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68)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68화(368/388)
368화. 빛과 어둠
무뇌증.
말 그대로 뇌가 없다는 뜻이다.
신경관 결손.
신경 구멍 폐쇄 실패.
그로 인한 신경 손실.
결국, 뇌줄기의 잔류 부분만 형상으로 남길 수 있었고, 대뇌와 소뇌가 제대로 생성되지 못한다.
태어나도 고작 이틀.
아니 어쩌면 바로 죽을지도 몰랐다.
타고난 팔자대로 살다 간다는 말.
정말 싫어하는 말이었지만, 이런 경우엔 부인할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죽음이 예약되어 있는 게 필멸자의 운명이라지만, 그 시간이 너무도 짧은 아이.
태어난 순간 죽을 게 분명한 아이였다.
* * *
어느덧 끝난 예배.
다들 갈 생각을 않는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 바빠했다.
한인 사회의 중심인 한인 교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
숨죽여 오열하던 젊은 부부가 자리를 떴고, 그 뒤를 몇몇이 쫓는 게 보였다.
어깨를 두들기고.
포옹하며 위로하는 이들.
진혁은 이를 멀찍이서 바라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의사로서 해 줄 수 있는 게 전무한 상황.
일면식도 없는데 괜한 위로를 건네는 것 또한 생채기를 낼 수 있는 행위라고 여겼다.
그만큼 무뇌증은 답이 없으니까.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숨긴 채 집에 가려던 순간.
누군가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저, 선생님. 아직 식사 못 하셨죠? 저희 때문에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금이라도 같이 식사하러 가시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대는 목사님.
그냥 무시할 순 없었다.
은이온수 음용의 부작용을 설파하느라, 쫄쫄 굶은 것 또한 알고 있는 눈치였으니까.
거기에 더해.
“맞아요,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저희가 얼마나 편해진 지 모르겠어요. 독일 의사들. 정말 느려 터졌다니까요. 그러니까 식사라도 같이해요!”
전도사님 또한 가만있지 않았고.
“요즘 독일 애들도 플라텐바우 병원으로 몰린다면서요. 이런 게 국위 선양이 아니고 뭐겠어요. 다들 뿌듯해한다니까요.”
풍채 좋은 장로님 또한 퇴로를 막아서고 나섰다.
뭐, 특별한 의도 따윈 없어 보였다.
이미 무교라는 걸 밝힌 상황.
전도할 것도 아니었고.
그저 고마움을 표하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걸로 보였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끔 교회까지 찾아와 신경 써 줬는데.
어찌 그냥 보내냐는 태도로 보였으니까.
그렇게 졸지에 식사까지 하게 된 상황.
차를 타기 위해 움직이던 진혁이 멈칫거렸다.
‘다들 뻔히 사정을 알 만도 한데……. 왜 말을 아무도 안 걸었지?’
혹시 종교적 이유를 들어 낙태를 반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애먼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가정 심방 예배 때 기도했겠지.’
잡념을 쫓아내는 진혁이었다.
감히 무뇌증 아이를 두고 낙태하면 안 된다고 말할 리 없었다.
정말 답이 없는 문제니까.
* * *
식자재 유통 사업을 한다는 사업가의 저택.
주택이 아니라 저택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큼지막했고.
베를린 시내가 아니라 교외에 있는 만큼 정원 또한 드넓었다.
이건 뭐랄까.
이 정도면 단순히 밥을 먹는 게 아니라 가든파티를 한다고 칭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시작된 식사.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기에, 별의별 얘기를 다 들을 수 있었다.
누가 공부를 잘한다더라.
누가 어디로 이사 간다더라.
누가 이혼 위기라더라.
남의 가정사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이들을 보며 진혁은 쓰게 웃어야 했다.
퍼스널 스페이스.
이른바 심리적, 물리적 거리감.
유독 지켜지지 않는 게 한국인이었다.
정이라는 이름으로.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사사건건 관여하고 호기심을 표하는 게 일상이니까.
그러니 젊은 부부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하기로 했대?”
“아직 고민 중인가 봐요.”
“아이고. 진짜 딱하게 됐어.”
“빨리 결정해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나까지 심란해 죽겠다니까요.”
“지금 9주 차라고 했지? 독일은 12주 차 넘으면 낙태가 불법이라서 수술도 못 하잖아.”
“진단서 있어도 안 되는 거죠?”
“안 되지. 무조건 그 전에 해야 한다고.”
“하필이면 쌍둥이를…….”
한참 듣고만 있던 진혁이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 대화에 끼어들었다.
“쌍둥이요?”
“어머, 선생님. 저희끼리만 아는 얘기를. 네, 그게…….”
