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86)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86화(386/388)
386화. 병원장 선거 (5)
“미쳤군.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야.”
재활의학과 과장이 건넨 서류.
이를 내던지듯 내려놓은 부재일이 볼살을 씰룩거렸다.
해외 병원 인수.
말도 안 되는 일.
전례 없는 일이다.
그의 반응을 지켜보던 이들 또한 뒤늦게 목소리를 높였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맞습니다. 해외 병원 인수라니요. 이것들이 병원을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나 봅니다.”
“재단에 투서라도 넣을까요? 적자 병원을 인수하자니요! 방만 경영입니다! 방만 경영!”
“막아야 합니다! 운영회의에서 어차피 통과될 수도 없는 안건입니다!”
계속된 성토.
사실 말이 노인 병원이지, 꽤나 큼지막한 병원이었다.
병상만 488개.
매년 적자만 수십 억.
미래에는 성공 사례.
그러니까 해외 병원 진출 대박 사례로 손꼽히는 인수였지만, 이를 알 리 없는 이들.
당장 진혁의 면접을 봤던 오인지 교수 또한 목소리를 드높였다.
“인수 후 정상화. 어려운 일입니다. 얼마나 공력이 들지도 모르고.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그렇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암요, 미국 의사 면허 취득 또한 지원한다니요! 이 또한 돈이 들어가는 일이 아닙니까!”
살짝 고개를 주억거린 부재일이 차를 마시며 주변을 훑었다.
강한 어조로 성토하는 이들.
그리고 떡 하니 서류를 건넨 재활의학과장.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 어쩌면.
속으로 반기고 있을지 모른다.
노인 병원이라면 내과 계열 또한 주축을 차지할 터.
순환기, 호흡기, 내분비까지.
늘어나는 TO, 교수 자리를 탐하는 이들마저 한눈에 보인다.
그러니.
‘하필 한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 이것들이 설마…….’
의심마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익명 선거.
누가 누구를 찍는지 알 수 없는 선거다.
의심을 애써 누른 부재일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대응 방안. 대응 방안부터 논의합시다.”
* * *
“대응 방안이요? 없죠. 뭐, 오히려 잘됐네요.”
진혁이 깔끔히 단언했다.
산부인과장한테 제안했던 난임 클리닉 인수.
그리고 한국형 산후조리원의 해외 진출.
새로운 부대 사업은 전부 비밀로 지켜졌지만, 재활의학과장은 입이 가벼웠고.
이를 저울에 올리고자 했다.
더한 조건을 제시하라며 부재일한테 던진 것이다.
우용만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더 큰 병원을 인수하겠다고 역제안하는 건.”
“말도 안 되죠. 난임 클리닉이야 밝혀지면 역제안을 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이건 구찌가 크니까요.”
“그렇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렇다고 무작정 반대하는 것도 어렵죠.”
“재활의학과가 떨어져 나갈 테니까.”
잠시 숨을 고른 우용만이 말을 이었다.
“그뿐이 아니야. 내과 계열 안에서 내심 반기던 이들 또한 있을 테고……. 이건 이를 테면……. 그래, 신의 한 수군.”
“장군이죠.”
“체크메이트야.”
“그게 뭐든 간에…….”
“그래. 그게 뭐든 간에. 끝났어. 끝났다고.”
진혁과 우용만이 동시에 웃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이 지나는 와중에도 부재일은 움직이지 않았다.
NCND 전략.
이른바 확인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다.
* * *
어느덧 선거 전날.
우용만이 성형외과장을 부러트렸다.
네 번의 면담.
그리고 조율.
협상 과정은 지난했다.
그가 원하는 건 단 하나.
젠더 클리닉의 인수.
그것도 태국에 있는 병원이었다.
젠더 서저리.
그러니까 면담 치료부터 성전환 수술까지 토탈 케어를 제공하자는 건 쉽지 않은 조율.
안암 병원에서 먼저 시작해 수익성이야 담보되는 일이라지만.
