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41)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41화(41/388)
41화. 응급실 사람들 (5)
갑자기 달라진 진혁의 태도.
김지연이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참 가만히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다시 입을 연 건 진혁이었다.
“혹시 아신 재단 말고, 프로그램 돌리는 곳이 없을까요?”
“저소득층 지원 프로그램 돌리는 곳 말씀하시는 거죠?”
“네.”
“돌리는 곳이야 많죠. 근데 소용없어요. 지금 순번 대기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하대요. 다들 난리잖아요. 돈이 웬수라니까요.”
“그래도 전화번호 명부 좀 구할 수 있을까요.”
진혁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자, 김지연이 가자미 눈을 떴다.
“혹시 최익진 환자 때문에 그러세요?”
“네. 그래도 알아는 봐야 할 거 같아서요. 하는 데까진 해 봐야죠.”
“그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리스트보다 암 병동 쪽이 나을 거예요. 확인해 볼게요.”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김지연이 눈을 찡긋거리고는 곧장 수화기를 들었다.
암 병동에 근무하는 동기한테 연락하는 거다.
김지연이 리스트를 입수하길 기다리는 사이.
진혁은 빠르게 차팅했다.
숨 쉴 틈도 없는 응급실.
전화를 돌리려면 일단 시간 확보가 중요했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빠르게 환자 기록지를 정리한다.
차팅이야 수없이 많이 해 왔으니, 되레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차팅하고 있을 때.
김상혁이 돌아왔다.
담배를 피우고 왔지만, 여전히 착잡한 얼굴이다.
진혁이 당장 제 계획을 설명했다.
“저, 치프. 그게…….”
“좋은데? 하는 데까진 해 보자는 거 아니야. 그럼 차라리 같이 하자.”
“!”
“뭘 그렇게 놀라! 나눠서 전화 돌리자고!”
“알겠습니다.”
진혁이 희게 웃으며 답했다.
야망왕이라고 인계장에 쓰여 있었지만, 가슴이 따뜻한 사내였다.
그때였다.
그새를 못 참고 김지연이 쪼르르 달려왔다.
“어머! 두 분 표정이 좀…….”
“왜요, 어떤데요.”
“사고 치실 분위기인데요?”
“에이, 또 그 소리! 저 사고 안 칩니다.”
김상혁이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는 곧장 물었다.
“그보다 어떻게 됐어요? 이 선생이 부탁한 거요.”
“바로 보내 준대요.”
“받으러 가는 게 아니라요?”
“에이, 팩스로 넣어주기로 했죠~! 10분 세이브했습니다!”
“오오~! 역시!!”
암 병동에 갔다 오지 않아도 된다는 함의.
김상혁이 밝게 웃으며 화답했다.
작은 희망을 품은 탓이다.
잠시 후.
팩스 수신기에서 기계음이 울리자 김지연이 달려갔다.
곧, 그녀가 종이 뭉치를 쥐고 흔들었다.
“저도 같이 할까요?”
“저희야 좋죠.”
“수쌤(수간호사)은 막아 주시는 거죠?”
“에이, 그건 저도 못 하죠.”
“흐음. 그럼 좀 힘든데……. 에잇. 우리 이 쌤이 있으니까 한번 도와드릴게요.”
“지금 저 밀린 겁니까?”
“그럼요, 호호. 이 쌤 덕분에 얼마나 편해졌는데요.”
차트 조지기 후 태도가 달라진 다른 과의 레지던트를 이르는 말.
항의 전화를 많이 받았던 김상혁은 그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다.
“전 초록 재단까지 콜할게요. 김 간호사님은 우성 재단까지. 나머지는 이진혁 선생이. 이렇게 나누죠.”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각자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거기 녹색 재단이죠. 여기 아신 병원 응급실입니다. 프로그램 신청 때문에 연락드렸는데요.”
[저, 죄송한데 지금 TO가 없어요.]뚜욱.
딸깍.
“네, 여기 아신 병원인데요. 혹시 TO 남는 거 있나요?”
[최소 6개월은 기다리셔야 해요.]“알겠습니다.”
뚜욱.
하나, 둘, 다섯, 열, 스물, 서른.
리스트에 있는 목록을 하나씩 지워 간다.
열심히 전화를 돌렸지만.
실패.
또 실패였다.
애초에 지원 TO조차 별로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지원자는 넘치는데, 후원자는 줄었다는 거다.
기업 산하의 재단은 출연금이 줄었고.
독지가의 도움으로 운영되는 곳은 그 손길이 끊겼다.
애초에 재원이 부족한 곳이 태반.
당장 운영조차 어렵다는 곳이 많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런 성과가 없자 김지연이 기진맥진한 표정을 지었다.
“없네요. 없어. 이제 어떻게 하죠?”
