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40)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40화(40/388)
40화. 응급실 사람들 (4)
무슨 방법이 있을까.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하지만 생각나는 아이디어는 없었다.
돈이 있어도 치료하지 않겠다는 최익진.
당장 치료비를 마련할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데, 행려 환자를 설득할 방법은 요원해 보였다.
그렇게 한창 고심할 때.
미래에 방영된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응급실 사람들』이라는 방송이었다.
응급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 주고.
후원을 받는 프로그램.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거기에 더해.
제 처지도 생각났다.
지금도 자신을 노리고 있을지 모르는 육선재와 부원장.
혹시 모를 탄압과 외압을 막기 위해 언론을 이용하고 유명해져야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프로그램을 한번 기획해 봐?’
엉뚱한 결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진혁이 깜짝 놀라 흠칫거렸다.
비록 최익진한테도 좋은 일일 테지만, 환자를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그래선 안 됐다.
정말 못된 생각이었다.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마당 쓸고 돈도 줍고.
뭐 이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가치.
그건 바로 생명의 존엄성이다.
방송도 성사시키기 어려웠지만, 설사 그 프로그램을 통해 최익진이 후원을 받더라도 애초에 의도 자체가 순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몹쓸 생각을 했던 진혁이 자책했다.
서신대 흉부외과장으로 사회생활을 오래 했던 탓일까.
아니면 정치질과 친목질이 난무한 종합 병원에 오래 몸담아서일까.
어느새 자신도 물들었을지도 모른다며, 한참 자책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물들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환자한테 항상 진심이었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그래.
어쩌면 순수했던 때 묻지 않은 그 옛날의 모습은 기억 저편의 아련한 조각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차트로 레지던트를 조질 수 있었고.
장길만한테 레지던트는 어렵다고 통보받던 날엔, 일부러 기자 회견을 자청하며 아신 병원을 외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 나도 변한 건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그렇게 고갯짓할 때 왠지 모르게 손이 눈에 들어왔다.
주름 하나 없는 손.
자그마한 떨림조차 없는 창창한 손이다.
이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손을 써서 살릴 수 있는 수많은 환자가 아른거렸다.
그러다 문득, 다시 생각한다.
‘내가 진짜 변한 건가?’
아니, 아니었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달라졌지만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본질.
환자를 살린다는 사명을 잊지 않고 있었다.
죽음과 싸운다.
몸을 갉아 먹는 질환을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 깨부수고, 환자의 운명을 바꾼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이게 자신이 가진 사명이자 본질이었다.
제 본질과 사명만 잊지 않는다면.
그 의도의 순수성이 살짝 불순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살릴 수만 있다면.
치료만 받게 할 수 있다면.
환자의 숙명을 바꿀 수만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문득 ‘사람마다 정해진 명줄이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말.
한평생 싸워 왔던 속어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말이 끔찍이도 싫다.
그렇게 내면을 관조한 순간 자신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 이건 어쩌면 외할아버지 때문일지도 몰랐다.
* * *
그날은 눈이 많이 오는 날이었다.
기록적 폭설과 한파로 불렸던 날이기도 했다.
엄마는 가지 말라며 만류했지만 난 꼭 가야 한다며 길을 나섰고.
부모님이 적어 주신 루트를 따라 이동했다.
물론 가는 길은 고됐다.
두메산골이라고 표현하긴 그랬지만, 읍내와도 꽤 거리가 있었고.
면 소재지도 한참 나가야 했다.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탔고.
꽤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그것도 버스 터미널에.
“할아버지~~!”
“어이쿠! 우리 귀염둥이!!”
“저 이제 귀염둥이 아니에요! 이제 중학생인데요.”
“보자 보자, 진혁이가 이제 1학년이던가?”
“뭐, 아직 졸업은 안 했지만 그게 그거죠. 근데 왜 고생했다고 안 하세요?”
“아이쿠! 고생했다. 고생했어. 오느라 힘들었지?”
“하나도 안 힘들었어요.”
“허허, 다 컸어. 다 큰 게야!”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터트렸고 나도 덩달아 웃었다.
할머니를 여의고 홀로 사시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왔다.
그리고 그 사실이 뿌듯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나도 다 컸단 말이야.’
“어여 들어가자.”
“네, 할아버지.”
우린 또다시 버스를 탔다.
물론 바로 탈 순 없었다.
