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42)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42화(42/388)
42화. 응급실 사람들 (6)
장례식장 옆 흡연 구역.
김상혁은 연신 담배 연기를 뻐끔거렸다.
찝찝함을 담배 한 모금으로 털어 버리는 거다.
“지랄 맞네. 지랄 맞아.”
“?”
“하늘이 지랄 맞다고.”
진혁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따라 유난히 푸르른 하늘.
그 청명함과 달리 병원 곳곳에선 환자들의 사망 선고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루에도 만 명이 넘는 환자가 병원을 찾는 만큼, 생을 마감하는 이도 많은 것이다.
김상혁의 담배가 거의 다 타들어 갈 때쯤.
진혁이 입을 열었다.
제 본질과 사명만 잊지 않는다면.
그 의도의 순수성이 살짝 불순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하는 말이었다.
일단 환자를 살리고 봐야 했다.
“최익진 환자 말입니다. 방법이 아주 없진 않을 거 같습니다.”
“뭔데? 사비라도 각출하자고? 아서라, 아서. 그러다간 우리부터 파산한다.”
“아뇨, 다른 방법입니다.”
“?”
“지금 한창 금 모으기 운동을 하고 있죠.”
“그래서? 우리도 의료비 모으기 운동이라도 하자고?”
김상혁이 흥미를 보이자, 진혁이 제 생각을 토해 냈다.
“방송국이랑 협업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어떨까요.”
“뭐? 그런 방송은 이미 있잖아. 시청률도 잘 안 나오는 거. 그 뭐였지?”
“출연자들 사연 보여 주고 모금하는 거 말고요. 그런 포맷은 너무 신파로 흘러서 아예 안 보는 사람도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김상혁의 흥미를 최대치로 끌어낸 뒤.
진혁이 본론을 꺼냈다.
“『경찰청 사람들』같이 『응급실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겁니다.”
“뭐?”
“응급실에서 일어나는 애환, 죽음, 치료, 소생하는 장면. 그야말로 희로애락을 한 프로그램에 담는 거죠.”
“!”
“방송 말미에는 행려 환자처럼 치료비를 못 내는 환자도 소개하고요.”
“포맷을 믹스하자?”
“네. 신파로 미는 것보다 시청률은 높을 겁니다.”
갑작스러운 제안.
김상혁이 다시 담배를 꺼내 들었다.
줄담배를 싫어했지만, 흥미가 돋았기 때문이다.
“과장님이 오케이 하실까?”
“섭외만 된다면 거절할 이유는 없죠.”
“홍보가 돼서?”
“홍보도 홍보지만, ER의 위상을 드높일 기회기도 합니다. 잘만 하면 과장님도 더 높이 올라가실 수 있고요. 기획안을 올린 사람도 칭찬받지 않을까요?”
성공만 한다면 가능한 일.
김상혁의 동의가 먼저 필요했기에, 진혁은 당근을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요점은 하나.
기획자도, 환자도, 과장도, 병원도 좋을 만한 제안이라는 거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인턴이 할 말은 아닌데. 너 대체 뭐냐.’
“어디서 사회생활 하다 왔냐?”
“치프한테 배운 겁니다.”
“뭐? 나한테 배워?”
“아까 그러셨죠. 평판도 관리하고, 증례도 수집하고, 행려 환자도 좋다고요. 이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뭐? 하하하.”
김상혁이 기막힌 듯 웃었다.
행려 환자를 받아 주는 이유를 듣고 생각해 냈다니 기막혔다.
“방송국은 어떻게 섭외할래? 아는 사람 있어?”
“없습니다.”
“야이씨!! 좋다 말았네.”
김상혁이 서둘러 담배를 껐다.
잠시 혹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 탓이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트라이 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아는 사람도 없다며.”
“그래도 비벼 볼 만한 사람은 있습니다.”
김상혁이 진혁의 눈을 직시했다.
맑고 투명한 눈.
