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51)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51화(51/388)
51화. 응급실 사람들 (15)
꿀 같은 단잠 뒤에 이어진 식사.
곧장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제가 설거지할게요.”
“설거지는 무슨. 엄마가 한다니까.”
“괜찮아요.”
“조금 있다가 출근한다며. 잠이나 자.”
“이젠 익숙해졌는데요. 뭐.”
“익숙해지긴 뭐가 익숙해져!”
아들에 대한 걱정이 담긴 질책.
이에 굴할 순 없기에, 어머니를 억지로 밀어냈다.
잠시 후.
설거지를 마친 진혁이 소파에 앉아 있는 어머니 옆에 앉았다.
“안마해 드릴까요?”
“안마?”
“네, 어깨 주물러 드릴게요.”
“흐음.”
포옹은 거부하더니.
순순히 등을 돌리는 김명숙 여사.
곧바로 어머니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뭔가 가슴이 아련했다.
‘이렇게 왜소하셨었나?’
나이가 들며 좁아진 어깨.
목덜미에 새겨진 주름.
그리고 흰머리.
오늘따라 왜 이렇게 눈에 들어오는지 몰랐다.
어릴 땐 평생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어머니도 늙어 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를 한번 잃어 봤기에 더 아련한지도 몰랐다.
눈가가 붉어지기 무섭게.
어머니가 말했다.
“너 혹시 사고 쳤니?”
“네?”
“아빠가 안마해 준 적이 있어.”
“언제요?”
“회사에서 잘린 날 그렇게 어깨를 주무르더라.”
평소에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자 오해한 모양.
진혁이 쓰게 웃으며, 오전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사실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몰라요. 그냥, 가족한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모님께 잘하겠다는 말.
이미 수없이 다짐했던 결심을 은근슬쩍 말해본다.
다시 눈을 뜬 순간 이미 결심하지 않았던가.
“그래. 친구고 뭐고 다 필요 없어. 어렵고 힘들 때 가족만큼 든든한 게 없다고. 그러니까 항상 잘해야 하는 거야.”
“네. 잘할게요.”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 봐.”
“?”
“여자 친구가 또 헤어지재? 대체 걔는 왜 그런다니. 이태희라는 애, 엄마는 별로야, 별로.”
여전히 거두지 않는 의심.
거기에 더해지는 오해까지.
“에이~! 그런거 아니에요.”
“아니, 그럼 서신대 병원을 안 가고 왜 아신 병원에 간 건데?”
어머니의 오해는 그 크기를 더해 가고 있었다.
* * *
진혁이 쓰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의사는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아요.”
“뭐? 왜? 걔한테 데었니?”
“아뇨, 의사는 바쁘잖아요.”
“그래도 좋지. 뭘 그래.”
“그래요? 의사 며느리가 좋으세요?”
“좋다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해야 편한 법이야!”
단호한 어머니의 말투.
그녀의 생각은 확고해 보였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같은 업계에 있다면 이해도가 남다를 테니까.
“그럼 간호사도 괜찮아요?”
“어머 얘가. 그새 갈아탄 거니? 이번엔 누군데?”
“그냥 물어본 거였어요.”
“엄마는 간호사도 좋아. 월급이 적은 것도 아니라며.”
“싫어하는 분들도 많던데요.”
의사 아들을 둔 여느 부모님이 어떤지 알기에 하는 말.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싫어해?”
“의사 아들이 아까워서?”
“엄마는 조건은 필요없어. 노총각 소리 듣기 전에 빨리만 하면 돼.”
“아…….”
진혁이 얕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노총각의 기준이 다른 시기.
남자는 28살, 여자는 26살로 초혼 나이가 일렀다.
1998년은 그런 시대였다.
‘나도 몇 년 안 남은 건가.’
아직 스물여섯.
당장 결혼할 생각은 없었지만, 부모님이 더 늙기 전에 결혼하고 싶었다.
일전에는 하지 못했던 효도니까.
물론, 사랑 없는 결혼은 사절이다.
어차피 인생 2회차.
환자도 살리고,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아이도 낳고.
욕심이라면 욕심일 수도 있었지만, 다 이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주변에 여자가 없지. 뭐, 조건 보고 결혼하고 싶지도 않고.’
억지로 누군가를 만날 생각은 없었다.
진혁이 말을 돌렸다.
“아빠는요? 요즘 일은 할 만하시대요?”
“뭐, 맨날 늦게 들어오긴 하는데. 등산 다니는 것보단 낫지. 그보다 연락은 드렸니?”
“네?”
“최지봉 교수님께 전화드려야지.”
순간 진혁이 움찔거렸다.
감사 인사보다 당장 확인할 게 떠오른 탓이다.
