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87)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87화(387/388)
387화. 그 뜻이 그 뜻이 아닌데
좋은 리더란 무엇일까.
사실 별거 없는 정의다.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며, 탁월한 성과를 내는 것.
다시 말해,
싫은 소리를 덜 하고.
불만을 들어 주고.
탤런트에 맞는 일을 주며.
성과를 평가하는 것.
그게 전부였고.
그런 관점에서 오지호는 좋은 리더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또한 인간.
완벽하진 않았다.
아니,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딱 두 가지.
외과 계열에 엄청나게 편파적이라는 것.
그리고 재무제표를 비롯한 수익성 지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당장 오늘도 오지호에게 보고하는 우용만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제 말, 듣고 계시지요?”
“아아, 듣고 있습니다. 듣고 있어.”
“제가 뭐라고 말씀드렸습니까.”
“음?”
“조금 전에 제가 뭐라고 말씀드렸냐고 여쭤보고 있습니다만.”
우용만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특유의 차가운 미소마저 내보이자, 오지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딴생각을 하고 있던 차.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듣는 신공을 펼치던 참이었다.
그러니.
“…….”
“…….”
“…….”
“…….”
한참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그간 병원장을 하던 가락이 있었기에, 가까스로 대답할 수 있었다.
“……다면 평가를 도입하자?”
“그건 메인이 아니었습니다.”
“행정직, 기술직, 간호직부터 일단 시행하자?”
“그건 메인이 아니었다고 방금 말씀드렸습니다만.”
“부원장이 평가 기준을 바꾸려고 했다?”
대답한 다음 슬쩍 눈치를 본다.
아무 반응 없는 우용만.
오지호가 옳다구나 싶어 말을 이었다.
“아, 그거지요. 그거. 하핫. 순매출 증가율, 삼선 병원과의 매출 비교, 환자 수를 기준으로 환산해서 KPI를 정하려고 했다고……. 끄응. 이것도 아니군.”
오지호가 말을 하다가 당장 말을 멈췄다.
점점 좁아지는 우용만의 눈매.
잘못 짚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한참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부재일이 하려고 했던 개혁.
최근 3년간 진료 실적을 점수화하고 수익성을 극대화하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했다.
분명 그리 들었는데.
그리 말한 게 분명한데.
근데…….
그럼에도…….
끄응.
오지호가 계속해 눈알만 데구루루 굴리자.
우용만이 거칠게 넥타이를 동여맸다. 그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순식간에 냉정을 찾은 그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선거가 끝난 만큼 곧바로 청구서가 날아올 거다. 확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안 그러면 다음 선거는 어렵다.”
“겨우 이긴 거다. 그러니까 재무제표에 관심을 둬야 한다. 당장 재원 마련이 시급하다.”
따발총처럼 그 자신이 했던 말을 되풀이하던 우용만이 안경을 다시 밀어 올리자, 오지호가 뒤늦게 손뼉을 쳤다.
그러다 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살짝 눈치를 보며.
“하면 되지요. 뭘, 이런 걸 다 보고합니까.”
“병원장님이 아셔야지요.”
“그야 그렇지만.”
“수익성 분석이 제대로 됐는지! 경제성 분석에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어떤 병원부터 인수할지! 다 정해야지요!”
“순서를 정해 달라?”
우용만의 요구를 단순 명료하게 일축한 오지호가 그가 건넨 서류를 뒤적거렸다.
IRR, BEP, 예상 매출.
순현금흐름.
누적현금흐름.
세후 이익까지.
흰색 A4 용지에 적힌 건 검은 글자.
아라비아 숫자와 한글이 분명한데, 정말 어렵기만 했다.
투자 금액이야 한눈에 와닿는다지만, 비영리법인을 영리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니.
대체 뭐가 이리 복잡하단 말인가.
한참 보고서를 훑던 오지호가 표정 관리를 했다.
근엄하게,
병원장답게,
아주 명령조로.
“산부인과, 재활의학과, 성형외과 순으로 갑시다.”
“충분한 검토를…….”
“방금 하지 않았습니까.”
“진짜 하신 게 맞습니까?”
“아아, 했습니다. 했어요. 산부인과장이 가장 조용하다면서요. 그럼 그 건부터 진행합시다!”
더는 듣기 싫다는 표정.
우용만이 잔소리를 하려다 멈췄다.
그래.
