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72)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72화(372/388)
372화. 조용히 살기로 했다 (4)
서베를린에 있는 샤리테(Charité) 병원.
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했고.
그 규모 또한 대단한 병원이었다.
캠퍼스만 네 곳.
독일에서 가장 큰 병원.
아니 유럽에서 손꼽히는 병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동베를린에 있는 플라텐바우 병원 따위야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위치!
그런 샤리테 병원이 플라텐바우 병원에서 근무하는 닥터 장을 두고 한참 시끄러웠다.
“X-ray 영상만 보고 헤마토마의 크기를 가늠했다고?”
“거짓말이죠.”
“그래. 거짓말이지.”
“근데 이놈 이거, 아주 악질인데요.”
“뭐?”
“지가 올리는 건 뻘쭘하니까. 아는 사람한테 올려 달라고 한 거잖아요.”
“그래?”
“뭐, 뻔하잖아요.”
사실 모든 게 추측에 불과한 일이었다.
허나 후배의 말에 일반외과 치프 아밀론은 혀를 끌끌 차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돈을 좇아 다른 나라로 떠나는 동료들이 숱한 상황.
『Stellenanzeige』에 올라오는 구인 공고만 해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떠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유명해져서 몸값을 높이려고?’
솔직히 말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외국인 의사까지 몸값을 높이려 이런 수작질을 벌인다는 게 아니던가.
그렇게 닥터 장을 씹고 있을 때.
교환 의사 중 한 명인 나카무라 슈스케가 다가왔다.
“왜요? 뭔데 그래요?”
“아, 일이 있어서.”
“네?”
“이것 좀 봐 봐.”
나카무라 슈스케가 한참 눈을 끔뻑였다.
정원의 9%를 외국인한테 강제 할당하는 샤리테 병원.
처음부터 의과 대학에 들어왔다면 모를까.
중간에 교환 의사로 합류한 그였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단언했다.
“거짓말이네요.”
“그렇지? 거짓말이지?”
“네, 아무리 전문의여도 그렇지. 판독 능력이 이렇게 뛰어날 순 없는데요.”
“그렇지. 투입 시간이랑 비례하는 게 판독 능력이니까.”
“영상의학과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일반외과 전공인데. 말도 안 되는 거죠.”
“내 말이 그 말이야.”
아밀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또한 고개를 주억거렸다.
숱한 임상 경험.
그리고 필드에서 아주 오랫동안 뛰어야 가능할까 말까 한 일.
그만큼 어렵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플라텐바우 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장혁준의 경력은 턱도 없는 상황.
다들 혀를 내두르기 바빠했다.
“한국인 의사던데. 혹시 아는 사람이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
“네, 한국은 가깝지만 먼 나라 같은 존재라서요.”
“뭐 우리랑 폴란드 같은 사인가?”
“그렇다고도 볼 수 있죠. 그리고……. 아, 아닙니다.”
나카무라가 속내를 감춘 채 말을 삼갔다.
한국인은 거짓말을 잘한다는 말.
괜한 말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차라리 어려운 케이스를 몇 개 보내 보는 게 어떨까요.”
테스트를 하자고 나서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곧바로 메일이 왔다.
그것도 샤리테 병원에서.
“뭐? 판독 요청을 한다고? 『Stellenanzeige』
에 올라온 글을 잘 보고 연락드린다고?”
메일을 확인한 장혁준이 당장 미간을 찌푸렸다.
샤리테 병원과 그 어떠한 관계도 없었고.
메일 발신인인 나카무라 슈스케 또한 모르는 사이.
그 자신처럼 교환 의사로 일하는 모양인데.
뜬금없는 판독 의뢰라니.
장난처럼 느껴져 기분이 상할 정도였다.
‘학술대회 때 본 것도 아니고……. 대체 뭔데?’
의문도 잠시.
장혁준이 첨부 파일을 열었다.
담도 비장.
신장.
간 담낭.
췌장.
담낭 담도까지.
상복부와 하복부의 주요 장기 사진.
그러니까 초음파 영상이 그득했다.
“흐음……. 뭐야. 대체.”
동영상까지 첨부한 걸 확인한 장혁준이 다시 본문을 읽어 내려갔다.
[귀하의 고견을 듣고 싶어 판독을 요청 드립니다.]정중하지만 뼈있는 말.
정말 필요한 일이었다면 영상의학과에 의뢰를 해야 했기에.
장혁준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어진 건 『Stellenanzeige』 회원 가입.
글을 읽기 위해서는 면허 인증까지 해야 했다.
물론 수술이 없었던 장혁준이었기에, 여유롭게 커피까지 마셨고 중간에 화장실 또한 다녀왔다.
어느새 인증까지 완료된 상황.
커뮤니티에 적힌 글을 보자 대번에 상황이 이해됐다.
유명해질 거라며 어깨를 으쓱거린 게 불과 어제였거늘.
