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60)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60화(360/388)
360화. 파독 광부 (4)
정연수가 대기하고 있는 ER로 돌아가는 길.
병리과 검사실과 꽤 거리가 있었기에, 다들 종종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닥터 크리스티 또한 그 뒤를 따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환자 얼굴이라도 보고 갈 생각.
새벽에 나왔기에 피곤했지만, 그냥 돌아가는 것 또한 이상했다.
페이퍼와 숫자, 그리고 검체와 씨름하는 게 연구 의사의 숙명이라지만 왜 조금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한참을 걸어갈 때.
뒤늦은 기시감에 크리스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네? 뭐가요?”
“암이 아닌 건 알겠는데요.”
“네.”
“어찌 됐든 폐를 잘라 내야 한다는 건데. 왜 이렇게 좋아하냐고요.”
“아…….”
“시비 거는 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그냥 조금 그렇잖아요.”
정말로 괜히 하는 말은 아니었다.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걸어가는 이들을 보다 보니 진짜 이상해서 하는 말이었다.
암은 아니라지만 수술은 피할 수 없는 상황.
마냥 좋아할 계제는 아니었다.
“우상엽이잖아요.”
“근데요.”
“좌엽보다는 우엽. 하엽보다는 상엽이 좋죠. 폐 기능 보존율부터 다르니까요.”
“잘라도 상관없다?”
“상관없는 건 아니지만, 가장 좋은 케이스라는 거죠.”
진혁의 대답에 크리스티가 생각에 잠겼다.
흉부외과를 전공한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상황.
그녀가 폐의 구조를 떠올렸다.
크게 다섯 구역으로 나뉜 폐.
우상엽, 우중엽, 우하엽.
그리고 좌상엽과 좌하엽이 있었다.
정연수의 경우에는 절제했을 때 가장 부작용이 적었고 폐 기능 또한 유지할 수 있는 우상엽이라는 말.
크리스티가 되물었다.
“근데 그거 근거 있는 얘기예요?”
“그럼요. EJCTS(유럽흉부학회지)에도 실렸는데요.”
“그래요? 절제 부위에 따른 폐 기능 보존율은 수술을 진짜 많이 하지 않고서야 비교가 불가능할 거 같은데요.”
“수술례를 수집하는 게 힘들긴 하죠.”
“근데 그런 보고가 있었다고요?”
“한국은 특정 종합 병원에 수술이 몰려 있으니까요.”
한국인 의사가 쓴 논문이라는 함의.
크리스티가 다시 한번 고개를 모로 저었다.
대체 얼마나 수술이 집중됐길래 수술례를 모아서 비교하는 논문까지 낼 수 있는지 가늠이 안 됐다.
그도 그럴 게.
주마다 법률도 다르고.
모든 게 다른 독일.
암 환자가 된 순간 빅5 앞에서 자취방부터 구하고 보는 한국 사람들을 상상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애초에 빅5라는 개념도 없지 않던가.
* * *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해민이 또다시 오열했고.
정연수 또한 눈물을 흘렸다.
구사일생.
말 그대로 죽었다 살아난 느낌이었다.
암이 아니라는 안도감.
그건 겪지 않고서는 모를 수밖에 없는 감정이었다.
밥을 먹어도 돌을 씹는 거 같고,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하며, 뜬눈으로 지새우는 건 일상.
그게 바로 암으로 확진되기 전에 보호자나 환자가 겪는 또 다른 지옥이었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라는 명제.
너무도 당연한 생각을 평소에는 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필멸자의 한계를 깨닫게 되니까.
그렇게 한참 눈물을 쏟아 낸 김해민이 진혁의 손을 다잡았다.
“일 분 일 초가 지옥이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로. 이걸 뭐라고 설명드려야 할지.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닌데요.”
“아…….”
“일단 폐를 절제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절제해야 한다고요?”
“네, 설명은 여기 김 선생이 대신할 겁니다.”
진혁이 한 발 뒤로 물러서자.
김현수가 그 자리를 대신 했다.
수술 방법, 수술 후에 있을 부작용.
그리고 폐 기능이 유지될 가능성까지.
FEV(1초 동안 배출된 공기량 측정)나 DLCO(일산화탄소 수치 비교) 같은 어려운 용어는 전부 뺀 채 설명하는 김현수였다.
마마보이로 불리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진짜 격세지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도 어느새 어엿한 써전으로 성장해 있었다.
* * *
김현수와 함께 CS로 전원된 환자.
이젠 손을 떠났다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들 멈추지 않고 움직이자, 크리스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집에 안 가요?”
“아, 크리스티. 오늘은 진짜 고마웠습니다.”
