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64)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64화(364/388)
364화. 수술 그 후 (2)
임상 추론.
그리고 진단.
말이 쉽지 그 과정은 복잡했다.
시진, 문진, 촉진 등을 통한 정보 수집.
그리고 각종 의료기록을 확인하는 일.
조각난 퍼즐을 이리저리 맞추는 일이었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오진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흐음…….”
진혁이 다시 한번 침음성을 토해 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혁준은 답답해했다.
“모르겠죠?”
“네.”
“그럼 확실하다니까요.”
“얼굴을 때렸다?”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러면 병원도 안 왔을 텐데요. 괜히 걸릴 수도 있는데…….”
“아니죠. 환자가 직접 온 거고. 보호자는 뒤늦게 달려온 거잖아요.”
보호자는 애써 당황스러움을 감춘 채 명함까지 건넸다는 말.
진혁의 고개가 환자를 향했다.
아들과 대화하는 그녀.
언뜻 보기엔 살가워 보였다.
그뿐이랴.
기자라고 신분을 밝힌 자식 또한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어머니의 손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모자지간.
진혁이 다시 한번 고개를 내저었다.
때로는 한없이 악해질 수 있는 게 인간.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이곳은 고향도 아니고 머나먼 타지.
지난 3개월 동안 만났던 교민들을 가족끼리 똘똘 뭉쳐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갈등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지만.
“후…….”
진혁이 한숨을 내쉴 때.
얀느 후퍼가 다가왔다.
응급실 간호사.
섣불리 병명을 단정 지었다가 정연수를 쓰러트렸던 그 간호사였다.
“선생님, 혹시 병명 확인됐나요?”
“아뇨, 아직은요. 루틴 검사 돌렸는데, 너무 멀쩡해서요.”
“그래요? 그럼 바로 전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네?”
“노인 학대가 의심되는 경우엔 반드시 경찰에 신고한다. 한국이랑 다르게 독일은 신고의무제가 있어요.”
그 자신은 의료진으로서 노인 학대 신고 의무대상자라는 말.
그런 법이 있는 건 한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의료인.
교사.
복지 시설 종사자.
기타 등등.
아동 학대나 노인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을 발견하게 되면 무조건 신고하게 돼 있었다.
물론 보복이 두려워서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지만.
“아직 모릅니다.”
“아직 모른다고요?”
“네.”
“흠.”
“좀 더 지켜보시죠.”
“알겠습니다.”
다행히 그녀는 별말 없이 어깨만 으쓱거렸다.
지난 3개월.
신뢰를 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번 진혁이 혹시나 싶은 마음에 사방을 훑었다. 그러다가 곧바로 탄식을 내뱉었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그리고 다른 의사들까지.
전부 뚱한 표정으로 보호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면 야단날 판.
원리원칙을 따지고 고집불통으로 유명한 독일인답게 누군가 신고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장혁준을 향해 고개를 돌린 진혁이 한국어로 속삭였다.
“이러다 큰일 나겠는데요.”
“네? 왜요?”
“폭행이 사실이면 상관없는데. 오해면 큰일이잖아요.”
“인종 차별로 느낄까 봐요?”
“그것도 그렇지만 상처죠. 학대 신고 들어가면 당장 경찰서에 갇힐 텐데요.”
“아…….”
“낯선 타지에서 아들과 같이 살아가는데. 신고당했다고 생각해 봐요. 걱정도 걱정이고. 충격이죠.”
그 자신이 병원을 찾은 일로 아들이 조사를 받게 된다면 어떤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말.
원래 늙으면 모든 게 자신의 탓처럼 여겨지고, 우울증까지 겪는 게 일상.
살아서 뭐 하나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몰랐다.
“그건 생각은 못 해 봤는데……. 음.”
“일단 검사 결과부터 다시 확인하죠.”
“그래요, 그럼.”
그렇게 다시 체크하게 된 결과지.
백혈구 등 각종 수치는 정상.
동맥혈 검사 결과 또한 정상이었다.
물론 아주 미약하게.
그것도 정말 아슬아슬하게 정상 범주를 벗어나는 게 있긴 있었다.
“나트륨 수치는 조금 낮네요.”
“132가 찍혔는데요. 저나트륨혈증이라고 하기엔 또 애매하죠.”
“칼륨도 5.5인데…….”
“이것도 고칼륨혈증이라고 하기엔 또 그렇죠.”
“소변 검사도…….”
“그건 너무 전형적이잖아요.”
“…….”
진혁이 짧게 침묵했다.
그도 그럴 게, 당뇨가 있는 만큼 그냥 딱 당뇨 환자가 보일 수 있는 수치만 찍혀 있었다.
미세단백뇨.
말 그대로 알부민 등의 단백질이 빠져나가며 거품이 나오는 수준인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헤맬 때.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평소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응급의학과장마저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지?”
