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71)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71화(371/388)
371화. 조용히 살기로 했다 (3)
헤마토마.
혈종.
피멍울.
혹은 혈액 덩어리.
부르는 이름은 다양했지만, 그 뜻은 분명했다.
어떤 이유로든 혈관 밖으로 새어 나온 피가 고여 있다는 것.
그것도 심장으로 들어가는 대혈관(대동맥, 폐동정맥, 대정맥 등)과 기관.
그리고 기관지가 있는 종격동에 위치하고 있었으니 추가 확인을 해 봐야 했다.
그러니.
“마지막 식사는 언제 하셨죠?”
“아직 식사 전입니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요.”
“컨디션이 안 좋아서요.”
“그럼 NPO(금식)도 필요 없는데. 일단 조영제 넣고 CT부터 찍을 건데요. 그게…….”
한참 계속된 설명.
순식간에 퍼미션(동의서)을 받아 낸다.
보존적 치료를 할지.
아니면 수술을 해야 할지 정해야 했기 때문.
그렇게 짧은 시간이 흐르고.
진혁과 장혁준이 CT실까지 따라나서자, 영문을 모르던 방사선사가 뒤늦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사람들은 뭡니까.”
“다른 병원 의사들입니다.”
“다른 병원이요?”
“네, 현장에서 응급 처치를 했던 의사라서요.”
“그래도 이건 좀…….”
“일단 촬영이 급한데요.”
젊은 독일인 의사, 닥터 레비가 묘한 어조로 방어했다.
사실 원칙대로라면 당장 내쫓아야 했지만, 그 실력을 확인한 상황.
임프레션에 도움을 준 마당에 야박하게 대하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이에 살짝 혀를 찬 방사선사가 고개를 돌렸다.
“자자, 촬영 들어갑니다. 환자분! 숨 들이마시고 참으세요!”
위잉거리는 소리와 함께 돌아가는 CT.
순식간에 촬영을 끝낸 방사선사가 문밖으로 나가 환자한테 다가갔다.
“이번엔 조영제가 들어갈 겁니다.”
“아, 네.”
“화끈거릴 수도 있는데. 이놈이 원래 이래요.”
간단한 설명 끝에 다시 자리로 돌아온 방사선사가 컴퓨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Non-contrast 모드에서 Contrast 모드(조영제 투약 후 촬영 모드)로 바꾼 그가 곧바로 소리쳤다.
“자, 숨 들이마시고 참으세요!”
순식간에 끝난 촬영.
PACS에 영상이 밀고 들어오자.
방사선사가 말했다.
“바로 판독 의뢰하겠습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요. 한 시간? 두 시간? 정확히 모르겠는데요.”
“음.”
“판독 시간이야, 푸시하기 나름이죠.”
“푸시 해도 안 받아 주던데요.”
“뭐, 워낙 느긋하셔서.”
영상의학과 전문의에 대한 험담 아닌 험담을 듣게 된 진혁이 당장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게.
이현아와 정아름이 카페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끝낸 다음 빨리 돌아가고 싶었던 진혁이 흘리듯 말했다.
“PLAV(우측 흉골 주위 장축 뷰)가 메인이네요.”
“……?”
“헤마토마(혈종)가 보인다고요.”
“네?”
“대략 3cm. 아닌가. 2.9cm 정도 되겠네요.”
“지금 무슨 소리를……. 확대도 안 했는데요.”
방사선사가 당장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그러고는 그 동조를 구하듯 닥터 레비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미 X-ray 영상을 통해 그 크기를 전해 들었던 닥터 레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가 이번엔 미간을 찌푸렸다.
애초에 CT실 안쪽으로 다른 병원 의사를 들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괜한 일을 벌였다는 책망 어린 눈빛까지 가득 담은 채였다.
하지만.
“잠깐 확인만 할게요.”
닥터 레비가 예상외의 반응을 내보이며, 마우스를 뺏어 들었다.
이어진 건 영상 선별.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CT 영상을 휘리릭 넘기던 그가 곧바로 PLAV 영상을 화면에 띄웠다.
그러고는 왼쪽 끝과 오른쪽 끝.
다시 헤마토마 맨 아랫부분과 맨 윗단을 클릭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면에 길이가 표시된다.
높이야 정확히 말한 적이 없다지만 장축의 길이는 2.93cm.
그 크기가 일치하자, 방사선사의 눈이 툭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진짜 2.9cm라고?”
“…….”
“확대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걸…….”
“그러게요…….”
“허허…….”
“하…….”
말꼬리를 흐리며 한참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들.
그도 그럴 게 PSLA부터 PLAX까지.
다양한 각도의 영상이 그냥 오른쪽 하단 레이아웃. 그러니까 목록에 떠 있었을 뿐이었다.
한데 확대도 안 한 영상을 흘깃거린 다음에 그 크기를 맞히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다시 환자를 베드로 옮겨야 했지만 묘한 침묵이 계속됐고.