30분마다 한 번씩 온다는 버스를 한참 기다린 뒤에야 탈 수 있었고.
또다시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굽이진 비포장도로를 따라 버스가 유난스럽게 덜컹거렸지만 상관없었다.
난 버스 안에서도 쉴 틈 없이 떠들었다.
소제는 다양했고.
화젯거리는 떨어질 줄 몰랐다.
그렇게 내린 버스.
난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했다.
철판에 낀 녹이 부스스 떨어지기 일쑤였고, 구들장마저 위태해 보이는 낡은 시골집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할아버지처럼 정겨워서 좋았다.
방에 앉기 무섭게 뜨거운 온기가 느껴진다.
혹시라도 추울까 싶어 후끈하게 데운 거다.
“따뜻하고 좋지? 감자 줄까?”
“좋죠!”
할아버지가 싱긋 웃으며 몸을 움직였다.
곧,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감자 여섯 덩이가 놓인다.
껍질을 살짝 벗긴 다음 찐 탓일까.
한 입 먹자마자 부드러운 크림 맛이 났다.
“맛있어요.”
“그러다 체할라. 천천히 먹어.”
“할아버지도 드세요.”
“이 할애빈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에이, 거짓말. 어떻게 그래요.”
“허허, 그렇대두.”
“말도 안 돼요.”
난 할아버지와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보는 것만으로 배부를 수 없다는 말을 했고, 상식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할아버진 너털웃음만 터트렸다.
그저 손자가 귀여운 거다.
“엄마랑 아빠는?”
“바쁘시대요. 엄마 요새 마트 다녀요.”
“마트? 애나 키울 것이지 무슨 마트여.”
“돈 벌어야 한대요.”
“뭘 그렇게 바쁘게 살아! 쯧쯧. 순리를 거스르려고 하면 안 되는 게야.”
할아버지는 연신 몸만 축난다며 못마땅해했다.
학원비라도 보태려고 한다는 말을 했지만, ‘다 제 욕심인 게야’라며 되레 쯧쯧거리기만 하셨다.
엄마가 욕먹는 게 싫었던 나는 화제를 돌렸다.
“순리는 뭐예요?”
“사람은 모름지기 하늘이 정해 준 대로 살아야 하는 법이다.”
“?”
“부자가 될 놈은 부자가 되고, 가난하게 살 놈은 가난하게 살고. 일찍 죽을 놈은 일찍 죽고. 장수할 놈은 장수하고. 다 그런 게야. 그게 싫다고 발버둥 쳐 봤자 힘들기만 한 거다.”
할아버지는 운명론에 심취해 있었다.
사람의 선택과 행동은 다 정해져 있고.
괜한 욕심에 발버둥 치지 말라는 주의였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였다.
“그럼 다 정해진 거예요?”
“그럼~! 다 정해졌지.”
“오늘 여기 온 것도요? 저 엄청 힘들 게 왔어요.”
“그것도 다 하늘이 정해 준 게다.”
“에이,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건데 그런 게 어딨어요.”
“그런 게 있다. 요놈아.”
난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선 시대에 있었던 일을 듣는 느낌이었다.
순사한테 쫓기고.
독립운동가를 숨겨 주고.
광복이 됐으며.
6.25 전쟁이 터졌다는 얘기 같은 거다.
하지만.
반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짝꿍인 춘수도 생각이 달랐고.
친한 친구인 태준이도 의견이 달랐다.
“이제 점이나 볼까?”
“또요?”
“또는 무슨! 매일 운세를 봐야 하는 게야.”
“그러다 결과가 안 좋으면요?”
“안 좋으면 꼼짝 말고 집에 있어야지.”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그거 다 거짓말이에요.”
분명 조금 전까지 춘수와 태준이를 생각했던 나지만, 이번만큼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게 나온 점괘.
대운(大運)이었다.
“오늘은 운수 대통한 날이구나!! 껄껄.”
할아버지는 연신 좋아라 했고 난 그게 못마땅해 심통을 부렸다.
말도 안 된다고.
이런 건 없다는 말까지 했다.
그 후엔 깜빡 잠이 들었다.
초행길은 아니었지만, 한참 긴장하고 왔던 상황.
저도 모르게 잠이 든 거다.
잠에서 깬 나는 할아버지부터 찾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부엌도 가 보고.
