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75)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75화(375/388)
375화. 조용히 살기로 했다 (7)
1989년도에 지어진 아신 병원 본원.
저들의 말처럼 역사는 짧았다.
하지만 아밀론과 나카무라가 모르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린 분원부터 시작했다고!’
지방부터 병원을 지었다는 거.
그게 그 자신이 아신대 37기인 이유였다.
의료 공백에 허덕이던 시절에 지방부터 병원을 지었고 본원은 나중에 지은 것이다.
한데 이를 두고 무시하다니.
메스를 쥔 장혁준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수술.
반드시라는 말이 필요 없는 수술이 어딨냐만은.
참관하는 놈들 때문에라도 보여 줘야 했다.
그렇게 손을 놀리는 사이.
검상돌기부터 배꼽 상부까지 빠르게 개복이 끝났다.
정중 흉골절개.
수백 번도 넘게 해 본 개복법이다.
곧이어 세컨 어시인 아밀론과 써드 어시인 나카무라가 리트랙터를 잡아 당기자.
장혁준이 복부 안쪽을 살폈다.
복수.
복막 파종.
암의 전이 여부까지.
손을 넣고 만지기도 하고.
육안으로 관찰도 한다.
그러다가.
“괜찮죠?”
“괜찮네요.”
진혁과 눈까지 맞췄다.
퍼스트 어시인 이진혁.
정말 든든한 조력자였다.
“일단 전이는 없는 거 같은데. 우측 절개를 추가로 하죠. 일단 추가로 시야 확보부터 합시다.”
장혁준의 지시.
아밀론이 뒤늦게 반응했다.
“여기서 추가 절개를 한다고요?”
“네, 최종적으로 Mirrored-L자 형태가 되겠네요. 일단 메스 주세요.”
“그건…….”
“주세요.”
“…….”
세컨 어시답게 그 자신의 오른편에 서 있던 아밀론이 대답 없이 망설이자.
장혁준이 당장 미간을 좁혔다.
집도의는 왕.
어느 나라나 똑같다.
적어도 수술방 안에선 절대적인 위치인 것이다.
한데 왕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어시스트라니.
있을 수 없는 일.
장혁준이 내밀었던 손을 강하게 흔들었다.
“메스 달라고 했는데요.”
“환자가 요구했던 건 정중 절개였습니다.”
“그런데요.”
“간이랑 담관 때문에 추가로 시야를 확보하려는 취지는 알겠는데요.”
“…….”
“여기서 또 절개한다는 건 환자 의지와 배치되는 일이라, 그냥 이대로 가시죠.”
일견 의견 개진이라 할 수 있었지만, 선을 넘는 말.
장혁준이 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좌측은 추가 절개가 필요 없으니까 그냥 두고 추가로 우측만 절개한다는 건데요.”
“그래도 환자 요구가…….”
“아뇨. 집도의 판단이 우선이죠. 시야가 절반만 보이는데. 여기서 이대로 진행하자고요?”
“그래도 진짜 안 됩니다. 환자가 동의한 거랑 다르지 않습니까.”
“아뇨. 의사 판단이 우선이죠.”
뜻하지 않게 말씨름이 계속되는 상황.
진혁이 아밀론을 대신해 메스를 건넸다.
그것도 써드 어시인 나카무라 때문에 수술 도구가 담긴 트레이에 접근이 제한된 상태에서.
시작부터 손발이 안 맞고 있었다.
* * *
환자의 자기 선택권.
유럽이든.
미국이든.
극단적으로 존중한다.
더 나은 방법.
더 좋은 치료법.
분명히 존재한다.
한데 환자가 포기하면.
그대로 포기.
심지어 설득도 않는다.
이는 한국과 정반대되는 일.
직역 이기주의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한국 의료계였지만.
때로는 환자를 설득하고.
때로는 보호자와 싸우며.
올바른 길로 이끌려고 하는 것도 사실.
그러니 아밀론은 아밀론대로.
장혁준은 장혁준대로.
서로를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절개 방향.
그리고 길이까지 환자가 고르는 독일 의료계.
일견 이해도 됐지만, 수술방에서 논할 계제가 아니었기에 진혁이 나섰다.
“차라리 아밀론은 나가는 게 좋겠는데요.”
“나가라고요?”
“네, 차라리 빠지세요.”
“…….”
“여기서 이대로 시간만 끌면 환자한테도 안 좋고. 손발도 어차피 안 맞는데요. 차라리 저희끼리 진행하겠습니다.”
