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88)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388화(388/388)
388화. 진짜 그 뜻이 그게 아닌데
‘어디 한번 두고 봅시다.’와 같은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한데 ‘흐잉…….’이라니.
영문도 알 수 없고.
속만 터져 죽을 지경!
한참 얼굴이 벌게진 부재일은, 결국 소집령을 내렸다.
* * *
잠시 후.
오후 8시.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는 바쁘디바쁜 교수 또한 한가한 시간이다.
외래는 끝난 지 오래.
각종 시술 또한 마감했다.
그뿐이랴.
오후 회진 또한 끝났다.
정규 근무 시간이 완전히 종료된 것이다.
그러니.
“허허…….”
“갑자기 왜…….”
“혹시…….”
대회의실에 모인 내과 교수들은 작게나마 소곤거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세 번 연속으로 진 부재일.
그가 갑자기 소집한 자리.
혹시 모를 일이다.
부원장 자리마저 내놓겠다며 사퇴할지.
그런 그들을 뒤늦게 들어온 부재일이 조용히 지켜봤다.
소화기.
순환기.
호흡기.
신장.
내분비.
등등.
내과 계열의 중심축!
그간 뜻을 같이 했던 이들.
알게 모르게 흔들리고 있었고.
불만이 턱 끝까지 치솟은 이들 또한 있을지 몰랐다.
그러니 먼저 내부 단속부터 해야 했다.
당장 부재일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모든 건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그러니 사퇴해야겠습니다.”
“……!”
“그동안 부족한 이 사람을 도와주느라 다들 고생이 많았습니다.”
전부 내려놓겠다는 말.
예상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너무도 전격적인 행태라 다들 기겁했다.
차순위 투표자가 부원장을 하는 건 관례.
그가 당장 사퇴한다면 부원장 자리를 두고 또다시 투표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니 당장.
“안 됩니다. 부원장님! 사퇴라니요!”
“맞습니다! 저희를 계속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허허, 정말 안 될 말씀입니다.”
이런 얘기만 주야장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부재일 또한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선조 소경 대왕이라 불리었던 그 옛날 조선의 왕.
인조, 고종과 함께 3대 암군으로 불리었던 선조가 자주 써먹던 방법!
이른바 양위 파동을 일으킨 부재일이었다.
* * *
왕이 왕의 자리를 내놓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찍히는 건 당연지사.
다들 납작 엎드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를 외쳐야 했다.
감히 ‘그래, 너 내려와.’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충성심도 시험하고 겸사겸사 조직도 휘어잡을 겸 자주 써먹던 선조의 양위 파동!
부재일 또한 교수들의 만류를 들으며 계속해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30분 후.
한참이 지나서야 마지 못하는 척 뜻을 철회한다.
“뭐, 어쩔 수 없군요.”
그렇게 사퇴 파동을 통해 다시 한번 조직을 움켜쥔 그가 단언했다.
“그간 많아 봐야 두 표, 아니, 세 표 차로 졌습니다. 한데 이번엔 다섯 표 차이가 났지요. 우리 중의 누군가가 저쪽을 찍었다는 말입니다.”
배신자가 있다는 말.
당장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 * *
테뉴어(종신 정년 보장)를 받지 못한 교수 또한 있는 자리.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 부재일이 단언했다.
“배신자를 찾아내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 옛날 관도 대전에서 승전한 조조도 원소와 내통했던 신료들의 편지를 전부 불태웠다지요.”
“…….”
“이 중에 배신자가 있든 없든, 내 마음속 편지는 오늘부로 전부 불태운 지 오래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잘해 봅시다.”
부원장다운 리더쉽을 보인 다음.
그가 다시 강한 톤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신임 병원장과의 허니문. 아니, 신임도 아니지요. 연임이니까. 허니문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재활이야 다시 배신한 이유가 명확하지만, 산부인과와 성형이 배신한 이유는 아직 모르지요.”
“곧 있으면 알게 되겠지요. 이번 운영회의에 안건으로 올라오지 않겠습니까. 무리해서라도 통과시키려고 들 겁니다.”