벌써부터 유명해져 있었다.
그것도 고작 하루 만에.
독일 의사들이 자신을 두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 * *
의국으로 자리를 옮긴 장혁준이 최재성과 이태희를 콜했다.
먼저 들어온 건 최재성.
최재성이 편하게 물었다.
“불,렀,어?”
“어, 재성아. 이것 좀 봐 봐.”
“응? 판,독,을 의,뢰,한,다,고? 왜? 아,는 사,람,이,야?”
“아니, 모르는 사람이야. 이놈 이거 아주 고약한 놈이야. 테스트라고. 테스트.”
“테스트?”
“어, 지금 이놈이 날 테스트하고 있다고.”
장혁준이 당장 언성을 높였다.
처음엔 의문으로.
다시 그 의문이 분노로 바뀐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생긴 일.
그 자신을 두고 갑론을박을 하는 거까지야 좋았지만.
같은 처지의 일본인 의사가 검증을 목적으로 메일을 보내다니.
여간 기분 나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알 턱이 없던 최재성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그,게. 뭐.”
“그게 뭐?”
“아, 아,니, 열,받을, 이유,가 있,나 해,서.”
“열받지. 얘네들 평소에 어떻게 일하는지 봐서 알잖아.”
“뭐?”
“야근도 안 해. 일도 설렁설렁 대충 해. 그래서 전공의도 6년이나 하는 애들이잖아.”
한참 계속된 설명.
요는 쥐뿔도 실력 없는 놈들이 열심히도 안 하면서 그 자신을 테스트하는 게 기분 나쁘다는 거였다.
주 100시간 근무.
그것도 숨 쉴 틈도 없이 해 왔던 지난 세월.
중간중간 근무 시간이 제한되며 3년 내내 그런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었지만.
애초에 그 자신과는 결이 다르다는 말.
지옥 같은 전공의 생활을 버틴 그 자신을 감히 시험하냐는 투였다.
“아무튼, 6년이나 하고 그 후에야 세부 전공 정해서 수련하는 애들이잖아. 당장 성형외과나 흉부외과 전문의만 해도 그래. 보드 따는 데 8년이나 걸리는 애들이라고.”
“그,야, 그,렇,긴, 한,데.”
“아무튼, 지금 일 없지?”
“어.”
“그럼 이거 답장할 준비나 하자.”
망해 가는 병원에서 이젠 환자가 조금은 찾는 병원이 됐다지만.
한국과는 근무 강도가 천지 차이였기에 가능한 일.
결국, 최재성까지 합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아외과에서 근무하는 이태희까지 달려왔다.
이에 또다시 같은 말을 되풀이한 장혁준이 언성을 드높였다.
“한국인 의사의 저력을 보여 주자고요.”
“……꼭 해야 돼? 이거 너만 좋은 거잖아.”
“아, 누님!!”
“으으. 누님은 무슨. 난 간다.”
“정말 이럴 거예요?”
“정 안 되면 진혁이 부르면 되잖아.”
“어떻게 매번 도움만 받아요. 그리고 일본인 의사가 메일을 보냈다고요.”
“뭐?”
“여기 이름 보이죠. 나카무라 슈스케.”
장혁준이 모니터까지 가리키자, 잠시 망설이던 이태희 또한 자리에 앉았다.
일본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뭐랄까.
왠지 지고 싶지 않은 마음.
그냥 그런 마음에서 시작한 이태희였다.
* * *
8시간 후.
중간중간 수술방도 들어갔다 와야 했고 병동 또한 돌아야 했다.
물론 한국에 비하면 껌인 근무 강도.
그런 만큼 다들 의국에 모여 마지막 리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 영상은 S2 부위에 있는 게 문제인데.”
“그,렇,지.”
“흐음. 결국 합병 낭종(Complicated cyst)이냐, 담관낭성종(Biliary cyst-adenoma)이냐 이 차이인데.”
“나는 Complicated cyst 같아.”
“저,도,요. 데,브,리스(Debris, 찌꺼기)가 보,이,는,데,요.”
“에코가 지저분한 건 맞는데. 어후, 무슨 이런 지엽적인 걸 내냐.”
이태희가 당장 툴툴거렸다.
그도 그럴 게 확연히 보이는 초음파 영상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초음파 영상이 있었다.
사람마다 크기가 다른 장기.
프로브의 미세한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게 초음파 영상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고르고 고른 게 분명한 영상.
잘못 판독해서 보낸다면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고.
지금껏 이진혁을 찾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헷갈리는 영상이었다.
“일단 낭종 안에 고에코가 보이는 건 맞잖아요.”
“그렇긴 한데. 구조물일 수도 있잖아.”
“주위에 있는 구조물이 겹쳐 보이는 거라고요?”
“어.”
이태희의 짧은 대답.
장혁준이 PACS에 업로드된 영상을 가지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밝기도 조절하고.