이진혁의 실력을 익히 알고 있던 장혁준마저 뒤늦게 가세했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 어떻게 했어요?”
“네? 뭐가요?”
“아니, 아까 Chest PA(X-ray 영상 중 뒤에서 앞을 향해 찍은 영상)만 보고 3cm라고 했잖아요.”
“그랬죠.”
“우심실 앞에 있다고도 했고요.”
“네.”
진혁이 너무 태연하게 대답하자, 장혁준이 기막힌 듯 재차 추궁했다.
“그러니까 X-ray 영상만 보고 그 크기를 가늠했다는 거잖아요. 위치까지도 어림잡아 말했다는 거고.”
“그냥 감이에요.”
“감이라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많이 하다 보면 돼요.”
“하…….”
장혁준 또한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셀프 칭찬을 하다가 놓쳤던 진실.
그건 이진혁이 X-ray 영상에 찍혀 있는 검은색 음영 속 희뿌연 연기 같은 흰색 음영만 보고서 혈종의 크기를 가늠했다는 거다.
뭐, 차량을 많이 정비하다 보면 토크 렌치 규격에 맞게 볼트를 조일 수 있게 된다는 사람도 있었고.
메스만 손에 쥐어도 환자의 피부를 직접 만지는 거 같다는 의사도 많다지만.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
그가 뒤늦게 감탄만 하고 있자 진혁이 말했다.
“일단 복장뼈는 선상 골절된 게 확실하네요.”
“그건 그냥 지켜봐도 될 거 같은데요.”
“선상 골절이니까 뭐. 그냥 자연치유 되겠죠.”
“헤마토마는 어떻게 할 거예요?”
“이건 음. 일단 지켜보면서 그 크기가 줄어드는지 봐야 할 거 같은데요. 그리고…….”
“……?”
“환자한테 사과부터 해야겠는데요.”
“아…….”
그 말에 담긴 함의까지 이해한 장혁준이 뒤늦게 탄식을 내뱉었다.
CPR을 하다가 복장뼈(흉골)와 갈비뼈가 부러지는 건 왕왕 있는 일.
왠지 혈종까지 그 자신의 CPR로 인해 생긴 거 같다는 함의가 내포돼 있었다.
* * *
다시 베드로 돌아온 그들.
닥터 레비한테 양해를 구한 진혁이 환자한테 짧게 사과했다.
응급조치를 하다가 가슴 중앙 부위에 위치한 넥타이처럼 생긴 길쭉한 뼈, 그러니까 복장뼈를 부러트렸다는 거.
그 충격으로 인해 혈종마저 생긴 거 같다는 말을 했다.
이에.
‘이걸 왜 사과하고 있지? 살려 준 거나 마찬가지인데…….’
닥터 레비가 의아한 눈빛으로 한참 동양인 의사를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응급조치 중에 발생한 사소한 문제.
오히려 감사 인사를 받았으면 모를까 사과할 계제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환자도 화들짝 놀라 고맙다는 말을 뒤늦게 할 뿐 별말을 하지 않았다.
이에 진혁이 닥터 레비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인 채 한걸음 물러섰다.
이 또한 그 자신한테 하는 감사 인사.
환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끔 공간을 열어 줘 고맙다는 바디랭귀지에 닥터 레비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무시하기엔, 아니 그냥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는 그것도 하찮은 동양인 의사라고 폄하하기엔.
여러모로 꺼림칙했다.
그러니.
“닥터 레비입니다.”
그가 뒤늦게 자기소개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
이에 싱긋 웃은 진혁 또한 그의 손을 다잡았다.
“닥터 장입니다.”
“이쪽은 그럼…….”
“닥터 리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플라텐바우 병원에서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3년 차인데요. 선생님은…….”
닥터 레비가 말꼬리를 흐리자, 진혁이 희게 웃었다.
“동양인이라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죠? 저희는 보드를 땄습니다.”
“아…….”
“그보다 확인할 게 있는 거 같은데요.”
“네?”
“응급 PCI를 하기 전에 TTE(경흉부 심장 초음파)부터 해야 할 거 같아서요.”
“ST 분절 상승에 따른 심근경색증(STEM)를 의심하셨던 거 아닙니까?”
“그랬죠.”
진혁이 얕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닥터 레비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일단 혈액 검사 결과가 나오면 바로 심장내과에 컨설트하려고 했습니다만.”
“혈액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아직 한참 남은 거 아닙니까. 소노(Sonography, 초음파)를 찍어 보고 넘기는 게 컨설트하기엔 더 좋을 텐데요.”
“음…….”
타당한 말이었지만, 닥터 레비가 침음성부터 토해 냈다.
경흉부 심장 초음파를 찍으면 혈전 등 심장 구조물이 뚜렷하게 보이고.
그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테지만.
이 또한 숙련도가 필요한 작업.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다.
* * *
닥터 레비가 노교수를 찾아가자, 장혁준이 당장 툴툴거렸다.
“우리 애들 같았으면 바로 하는 건데.”