진혁이 네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컨타(감염)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하지 않는 손놀림.
이를 신경 쓰지 않은 채.
아밀론이 참관실을 올려다보았다.
안에서는 밖이 안 보이는 구조.
그저 사람 모양의 음영만 빼곡한 게 많은 이들이 자리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빠져도 문제고, 계속 진행해도 문제인데…….’
한참 고민하던 아밀론이 뒤늦게 물러섰다.
“저는 괜한 일로 책임지기 싫습니다.”
“그러시죠.”
“그럼, 이만.”
그가 그대로 밖으로 나가자.
진혁의 고개가 나카무라를 향했다.
“어떻게 하실 거죠? 계속 같이할 건가요?”
“음…….”
“집도의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거면 나가세요.”
“…….”
“시간 없습니다.”
“저도 기브업 하죠.”
나카무라 또한 뒤늦게 리트렉터에서 손을 뗐다.
일본의 경우에는 한국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게 일반적.
허나 그는 교환 의사.
리스크를 질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나카무라까지 빠지자.
빈자리는 스크럽 간호사가 메운다.
세컨과 써드 어시로 들어온 의사가 없을 때 항상 하던 포메이션.
의사가 아닌 간호사들로서는 평소와 같은 수술이나 마찬가지였다.
* * *
어느새 끝난 수평 절개.
절개 부위는 말그대로 대문자 L자 모양이 됐다.
환부를 살피던 장혁준한테 진혁이 물었다.
“담낭부터 절개할 거죠?”
“그래야죠.”
“위부터? 아니면 아래부터? 어디부터 할 거예요?”
“시야 확보가 너무 안 돼서. 일단 누두부(담낭의 경부와 체부 사이에 위치)부터 가죠.”
“역행적 담낭절제술로 간다?”
“네.”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방법과 거꾸로 한다는 말.
최종적으로 담관을 절개하고 재건까지 해야 했으니, 시야 확보부터 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절제 방향이 정해지자, 진혁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디바키 포셉 주세요.”
“여깄습니다.”
척.
스크럽 간호사가 혈관과 미세조직을 잡을 때 쓰는 디바키 포셉을 건네자.
진혁이 곧바로 담낭 누두부를 잡았다.
너무 강하게 잡으면 조직이 뭉개지고.
너무 약하게 잡으면 그립력이 떨어지는 상황.
적절한 힘으로 조직을 잡은 다음.
나머지 손마저 놀려 캘롯 트라이앵글(Calot triangle)을 노출시킨다.
그러자 장혁준이 보비를 이용해 주변 조직을 걷어 내기 시작했다.
캘롯 트라이앵글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일.
이와 연결된 담낭관과 담낭동맥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 할 수 있었다.
스으윽.
사아악.
한참 보비를 놀리고.
또 놀린다.
지혈과 동시에 조직을 걷어 내는 일.
옷 밖으로 튀어나온 실밥을 라이터로 지지는 것처럼 보비가 움직일 때마다 껍질이 벗겨지고.
지방 조직이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잠시 후.
캘롯 트라이앵글이 완전히 노출되자.
장혁준이 그대로 클립을 박았다.
연결된 담낭관에 하나.
또다시 다른 방향에 연결된 담낭동맥에 둘.
그렇게 결찰한 다음.
“시저(Scissor, 가위).”
곧바로 절제를 시작했다.
클립 상태를 확인해 피가 새는 곳이 없는지 확인하고.
절제한 부위를 간호사한테 넘긴 장혁준이 또다시 손을 내밀었다.
“다시 보비 주세요.”
“여깄습니다.”
“좀 더 서두르죠.”
“넵.”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듯.
간을 따라 스리슬쩍 조직을 긁어 내는 장혁준.
이는 담낭을 떼어내는 일.
그러니까 간과 짝 달라붙은 조직을 유리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바쁘게 손을 놀리는 장혁준을 진혁이 그대로 지켜만 본 건 아니었다.
그 또한 석션을 하고.
중간중간 지혈을 했다.
그뿐이랴.
때로는 조직을 잡고.
다시 걷어 내고.
거침없이 손을 놀렸다.
고작 두 명이 하는 수술.
손발이 맞지 않는 네 명이 하는 것보다 빨랐다.
* * *
장혁준이 우간동맥을 건드리자.