눈은 마음을 투영하는 창이라더니, 다 거짓말이었다.
이진혁의 속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 환자만 살릴 수 있다면 상관없겠지.’
“할 수 있으면 해 봐. 일단 해 보고 말해. 환자는 그냥 보내지 말고. 내일까지 시간 끌어.”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가자.”
* * *
핸드폰을 들어 연락처를 검색했다.
[기레기 강기재]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기자였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딸깍.
“아신 병원 인턴 이진혁입니다.”
[아아. 우리 의사 선생님 아닙니까! 혹시 또 제보할 거라도 있는 겁니까? 야. 이현정이. 종이 좀 줘 봐.]후배 기자와 같이 있는지 부산스러웠다.
아니, 예전과 달라진 건 제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정도?
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혹시 방송국 PD 중에 아는 분이 있을까요?”
[그럼 없겠습니까? 제가 이래 봬도 메이저 출신입니다! 메이저!]“그럼 연락처 좀 주십쇼.”
[이거이거 선수끼리 왜 이러실까. 무슨 사정인지는 들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호락호락하지 않은 강기재.
진혁이 한참 상황을 설명했다.
[이거 참. 성공하면 아신 병원이랑 방송국만 좋은 일 아닙니까. 콩고물이 없어, 콩고물이.]“콩고물이야 있죠.”
[에이. 딱 봐도 꽝이구만.]“집안에 의사 한 명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만.”
[가족처럼 대해 주겠다는 말입니까?]“그야 강 기자님 하시기에 달렸죠.”
[흐음.]강기재가 고민하는 게 여기까지 들렸다.
소개만 해 주면 그만인 것을.
재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을까.
곧, 쿨한 목소리가 핸드폰을 울렸다.
[야. 이현정. 언니가 KBC PD라고 했지? 번호 좀 대 봐.] [와. 지금 저 팔아서 의사 가족 되시는 겁니까?] [됐고, 빨리 내놔!!]강기재와 이현정이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리자, 진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 *
그 시각.
KBC PD인 이현아는 끙끙 앓고 있었다.
안 그래도 모두가 힘들어하는 시기.
무거운 사회 주제를 다루는 걸 기획하자니 시청률이 나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예산도 충분치 않았기에, 뭘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나의 사랑 나의 가족] [브라보 신세대] [백만 인의 선택] [세상체험 아빠와 함께] [비디오 챔피언] [기인열전] [이것이 인생이다] [사장님 힘내세요]눈앞에 있는 프로그램 리스트.
자사와 타사에서 요새 미는 프로그램들이다.
“하아…….”
이현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반 토막 난 제작비.
다들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었지만, 웬만한 건 전부 선점당한 상황.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금 모으기 운동 특별 생방송이 종료되며 급하게 대체 편성을 해야 했지만,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그때.
동생한테 문자가 띡 하니 왔다.
[아신 병원 의사가 전화할 거야. 의사 가족 한 명 만들어 보자.]순간 열이 뻗친 이현아가 답장을 썼다.
[뭐래? 미쳤니?] [?????] [꺼져.]‘하. 이 시국에 선이나 보라는 동생은 원수네, 원수.’
부욱.
부욱.
스트레스가 폭발한 이현아가 프로그램 편성표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핸드폰이 진동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딸깍.
[안녕하세요, 아신 병원 인턴 이진혁입니다.]“근데요?”
[네?]“의사 가족 필요 없거든요?”
[아…….]순간 강기재를 떠올린 진혁이 이를 악물었다.
후배 기자의 친족이 KBC PD라는 것도 거짓말일지 몰랐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
[이현정 기자 소개로 전화했습니다만.]“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만 끊을게요!”
[잠시만요!]“하. 진짜. 왜 이렇게 질척거려요?”
[제안도 듣지 않고 거절하시는 겁니까? 아직 병원 차원에서 컨펌 난 건 아니라서 오피셜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진혁이 말을 이어 가던 찰나.