“뭐, 근무 시간을 칼같이 지키니까요. 아무래도 습득 속도가 늦죠.”
“그러니까요. 이게 단점이 있네요.”
“그래도 대신 메스를 빨리 잡잖아요.”
“뭐 그야 그렇긴 한데…….”
한국과 여러모로 다른 독일.
교수가 어시를 서며 수술대 앞에 빠르게 서게 하는 대신, 술기를 숙련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부족한 근무 시간.
아니, 말도 안 되게 한국의 근무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떠드는 사이.
어느새 닥터 레비가 베드로 돌아와 심장 초음파를 찍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은퇴를 앞둔 노교수한테 직접 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까인 모양.
복부 초음파와 다르게 방향 표지자(Orientation marker) 또한 우측에 있었고.
한참 신경 쓸 게 많은 작업이었다.
먼저 환자를 양와위로 눕힌 다음.
좌측 3번째.
다시 4번째 늑간에 탐촉자를 가져다 댔다.
일단 PLAX view를 보기 위한 자세.
쉽게 말해 우측 흉골 장측에서 심장을 보기 위함이었다.
딸깍.
딸깍.
연신 탐촉자를 클릭하고.
다시 환자의 체위를 수정한 다음 다른 각도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탐촉자를 움직인다.
AV 레벨.
MV 레벨.
다시 심실 중간 레벨.
심첨 레벨까지.
순서대로 한참 검사를 하는 동안 진혁과 장혁준이 또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사담을 빙자한 조언.
언뜻 기분 나빠할 수도 있었지만, 닥터 레비는 예상외로 뻔뻔했다.
좀 더 내려서 스캔을 하고.
혹은 관상동맥 질환에 의한 국소벽 운동 장애 여부를 확인하라는 말에 모드를 바꾸기도 했으며.
Papillary muscle(유두근)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순서를 되돌리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후.
다들 동시에 뇌까렸다.
“ST 분절 상승형 급성심근경색(STEMI).”
그 원인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순간이었다.
* * *
“그래서 어떻게 됐어?”
정아름의 물음.
장혁준이 대답 없이 아기 띠를 둘러맨 다음 아기를 건네받았다.
그러고는.
“자기, 이제 기대해도 돼.”
“응? 뭐가?”
“나 유명해질 거니까. 기대해도 된다고.”
“뭐래…….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뭐, PCI(관상동맥 중재술) 급하게 들어갔고. 경과 보다가 퇴원하겠지.”
“근데 왜 기대하라고 하는 건데?”
“그게…….”
한참 계속된 설명.
이진혁이 그 자신을 사칭했다는 말에 이현아와 정아름이 둘 다 기겁해 입을 벌렸다.
조용히 살겠다고 이제 와 결심한 것도 웃기는 일이었는데.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댔다니.
의사들이란 때로는 정말이지 이상한 발상을 하는 족속이었다.
물론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의사 남편을 둔 와이프라지만.
그런 그들이 뒤늦게 포츠담 시내를 한가롭게 거닐 때.
장혁준의 예상대로 닥터 레비는 움직이고 있었다.
먼저 의사 구인 공고가 올라오고 일종의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Stellenanzeige에 글을 올렸다.
[X-ray 영상만 보고서 혈종 크기까지 맞힐 수 있는 게 맞나요?]└ Chest PA 영상만 보고서 혈종이 있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 그 크기까지 정확히 짚어냈어요.
└ 농담 좀 하지 말아요. 님아. 공기는 검은색 음영으로 보이는 건 알고 하는 소리죠?
└ 저도 의사인데요. 등급 보면 알잖아요. 의사 아니면 등업도 안 되는데요.
└ 그럼 이 말도 안 되는 질문은 뭔데요?
└ 그게…….
한참 계속된 문답.
그 끝에 댓글이 폭주하기 시작했고.
그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한국에 있는 『영닥터』나 다른 커뮤니티와는 차원이 다른 정도.
근무 시간을 딱딱 활용하고 툭하면 다른 나라로 도망가기 위해 구인 공고를 살피는 이들다운 일이었지만.
그들의 의견은 말도 안 된다는 걸로 좁혀졌다.
이에 닥터 레비가 또다시 글을 썼다.
[X-ray 영상을 올립니다. 누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죠?]└ 이것만 보고 어떻게 맞힘?
└ 흰색 음영이 뭉쳐있는 거 보고 크기를 쟀다고?
└ X-ray 영상은 실물 크기대로 나오는 게 아니야. 비율이 축소돼서 나온다고.
└ 100%로 확대해서 본 거 아니야?
└ 누군데? 누가 이걸로 CT도 찍기 전에 크기를 맞힌 건데?
또다시 폭주하는 댓글.
닥터 레비가 진혁이 건넨 명함을 확인하더니 얼굴이 벌게져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자신 또한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올린 글.
한데 그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취급하다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지만, 감정이 상한 그가 기분이 나빠 키보드를 강하게 두들겼다.
[닥터 장, 혁준 장입니다. 한국 이름으로 장혁준이라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