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8)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8화(38/388)
38화. 응급실 사람들 (2)
서둘러 스테이션으로 달려가 간호사를 찾았다.
“김 간호사님, 에피 좀 주세요!!”
김지연이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행려 환자 때문에 경증처치구역으로 넘어와 있던 김상혁이 물었다.
“에피네프린을 왜 찾아? 오더는 누구한테 받았고?”
상황을 설명하자 그가 혀를 찼다.
“에피를 투약하라고 했다고?”
“상황이 안 좋아지면 투약해도 좋다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누가?”
“장 선생 오더였습니다.”
“잠깐만.”
김상혁이 고개를 돌려 장길만을 찾았다.
멀리서 환자와 대화하는 그.
금방 끝날 거 같진 않아 보였다.
‘이 자식이. 인턴을 아예 풀어놨네? 에피 투약 시점을 어떻게 안다고. 하…….’
김상혁이 얼굴을 굳혔다.
안 그래도 박영진의 지시가 있던 터.
제 성향과는 맞지 않았지만, 이진혁을 챙겨야 했다.
“왜 지금 투약하려 했지?”
“예, 환자가…….”
한참 설명을 들은 김상혁이 고개를 저었다.
“좀 더 지켜봐도 되잖아? 에피를 쓰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왜 지금 시점이냐는 거야.”
“Distributive Shock(비정상적인 혈량 분포 장애)가 오기 전에 조치하려고 했습니다.”
“왜?”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하는 질문.
마음이 급했기에 진혁이 빠르게 답했다.
“혈관이 이완된 상태에선 에피를 투약해도 BP(혈압)를 잡을 수 없다고 배웠습니다.”
“항히스타민제 투약했다며?”
“네, 디펜히드라민(diphenhydramine) 50mg 주사했습니다.”
“근데?”
계속된 질문에 진혁의 표정이 굳었다.
당장 환자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치프가 방해하고 있었다.
‘아, 진짜!!’
허나 애써 감정을 숨겼다.
김상혁은 치프 레지던트.
이미 적을 많이 만들었기에, 여기서 또 충돌할 순 없었다.
“항히스타민제는 Skin Rash(피부 발진)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기관지 수축에는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
“네, 후두부종이나 쇼크에도 효과가 없으니까요. 사실, 아나필락시스 치료 목적으론 투약할 가치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왜지?”
“Delayed Phenomenon(지연성 반응)에만 그나마 효과가 있습니다. 지금처럼 급성으로 진행될 때는 효과가 없고요.”
“잘 알고 있네. 누구한테 배웠대?”
“장 선생님이 알려 줬습니다.”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와 더 이상 입씨름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환자한테 가고 싶었다.
뜻이 통한 걸까.
김상혁이 표정을 풀었다.
“이야. 확실히 인턴답지 않게 잘하네. 학교 다닐 때 공부 많이 했나 봐.”
“…….”
“근데 서툴러.”
“?”
“거짓말이 서투르다고.”
“!”
진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김상혁이 간호사들을 의식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장 선생은 평소엔 친절하지만, 멘탈이 약해.”
“…….”
“저렇게 일이 몰릴 때면, 제 할 일 하느라 바쁘다고. 내가 아무리 후배한테 관심 없다 해도 그 정도는 알아.”
“죄송합니다.”
“뭐, 됐어. 한 교수님 자문도 없었다며?”
“아, 그건…….”
“됐다고.”
김상혁이 대수롭지 않은 듯 손을 휘적거렸다.
하지만, 속내는 복잡했다.
‘과장님이 챙겨 보라고 하시긴 했는데……. 하, 이걸 어쩐다.’
거짓말을 한 게 괘씸해서 혼낼 수도 있었다.
허나 제 성향과 맞지 않았다.
후배?
자신한테 피해만 주지 않으면 관심 없었다.
오로지 위에 올라가는 것.
그리고 환자 케어가 주 관심사다.
“일단 있다가 이야기하자. 김 간호사님, 에피 좀 챙겨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김상혁이 발걸음을 옮겼다.
* * *
김상혁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떨림은 전혀 없었다.
되레 빠르게 손을 놀릴 뿐이다.
“으윽.”
“조금 아프시죠.”
“아, 너무 아픈데.”
“근육에 주사해서 그래요. 피하 주사보다 더 아프거든요.”
진혁이 환자를 어르듯 말했다.
일단 복통 발현 후 1차 대응은 한 상황.
빠르게 대응했으니 지켜보면 될 일이었다.
한숨 돌린 거다.
그때, 김상혁이 끼어들었다.