한정된 재원이 문제였다.
공수표가 될 수도 있었기에 그 자신의 요구 사항부터 들어 달라는 성형외과장을 한참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모든 미션을 완수한 우용만이 다시 넥타이를 동여맸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
이진혁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이제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했다.
진짜 선거만 남은 상황.
투표만 남았을 뿐이다.
* * *
또각.
또각.
구두 굽이 바닥과 맞닿는 소리.
얼핏 들으면 하이힐을 신은 보호자가 병실을 오가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그 대상은 한동수.
그가 굳이, 그러니까 기어코 지팡이를 짚고 회의실에 들어섰다.
그 모습에 당장.
“이봐, 한 교수. 지팡이는 내려놓을 때도 됐잖아. 왜 지난번에는 지팡이 없이 잘만 걸어 다니더만.”
“그때도 쩔뚝거리면서 걸었는데요?”
“아니, 내 말은.”
“내 말은?”
“여차하면 휘두를 거 같아서 그래. 그리고 자네는 원래 참석 대상자도 아니잖아. 선거에 불참하면 기권이라고. 기권.”
“그건 지난번에 정리된 얘기 아닙니까.”
“논란이 많았지.”
“그래도 바뀌었죠.”
매월 진행되는 운영회의처럼 대참자의 참가를 허용할지 말지에 대한 논의.
그러니까 선거 룰을 두고 숱하게 싸웠던 이들이었다.
외과 계열은 수술이 언제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대참자한테 투표권이 있다고 여겼고.
내과 계열은 규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으니까.
이미 끝난 사안을 재차 거론하는 순환기내과장.
한동수가 [+16강] 육모방망이를 꺼내 들었다.
“아들은 잘 있습니까?”
“뭐?”
“지금 LA에서 학교 다니고 있죠? 사모님도 그렇고. 기러기 아빠 생활. 그거 쉽지 않은데요.”
“그걸 지금 왜…….”
“아, 뭐. 그냥 그렇다고요. 병원 인수하면 누군간 나가야 할 텐데. 왠지 장 과장님이 가장 유력한 거 같기도 하고.”
“뭐? 내가?”
“아닙니까? 기러기 아빠니까 미국 가고 싶을 거 같은데. 뭐, 아니면 말고요.”
대뜸 엉뚱한 말을 던져 놓고는 한동수가 귀를 후비적거렸다.
당장 다른 이들의 시선이 쏠리자.
순환기내과장이 얼굴을 붉혔다.
“난 USMLE(미국 의사 면허)도 없어. 아무것도 없고. 미국 따위는 관심도 없다고.”
“꼭 진료를 볼 필요는 없죠.”
“……!”
“누군간 운영해야 할 텐데. 병원장님이 진료 보는 거 보셨습니까?”
“뭐라고?”
“면허가 꼭 있을 필요는 없다고요.”
“……!”
순간 순환기내과장의 눈이 커졌다.
다시 왼쪽 귀를 후비적거리던 한동수가 손가락으로 귓밥을 튕겼다.
“병원장도 새로 뽑아야 하고. 운영과장도 새로 뽑아야 하고. 부원장도 새로 뽑아야 하고. 우와. 감투가 많이 생기겠는데요?”
“그건…….”
“왜요? 재활의학과만 이득 보는 건 아닐 텐데. 선거 끝나고 봉합하는 거. 뭐. 뻔한 수순 아닙니까.”
정론에 가까운 말.
오지호가 또다시 연임한다면 탕평책을 쓸 거라는 말에 순환기내과장이 고개를 돌렸다.
이에 굴하지 않고 한동수가 [+16강] 육모방망이를 계속 휘둘렀다.
물론 그 대상은 다른 과장들.
내면의 은밀한 욕망을 자극하고.
또 자극한다.
그러다가.
“익명 선거라는 게 이럴 때 좋아요. 그냥 딱. 어! 누가 누굴 찍었는지도 모르고. 그냥 콱! 도장만 찍으면 되는 거죠!”