작은 방도 가 봤다.
한참 떨어져 있는 화장실도 가 본다.
하지만 아무 데도 없었다.
난 기다렸다.
1시간, 2시간.
할아버지가 올 때까지 계속 기다렸다.
운명론을 찰떡같이 믿고 있다지만.
부지런한 습성은 어디 가지 않던 할아버지.
추위에 귀가 얼어붙고.
손과 발이 시렸지만.
괜히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내가 기다렸던 건…….
어쩌면 부모님 손을 놓치면 자리에 꼼짝 말고 있어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 탓일지도 몰랐다.
얼마나 됐을까.
갑자기 문밖이 시끄러워졌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래! 어르신!!”
난 깜짝 놀라 뛰쳐나갔다.
그러자 할아버지를 등에 업은 옆집 아저씨가 보였다.
마을을 지키는 유일한 중년.
최 씨 아저씨였다.
“아저씨!!”
“아이고! 진혁아 큰일 났다! 큰일 났어!!”
“이, 이게…….”
난 창백한 얼굴의 할아버지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벌벌 떨기만 했다.
“큰일이다! 큰일이야! 어르신이 넘어지신 모양이야!”
“어, 어디에서요!”
“논두렁에서 넘어지셨어. 아이고! 야단났다! 눈이 많이 와서 보이지도 않는데…… 아이참!!”
최 씨 아저씨는 허둥지둥거렸고.
난 갑자기 터져 나온 눈물에 어쩔 줄 몰라 했다.
“흐으윽. 할아버지!!”
울고불고 할아버지한테 매달렸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손주한테 준다고 꼬불쳐 둔 쌈짓돈을 바지에서 꺼내며 항상 허허거리기만 했던 할아버지 대신에 차디찬 몸뚱어리만 대답 없이 울릴 뿐이었다.
최소 2시간.
고관절이 부러진 탓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깊은 논두렁에 빠져 허우적거린 대가였다.
“할아버지!!! 끄으으윽. 운수 좋은 날이라면서요! 대운이라면서요!!!”
난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물론 최 씨 아저씨는 어른인 만큼 나와 행동이 달랐다.
당장 할아버지의 옷을 벗기고.
마른 수건으로 그의 몸을 닦았다.
그러고는 곧장 할아버지를 둘러업었다.
최 씨 아저씨의 트럭에 올라탄 우리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보건소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최 씨 아저씨도 알고 있었다.
“읍에 있는 병원. 병원으로 가야 해!!”
부으으응.
최 씨 아저씨는 낡은 트럭을 몰며 열심히 달렸다.
덜커덩.
덜커덩.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의 몸은 요동쳤고.
난 할아버지를 꼭 붙잡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지만.
계속 불러야만 할 거 같았다.
그래야 할아버지의 혼이 몸에 붙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의 발로였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다.
비포장도로는 여전히 트럭을 쨍하게 울렸고.
그때마다 몸이 흔들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포장도로가 우릴 반겼다.
최 씨 아저씨는 더 속도를 높였다.
부우우웅-
순식간에 도착한 병원.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달려왔다.
의사들이었다.
한 의사가 자그마한 랜턴을 할아버지의 눈에 비췄다.
“스투퍼(Stupor, 혼미) 상태입니다!”
“젠장! 동공 반응은?”
“아예 없습니다!”
“야단났네. 이거 뭐야! 청색증까지 온 거야!? 체온은 왜 이렇게 낮아!!”
흰 가운을 입은 사내가 할아버지의 입술을 가리켰다.
파랗게 질린 입술.
그러고 보니 입술이 파랬고 손톱과 발톱 또한 푸르렀다.
“뭐 해! 빨리 옮겨!!”
드르르륵.
드르르륵.
다급히 뛰어가는 이들.
그들을 쫓아 나도 달렸다.
놓칠세라 뛰고 또 뛰었다.
“핫팩 갖고 와!! 핫팩!!”
곧 할아버지의 입에 마스크가 씌워진다.
나중에 알았지만, 저체온증에 따라 부족해진 산소를 공급하는 행위라 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전선이 주렁주렁 달린 장치를 모니터에 연결했다.
그러고는 이상한 전극을 붙였다.
빨간색, 노란색, 녹색, 파란색, 주황색, 보라색.
형형색색의 전극이었다.
모니터를 확인한 의사가 소리쳤다.