“그러니까 태아 중 한 명은 정상, 한 명은 무뇌증 진단이 나왔다는 거죠?”
“네, 그래서, 아, 그 뭐라더라…….
“선택 낙태, 선택 유산이요.”
“네네. 그걸 할지 말지 정해야 하나 봐요.”
“하…….”
진혁이 한숨을 내쉬자 다른 이들의 표정 또한 무거워졌다.
질 안쪽으로 니들을 집어넣어 태아의 심장을 강제로 누르거나.
양수를 빼내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선택 유산.
한쪽의 생명을 거두는 건 손쉬운 일이었지만, 다른 태아한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들어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혹시 모를 감염으로 멀쩡한 태아까지 자연 유산될 수 있는 상황.
그렇다고 아이를 둘 다 낳기엔 나머지 한 명은 태어나자마자 죽을 판.
이리하지도 저리하지도 못하는 게 분명했다.
* * *
“그런 일이 있었어요?”
“네.”
“기분 별로죠?”
“별로죠.”
밖에서 있었던 일.
혹은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집까지 끌고 오는 것만큼 미련스러운 일도 없다지만, 말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그런 연유로 옆에 누워 있는 이현아한테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댔다.
사실 목사님한테 묻고 싶은 걸 꾹 참고 돌아왔을 정도였다.
신이 있다면 인간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 거냐고.
시련과 역경을 통해 영적 성숙을 도모한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가혹한 일이 아니냐고.
그렇게 진혁이 우울한 기색을 띠며 모든 걸 전하자.
이현아가 한층 더 몸을 기댔다.
“아신 병원에서 매일 봤잖아요.”
“…….”
“매일 같이 죽어 가는 환자요.”
“그랬죠.”
“그래도 그렇게 속상해요?”
“속상하죠…….”
진혁이 말꼬리를 흐리자, 이현아가 더욱더 몸을 기댔다.
말랑거리던 신입사원의 가슴 또한 대리가 될 때쯤에는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게 현실.
전문의까지 따 놓고, 여전히 말랑거리는 진혁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직도 누군가의 고통과 죽음.
슬픔에 아파하고 있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이현아가 진혁을 달랬다.
“거리 두기를 해야 된다면서요.”
“어떤 거리 두기요?”
“왜, 그 있잖아요. 일찍 그만두는 사람들.”
“아…….”
“오래 버티려면 퍼스널 스페이스를 좀 더 가져가야 한다면서요. 그래야 오래 버틸 수 있고. 그러니까·……. 어?”
“왜요?”
“갑자기 배가……. 아…….”
느닷없이 시작된 진통.
둘 다 말을 하다 말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 * *
시간은 날아가는 화살과도 같다는 말.
그 말은 사실이었다.
순식간에 흐른 3주.
어떻게 아이를 받고 출산을 했나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휴가를 꽉 채워 출근한 진혁이 곧장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오랜만입니다.”
“축하드려요.”
“아, 뭐. 그렇죠.”
“지금 부끄러워하시는 거예요?”
“부끄럽다기보다 실감이 안 나서요.”
“손을 꼬물꼬물거리는 게 정말 내 핏줄인가 싶고. 뭐, 그렇죠?”
“그렇죠.”
진혁이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산후조리원이 없는 독일.
이현아의 부모님은 거동이 어려웠기에, 백현동에 거주하던 그 자신의 부모님이 달려왔고.
지금은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었다.
육아를 돕는다는 목적으로.
이는 회귀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
그 자신한테 아들이 생긴 것도 신기한 일이거늘.
이를 두고 기뻐하는 부모님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실감이 안 났다.
그냥 뭐랄까.
좋았다.
정말 좋았다.
아들이 같은 길을 걸어갔으면 하는 건, 처음 아버지가 된 그 자신의 헛된 희망일지도 몰랐지만, 생각만 해도 머리끝이 짜르르 울릴 정도.
그러니 한참 웃으며 환자를 볼 수 있었다.
3주 전에 들었던 젊은 부부의 사연은 까마득히 잊은 채로.
“얀느, 이 환자분. 쓰리웨이 달고. 안티 섞어서 주세요.”
“네. 3번 베드 환자는 어떻게 할까요?”
“COPD(만성폐쇄성 폐 질환)를 주소로 내원한 환자 말하는 거죠?”
“네, RR(호흡수)이 튀는데요.”
“벤티(인공호흡기) 달아야 할 거 같은데. 30분만 더 지켜보고 호흡기 선생님 콜할게요.”
“네.”
계속해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그렇게 한참 일을 보는 것도 잠시.
뒤늦게 한국인 부부가 들어오자, 그들을 알아본 진혁의 표정이 무겁게 굳었다.
3주 전에 봤던 젊은 부부.