진혁은 장십이지장간막을 건드렸다.
주변 결체 조직이라 할 수 있는 지방과 근막.
조금씩 박리한다.
시야 확보?
어시스트들이 직접 당길 필요가 없는 고정식 리트렉터로 바꾼 지 오래.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물론 빠르게만 움직인 건 아니었다.
조심스러운 움직임 또한 많았다.
간에 영양을 공급하는 주요 혈관.
추후에 있을 합병증을 대비해 유착된 곳은 없는지.
주변 림프 조직은 꼼꼼히 제거됐는지 확인하며 손을 놀렸고.
이는 장혁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주변 조직을 걷어 내고 또 걷어 내서야 보이는 총담관.
종양이 있는 총담관을 절제한 다음 재건까지 해야 했지만, 곧바로 손을 놀리진 않았다.
그저 췌장을 향해 총담관이 내려가는 경로를 확인하고.
다시 옆에 있는 간동맥.
그리고 간문맥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총담관 인근 조직을 박리해 나갈 뿐이었다.
물론 그 방향은 위에서 아래로.
췌장을 향해.
계속 손을 놀린다.
짧게는 6시간.
길게는 8시간까지 걸리는 수술.
그냥 툭 하니 시저로 잘라내고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 *
“이번엔 Kocher 술기를 시작했군요.”
디바키 포셉이 혈관외과 의사인 디바키의 이름을 딴 것처럼.
Kocher 술기 또한 노벨의학상까지 딴 닥터 Kocher의 이름을 딴 수술법.
그만큼 검증됐다는 말이기도 했지만.
어려운 술기였다.
일단 십이지장과 췌장의 머리.
그러니까 췌장 미부를 부드럽게 분리해야 했고.
중간에 다른 장기에 대미지를 줘서도 안 됐다.
이를 알고 있던 참관인들이 한참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말했다.
“후우……. 불안해 죽겠습니다.”
“그래도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결국 동양인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한국인인데요.”
“그래도 어려운 난제를 풀어낸 닥터 장입니다.”
“이론적인 성취와 실전은 다르지요.”
“필드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고서야 그런 문제를 풀 순 없습니다!”
“그래도 조금…….”
참관인들의 의견은 한참 엇갈렸다.
아밀론과 나카무라가 보낸 어려운 문제.
그들 또한 어떤 문제를 보냈는지 알고 있었고.
직접 답장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반신반의하는 것도 현실.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 긴가민가했고.
초청에 아무도 응하지 않은 독일 의료계의 현실. 그러니까 다른 나라로 대탈주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렇게 참관인들이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췌장 실질이 노출됐다.
십이지장을 살짝 들어 올리고.
13번 림프절을 곽청했기에 가능한 일.
그렇게 노출된 췌장 실질을 따라 총담관 하부를 유리하는 일이 반복됐고.
이어진 건 하부 총담관의 견인이었다.
담즙(쓸개즙)이 유출되지 않도록 결찰한 다음 췌장 두부와 연결된 담관을 절제하는 장혁준.
이젠 동결절편 검사를 진행하고.
종양의 위양성 여부를 확인할 차례.
다들 병리검사실에서 올 전화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 * *
개복을 하지 않고서야 암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게 담관 내 생긴 종양.
병리검사실에서 검체를 확인해 바로 회신을 주기 전에 장혁준이 숨을 내쉬었다.
“후우…….”
“잘하고 있어요.”
“잘하고 있는 거 맞죠?”
“맞아요. 이젠 어떻게 할 거예요?”
“잠깐 시뮬레이션 좀 하고요.”
장혁준이 말없이 눈동자를 굴렸다.
양성일 때.
혹은 악성일 때.
그 방법을 떠올리고 어떻게 진행할지 정리하는 그.
진혁이 그런 장혁준을 보며 슬며시 웃어 보였다.
철이라고는 평생 들 거 같지 않았던 장혁준이었는데.
‘지구야 미안해’ 같은 아무도 웃지 않는 드립이나 치고.
개업해야겠다며 컨설팅 업체를 찾아보고 후기까지 읽던 그였는데.
지금은 또 새삼 달라 보였다.
물론 언제까지 저런 모습이 유지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잠시 후.
병리검사실에서 연락이 왔다.
“양성이랍니다!”
“오케이. 다시 가죠!”
“넷!”
“볼팁주사기부터 주세요!”
장혁준이 한층 더 밝은 표정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진혁 또한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