“아후. 노인 병원에 외과 계열이 나갈 리도 없고. 누군 좋겠다. 좋겠어!”
광역 도발마저 마친 그가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 * *
순식간에 끝난 투표.
이젠 결과 발표만 남았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부재일을 향해 오인지가 다가섰다.
“부원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아, 오 교수도 고생 많았어요.”
“아닙니다.”
“그래. 표 계산은 해 봤습니까.”
“두 표차로 신승할 거 같습니다.”
“흐음.”
“서 과장을 만나 단단히 단도리도 했고. 성형외과장 또한 다시 한번 약조했습니다.”
“확실한 겁니까?”
“확실합니다.”
부재일이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상대의 막판 추격전에 많이 흔들렸다지만, 그들 또한 표 단속을 철저히 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산부인과.
영상의학과.
성형외과.
전부 이유가 있어 지지를 철회한 이들이다.
다시 오지호를 지지할 이유가 하등 없는 것이다.
잠시 숨을 고르던 부재일이 마음을 가다듬었다.
선거 후에는 최다 득표자인 그 자신이 병원장을.
차순위인 오지호는 부원장이 될 터.
재단에서 최다 득표자를 병원장으로 추인할 테고.
승인만 받으면 곧바로 개혁 작업에 돌입할 생각이었다.
모든 건 시스템대로.
그 옛날 예전 방식대로.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대(大) 아신 병원으로 환골탈태시킬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다시 들어간 회의실.
선거위원장을 맡은 모 교수가 결과를 발표하자, 부재일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분명히 이길 줄 알았는데.
이겨야 마땅했는데.
그대로 져 버렸다.
그것도 최다 득표 차로.
* * *
“축하드립니다, 병원장님.”
“하하, 서 교수가 많이 도와준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어이쿠. 제가 드릴 말씀을…….”
“병원장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지호 앞에 줄지어 서 있는 이들.
부재일의 볼살이 파르르 떨렸다.
신승할 거라고 여겼건만.
최다 득표 차 패배.
그것도 두 표도 아니고.
다섯 표 차이가 났다.
배신하기로 했던 이들이 전부 다시 오지호를 찍었다는 말.
더불어 이탈표까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응당 패자로서 해야 할 일.
승복 선언을 해야 했지만, 자리에서 일어선 부재일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그 모습에 다가간 건 한동수.
그가 물었다.
“혹시 지팡이 빌려 드릴까요?”
놀리는 게 아니라 진짜 필요할 거 같아서 하는 말이었다.
* * *
[와, 대박. 이거 뭐냐.] [너도 얘기 들었어?] [와. 또 연임이네.] [대박이다. 진짜.] [돌아섰다는 과장님들. 왜 다시 다 돌아선 거야?] [몰라. 우용만 과장님의 힘인가? 면담을 장시간 하면서 설득했나?] [아무튼, 외과 계열 만세다. 만세!] [야. 언제는 앞으로 내과에서 연락 오면 연락 잘 받아 주자며.] [ㅋㅋㅋ. 바로 갈아타는 거지.] [그래 ㅋㅋㅋㅋ.]한참 계속되는 대화.
외과 계열에 속한 이들은 연신 웃어 댔고.
반대로 내과 계열은 죽상을 썼다.
선거에서 세 번 연속으로 진 부재일.
누군가 용기 내 말했다.
[이 정도면 선수를 바꿔야 되는 거 아니냐.] [야. ㅋㅋㅋㅋ.] [왜.] [너 나한테 이런 말 했다는 거 비밀이다.] [쫄았냐. 너가 유출만 안 하면 되거든.] [아, 몰라. 뭐, 다 이긴 것처럼 해 놓고. 아무튼, 그거 알아?] [뭘?] [부원장님 인선안까지 다 짜놨었대.] [거하게 물 먹었네 ㅋㅋㅋ.] [ㅋㅋㅋㅋ. 지금쯤 찢어발기고 있을 듯.] [일이나 하자. 일이나 해. 어르신들 일에 관심 둬서 뭐하냐. 그래도 선수는 바꿔야 돼. 부원장님으로는 아무것도 안 된다고.]점점 쌓이는 불신.