* * *
건강 검진을 겸해 췌장암 검사를 권유한 건 2월 중순.
3월 중순이 다 돼 가는 지금.
검사를 받았을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푸시는 해야 했다.
딸깍.
“교수님, 전화가 늦었습니다.”
[됐고. 아버님은 어떻게 됐어?]“얼마 전부터 출근하고 계십니다.”
[잘됐네. 나도 알려 주면서 찝찝했단 말이야. 오지랖인 거 같기도 했고.]“교수님 덕분에 오랜만에 활기차게 지내고 계십니다. 무급으로 일하고 계시지만요.”
[뭐? 무급? 그게 무슨 소리야?]진혁이 상황을 한참 설명하자, 최지봉이 혀를 끌끌 찼다.
[뭐, 아버님도 생각이 있으실 테니까. 감사 인사는 그만하고. 그만 끊자.]“수술 들어가셔야 하는 겁니까?”
[수술은 무슨. 휴직계 냈다.]“네?”
[Pancreatic Cancer(췌장암) 1기야.]“아!!”
진혁이 벌떡 일어났다.
그가 건강 검진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벌써 암이 발현됐다는 데 놀랐다.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는 것만 알았지, 그 시기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기에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교, 교수님!!”
[뭐야. 그 반응은. 네가 내 마누라냐?]“그게 아니라, 하…….”
[됐어. 1기야, 1기. 치료받으면 그만이야.]너무도 덤덤한 반응.
암 환자의 통상적인 반응과 달랐기에, 진혁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지 그럼. 이 나이에 울고불고 난리 치랴? 나도 의사야, 의사. 항상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냉정하게 자기 객관화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아무튼 어려운 직업이야.]“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뭐. 그건 알아서 하고. 그보다 CS에 지원한다는 약속이나 지켜라. 끊자. 그리고…… 고맙다.]뚜욱.
곧바로 끊어지는 전화.
진혁이 멍하니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최지봉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제자에게 못난 모습을 숨기기 위해 애써 감정을 숨기는 걸까.
아니면, 정말 냉정한 판단하에 생존율이 높다고 여겨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걸까.
진실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췌장암을 1기 때 발견할 확률이 1% 미만이라는 걸 고려하면, 그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 * *
어느새 출근 시간.
둑방길은 어둑어둑했지만, 병원만은 환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지금도 수많은 의료진이 환자를 위해 병마와 싸우고 있는 거다.
분주히 오가는 사람과 차를 헤치며 걸어가는 진혁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무리 1기라도 암은 암.
그것도 췌장암이었다.
‘원주에 한번 다녀와야 하는데.’
직접 찾아뵙는 게 제자 된 도리.
하지만, 짧아진 교대 시간이 마음에 걸렸다.
심란한 마음을 숨긴 채 ER로 들어가려던 찰나.
진혁이 놀란 얼굴을 했다.
그건 김미자 때문이었다.
“오셨군요!”
“네.”
“잘 오셨습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애들만 잠깐 보여 주고 다시 나올 거예요!”
여전히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김미자.
진혁은 환히 웃을 뿐이었다.
물론, 박영진의 미션을 해결했다는 기쁨 때문은 아니었다.
최익진이 기뻐할 모습과 오랜만에 아빠를 볼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녀가 왜 마음을 바꿔 먹은 건진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 * *
최익진의 보호자라고 말한 적도 없건만, VJ들은 귀신같이 따라붙었다.
그 과정이야 어쨌든, 행려 환자인 최익진과 가족들이 해후하는 모습을 찍기 위함이다.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한 최익진은 한참 말이 없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그의 딸이었다.
“아빠? 아빠 맞아?”
최익진이 서글픈 얼굴로 답했다.
“아빠 맞아.”
“많이 아파?”
“아프긴 뭐가 아파.”
“근데 왜 주사 맞아?”
“괜찮아, 괜찮아.”
눈물이 그득해진 최익진.
냉큼 눈을 비벼 눈물을 털어 냈다.
그가 IV(정맥 주사)가 연결된 팔을 들어 올렸다.
“우리 딸. 한번 안아 보자.”
“싫어. 누워 있을 때 안아 주는 건 싫단 말이야.”
“잠깐만.”
최익진이 금세 몸을 일으켜 베드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휘청이는 몸.
며칠 누워 있지도 않았는데, 벌써 균형을 잡지 못했다.
그러나 곧 중심을 잡는다.
최익진이 딸 옆에서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는 아들까지 힘껏 안았다.
와락.
으스러질 듯 힘을 주는 그의 몸이 잘게 떨린다.
막상 제 자식들을 마주하자, 온갖 감정이 가슴속을 휘몰아치며 마음을 진탕시키고 있었다.
“흐으윽. 끄으윽.”