“아, 과장님. 그게…….”
한참 계속된 노티.
한 과의 과장을 맡은 교수답게 그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차트를 직접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하지만.
“흐음…….”
깊은 침음성을 토해 낸 건 그 또한 마찬가지.
기본 검사를 전부 돌렸는데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촉진은?”
“페인(고통)은 전혀 없었습니다.”
“참는 게 아니고?”
“네.”
“뭐, 오래된 멍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신고부터 해야겠는데……. 혹시 모르니까 먼저…….”
“아, 아뇨. 과장님.”
“……?”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진혁이 서둘러 고개를 내저었다.
무뚝뚝하고, 무표정하고, 차갑고, 지독한 원칙주의자라 할 수 있는 응급의학과장.
지난 3개월을 같이 보냈기에 어떤 성향인지는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그냥 평범한 독일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 선생도 알겠지만, 원칙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거야. 일단 의심 환자라고는 하지만, 신고는 하고 봐야지.”
그가 다시 단언하자, 진혁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 자신이 틀렸을지도 몰랐지만, 일단 시간은 벌어야 하는 상황.
아직 모든 걸 점검한 건 아니었다.
“청색모반(Blue spot)일지도 모릅니다.”
“청색모반?”
“네, 서양인하고 다르게 동양인한테 더 흔하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손등이나 발등도 아닌데? 주로 발현되는 부위도 아니지 않나.”
“눈 주위, 두경부, 엉덩이, 사지, 심지어 구강 점막까지. 손등이나 발등에 주로 발현되는 건 맞지만, 다른 경우도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동양인한테 주로 발병되는 색소성 병변일지도 모른다?”
“네.”
사실 확신 따윈 없었다.
그저 가능성 중 하나를 그냥 말한 것에 불과했다.
아직 뭐가 뭔지는 그 자신 또한 모르는 상황.
그저 폭행으로 기인한 상처가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머나먼 타지에서 아들한테 맞았다고 한다면 그건 처음이 아닐 터.
원래 폭행은 처음이 쉽지 계속 반복되는 법.
그렇다면 그녀의 인생이 너무 가혹할 테니 아니길 바랐다.
그런 마음을 알았을까.
아니면 또 다른 가능성 때문일까.
잠시 고민하던 응급의학과장이 뒤늦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 확인 좀 해 보지.”
* * *
어느덧 환자 앞.
응급의학과장이 직접 나섰다.
“아프십니까?”
“아뇨, 아프진 않아요.”
“그럼 여기는요.”
“거기도 아프진 않은데요.”
꾸욱.
꾸욱.
한참 계속된 촉진.
응급의학과장이 직접 나섰고.
환자는 연신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푸른색으로 변색된 피부를 강하게 눌러도 아프지 않다는 말.
억지로 참는 기색 따위는 아니었다.
“틴들 효과(Tyndall effect, 빛이 산란돼 피부가 파랗게 보이는 일)가 이렇게도 될 수 있는 건가……. 흠.”
“점처럼 작게 나타날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가 드문 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야. 진피 내부 깊숙한 곳에 있는 게 아닌 거 같아서 하는 말이야.”
“그건…….”
“일단 피부과를 콜하지.”
“네.”
짧게 대답한 진혁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피부과 의사를 콜했다.
물론 그가 내려온 건 한참 후.
느릿느릿하게.
아주 공무원처럼 일하는 독일 의사다운 태도였다.
한참 굼뜨게 움직이던 피부과 의사가 피부경을 꺼내 병변을 확인해 나갔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고배율의 피부경.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색조 변화는요? 색조 변화는 있었나요?”
“네?”
“뭐, 검은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푸른색으로 변했다거나. 그게 아니면 좀 더 어두워졌다거나……. 뭔가 변화가 있었나 해서요.”
“아뇨, 어느 순간 갑자기 생기더니 그 범위만 커졌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청색모반이라고 하기엔 좀…….”
말꼬리를 흐리던 그가 한참 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크기나 범위가 너무 빠르게 증가하는 건 청색모반이랑 같은데요. 그렇다고 하기엔 색상이 너무 밝아서요.”
“푸른색이 너무 강하다는 말씀이시죠?”
“네.”
“병변 모양이 규칙적이지 않은 것도 그렇고 가장자리가 어그러진 것도…….”
“아아, 그건 청색모반이랑 비슷하긴 한데요. 흠. 다시 한번 보죠.”
피부과 의사가 피부경을 활용해 다시 병변을 확인해 갔다.
배율도 조정하고.
편광과 비편광.
그리고 조명까지 조절해 가며 확인한 그가 다시 입을 연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패턴이 전형적이지 않은데요.”
“패턴이요?”
“네. 피부 깊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형적인 스틸 블루 패턴도 아닙니다.”