당장 내일이 되면 가라앉을 일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왁자지껄했다.
그러다가 김무성이 그 자신의 동기한테 메신저를 보냈다.
[ㅇㄱ ㄷ ㅇㅈㅎ ㅅㅅㄴㅇ ㄱㅎㅎㄱㄷ, ㅇㄱ ㅁ ㅎㅅㄷ ㅇㄱ 진짜 답답해 죽겠네.]해석해 보라고 보낸 메신저.
김무성의 또라이짓을 한두 번 겪어 본 게 아닌 동기가 곧바로 답했다.
[이거 다? 그다음엔 뭔데. 야. 그냥 닥치고 일이나 해!] [아후 ㄷㄷㅎ ㅈㄱㄴ ㅇㅈㅎ ㅅㅅㄴㅇ ㅎ ㄱㄹㄴㄲ!] [뭐래. 미친놈이. 야. 그보다 들었냐.] [뭘.] [부원장님 승복 선언도 안 했대. 병원장님이 악수 청했는데 걍 무시하고 생깠다더라.]이진혁이 모든 걸 계획했다고 말해야 하는데 엉뚱한 말만 하는 동기.
김무성이 답답한 표정으로 메신저창을 껐다.
* * *
뒤늦게 소식을 접한 진혁이 곧바로 국제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독일에 있을 장혁준.
독일에서 나름 천재 의사로 소문난 그한테 상황을 알릴 생각이었다.
딸깍.
“이겼어요.”
[우와! 진짜죠? 진짜예요? 아, 이 상황에서 거짓말할 거 같진 않고. 그럼 나 교수 되는 거예요?]“그야 하기 나름이죠.”
[병원장님도 아시죠? 내가 다시 독일 와서 개같이 구르는 거 아시냐고요.]“모를걸요?”
[왜 몰라요?]언제는 질 거 같다고 걱정했으면서.
돌변한 장혁준.
진혁이 뜸을 들이다 말했다.
“그야……. 어린애들은 빠지라고 해서?”
[와. 진짜. 라면 동지. 진짜 이럴 거예요!]“대신 운영과장님은 아시죠. 고맙다고 전해 달래요.”
[으으. 그분은 친해지고 싶지 않은 분이라고요!]“이 기회에 친해지면 되죠.”
[아악! 무슨 면담할 일 있어요!]장혁준이 기겁해 소리쳤다.
운영과장인 우용만.
이진혁 앞에서만 풀어진 모습을 보일 뿐.
항상 차갑고 냉정하고 돈만 따지는 그런 냉혈한. 아니, 아신 병원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 같은 존재였다.
그런 운영과장이 이뻐해 줄 거라는 말.
기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 *
한편, 오지호는 서관 최상층.
그러니까 병원장실에서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왼편에 보이는 건 암 센터와 임상 실습 센터.
그리고 기숙사 병동이었다.
다시 오지호가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저 멀리 둑방길이 보였다.
가로등이 어둑해 운치 있다기보다는 살짝 무서워 보이는 둑방길.
봄이 되면 벚꽃이 만개할 테지만, 아직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 전경을 바라보던 그가 싱긋거렸다.
이진혁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거라는 우용만의 보고.
그 자신의 눈을 피해 움직인 게 틀림없었고.
이놈의 자식을 당장 찾아가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리고…….
아니, 아니지.
기왕 이렇게 된 거 어깨만 툭툭 쳐 주면 된다고 여겼다.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덕분에 외과 계열을 몇 년 더 지킬 수 있게 됐다고.
하지만 그런 속내를 내색하지 않은 채 오지호가 계속해 전경만 바라봤다.
정말이지.
그래 정말이지 아름다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