“좀 더 친절할 필요가 있겠어.”
“?”
“왜 피하 주사를 놓지 않았는지도 말씀드려야지.”
“예.”
진혁이 고개를 환자 쪽으로 돌렸다.
“피하 주사는 혈관이 수축돼서 흡수가 늦어질 수 있어서요.”
“됐어요, 됐어.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지 뭘.”
“선생님 말씀 좀 끊지 말고 들어 봐요! 당신이 의사예요?!”
“하. 참.”
보호자의 타박.
환자가 혀를 차자 진혁이 말을 이어 갔다.
“근육 주사는 효과 발현이 빠르거든요. 그래서 다리에 놓은 거예요. 혈류가 많고 근육이 큰 곳에 놓아야 효과가 더 좋습니다.”
대퇴외측광근을 가리키자 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김상혁이 묘한 표정을 짓는다.
‘이것 봐라. 꽤 하는데.’
이젠 다시 BP(혈압)가 올라오는지만 지켜보면 됐다.
그때, 김지연이 달려왔다.
“김 선생님!”
“왜요?”
“저기요. 저기.”
간호사가 행려 환자가 누워 있는 베드를 가리켰다.
냄새 때문에 다른 환자가 항의할 걸 우려해 외떨어져 있는 베드였다.
“급한 거예요?”
“그게 조금 이상해서요.”
“어떤데요?”
“환자 반응이 이상해요.”
“제가 가 볼게요. 이 선생도 따라오고.”
“아…….”
진혁이 얕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상태를 계속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드러난 걸까.
김상혁이 말했다.
“근육 주사의 발현 시간은?”
“최소 5분, 보통은 8분입니다.”
“맥스(max) 찍으려면 10분이야.”
“…….”
“아직 10분이나 남았다.”
아직 시간이 있다는 말.
김상혁이 행려 환자에게 향하자 진혁이 그 뒤를 따랐다.
* * *
행려자.
일정한 거처 없이 길거리를 떠도는 사람.
흔히들 노숙자라고 부른다.
몸을 웅크린 채 수액을 맞는 그의 모습은 처량했다.
빛바랜 회색 점퍼는 여기저기 해져 있었고, 안색 또한 그 처지를 대변하듯 누렇게 떠 있었다.
문제는 몸을 덜덜 떨고 있다는 것.
김상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 불편하세요?”
“수액만 맞으면 돼.”
“기왕 오신 거 말씀해 주시면 봐 드릴게요.”
“돈 없으니까 됐어. 수액비는 따로 갚을 거야.”
진료를 거부하는 행려 환자 최익진.
김상혁이 그를 달랬다.
“이제 더는 안 될 거예요.”
“?”
“원무과에서 막는 거 보셨죠?”
“갚을 거라니까. 나중에 돈 갖고 올 거야.”
“알죠. 하지만, 저희도 힘써 드릴 수 있는 게 이번뿐이라는 거예요. 다음엔 다른 병원 가셔야 한다고요. 기왕 오신 거, 어디가 안 좋으신지 말씀해 보세요.”
최익진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막장이 돼 버린 인생.
이제 와 몸을 돌봐 뭘 할까.
하지만, 노숙자들 사이에서 퍼진 소문대로 세 번은 안 된다는 말을 들으니 생각이 많아졌다.
“어차피 다 안 좋아.”
“그래도 불편하신 곳이 있으니까 수액 맞으러 오신 거잖아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배가 아파. 뭐가 얹힌 거 같고. 춥고. 힘들어.”
“옷 좀 걷어 주실래요.”
행려 환자가 점퍼를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순간 썩은 내가 진동했지만, 김상혁과 진혁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노숙자든 일반인이든 환자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이어지는 건 촉진과 문진.
그 모습을 진혁이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 * *
의국장을 뜻하는 치프.
교수들과 레지던트 사이에서 자잘한 일들을 조율하며, 레지던트의 업무를 분장(어레인지)하는 일을 한다.
그만큼 바쁘다는 말.
김상혁의 태도는 의문을 자아냈다.
‘정신없이 바쁠 텐데. 환자에 진심인 편인가.’
그게 아니라면 행려 환자를 이렇게 대하는 게 설명되지 않았다.
논문을 쓰고 있다고 해도, 그저 증례로만 활용하려고 들 수도 있을 터.
그는 환자에게 진심인 편이었다.
촉진을 끝낸 김상혁이 말했다.
“아직 피검사 결과는 안 나왔는데요.”
“그래서.”
“그래도 좀 더 검사해 볼게요. 조금 이상해서요.”
“그러든가.”