이리저리 손을 놀려 보는 것이다.
이에.
“후방 음영이 증가한 거 같은데.”
“아,티,팩,트(Artifact, 초음파 사진상의 오류로 생긴 허상)가 아,닐까요?”
또다시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야야. 이진혁이 콜해.”
이진혁을 부르는 이들이었다.
* * *
“아니, 무슨 이런 유치한 짓거리를…….”
사정을 전해 들은 진혁이 딱하다는 얼굴을 했다.
테스트를 하고자 안면도 없는 의사한테 메일을 보내는 놈도 웃겼지만.
기를 쓰고 다 맞히겠다고 나선 동기들 또한 그 행태가 웃겼다.
하지만.
“야, 네가 제일 심하거든?”
“맞,아,요. 싸,움,꾼,이,잖,아,요.”
“으으. 라면 동지. 진짜 이럴 거예요!”
동기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할 말이 없었다.
뭐, 때린 놈은 다릴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릴 뻗고 잔다는 말만큼 희대의 개소리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래.
뭐, 상대가 저렇게 나온다면야…….
빠르게 태세를 전환한 진혁이 컴퓨터 앞에 섰다.
“고에코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거 같진 않은데요.”
“아티팩트(허상)가 아니다?”
“네. 그리고 잠깐. 음…….”
딸깍.
딸깍.
마우스까지 뺏어 든 진혁이 또 다른 각도에서 찍은 영상을 펼쳐 들었다.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하나.
음영까지 조정해서 한 번에 영상 두 개를 확인한다.
“왼쪽 영상이야 조금 헷갈리는데. 오른쪽 영상을 펼쳐서 보면 구조물이 안 보이는데요.”
“구조물이 겹쳐서 보인 건 아닌 거 같다?”
“네.”
“그럼 합병 낭종이라는 소리잖아요. 오케이. 그럼 이거는요.”
마우스를 냉큼 뺏어 든 장혁준이 또 다른 문제까지 꺼내 들었다.
세 명이 합심해 풀어낸 문제였지만, 소위 말하는 검증 작업이었다.
이에.
“이것도 맞네요.”
“그래요?”
“네, 이건 물어볼 것도 없는데요.”
“그렇죠. S7 부위에서 고에코 종괴가 보이니까 혈관종이 분명하죠.”
진혁이 빠르게 문제를 쳐 내기 시작했다.
흉부외과장으로 살면서 수없이 봐 왔던 초음파.
그리고 내과 계열의 끝도 없는 검증으로 완성된 그 자신이었다.
물론 아직 부족한 것도 많았지만.
그렇게 순식간에 끝낸 판독.
전부 그 자신과 같은 의견을 냈기에, 진혁이 기분 좋은 얼굴로 동기들을 바라봤다.
‘다들 훌륭하게 성장했네.’
과마다 다르다지만 짧게는 5년.
아니 길게는 6년에서 8년까지 수련하는 독일 의사들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동기들.
이게 다 사람을 무자비하게 갈아 넣어서 생긴 일.
한국 의료의 위대한 힘이었다.
* * *
타다다다닥.
다다다다닥.
장혁준이 신이 나서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초음파 영상별로 판독 소견을 전부 써 붙이고.
이제 보내기 버튼만 누르면 되는 상황.
메일을 보내기 전에 그가 진혁을 돌아봤다.
“우리도 뭐 보내야 할 거 같은데요.”
“뭘 보내요?”
“그냥 당하고만 살 거예요?”
“음…….”
“그때 내과에서 그 폴리클 시켜서 문제 낸 거 있죠? 어려운 내과 증례만 모아서 물어보라고 시킨 거요.”
“아, 있었죠.”
“그것 좀 줘 봐요.”
그 자신 또한 모른다고 어깨를 으쓱거렸던 문제.
오히려 상대의 의도를 역이용해 내과가 그만큼 힘든 곳이라고 어필하는 데 써 버리고 잊었던 문제였다.
“기억도 안 나는데요.”
“으으. 왜 또 기억이 안 나요.”
“그리고 그런 걸 뭐 하러 보내요.”
“엥? 뭐 하러 보내긴요. 저쪽에서 지금 먼저 시작한 일인데요.”
“으으. 난 조용히 살기로 했는데…….”
“아, 몰라요. 몰라.”
진혁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혁준이 당장 초록 창을 켰다.
그러고는.
“An extremely rare complication.”
극도로 드문 합병증 케이스부터 찾아낸다.
국문이 아니라 영문으로 보고된 자료.
영어로 굳이 번역까지 해서 보고할 정도로 아주 주옥같은 사례만 뽑아내는 것이다.
“캬캬. 죽어 봐라. 어디 한번 맛 좀 보라고.”
장혁준이 한참 웃은 다음 키보드를 두들겼다.
[귀하의 고견을 듣고 싶어 해당 증례에 대한 판단을 의뢰합니다.]일종의 선전 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