기괴한 울음을 토해 내는 최익진.
아이들을 끌어안은 채 그가 오열했다.
“흐으윽. 미안하다, 미안해.”
“울지 마. 으이잉.”
“정말 미안하다. 흐으윽.”
아이들마저 울음을 토해 내자, 이를 지켜보던 이들마저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눈물을 쏟아 내던 최익진이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 아이들.
다들 고생이 심했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지냈냐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그저 얼굴을 계속 쓰다듬을 뿐이다.
말없이.
한참.
그러면서 속으로 마음을 전한다.
그동안 못다 한 말들.
미안하다.
사랑한다.
다 아빠 잘못이다.
아빠가 능력만 있었어도.
돈만 있었어도.
너희들을…….
다 무능한 아빠 때문이다.
끝없이 제 감정을 토로했다.
물론, 아이들은 듣지 못한다.
그저 심장속 울림을 마음으로 전할 뿐이다.
IMF라는 초유의 사태로 모든 이들이 시름겨워하고 있었지만.
여느 한국인들처럼, 자신을 자책하고.
또 자책하고 있었다.
아니.
제 책임이라며 목놓아 소리치고 있었다.
미안하고.
또 한없이 미안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눈에 넣고 있을 때.
멀찍이 떨어져 있던 김미자가 보였다.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그녀.
자신과 헤어진 후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지,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반려자가 말없이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최익진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녀를 원망하고 지냈던 수없이 많은 나날들은 어느새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막상 제 눈으로 김미자를 보자, 감정이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
그리고 그 끝엔.
“흐으윽. 끄으윽.”
또다시 오열이었다.
“끄으으으윽. 흐윽.”
계속된 오열.
그 모습에 김미자가 말없이 다가갔다.
남편을 용서한 건 아니었지만.
아이들이라도 보여 주려고 왔지만.
막상 최익진의 얼굴을 보자 저도 모르게 그녀의 몸이 움직였다.
* * *
죽음이라는 끝이 보이는 항해길.
온갖 일을 다 겪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때로는 폭풍우가 밀어닥치고.
때로는 성난 파도에 출렁이기도 한다.
최익진과 김미자는 어쩌면 기나긴 폭풍우의 끝에 서 있는 건지도 몰랐다.
‘꼭 이겨 내시길 바랍니다.’
그가 반드시 살아남기를.
거친 폭풍우를 뚫고 고요와 평화가 가득한 항구에 도착하기를 바라며 진혁이 등을 돌렸다.
뒤늦게 옷을 갈아입고.
스테이션으로 향하던 찰나.
이현아의 목소리가 울렸다.
“막내 선생님!!”
“!”
“어머! 왜 이렇게 놀라세요?”
“그 용어에 좀 민감해서요.”
“막내요? 막내보고 막내라고 하는데 왜요?”
“그럴 일이 있습니다.”
속사정을 말할 수도 없는 일.
진혁이 손사래를 쳤다.
이현아가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뭐.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듣고요. 잠깐 시간 좀 내주세요.”
“?”
“인터뷰요. 인터뷰.”
이현아가 눈을 찡긋거리자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촬영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인터뷰란 말인가.
“벌써요?”
“에이. 중간중간 인터뷰 따기로 한 거 잊었어요?”
“그야 기억하고 있죠. 근데 아직 초반이잖아요.”
“시간 있을 때 많이 따 놔야죠. 근데 어떻게 된 거예요? 실패했다고 들었는데요.”
인터뷰의 의도를 알게 된 진혁의 표정이 굳었다.
“심경에 변화가 있었나 봅니다. 그럼 전 이만.”
“에이, 어디 가세요. 막내 선생님이 다시 찾아간 건 아니고요?”
“일단 그 호칭 좀 어떻게 해 주시겠어요?”
“왜요? 막내 선생님?”
이현아가 장난기 어린 눈을 하자 진혁이 고개를 휙 하니 돌렸다.
역시 언론계에 종사하는 사람과는 맞지 않았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조금 바빠서요.”
“과장님이 최대한 협조해 주라고 하셨는데요. 이를 어쩐다. 내일 같이 점심 먹기로 했거든요.”
환한 미소를 띠고 있는 이현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 * *
잠시 고민하던 진혁이 강하게 나갔다.
물론, 편집권을 가진 그녀에게 잘 보이면 좋았다.
하지만 최익진을 팔면서까지 인터뷰를 하고 싶진 않았다.
“뭐, 상관없습니다.”
“우와. 과장님인데요?”
“과장님보다 환자가 중요하죠. 그럼 이만.”
진혁이 성큼성큼 걸어가자 이현아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원래 죽자 살자 따라다니는 남자는 매력 없는 법.
남자는 자고로 튕기는 맛이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