.
라면을 먹을 생각.
맛집리스트는 이미 받았다지만, 한국을 떠난 시일이 길어질수록 라면 국물이 땡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라면? 라면이 뭐죠?”
휴가를 계속 써 대며 사흘 내내 따라다녔던 크리스티가 호기심을 보였고.
그녀의 행동이 호기심에 기인한다는 걸 안 장혁준이 냉큼 권유했다.
“한번 맛 보실래요?”
“맛있어요?”
“끝내주죠.”
“그래요?”
“미슐랭 저리 가라 할 정도죠.”
“오오.”
장혁준이 가방에서 컵라면을 꺼내 들자, 크리스티가 기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같이 먹고 가죠.”
“싫습니다.”
“그래요? 그럼 하나 챙겨 가요.”
“싫은데요.”
“에이, 사람이 진짜. 왜 이렇게 쪼잔해요.”
“지금 그게 무슨…….”
줄 마음도 없는데 티격태격하는 이들.
장혁준이 씨익 웃더니 기안한테 찐라면을 하나 건넸다.
그동안 엿 먹이려고 참 애썼다는 말을 삼키며.
그리고 그날 밤.
기안이 크리스티한테 전화를 걸어 호소했다.
코리안 닥터들이 자신을 독살하려고 했다고.
너무 매운 라면을 쥐여 줬다고.
심라면도 아니고 찐라면 순한 맛인데도.
매워하는 독일인들이었다.
* * *
이제 투어도 끝났고 시험 준비만 남은 상황.
장혁준이 당장 컴퓨터를 켰다.
그가 들어간 곳은 『베를린 리포트』.
독일에 이민 온 교포.
그리고 유학생이 찾는 커뮤니티다.
곧바로 그가 구인·구직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독일인 과외 선생님 구합니다.]하지만 댓글이 달리지 않는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진혁이 혀를 찼다.
“과외비가 너무 적은 거 아니에요?”
“그럼 더 올릴까요?”
“얼마가 적정한지, 서치 좀 해 봐요.”
“비슷하게 했는데……. 아, 몰라. 좀 더 올리죠.”
다시 수정한 게시글.
또다시 아무런 댓글도 달리지 않았다.
“뭐야. 왜 이래? 오늘 가입해서 그런가?”
조바심을 내는 장혁준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다들 공부하러 간 사이.
장혁준이 이번엔 제목을 수정했다.
[천재 외과 의사 장혁준!! 독일어 과외 선생님 구합니다! 의사 전문 언어 시험 준비 중입니다!]어그로를 끌었지만, 여전히 달리지 않는 댓글.
의사라는 명확한 신분.
그러니까 해외에 나가면 한국인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명언까지 무시할 만한 그 자신의 신분을 밝혔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에 장혁준이 또다시 제목을 수정했다.
[자칭 타칭 천재 외과 의사 이진혁! 플라텐바우에서 근무 예정! 독일어 과외 선생님 구합니다!]온갖 어그로를 다 먹인 제목.
내용 또한 잔뜩 수정했다.
아신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다 함께 왔다고.
그것도 5명이나.
하지만 여전히 댓글은 달리지 않았고.
기다리다 지친 장혁준이 와이프인 정아름한테 전화해 한참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거짓말처럼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 진짜? 이진혁 선생님이면 아신 병원에서 근무하는 그 이진혁 선생님이죠? 진짜 독일에 온 건가요?
└ 플라텐바우 병원이면 동베를린 지역인데. 병원 이름까지 말할 정도면 진짜 같은데요.
└ 오늘 가입한 아이디라 의심했는데. 사실이면 진짜 잘됐네요. 프랑크푸르트는 종합 병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이 계시는데 베를린은 처음이잖아요.
└ 언제부터 진료 시작이에요?
└ 근무 시작일은 언제죠?
└ 외과 수술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 안 그래도 심장이 안 좋았는데.
순식간에 불어나는 댓글.
인기 글에 집계되며 다음 날 아침에는 그 수가 200개로 불어났다.
독일에 이민 온 의사가 애초에 별로 없기도 했고.
있다 한들 동네에서 작은 병원을 개업해 일하는 상황.
망해 가고 외면받는 동베를린 지역에 있는 플라텐바우 병원이라지만.
한국말이 통하는 의사가 교환 의사로 왔다는 건 정말이지 반가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는.
“네? 아, 네. 일단 시험에 합격한 뒤에 선생님들이 근무할 예정입니다.”
문의 전화 폭주로 이어졌다.
오랫동안 대형 병원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의사가 오기만 기다렸던 교민들이 직접 전화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도면 열풍.
아니, 정말 광풍이라 할 수 있었다.
비싼 비행깃값을 물며 한국까지 가지 않아도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