행려 환자인 최익진의 짧은 대답.
기분 나쁠 수도 있건만, 김상혁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 * *
추가 검사를 진행했다.
허나, 결과를 바로 알 순 없는 일.
결과가 나오려면 기다려야 했다.
다시 벌에 쏘인 환자에게 걸어가며 김상혁이 입을 열었다.
“행려 환자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어.”
“인계장에서 봤습니다.”
“그래? 뭐라고 쓰여 있디?”
“…….”
“아, 됐고. 뭐 욕이나 쓰여 있겠지. 일단 논문을 써야 전문의 시험 볼 수 있는 건 알 테고. 겸사겸사 준비하는 거야.”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금 놀랐습니다.”
“?”
“주제가 특이해서요.”
진혁이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행려 환자에 대한 건 보통 쓰지 않는 주제니까.
“먹혀 줄 거 같단 말이지?”
“음.”
“솔직히 말해도 돼.”
“예, IMF라 행려 환자가 쏟아지고 있으니까요.”
“그래?”
기분이 좋은지 김상혁이 피식거렸다.
“병원은 시끄러운 걸 싫어해. 행려 환자? 쫓아냈다가 괜히 죽기라도 해 봐.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릴걸?”
“그건 그렇죠.”
“그러니까 과장님도 받아 주시는 거고. 그러면 난 행려자가 어떤 이유로 내원했는지 데이터를 쌓을 수 있어서 좋고. 저 사람은 치료받아서 좋고. 다들 좋잖아? 안 그래?”
단순히 평판을 신경 써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말.
박영진도 대단했지만, 김상혁 또한 무시 못 할 인물이었다.
하지만,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행려자가 몰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 번은 안 봐줘.”
“아…….”
“뭐, 사실 오는 사람도 별로 없어. 다들 종합 병원은 깐깐하게 체크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병세가 안 좋으면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었다.
행려 환자는 말 그대로 돈이 없으니까.
“왜 그게 궁금한데?”
“치료비가 많이 들 거 같아서요. 중간에 나가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요.”
“뭐, 전원시켜야지. 은평 시립 병원 있잖아. 거기가 원래 전담이잖아.”
“…….”
“그보다 부탁 좀 하자. 아니, 우리 거래할까?”
뜬금없는 말에 진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거래 제안이라니.
당황스러웠다.
시키면 시켰지.
무슨 거래란 말인가.
“네가 벌인 일 때문에 나한테까지 전화가 온다. 아주 항의가 빗발쳐.”
“!”
“내가 그동안 별말 안 한 거 알지?”
“죄송합니다.”
“아니, 사과받자고 한 말이 아니야. 난 앞으로도 별말 안 할 생각이니까.”
진혁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김상혁이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까 거래하자고. 아까 거짓말한 거랑 퉁쳐도 되겠네.”
“무슨 거래를…….”
“행려 환자가 오면 방금처럼 수액도 놔 주고 체크 좀 해 줘. 무슨 질환인지 알아야 증례 분석도 하니까.”
“B조는 그럼…….”
“거긴 이미 구했어. 왜? 싫어? 어차피 많이 오지도 않아.”
거부할 수 없는 거래 요청.
김상혁은 박영진이 물어보면, 행려 환자를 맡기고 잘 지켜보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었고.
진혁 또한 치프의 터치가 없어 좋은 일이었다.
“어차피 제가 할 일인데요.”
“뭐, 그래도 냄새가 많이 나서.”
“원무과 직원은 어떻게 할까요?”
“과장님 지시라고 하면 돼. 간호사들한텐 내가 말해 놓을 거고.”
“알겠습니다.”
“오케이. 기념으로 선물 하나 줄까?”
“선물이요?”
진혁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너무 뜬금없는 말이니까.
“너무 너만 환자 걱정하는 것처럼 행동하진 말라고.”
“…….”
“우리도 다 의사야. 여기 의료인 아닌 사람 없다. 다들 본분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야. 바쁘고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다들 열심히 하고 있다고.”
“죄송합니다.”
“환자한테 너무 집중하면 너만 피곤해진다. 나도 환자한텐 진심인 편이지만, 선을 지켜야 한다고.”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
허나, 진혁이 회귀했다는 걸 몰랐기에 가능한 조언이었다.
“그리고 또.”
“…….”
“주머니 속 사탕 말이야.”
“네?”
“한참 잊고 있다가 누가 달라고 하면 꺼내 먹고 싶은 법이다.”
“……?”
“조심하라고.”
박영진이 김상혁을 불러 놓고 한 말.
이해할 수 없는 조언에 진혁이 의아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