이현아가 훅 들어갔다.
“그쪽은 선볼 때도 병원에서 컨펌 받아요?”
[프로그램 제안 때문에 연락드린 겁니다.]“……!!”
상대가 침묵하자 진혁이 말을 이어 갔다.
프로그램 취지부터 기획 의도까지 날것이었지만, 꽤 괜찮은 아이템.
전문가가 달라붙어 잘 가공만 한다면 현 시국에 딱 맞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었다.
이현아가 벌떡 일어났다.
“어머, 선생님!!! 성함이 뭐라고 하셨죠~!?”
[아신 병원 인턴 이진혁입니다.]“아……. 인턴이요.”
곧장 들려오는 실망 섞인 목소리.
상대의 반응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하늘 높이 치솟다가 급전직하하자 진혁이 쓰게 웃었다.
‘인턴이라는 신분은 병원 밖에서도 발목을 붙잡는구나.’
하지만, 그녀를 설득하면 그만.
진혁이 말을 이어 갔다.
[치프 선생님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아직 과장님껜 말씀 못 드렸고요.]“잠깐. 누구라고요?”
[아신 병원 인턴 이진혁입니다.]“오오!! 맞네, 맞아. 대박!! 선생님~~!!”
[네?]“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토해 내는 괴음.
그리고 쏟아지는 타자 소리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진혁이 맞는지 찾아보는 듯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시는 겁니까?]“제가 지금 당장 쏘겠습니다.”
[네? 뭘 쏜다고요?]“그럼 조금 있다 뵐게요!”
뚜욱.
그렇게 끊긴 전화.
이현아는 곧장 택시를 콜했다.
여의도에서 풍납동으로.
당장 달려가야 했다.
* * *
KBC PD에게 제안했고.
달려오겠다는 대답까지 들었지만,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기획 단계에서 통과돼도 위로 올라가면서 컷 당할 확률이 얼마나 높던가.
기획, 구성, 섭외, 사전 준비, 촬영, 편집, 그리고 방송까지.
하나하나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병원 내부 설득도 쉽지 않지.’
병원 쪽도 만만치 않았다.
박영진을 설득한다 한들.
그 위에 다시 운영과장이.
다시 병원장이 있었다.
심지어 이사장한테까지 컨펌 받아야 할지도 몰랐다.
ER로 돌아온 진혁은 최익진부터 찾았다.
“몸은 좀 어떠세요?”
“또 그 소리야?”
“…….”
“수액 값은 나중에 준다고!”
거부감부터 드러내는 행려 환자.
내일까지 시간을 끄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반드시 설득해야 했다.
때를 놓치고, 지금 앓고 있는 자잘한 병까지 누적된 상태로 노숙을 이어 간다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테니까.
진혁이 제 가정사를 입에 올렸다.
“저희 아버지도 1년 전에 은퇴하셨습니다.”
“뭐?”
“명예퇴직. 아니, 명퇴당하셨죠.”
“!”
“지금은 산에 다니고 계십니다. 취업 자리도 알아보셨는데, 재기하는 게 쉽지 않으신가 봐요.”
“…….”
진혁의 말에 최익진이 침묵했다.
그도 얼마 전까진 번듯한 사업가로서 이름을 날렸으니까.
하지만 연쇄 부도를 막을 순 없었고.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
“다시 일하려면 건강이라도 지켜야 한다고 산에 다니시는 거라서요. 뭐, 재취업은 여전히 어렵지만요.”
사실, 거짓말이었다.
아버지는 평생을 다 바친 회사에서 느낀 배신감에 어쩔 줄 모르고 계신 것뿐이었다.
하지만, 뭐 어떠랴.
환자를 설득할 수만 있다면 선의의 거짓말쯤은 몇 번이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뭐!”
“다시 재기하려면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다 필요 없어! 여기 의사들은 왜 이렇게 끈질겨!”