“맞,아,요. 나,중,에, 밥,이,라,도 살,게,요.”
“밤 늦었는데 조심히 가요.”
“으으. 지금 그런 얘기를 듣고 싶은 게 아니잖아요. 왜 집에 안 가고 이러고 있냐고요.”
질문에 대한 대답이 감사 인사로 돌아오자 크리스티가 얼굴을 붉혔다.
칭찬에 약하기도 했지만, 무얼 하고자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당장 내일.
아니, 새벽이니까 오늘 수술한다고 했지만, 환자는 CS로 전원된 상황.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여겼다.
그런 크리스티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에 장혁준이 나섰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도와야죠.”
“뭘 돕는다는 거예요? 준비는 CS에서 할 텐데요.”
“현수가 하긴 할 텐데. 그래도요.”
“네?”
그녀의 반문에 장혁준이 독어에서 영어로 바꿔 말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수술할 때 가로로 절개할지, 세로로 절개할지. 다 물어보고 정하죠?”
“그야 환자 선택권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하는 거죠.”
“환자가 뭘 아는데요?”
“네?”
“가로로 절개할지 세로로 절개할지. 몇 cm을 절개할지. 봉합은 어떻게 할지. 환자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선택해야 되잖아요.”
“설명은 해 주잖아요.”
“그래도 힘들죠.”
너무 광범위한 선택권.
한국과 달라도 너무 다른 부분이었고, 일견 이해되기도 했지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의사가 정해 준 대로 수술받는 게 편한 환자가 대부분이었으니까.
“며칠 전 얘긴데요. 일반외과에서 탈장 수술을 했던 환자. 세로로 절개해서 흉터가 길게 남았어요.”
“그게 뭐가 문제죠? 환자가 고른 거잖아요.”
“그 환자 울었어요. 그것도 펑펑.”
“왜 울어요?”
“평생 비키니를 입지 못하게 됐으니까요. 세로로 길게. 너무 흉하게 남았거든요.”
“아…….”
크리스티가 뒤늦게 탄식을 터트리자.
장혁준이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 사람이 그래요. 너무 많은 선택권을 주면 필연적으로 망설이고 후회한다고요. 저렇게 할걸. 이렇게 할걸. 갈팡질팡하다가 속상해하는 게 일반적이라고요.”
인간은 본디 그러하다는 말까지 하는 장혁준.
크리스티 또한 바보가 아닌지라 이를 대번에 알아들었다.
간단한 감기 때문에 의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
그건 평균 4일.
간단한 수술은 보통 두 달.
혹은 세 달.
어려운 수술이 더 대기가 긴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작은 수술에도 세세한 방법까지 환자가 고르게 하는 독일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더 많은 자유 앞에 힘들어한다고?’
꽤나 낭만적인 말이었기에, 그녀가 되물었다.
“그거 누가 한 말이에요?”
“네?”
“방금 그거요. 그거.”
“……?”
“인간은 더 많은 자유 앞에서 힘들어한다. 때로는 선택이 제한될 때가 좋을 수 있다. 그거 누가 한 말이냐고요.”
어떻게 해석된 건진 몰랐지만, 좀 더 그럴싸하게 돌아온 상황.
장혁준이 때로는 애늙은이처럼 구는 이진혁이 했다는 말을 숨긴 채 어깨를 활짝 폈다.
“누구긴 누구예요. 내가 한 말이죠. 닥터 장. 그게 바로 나라고요.”
“…….”
“…….”
“…….”
“왜, 왜요. 왜 말이 없는데요.”
“원래 이런 스타일이에요? 으으.”
크리스티가 한 발 뒤로 물러서자, 장혁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서양인들은 겸손한 걸 싫어한다더니, 다 거짓말이었다.
분명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그리 말했는데…….
아니었다.
* * *
어느덧 이른 아침.
흉부외과 컨퍼런스실.
김현수의 케이스 발표에, 다들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이걸 밤새 정리했다는 겁니까?”
“네, 동기들하고 같이 정리했습니다.”
“그럼 잠은요?”
“잠깐 잤습니다만.”
“잠깐이면 얼마나 되는 겁니까?”
“2시간 남짓 됩니다.”
“허허…….”
다들 혀를 내둘렀다.
수술 전에 해야 할 기본 검사.
그리고 환자가 골라야 할 설문 조사까지 전부 끝나 있었다.
그뿐이랴.
디테일한 수술 방법까지 정리되어 있어, 말 그대로 수술 직전에 투약할 약물 빼고는 모든 조치가 끝나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라이트 어퍼 로벡토미(Right Upper Lobectomy, 우상엽 폐엽절제술)를 진행할 예정인데……. 수술 스케줄을 보면 두 달 후에나 가능할 거 같습니다.”