어쩌면 오지호 또한 심력을 많이 소비했을지도 모른다.
질 게 뻔했던 선거.
가까스로 역전을 이뤄 냈으니 알게 모르게 마음고생도 심했으리라.
그러니 평생 하지 않았던 칭찬마저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으니까.
“먼저 한국형 산후조리원을 선보이고, 그 인기와 수익성을 확인한 다음에 난임 클리닉을 세운다.”
“이를 바탕으로 재단마저 설득해 재활의학과에 던졌던 노인 병원마저 인수한다는 그런 깊은 뜻을. 정공법이지만, 꽤나 괜찮은 전략입니다.”
“그럼 말씀하신 대로 추진하겠습니다.”
대답도 하기 전에 곧바로 서류를 챙겨 들고 나가는 우용만.
오지호가 뒤늦게 반응했다.
“김 안 나는 숭늉이 더 뜨겁다는 말이 떠올라서 그런 건데…….”
“원래 조용한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인데…….”
한참 계속되는 혼잣말.
물론 그 순간은 짧았다.
뒤늦게 해야 할 일이 떠올랐기 때문.
그래.
소통 강화.
요즘 유행하는 현장 소통을 강화할 차례였다.
그 자신은 병원장.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한 병원장이었다.
* * *
옷을 챙겨입고 나서는 것도 잠시.
비서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병원장님! 잠시 후에 대외협력 과장 대면 보고 잡혀 있습니다!!”
“아아, 그거 다음으로 미룹시다.”
“몇 시로요? 그다음 타임에는 홍보팀장 보고가 잡혀 있는데요.”
“아아, 됐어요. 됐어.”
“병원장님~!!!”
울부짖는 비서를 내버려 둔 채 오지호가 총총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현장 소통도 강화하고.
제 말을 지독히도 듣지 않는 이진혁의 얼굴 또한 볼 생각.
그러자면 먼저.
‘다른 과를 전부 돈 다음에 가는 게 좋겠지. 말이 덜 나오려면…….’
응급의학과에 가기 전에 명분부터 쌓아야 할 터.
그런 의미에서 그가 먼저 들른 곳은 순환기내과였다.
* * *
갑작스러운 방문.
토끼 눈을 뜨며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향해 오지호가 활짝 웃었다.
“아아, 고생 많아요. 많아.”
“병, 병원장님. 여긴 갑자기 왜…….”
“다들 어떻게 지내나 보러 왔지요. 자자, 신경 쓰지 말고 일들 해요. 일들 해.”
“그, 그게. 지금 당장 장 과장부터 불러오겠습니다.”
“허허, 됐습니다. 됐어. 진짜 그냥 와 본 거라니까.”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들을 다독인 다음.
그대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먼지가 가득한 비품실.
스윽 한번 보고.
다시 간호사들이 사랑방으로 쓴다는 공간 또한 불쑥 들어가 얼굴을 내비쳤다.
그뿐이랴.
처치실과 스테이션을 오가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는다.
이 모든 건 이진혁을 만나며 호기심도 채우기 위한 일.
현장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일이었지만, 다들 난리가 났다.
연임에 성공하며 더욱더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된 오지호의 행보.
그가 내딛는 발걸음은 나비의 날갯짓이 돼서 태풍이 되고 있었다.
* * *
[대박! 지금 우리 과에 병원장님 왔다 갔어!!] [갑자기?] [으으. 날카로운 눈으로 비품실에 쌓인 먼지를 스윽 한 번 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돌아갔다고!] [그러니까 갑자기 순환기에 갔다는 건데. 갑자기 왜?] [이제 보복이 시작된 거지!!] [보복은 무슨. 병원장님 원래 그런 스타일이. 헙!!] [왜! 왜! 뭔데!] [우리 과도 왔는데?] [대박!!]곧바로 끊긴 대화.
순환기내과에 들른 오지호를 두고 메신저를 하던 레지던트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했다.
병원 밖에서 본다면 천상 인자한 동네 어르신.
하지만 이곳은 병원.
그것도 제일 높은 사람.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도 아닌 무려 병원장이었다.
한데 하는 짓이 더없이 수상하다.
열심히 일하는 간호사한테 다가가 ‘고생 많아요!’라며 헛기침을 하더니.
전자레인지와 개수대가 구비된 곳에 불쑥 들어가기도 했고.