“그때가 기회지요.”
부재일이 한참 말을 이었다.
내과 계열 또한 비슷한 안건을 올리자고.
그래서 저쪽이 반대하게 한 다음.
이를 명분 삼아 청구서를 내미는 다른 과의 안건 또한 반대하자고.
부재일의 설명이 끝나자 다들 감탄했다.
“외과 계열과 임상 계열을 다시 분열시키는 전략이군요.”
“공수표가 된 걸 알면 다음번엔 확실하게 저희 쪽으로 돌아설 겁니다.”
“이런 걸 바로 신의 한 수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하핫.”
조조 흉내를 내는 엄백호.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간신다운 모습이었다.
* * *
어느덧 운영회의 날.
부재일과 내과 계열 과장들은 작정을 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겠다고.
그러니 그 자신들이 먼저 안건을 올렸고.
이를 두고 성심성의 껏 논의해야 했다.
문제는 병원장인 오지호가 아직 제정신이 아니라는 거.
그 옛날 레지던트와 펠로우 시절을 그리워하고.
현업에서 동기들과 동고동락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오지호는 여전히 흐물거리고 있었다.
‘내가 어느새 반기지 않는 인물이 됐구나. 허허.’
‘다들 나를 꺼리고 있어.’
‘내가. 내가 어느새 늙어 버렸다고. 뒷방늙은이가 된 게야.’
암 환자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다섯 단계를 거치며 기막힌 심리 변화를 보여 주듯.
그 또한 비슷한 코스를 거치는 상황.
그러니.
“당장 신장내과에서 필요한 예산이 20억입니다.”
신장내과장이 이런 말을 했지만,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우용만이 총대를 맸다.
“투석기를 교체하겠다는 건데. 왜 멀쩡한 투석기를 교체하겠다는 겁니까.”
“스웨덴에 있는 갬브로사에서 최첨단 투석기를 내놨습니다. 삼선 병원 또한 도입했으니, 우리도 도입해야지요.”
“예산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법입니다.”
“혈압 개선도 빠르고. 응고 예방율도 높고. 기존 장비보다 다 좋다는데. 뭘 따지고 드는 겁니까.”
공격적인 어투.
우용만은 냉정을 유지했지만.
상대는 질척거렸다.
진흙탕 싸움을 하자는 듯이.
허니 늘 그렇듯 투표로 정해야 했다.
하지만.
“아아, 당장 목돈이 부족하면 리스로 처리하면 되겠군요.”
한참 관심없어하던 오지호는 이런 말로 퉁을 쳤다.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이.
* * *
‘뭐, 뭐지?’
‘병원장님이 왜.’
‘신장내과면 내과 계열인데?’
‘설마 신장내과장이 배신자?’
‘뒷거래가 있었던 거야? 뭐야?’
‘배신자가 있을 게 분명하다더니.’
오지호의 결단.
다들 기겁해 놀라했다.
특히나 가장 당황한 건 꼴사납게 선조 흉내를 냈던 부재일이었다.
신장내과장이 배신할 확률은 0%.
하지만 오지호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 자신이 잘못 생각한 모양.
일이 이렇게 되면 먼저 내과 쪽에서 내민 안건을 전부 부결시킨 다음 오지호를 공격하겠다는 계획.
그러니까 선거 후 청구서를 들이미는 다른 과의 안건 또한 전부 발목 잡겠다는 대전략마저 흐트러질지 몰랐다.
부재일이 당황해하는 사이.
우용만이 안경을 밀어 올렸다.
“병원장님.”
“아아, 듣고 있습니다. 말해요. 말해.”
“이 안건은 좀 더 검토가 필요합니다.”
“됐습니다. 됐어요.”
“병원장님!”
“아아, 됐어요. 됐어.”
우용만이 중간에 살짝 목소리를 높였지만, 오지호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부재일의 심술보가 다시 한번 움틀거렸다.