“뭐, 그렇지요.”
“다른 병원으로 가는 환자가 많은데도 이 정도면 다른 병원은 더 기다려야겠지요?”
“원래 통상 이 정도는 걸립니다. 응환이 아니고서야…….”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제가 직접 집도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오늘 당장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바로 수술실을 열어 달라는 말.
좌중에 침묵이 넘쳤다.
응환도 아니고.
폐암도 아닌 환자.
이렇게 빨리 수술하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언제 어떻게 발전할지 모릅니다. 종물의 크기도 너무 크고. 진폐증을 오랫동안 겪은 환자입니다.”
“협의는 된 겁니까?”
“네, 정연수 환자도 당장 수술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로벡토미를 집도한 경험은요.”
“수술례만 따지면 집도는 10건, 어시는 100건이 넘습니다.”
“허허.”
또다시 경악에 찬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한동수가 제대로 굴려 달라고 레터까지 보낸 상황.
대충 들어 그 사정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연차에 비해 수술 경험이 지나치게 많았기에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참의료지원단 때문에 중간에 공백기도 가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반응을 두고.
김현수가 얼굴을 붉혔다.
“저희는 새벽까지 수술하는 게 일상이라…….”
한참 계속된 처참한 현실 중계.
독일인 의사들이 입을 떡 하니 벌렸다.
인간이라면 소화할 수 없는 스케줄이었다.
* * *
집도는 김현수.
퍼스트는 독일인 교수.
세컨은 진혁이 들어가기로 했다.
조합이 이상했지만, 폐식도 세부 전문의들은 전부 일정이 있는 상황.
퍼스트 어시로 들어온 독일인 교수 또한 심혈관 전문의였고.
문제는 진혁도 심혈관 전문의라 수술의 키는 김현수가 쥐고 있었다.
굳이 오프도 하지 않고 다른 과 수술에 참여하겠다고 했던 진혁이 환자를 카인(Car-in)한 다음 곧바로 손을 놀렸다.
“복강경으로 할 건데 측면 개흉술처럼 옆으로 누운 채로 수술할 거라서요.”
“네, 선생님.”
“일단 손은 이쪽으로 뻗으시면 되고.”
“그 밴드는…….”
“떨어지지 않게 허리를 고정하는 겁니다.”
“네…….”
여운이 남는 대답을 들으며 진혁이 정연수의 위치를 조정했다.
어깨를 뒤로 잡아당겨 약간 뒤쪽으로 기울여 자세를 잡았다.
전방 폐문부 노출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한 일.
집도의인 김현수를 위한 작은 배려라 할 수 있었다.
이어진 건 드랩.
진혁이 클로르헥시딘을 들어 광범위하게 소독하기 시작했다.
어깨.
다시 장골 능선.
흉골.
다시 척추 가시돌기까지.
혹시 모르는 응급 상황을 대비해 개흉술로 즉각 전환할 수 있도록 소독을 꼼꼼히 끝냈다.
그렇게 빠르게 소독을 끝내고 수술포를 덮을 때, 진혁이 다시 말을 걸었다.
“제가 타임아웃(신원 확인)을 안 했는데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이름이요?”
“네, 이름이요.”
“…….”
“어르신?”
“…….”
“이름을…….”
거듭된 질문.
정연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차디찬 수술대에 누워 있으니 여러 생각이 드는 모양인지 눈물까지 보였다. 그런 그가 뒤늦게 대답했다.
“마르켄눔머 1315번.”
“네? 광산 번호요?”
“독일 애들이 이름 대신 광산 번호를 불렀습니다.”
“이름이 어려워서…….”
“네. 1315번이었죠.”
한참 계속된 넋두리.
33도가 넘는 지하 광산에서 8시간 넘게 일했고.
한국 돈으로 4만 원을 받았다는 말.
사고로 죽은 이들 또한 숱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이름을 모른다는 이유로 마르켄눔머(광산 번호) 몇 번이 죽었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도.
다치고 쓰러지고 입원하고 그래도 송금해야 한다며 아프면서도 일했다는 정연수.
진혁이 남몰래 탄식했다.
계약 기간이 3년인데 귀국하지 않고 끝끝내 일하다가 이렇게 됐다는 말이니까.
그런 그에게 진혁이 눈물을 삼키며 되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
“어르신, 한국 이름으로 말씀하셔도 돼요.”
“정연수. 정연수입니다.”
“신원 확인됐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돌려 뒤늦게 들어온 마취과 의사를 바라보자, 그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김현수마저 들어오자 그가 소리쳤다.
“지금부터 라이트 어퍼 로벡토미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