먼지 구덩이가 쌓인 걸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냥 ‘거, 참, 청소 좀 해야겠는데.’라고 지적이나 할 것이지.
뒷짐을 진 채 허허거리기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현장 소통 행보를 강화한다는 오지호가 또다시 사라지자.
그가 당장 메신저를 켰다.
[대박! 불시점검 떴다!! 병원장님이 불시점검 중이라고!!] [뭐?] [순환기에도 뜨더니! 우리 과도 왔다 갔다고!] [왜?] [모르지!! 나도 모른다고!!] [잠깐! 지금은 소화기내과라는데? 대박! 지금 보복하기 전에 돌아다니는 거 아니야?] [대박이네. 내과만 돌아다니고 있어!] [아아악!!]삽시간에 퍼진 소문.
포스타인 참모총장이 불시에 내무반에 들이닥쳐 ‘고생이 많군!’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작태.
빠르게 퍼진 소문만큼 모든 이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쓸고.
닦고.
기름칠하고.
비품실은 아예 잠가 버리고.
눈에 보이는 건 모두 치워 버리는 등.
연임한 병원장.
아니 오지호를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여념 없는 것이다.
이른바 눈 오는데 눈 치우기.
비 오는데 물웅덩이 퍼 내기.
군대에서나 볼 법한 의전이었다.
* * *
“끄응…….”
오지호도 눈치가 있는 사람.
몇 군데 더 돌아다니다가 그대로 발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시작된 청소.
미화 아주머니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있는 건 인턴.
그리고 저년 차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고년 차 레지던트까지.
그뿐이라면 애써 무시했겠지만, 병원의 숨은 주축이라 할 수 있는 간호사들마저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정리하면서.
이 모든 게 그 자신이 벌인 행보에서 시작된 일.
그냥 까마득한 후배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했고.
현업에 어려움은 없는지.
혹시 모를 고충은 없는지.
태움 문화가 심해서 혹시 정신 질환을 호소하는 간호사는 없는지 알아보며, 이진혁의 얼굴 또한 볼 생각이었는데.
그 자신은 어느새 단순한 개인이 아닌 게 됐다.
개인은커녕…….
함부로 돌아다닐 수도 없는 처지.
진짜 우용만의 말대로 재무제표나 뜯어보며 진료 수익이 얼마나 났는지.
이번 달에 적자를 낸 과의 문제는 무엇인지.
과잉 투자되는 곳은 없는지.
뒷방 늙은이처럼 서류나 검토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야 만 것이다.
그러니.
“히잉…….”
다시 병원장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그는 축 늘어졌다.
삭은 빨랫줄 위에 말려진 오징어처럼.
분명 어젯밤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았었는데.
여성 갱년기보다 더 무섭다는 남성 갱년기!
갑자기 급우울해졌다.
“흐잉…….”
* * *
“뭐? 뭐라고 했습니까?”
“병원장님이 친히 내과 계열을 순시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말입니까?”
“예, 대외협력팀장 보고도 펑크내고 갑자기 순시를 하다가…….”
급하게 들어와 오지호의 동향을 보고하던 오인지가 말꼬리를 흐렸다.
부재일의 심술보가 부들부들 떨렸기 때문.
개표 결과가 발표된 후에 악수를 청했던 오지호의 손길 또한 외면했을 정도로 분노에 가득 찬 부재일.
괜히 보고한 거 같아 뒤늦은 후회마저 밀려온다.
오인지가 침묵하자, 부재일이 물었다.
“중간에 돌아갔다고요?”
“네.”
“외과 계열은 돌지도 않았다?”
“임상 계열도 돌지 않았습니다.”
“경고를 하고 돌아갔다?”
“그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혼자 있고 싶습니다.”
“예, 부원장님.”
오인지를 말 한마디로 내보낸 부재일이 한참을 서성거렸다.
그 옛날에는 그 자신이 원장을 하던 시절 또한 있었다.
한데 최근에는 연달아 패했고.
그토록 가까웠던 병원장 자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기에, 울화통이 터져 죽을 거 같았다.
한참 고민하던 그가 오지호한테 문자를 보냈다.
[축하드립니다.]답장은 한참 뒤에 왔다.
[아아, 고맙습니다.] [즐거우십니까?] [?????] [즐거우시냐고요!]답장은 한참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흐잉…….]뒤늦게 문자가 왔고, 이를 확인한 부재일은 몸을 떨어 댔다.
더 기분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