“그러게요. 흐음.”
김상혁마저 얕은 침음성을 토해 낸다.
더는 방법이 없다는 걸 아는 거다.
그때였다.
김상혁의 콜폰이 진동했다.
“예, 교수님. 바로 가겠습니다.”
윗선의 호출.
그가 쌩하니 사라지자.
김지연 또한 인사를 건넸다.
“수쌤이 혼내기 전에 가 볼게요.”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무슨.”
김지연마저 복귀한다.
이젠 자신의 차례.
진혁이 입술을 앙다물었다.
‘진짜 그 방법밖엔 없는 건가.’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 * *
한참 자리를 비웠건만.
오태상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장길만도 마찬가지였다.
말리그라 칭하며 엮이길 싫어하는 거다.
뭐, 맡은 일을 펑크냈다면 모를까.
밀린 일을 귀신같은 속도로 처리하니, 할 말이 없기도 할 터.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진혁은 업무에 매진했다.
로딩이 걸렸던 일을 쳐 내고.
또 쳐 낸다.
흉부외과장일 땐 하지 않았던 자질구레한 일들을 빠르게 끝낸다.
하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자꾸 행려 환자인 최익진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그 자신도 안다.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걸.
하지만, 제 눈에 들어온 사람을 쉽게 포기할 순 없었다.
그렇게 한참 정신없이 움직이고 난 뒤, 최익진을 찾았다.
그는 배를 감싸 쥐고 끙끙 앓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노숙 생활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온몸이 엉망인 상태.
그 여파가 한 번에 몰아치는 거다.
‘통증이 너무 심한데. 그동안 소주에 의존했던 건가.’
하루 이틀 시작된 통증이 아닐 터.
참고 참다 병원에 온 게 분명했다.
먼저 수액 줄을 체크했다.
그러고는 차트를 확인한다.
이미 두 번이나 수액을 바꿨고 진통제 또한 넣고 있었다.
치료를 거부했지만.
그렇다고 최익진은 돌아가지도 않았다.
그대로 응급실에 머무는 거다.
그런 그의 몸짓엔 시그널이 담겨 있었다.
‘살고 싶은 거다. 치료받고 싶은 거고.’
최익진은 분명 살고 싶어 했다.
입에서 나오는 거친 말들은 죽음을 향해 서 있었지만, 실제로는 죽고 싶지 않은 거다.
그렇게 한창 지켜보고 있을 때.
김지연이 진혁을 콜했다.
“이 쌤!! 여기 환자 좀 봐주세요!!”
“네네, 갑니다!!”
응급실은 정말이지 쉴 틈이 없었다.
* * *
진혁이 빠르게 환자를 살폈다.
나이는 23세.
아직 한창나이인 남성 환자였다.
“음낭에 통증이 있으시다고요?”
“네, 아파 죽겠습니다.”
“언제부터 그러셨죠?”
“몇 시간 안 됐어요. 한 3시간 전쯤부터 갑자기 이래요. 수영하고 나서 갑자기 아픈 거예요.”
“다른 증상은 없으세요?”
“벌써 세 번이나 토했어요.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서요. 지금도 속이 안 좋구요.”
피버(열)는 없지만, 구역과 구토 증상을 보이는 환자.
수영한 뒤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확인 좀 하겠습니다.”
촤르르륵.
곧장 커튼을 쳤다.
바지를 벗으라고 하지도 않았건만, 환자는 바지부터 내렸다.
부끄러움보다 고통이 지독했기 때문이다.
진혁이 육안으로 환부를 먼저 살폈다.
이른바 시진이다.
피부의 발진과 홍반.
색깔 변화를 살핀다.
부종과 궤양.
괴저반(괴사)의 유무를 확인한다.
하지만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음낭이 아니라,
표피 안에 있는 고환의 문제.
‘수영한 다음 아프다고? 격렬한 운동을 한 다음에 아프다는 건데…….’
비뇨기과 질환에 대한 기억은 거의 소실된 상황.
다른 인턴들과 달리 유독 어려웠다.
진혁이 바로 라텍스 장갑을 꼈다.
그러고는 촉진을 시도했다.
“끄으으윽!!”
잠깐 만졌을 뿐인데, 비명을 내지른다.
그렇다고 촉진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
초기 증상이 발현될 때가 아니면, 계속 부어올라 진단이 어려운 법.
빠른 촉진이 원칙이었다.
손을 놀릴수록 환자의 비명은 계속됐다.
“끄으윽!! 아아악!!”
허나, 멈출 수 없었다.
이 또한 치료를 위한 과정 중 하나.
만지고 또 만진다.
음낭을 들었다 놓기도 하고.
장축의 위치를 확인한다.
혹시 세로 형태는 아닌지.