신장내과장의 배신을 숨기기 위한 약속 대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 * *
다음 안건은 소화기내과장이 올린 투자 건.
영상의학과와 쉐어해서 쓰고 있는 혈관 조영 장비를 데디케이트하게 도입하겠다는 말에 당장 우용만이 나섰다.
“데디케이트(전용)하게 쓸 이유가 뭐가 있지요.”
“가동률을 봐도 거의 100%에 준합니다만.”
“예약을 잡기도 힘들다는 건데. 그럼 추가로 1대만 도입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용 장비를 구축하겠다니요. 그것도 10대나 필요한 이유가 대체 뭡니까.”
“고난도 내시경 중재술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장비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꼭 필요하지 않은 장비는 없습니다.”
우용만이 냉기를 풀풀 풍겼다.
의사들의 장비 욕심.
골프광이나 낚시광에 비할 바가 못됐다.
통제하지 않는 순간 수십 억, 아니 수백 억이 탕진될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신형 투석기. 아티스 큐. 이거 진짜 물건입니다.”
“예산 낭비입니다.”
“아니, 진짜 기존 장비보다 좋다니까요. 영상 처리 속도도 빨라졌고. 촬영이랑 시술 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단 말입니다!”
“기존 장비도 충분합니다.”
“기존 장비로는 찍을 수 없던 각도에서도 접근이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계속되는 말다툼.
피폭되는 방산선량 또한 줄일 수 있다.
화질 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
여러 말이 오갔고.
싸움은 한참 계속됐다.
이에 부재일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오지호.
그러니까 만사가 귀찮아질 정도로 감정 기복을 보이던 오지호가 교통정리를 했다.
“아아, 그럼 이것도 도입하지요. 이 또한 돈이 없으니까 리스로 진행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 * *
우용만의 요구로 중단된 운영회의.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러 가거나, 담배를 태우러 가거나, 잠깐이지만 눈을 붙이는 과장들로 장내는 붐볐다.
그 와중에 부재일은 속이 쓰라려 죽을 지경이다.
적을 분열시켜야 하는데.
다시 쪼개 놔야 하는데.
그래야 다시 돌아올 원장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데.
배신자가 누군지 알게 됐다.
관도대전에서 어렵게 원소를 격파한 조조를 흉내 내며 배신자는 묻고 가겠다고 했거늘.
상대가 저리 나오니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든 것이다.
‘신장내과장이랑 소화기내과장이 감히 나를 배신해?’
굵고 짧은 상념도 잠시.
분노에 휩싸인 부재일한테 소화기내과장과 신장내과장이 다가왔다.
“부원장님.”
“나중에 말씀하시지요. 지금은 조금 피곤합니다.”
“그게. 음.”
“됐습니다.”
“부원장님, 저희는 진짜 아닙니다.”
“아아. 알고 있습니다. 잠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런 것뿐입니다.”
그대로 눈을 감아 버리는 부재일.
소화기내과장과 신장내과장이 둘 다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를 내보이지도 못했고.
그들 또한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당치도 않는 배신자 취급.
해명할 기회조차 없었고 다른 이들 또한 그 자신들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오지호의 예측되지 않는 행보.
내과 계열만 분열 직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 * *
굴지의 모 기업에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쓴 보고서를 요구하는 ‘서초’가 있는 반면.
아신 병원에는 우용만이 있었다.
강력한 예산 통제!
내원 환자 수를 기반으로 한 빈틈없는 BEP 시점 예측!
현장 조사를 나온 심평원에 대응하는 완벽한 태도까지!
우용만은 타의 귀감이 되는 운영과장.
아니, 말이 과장이지 실세 중의 실세였다.
하지만 그런 우용만도 오지호의 행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득도 해 보고.
그만두겠다고 협박도 해 보고.
대체 왜 이러냐고 물어도 보고.
정회 시간에 별의별 짓을 다 했다.
그래도 오지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나도 예전에는 저럴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라는 한탄만 늘어놓자.
우용만이 곧바로 이진혁을 콜했다.
황급히 달려온 황금 오리.