“BP(혈압) 80/60입니다!”
“도파민 갖고 와! 뭐 해!!”
“네!”
“서맥(Bradycardia, 심장이 정상보다 느리게 뛰는 현상)! 최 선생! 빨리!!”
정신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난 태엽이 고장 난 호두 깎기 인형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그들이 뭐라고 떠드는지.
뭐라 소리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었고.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난 귀머거리가 됐다.
그리고 잠시 후 눈 뜬 소경이 됐다.
의사들이 커튼을 쳤기 때문이다.
차와아아악!
“어레스트!!”
“에피 1mg 투약해!!”
“알겠습니다!!”
“뭐 해!! 제세동기 충전해!!”
“충전 시작합니다!!”
“일단 달라붙어!!”
후웁.
후웁.
계속해서 의사들의 외침이 들렸다.
아니, 들렸지만 들리지 않았다.
알아들을 수 없었으니까.
“100줄 차지!!”
“충전됐습니다!”
“샷 들어가!!”
“샷!!”
털썩.
“아직 부족합니다!”
“나도 알아!! 150줄 차지!”
“충전됐습니다!”
“샷!”
털썩.
커튼 사이로 요란스럽게 움직이는 음영들.
그리고 연신 들리는 고성.
흰 가운을 입은 이들의 사투가 계속됐지만.
들리되 들리지 않았고.
보이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하늘이 빙글 돌았다.
땅이 곧 내 얼굴과 마주쳤다.
그러고선 기억이 없었다.
그렇게 눈을 떴을 때, 나는 할아버지랑 함께 있었다.
할아버지와 군고구마를 쪄 먹고.
비닐하우스에 있는 개미굴을 파고.
여왕개미를 손에 잡고 뛰놀았다.
연신 하하호호거릴 정도로 행복했고, 또 즐거웠다.
하지만.
또다시 눈을 뜬 순간 알았다.
정신을 잃고 할아버지를 만난 건 전부 꿈이었다.
아주 짧고 행복한 단꿈이었다.
그 후에 펼쳐진 건 지옥이었다.
어느새 병원으로 달려온 엄마는 끝없이 울었다.
“할아버지는?”
“끄으으윽. 흐으윽.”
“할, 할아버지는 어떻게 됐어?”
“하늘나라로 가셨어……. 흐으윽.”
돌아가셨다는 말.
내 눈에서 핏물이 흘렀다.
아직 어렸지만, 엄마의 말에 담긴 슬픔과 고통이 절로 느껴져서 그랬을지도 몰랐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을 때.
의사가 다가와 말했다.
“저체온증에 의한 합병증 같은 겁니다.”
그가 한참을 설명했다.
저체온증 환자는 조그만 충격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자그마한 충격에도 부정맥이 올 수 있다고 했다.
최 씨 아저씨는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평소 고인이 그토록 말했던 하늘이 정해진 운명이 그런 거라며 되레 그를 위로했다.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건 다 의사들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시골 병원.
시도 아니고 군도 아니고.
그저 면에 있는 작은 병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거다.
운명? 대체 운명이라는 게 뭐란 말인가.
그런 게 있다면.
아니, 그런 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 후.
할아버지 산소 앞에서 다짐했다.
앞으로 운세 따위는 믿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사람의 운명 따위는 없다고.
아니, 내가 다 바꿔 주겠다고.
다 바꾸겠다고.
그렇게 의사가 되기로 했고.
집에 돌아와 말없이 공부에 열중했다.
1년, 2년, 3년
고등학생이 돼도 내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옅어질 때도 항상 생각했다.
누군가의 운명이 ‘여기’까지라고 정의된다면, 난 그들의 운명을 바꾸겠다고.
그 결과 서신대 의대에 진학했다.
기뻐하는 부모님과 함께 할아버지 산소에 찾아간 나는 또다시 다짐했다.
그 결심과 약속을 지키려면 계속 노력해야 했다.
끝없이 노력하고 또 정진해야 했다.
최지봉 교수를 만나 흉부외과에 진학한 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지도 몰랐다.
환자를 살리는 바이탈 과에 가고 싶었으니까.
물론, 때때로 후회도 많이 했다.
잠도 잘 수 없었고.
가족과 연락도 할 수 없었다.
아예 일상생활이라는 게 없었다.
내 삶은 병원으로 채색됐다.