응급실을 찾을 이유가 없던 그들이 내원했다. 여전히 배가 부른 채로.
* * *
“저, 선생님?”
“아, 네.”
“빨리 가 보셔야죠. 또 진료의뢰서(Überweisungsschein) 없이 온 환자 같은데요.”
대기가 오래 걸려 그 자신이 만든 루트.
그러니까 응급실로 내원해 빠른 진료를 보러온 환자가 아니냐는 말이었다.
그러니 응당 움직여야 했지만, 진혁은 우두커니 멈춰 서 있었다.
그들의 사정을 뻔히 알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때가 9주 차였으면 지금은 12주 차라는 건데……. 이러면 낙태도 불법으로 들어가서 힘들어지는 거 아니야?’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기독교 국가답게 낙태가 불법인 독일.
특별한 사정.
그러니까 의료진의 진단서 등이 있더라도 12주 차가 지나면 낙태 수술을 할 수 없었다.
진혁이 뒤늦게 그들한테 다가갔다.
“혹시 부인과 예약을 못 잡아서 오신 건지…….”
“그것도 그렇긴 한데요.”
“네.”
“혹시나……. 정말 혹시나 해서요. 선생님이 직접 봐주실 수는 없는 건가 해서요.”
“아…….”
“저희 아이가…….”
“얘기는 그때 교회에서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아, 들으셨군요.”
당장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통스러운 표정.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한 얼굴이었다.
“혹시 지금 정확히 얼마나 됐습니까. 이제 곧 불법으로 넘어갈 시기인데요.”
“이틀 남았습니다.”
“음…….”
“일단 봐주시면…….”
“알겠습니다. 일단 이쪽으로…….”
먼저 베드를 배정하고.
환자를 눕힌 다음에 곧바로 초음파 기계를 끌고 왔다.
생식기 안쪽으로 탐촉자를 집어넣는 경질 초음파는 할 수 없었지만.
복부 초음파로도 감별이 가능하니까.
“차갑습니다.”
으레 하는 말을 일부러 한 다음 진혁이 프로브를 놀렸다.
딸깍.
딸깍.
프로브의 손잡이를 계속해 누르며 사진을 찍는다.
이미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지만, 검사 후에 보호자와 환자한테도 보여 주기 위한 일.
정말이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게.
대뇌는 무에코.
그러니까 검은 음영만 보였다.
양측 뇌실 분리.
전혀 없었다.
그뿐이랴.
공동 또한 보였고.
신경관이 개방된 게 훤히 보인다.
그나마 소뇌가 있어야 할 곳은 저음영으로.
대뇌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뇌실질 일부만 남아 있었다.
전부 다 쓸려 가진 않은 상황.
하지만 개구리 아기라고 불릴 만큼 안구가 돌출될 테고.
두개골이 닫히지 않고 머리 위쪽이 전혀 없는 것처럼 태어날 건 불 보듯 뻔한 일.
이번엔 다른 태아의 감별.
왼쪽에 위치한 태아와 다르게 모든 게 정상.
또 정상이었다.
* * *
젊은 부부는 오열했다.
울고 계속 또 울었다.
시선이 집중됐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저 서로를 부둥켜안고 계속해 울었다.
이번엔 소리를 내면서.
10분, 20분, 30분.
어쩔 수 없이 다른 환자를 보고 왔음에도 울고 있는 그들을 향해 진혁이 말했다.
“선택 유산을 했을 때 정상 태아도 같이 유산될 확률은 5%에서 20%. 이젠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혹시 한국에 가서 하게 되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한데요. 빨리할수록 유산될 확률이 낮아지는 거라서요.”
“그러다가 유산되면요?”
“그렇다고 아이를 그대로 낳는 것도…….”
한참 설명을 시작한 진혁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
만약 선택 유산을 할 거라면 빨리 해야 한다는 말.
그게 아니라면 일단 둘 다 낳은 다음에 무뇌증인 아이가 죽는 걸 고스란히 지켜봐야 하는데.
이 또한 고통스러운 일이 될 거라는 말을 전했다.
태어난 직후 짐승처럼 울부짖을 아이.
통상의 울부짖음과는 다른 울음소리가 평생 기억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뿐이랴.
사망 신고.
출생 신고 또한 동시에 해야 했다.
그렇게 계속된 설명.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를 앞에 두고 시한부 판정을 내리는 느낌이 났기에, 신물이 올라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그래, 어쩌면 그 자신의 아들은 멀쩡히 태어났기에 그런 걸 수도 있었다.
빛이 있어서 어둠 또한 있는 거라지만.
아니, 인생은 내리막과 오르막의 조합이라지만.
젊은 부부가 겪기엔 너무도 가혹한 시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