앞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는 일이다.
‘장축이 가로로 누워 있으면 고환염전이라고 했던가.’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 또 한 번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그건 기억의 보충이었다.
비뇨기과 질환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 건 공부해야 했다.
“압통이 심하시죠?”
“네, 으으으. 진짜 전부 다 아파요.”
“특정 지점이 아픈 건 아니라는 거죠?”
“으으. 네.”
국소 부위 통증이 아니라는 말.
‘고환수염전(고환 내 혈액 순환 장애)은 아닌데. 고환염전인가?’
아니, 아직 확신할 순 없었다.
제 기억 속에 고환염전은 중고등학생이 많이 걸리는 질환이었다.
한참 뛰어노는 시기.
고환이 강한 움직임에 충격받아 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가물가물한 기억에 의존한 판단.
검사를 해 봐야 했다.
“잠깐 확인 좀 하겠습니다.”
진혁의 손이 환자의 허벅지로 향했다.
왼쪽 넓적다리 안쪽을 꾹꾹 누른다.
그러면서도 시야는 고정돼 있다.
Cremasteric reflex.
이른바 고환올림근 반사를 확인하는 일이다.
곧, 움직임이 관찰된다.
왼쪽 음낭이 살짝 위로 올라간다.
이번엔 오른쪽 넓적다리 안쪽을 눌렀다.
그러자 오른쪽 음낭이 움직인다.
그저 넓적다리 안쪽을 눌렀을 뿐인데.
Cremaster(고환거근) 근육이 수축하면서 음낭을 자극하고 있었다.
“음. 환자분. 일단 레지던트 선생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으으. 네네.”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은 채 진혁이 서둘러 움직였다.
* * *
고환염전(Testicular torsion).
고환이 회전하며 혈액 순환 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염전이 오래되거나 진단이 늦으면 그 기능을 상실할 터.
당장 위에 노티하고.
비뇨기과 레지던트를 콜해야 했다.
“오 선생님, 23세 남자. Scrotum Pain(음낭 통증)을 주소로 내원했고, 피버는 없습니다. 보미팅(Vomiting)은 세 차례 했다고 합니다. Cremasteric reflex 확인 결과 양성입니다.”
“비뇨기과 노티해요.”
여전한 오태상의 반응.
그를 뒤로하고 진혁이 곧장 전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진짜 제 임프레션(Impression, 추정 진단)이 맞다면.
레지던트가 즉각 내려와 환자를 인계해야 했다.
차트로 조지거나.
장혁준과 김현수를 찾거나.
뭐, 이럴 시간이 없는 거다.
그만큼 응급 상황이었다.
환자가 고통스러워해서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식 능력이 저하된다.
회복이 가능하면 다행.
허나, 뒤늦게 수술하면 회복 가능성도 낮아지는 거다.
순간 비뇨기과 레지던트의 반응이 예상된다.
유린 검사(Urine Test, 소변 검사)를 해 보라고 할 수도 있었고.
소노(Sono, 초음파)를 찍어 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자신은 적이 많았다.
그뿐이랴.
인턴이라는 직위만큼 상대한테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경우도 없었다.
‘정 안 되면 싸우자.’
굳은 결심을 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여차하면 푸닥거리를 할 생각이었다.
딸깍.
“선생님, 응급실 인턴 이진혁입니다. 23세 남자. Scrotum Pain(음낭 통증)을 주소로…….”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려갈게요.]“네?”
[내려간다고요!! 으으. 하지 말아요. 차트 쓰지 말라고요!!]뚜욱.
순간 진혁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차트 조지기의 부작용이 발현되고 있었다.
* * *
비뇨기과 레지던트는 다급한 표정으로 뛰어왔다.
진혁에 대한 악명을 누누이 들은바.
그 대상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바람처럼 달려와 번개처럼 사라졌다.
그 모습에 벙찐 것도 잠시.
또다시 최익진과 실랑이를 벌이는 김상혁이 보인다.
치프 레지던트인 김상혁.
업무에 치이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오프 날에 제대로 오프도 못 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집념은 무식하고 집요했다.
‘저렇게까지 한다고…….’
순간 드는 생각.
김상혁은 저렇게까지 하는데 자신은 뭘 망설이고 있는 걸까.
의도에 순수성이 없다고 생각해서?
환자를 이용하는 거 같아서?
어찌 됐든 최익진을 살릴 수만 있다면.
암이라고 해도 항암 치료를 받게 할 수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을까.
결국, 환자를 살린다는 사명.
그의 명운을 바꾼다는 목표.
이것만 제대로 지킨다면 되지 않을까.
한참 최익진과 푸닥거리를 하고 온 김상혁에게 진혁이 다가갔다.
쉽지 않겠지만,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자고 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