“생검 해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뭘 생검까지야……. 이 정도면 흑색종으로 의심되는 것도 아닌데요.”
청색모반으로 둔갑한 흑색종도 아닐 거라는 말.
이대로 진료를 끝내고 돌아갈 생각인 듯했다.
피부과에 대한 지식이 얕았던 진혁이 머리를 팽구르르 굴렸다.
“혹시 PIH(염증 후 과다색소침착) 가능성은 없는 겁니까?”
“으음. 그건…….”
피부과 의사가 고개만 갸웃거리자 진혁의 고개가 환자를 향했다.
“환자분 혹시 별다른 일은 없으셨습니까?”
“네?”
“갑자기 얼굴이 가려워서 긁었다거나, 벌레에 물렸다거나, 화상을 입었다거나. 염증이 생겼었다거나. 뭔가 특이한 일이 있었나 해서요. 혹시 피부 미용 시술은…….”
“아뇨……. 그런 건 전혀…….”
환자의 대답이 조금은 늘어졌다.
뭔가 심각해 보이는 얼굴.
많이 놀란 눈치다.
그도 그럴 게.
응급의학과장부터 피부과 의사.
그리고 외과의인 장혁준까지 지켜보는 상황.
응급실 의사뿐만 아니라 다른 과 의사들까지 내려와 심각한 얼굴을 한다는 건 한참 겁먹을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환자가 겁먹고 놀라워한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는 일.
문진은 한참이나 계속됐고.
뒤늦게 밝혀진 것 또한 많았다.
혈관 병변에 따른 변색 또한 아니었고.
다른 색소 물질의 삽입. 그러니까 문신을 한 것 또한 아니었다.
뭐, 나이가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
미노사이클린 색소 침착은 더욱더 아니었다.
70대 노인이 여드름 때문에 고민하다가 항생제를 장시간 사용해 피부 색소 변화를 일으킬 리 없었으니까.
이젠 모든 가능성이 소거된 상황.
응급의학과장의 손이 핸드폰을 향하자, 진혁이 먼저 선수를 쳤다.
“과장님, 혹시 모르니까 추가 검사를 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 * *
몇 시간 후.
장혁준이 털레털레 내려왔다.
“어떻게 됐어요?”
“내시경 검사는 끝났어요.”
“결과는요?”
“만성 위축성 위염. 담즙 역류 위염. 그 외에는 없어요.”
“복부 CT도 찍은 거죠?”
“네, 지방간이 조금 있고. 총담관이 확장된 것만 확인됐어요.”
“병리검사실은요?”
“그건 5분 내로 나온대요.”
진혁의 대답에 장혁준이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면 과잉검사라고 할 정도.
정말이지 최선을 다하는 진혁이었다.
혹시 모를 오해.
그로 인한 충격을 막기 위해서 하는 일.
뭐, 이진혁의 성격이 어떤지 오랫동안 지켜봐 왔던 그였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성격.
묘하게 반골 기질 또한 있는 이진혁이었다.
때때로는 애늙은이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잠시 후.
병리실에서 소견이 도착했다.
딸깍.
딸깍.
광학 현미경 검사로 진행된 표피 검사.
특이 소견이랄 건 없었다.
진피에는 흑갈색 과립.
그리고 청색 과립이 침착돼 있다는 거.
겉으로 보이기에는 일반적인 멍처럼 보였지만, 혈관과 모낭의 기저막에도 침착돼 있다는 말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아까는 겉에만 침착된 거 같다더니. 그건 아니네요.”
“눈으로 보이는 거랑 좀 다른 거죠.”
“흠.”
“그래도 특이한 게 없는데…….”
“어, 근데 이건…….”
“왜요? 뭔데요?”
“에크린선(Eccrine gland, 땀샘)에도 있는데. 이거 정상이에요? 땀샘이면 체온 조절해 주고 노폐물 배출하는 기능만 하잖아요.”
장혁준의 지적.
그러고 보니 에크린선에서도 고밀도의 과립이 관찰된다고 적혀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침묵.
내과적 지식을 쌓았다 뿐이지.
피부과는 또 다른 영역.
진혁은 침묵을 계속 반추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에 장혁준이 물었다.
“어디에 전화하려고요?”
“한국에요.”
“엥. 거기 지금 새벽인데. 시차만 7시간이잖아요. 차라리 피부과에 물어봐요.”
“어효, 퇴근만 생각하는 애들한테 물어봐서 뭐 하겠어요.”
“아는 사람은 있어요? 아신 병원 피부과에 아는 사람 없잖아요.”
“아는 사람이 있을 만한 사람은 있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장혁준.
진혁이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한국 시각은 새벽 2시.
대부분의 사람은 잠을 잘 시간이었지만, 아직 잠을 안 잘 만한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