아니, 황금 거위.
의아한 표정의 진혁을 두고 우용만이 그간 있었던 일을 늘어놓았다.
이에 진혁이 당장 오지호한테 다가갔다.
“병원장님.”
“어어?”
“접니다.”
“아아, 그래. 그래.”
살짝 반기다가 다시 축 늘어진다.
선거 전략을 몰래 세우는 걸 확인하고서 호통을 쳤던 오지호가 그리울 정도!
진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응?”
“췌장절제술을 끝낸 환자인데요.”
“어어.”
“수술 후에 물이 차서 응급실에 내원했는데. 그게…….”
한참 계속된 질문.
그냥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응당 가르침을 내려 줄 수 있는 수준을 물었고.
뒤늦게 오지호가 반응했다.
이에 진혁이 해맑게 웃었다.
“우와. 역시.”
“역시 뭐.”
“역시 병원장님밖에 없습니다!”
“크음, 큼.”
“다른 교수님들은 그게 좀.”
“음?”
“뭐, 이 선생은 모르는 게 없지 않냐. 그냥 한번 보면 바로 뚝딱하지 않냐. 그냥 다 아는 것처럼 말해서요. 근데 이게 아무리 천재라도 어려운 부분은 있거든요.”
잠시 숨을 고른 진혁이 오지호의 안색을 살폈다.
조금씩 밝아지는 표정.
진혁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런데.”
“으응.”
“종종 모르는 걸 여쭤봐도 될까요? 메신저로 연락드리면 될 거 같은데. 헤헤.”
“그으으래?”
“예. 바쁘시겠지만 가르침을 내려 주시면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헤헤.”
진혁이 해맑게 웃자, 한순간에 웃음을 잃었던 오지호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폐경기를 겪는 남자를 일으키는 법.
그건 확 줄어 버린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확인하고 호르몬 주사를 놓는 그런 일 따위가 아니었다.
뒷방 늙은이가 아니라는 확신!
그 자신의 가치가 여전히 충분하다는 걸 보여 주면 그만이었다.
* * *
다시 정신을 차린 오지호.
그토록 아끼던 이진혁이 죽기보다 싫어했던 애교까지 부려서 그런 걸까.
아니면 롤러코스터나 다름없는 감정 기복을 보이는 남성 갱년기다운 증상인 걸까.
다시 기운을 찾은 그는 연신 내과 계열의 안건을 부결시켰고.
이는 부재일의 의심만 증폭시켰다.
신장내과와 소화기내과에서 올린 안건은 그대로 통과!
다른 안건은 전부 부결!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곧바로 한국형 산후조리원을 미국에 세우자는 안건이 올라왔지만, 부재일은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선거 직후에 있던 운영회의마저 완패.
정말 완패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내부 분열의 싹이 되는 의심마저 품게 된 채로.
* * *
다시 시작된 로테이션.
중증 처치 구역에서 일하던 진혁이 EICU의 지박령인 윤희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과장님이 오늘부터 EICU를 돌라고 하셔서요.”
“아아. 부탁은 무슨. 나도 잘 부탁해. 그보다. 아, 아니다. 됐어.”
“사고 치지 말라는 말씀이시죠? 사고는 안 칠 겁니다. 뭐, 군대 가기 전에 잠깐 있다 가는 건데요.”
“그, 그래.”
혹시 선거에 개입한 건 아니냐고 물어보려던 윤희철이 어색하게 웃었다.
분명 무슨 일을 벌인 게 분명했는데.
입을 딱 다무니 더 이상 물어볼 게 없었다.
그런 그가 한참 일을 하다가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는 진혁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군가와 메신저를 하는 이진혁.
그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이자, 슬며시 다가갔다.
그러다가.
“어어!”
윤희철이 너무 놀라 뒷걸음질쳤다.
양아들 대우를 받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니 병원장님이 이진혁을 아끼고 사랑하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질문을 병원장한테 던지고 있는 이진혁의 모습은 뭐랄까.
그래.
로열.
로열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