“…….”
“내가 싫다는데 뭐가 이렇게 말이 많아!”
최익진이 고성을 내지르자 진혁이 침착한 얼굴로 되물었다.
“정말 다 포기하신 건가요?”
“그래. 다 포기했다. 그래서 길에서 먹고 잔다. 왜 네가 보태 준 거 있어?”
“아직 미련이 남아 있지 않으세요?”
“?”
“무슨 일을 하셨는진 모르지만, 아쉽지 않으세요?”
“!”
최익진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암이라는 말에 두렵고 떨리고 무섭고 죽을 거 같았지만, 한 줄기 미련이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그건 재기라는 희망이었다.
* * *
사실, 최익진도 재기를 꿈꾸지 않은 건 아니었다.
뭐라도 해 보려고 노력했고.
다시 일어서려고 힘껏 달려도 봤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광산 갱도 끝에 있는 막장.
제 인생이 지금 그랬다.
믿었던 친구도.
가족도.
전부 떠났다.
잘나갈 땐 그토록 시시덕거리며 제 주변을 맴돌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등을 돌렸다.
‘시발. X 같은 세상. 내가 뭘 잘못했는데!!’
부도 어음을 던지고 잠적한 거래처 사장이나, 돈맥경화에 몰리자 야밤에 들이닥쳐 기계를 전부 싣고 가 버린 채권자나 전부 똑같은 놈들이었다.
그때, 또다시 젊은 의사가 말을 건넸다.
“지금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조금만. 아니, 하루만 시간을 주세요. 여기 계셔도 되니까요.”
“수액 값은 준다니까!!”
마지막 발악 같은 말.
제 본심과 전혀 다른 말이 튀어 나온다.
그러자 젊은 의사가 서류를 꺼내 보였다.
가운을 흘깃 보니 이진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였다.
“이건 DAMA(다마)라고 자의 퇴원 서류입니다. 여기 사인하시고. 일체의 의료 행위를 거부한다고 동의하셔야 집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럼 줘. 사인하게.”
“아뇨.”
부욱.
부욱.
진혁이 종이를 찢어 버리자, 최익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내일 다시 드리겠습니다. 내일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 * *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상혁이 피식 웃었다.
동의서를 찢는 퍼포먼스.
인턴 주제에 제법이었다.
서류야 다시 출력하면 그만.
최익진은 망설이고 있었다.
“이야. 제법인데. 누구랑 다르게 말이야.”
“…….”
“야. 진짜 이러기냐.”
“죄송합니다.”
“니들도 마찬가지야 인마.”
김상혁이 레지던트들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다른 이들은 오태상과 장길만이 교육 담당이라는 이유로.
오태상과 장길만은 진혁이 껄끄럽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었다.
덕분에, 일종의 ‘방치’ 상태가 발생하고 있는 거다.
그때, 진혁이 다가왔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아까 시키신 일 보고드리려고 합니다.”
“뭐?”
“아까 말씀하신 그 일이요.”
“도깨비방망이도 아니고? 벌써?”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진혁의 대답에 김상혁이 눈을 치켜떴다.
벌써 결과를 가져왔다니 놀라웠다.
“커피 한잔하자.”
김상혁이 진혁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자, 남아 있던 레지던트들이 전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인턴한테 관심도 없던 치프가 달라졌다.
* * *
커피를 홀짝이던 김상혁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벌써 온다고?”
“네, 30분 후면 도착할 거 같습니다.”
“자세히 좀 말해 봐.”
“그게 그러니까…….”
진혁의 설명에 김상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쪽 반응이 좋은 건 알겠는데, 괜히 보고했다가 중간에 엎어지면 곤란해지는 거 알지?”
“먼저 확답을 받고 보고해야죠.”
“쉽게 답을 주려 할까?”
“일단은…….”
김상혁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해 갔다.
설명대로라면 당장 홍보팀부터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