삶이 곧 병원이었고.
병원이 곧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옅어지지 않았다.
되레 그 생각이 강해져 환자한테 끝없이 집착했다.
살린다.
고친다.
치료한다.
나를 휘감는 대명제들 앞에서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다.
3년, 5년, 10년, 15년, 20년.
세월이 흘렀다.
그래도 난 환자한테 여전히 집착했고.
함부로 불가능을 언급하고, 포기하는 걸 싫어했다.
흰머리는 새치라고 생각했던 나이도 지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였을까.
난 어머니가 건강검진을 받았으면 했다.
하지만, 늘 같은 소리가 돌아왔다.
“방사선 때문에 안 돼.”
“어머니, 그거 검사해도 영향도 없어요.”
“그래도 싫어. 엄마는 건강해. 항상 생식만 먹는걸.”
“예방 의학 관점에서 꼭 받으셔야 해요.”
“어머, 얘가! 평생 안 받아도 이렇게 잘만 살았어!”
엄마는 고집스러웠다.
여느 노인네처럼 CT 촬영이 암을 유발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리고 나는 설득하지 못했다.
아니, 설득할 시간이 없었다고 해야 맞았다.
어느덧 머리를 염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됐을 때.
어머니의 암 진단 소식을 들었다.
기침을 두 달째 하다 병원에 가서 결국 CT를 촬영한 거다.
CT를 확인한 내 손은 파르르 떨렸고.
내 몸은 바들거렸다.
폐암 4기.
1기도 아니고,
2기도 아니었으며,
3기는 더욱더 아니었다.
이른바 시한부.
나는 후회하고.
자책했으며.
또다시 울어야 했다.
정작 환자는 따로 있는데.
다른 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저버렸다는 죄책감에 잠도 못 잘 정도로 아파했다.
그렇게 1달, 2달.
3달이 지났다.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 갔다.
그리고 내 감정은…….
조금씩 무뎌졌다.
세월이 그렇게 만든 걸까.
아니면 나이를 먹은 걸까.
그 정도 살았으면 호상이라고 어르신들이 장례식장에서 웃고 떠드는 걸 이젠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돼서 그런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난 어머니의 생존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시한부의 말로를 알게 모르게 받아들인 거다.
어머니는 힘들어하셨지만, 한마디만 하셨다.
“내 팔자도 여기까진가 보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순응.
난 처음으로 정해진 운명에 순응했다.
예정된 죽음에 저항할 수 없다며 체념했고.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마음속 깊이 받아들였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어머니를 찾아갔다.
하루가 다르게 어머니는 쇠약해져 갔다.
이젠 삭발을 안 해도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았고.
뼈마디는 앙상해졌으며.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아파했다.
가슴이 아팠지만 일도 해야 했다.
아니 일에 오히려 매진했다.
매일같이 수술하고.
매일같이 외래를 봤다.
하지만.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후회했다.
자책했다.
못난 아들이라며 자책하고 한탄하길 수없이 반복했고.
다시 눈을 떴을 땐 거짓말처럼 26살로 돌아와 있었다.
기쁘고 행복했지만, 지쳐 있었다.
심지가 다 타 버린 촛농이 더 이상 불을 밝힐 수 없는 것처럼 번아웃이 왔다.
왜?
이유는 명확했다.
사람의 수명은 하늘에서 정한다는 그놈의 운명론적인 관점에 패배했기 때문이다.
그래.
폐암 4기인 어머니를 보며 그녀의 수명이 다했다는 것에 순응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이번 생은 조용히 살기로 결심했다.
그건 전생에 어머니한테 못다 한 아들로서의 효도를 다 하고자 하는 이기심의 발로였다.
아니, 어쩌면.
난 그럴 자격이 있는 놈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과를 갈지 고민했고.
부모님과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는 과를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다시 깨닫는다.
나는 여전히 환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아니, 그들이 혹시라도 어떻게 될까 싶어 과잉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래.
어쩌면 이 모든 건 할아버지 덕분일지도 몰랐다.
* * *
한참 상념에 빠져 있던 진혁을 깨운 건 김지연이었다.
“이 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아닙니다.”
상념에서 깬 진혁이 얼굴은 굳어 있었다.
‘고작 돈 때문에 환자를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다. 일단 방송은 최후의 수단. 다른 방법을 찾는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