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53)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53화(53/388)
53화. 마지막 잎새 (2)
레지던트 3년 차 윤희철.
EICU(응급중환자실)를 담당하고 있다.
펠로우나 교수님들께 말씀드릴 순 없으니, 그를 찾아가야 했다.
수염을 깎을 시간도 없었는지, 얼굴이 엉망인 윤희철이 당장 난색을 표했다.
“사정이야 알겠는데요. 힘들어요, 힘들어.”
“5분 만이라도 안 될까요?”
“뭐. 나도 봐주고 싶죠. 근데 다른 보호자가 민원 넣을 수도 있잖아요.”
예외를 둘 수 없다는 말.
사실, 윤희철의 처지도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병원만큼 보수적인 곳도 없었고.
정해진 룰을 깨기엔 그도 고작 레지던트였다.
EICU 담당이라곤 하지만, 엄연히 위에 펠로우와 교수들이 있는 거다.
하지만, 김수현의 사정이 딱한 상황.
진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카메라가 찍고 있었습니다.”
“……!!”
“보호자가 사정하는 게 전부 찍혔는데, 방송에 나가면 욕먹지 않을까요.”
“에이. 웬만한 건 편집해 주기로 했잖아요.”
윤희철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허나, 떨떠름한 표정이다.
김수현이 애원하던 모습이 방송에 나간다면, 시끄러워질지도 모르니까.
진혁의 목소리 톤이 살짝 높아졌다.
“혹시 모릅니다.”
“뭐가요?”
“편집 권한은 전적으로 PD한테 있으니까요.”
“그야 그렇긴 한데…….”
“개인 인터뷰를 하는데, 일이 있었습니다.”
“?”
“이현아 PD가 행려 환자 가족을 왜 찾아갔는지 따져 물었습니다.”
진혁의 말에 윤희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송국과 협의 후에 찾으러 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걸 왜 물어봤대요?”
“혹시 몰라서 물어봤다는데요. 워낙 저쪽 생리가 고약해서 조심해야 할 거 같습니다. 수틀리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원래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한국말.
같은 장면도 조금만 편집하면 확 바뀐다.
찬사와 비난이 바뀔 수도 있는 거다.
그게 편집의 묘미기도 했고.
“흐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데……. 하…….”
여전히 망설이는 윤희철.
진혁이 쐐기를 박았다.
“보복 운전, 음주 운전, 그에 따른 사망 사고라고 들었습니다. 워낙 이슈가 된 사고라서……. 시청률을 위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목이 집중돼 있다는 말.
언론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말이기도 했다.
한참 고심하던 윤희철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5분만 줄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아후, 걸리면 죽는데. 일단 빨리 처리하죠.”
“네!”
진혁이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계획한 대로 풀린 탓이다.
* * *
언론을 대하는 건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 자신도 닳고 닳은 흉부외과장 출신.
기지를 발휘해 밀어붙였고 승낙을 받았다.
김수현은 고맙다는 말을 하며 연신 허리를 숙였다.
그렇게 시작된 면회.
김수현은 의식 없이 누워 있는 김순덕을 보며 오열했다.
“흐윽. 아빠! 눈 좀 떠 봐요. 제발. 제발요!”
“…….”
“아빠!! 아빠!!!”
목 놓아 아빠를 부른다.
“아빠!! 제발……. 제발요!!”
또다시 김수현이 오열했다.
면회 시간을 어긴 그녀를 보고 누군가 윤희철한테 뭐라고 하는 게 들렸지만, 상관없었다.
윤희철이 카메라를 가리키며 상황을 설명하는 게 보였으니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누군가의 목숨을 위협하는 음주 운전.
예나 지금이나 근절되지 않고 있었다.
처벌이 너무 미약한 탓이다.
* * *
5분이라는 짧은 면회 시간.
진혁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김수현이 김순덕에게 오롯이 집중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짧았던 걸까.
EICU 밖으로 나온 김수현의 표정엔 아쉬움이 그득했다.
사실, 발걸음을 옮기기 쉽지 않았으리라.
아니, 여건만 된다면 그의 곁에 남고 싶었으리라.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지만, 어디 딸의 마음이 그렇던가.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며 진혁이 입을 열었다.
“심막에 고여 있던 삼출액은 정상적으로 배액됐습니다. 그런데 합병증이 왔습니다.”
“합병증이라면…….”
“심실이 빠르게 수축되면서 펌핑 능력에 문제가 생겼다고 보시면 됩니다.”
“펌핑 능력이요?”
“네, 심장이 박동하기 전에 심실이 움찔거리면서 정상적인 박동을 방해했고, 결국 사달을 냈습니다.”
김수현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
심장천자 합병증 중 하나인 심실기외수축(PVC)의 발발.
문제는 그 정도가 심해, 심실빈맥(VT)으로 이어졌다는 말이었다.
진혁이 설명을 이어 갔다.
“합병증이 연쇄작용을 일으키면서 심정지까지 온 상황입니다. 지금은 다시 안정을 찾았으니까 좀 더 지켜봐야 하고요.”
“의식은요. 의식은 언제 돌아오는 건가요?”
“일단 지켜봐야 합니다.”
어레스트가 온 환자가 의식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하는 말.
김수현이 다시 눈물을 토해 냈다.
“흐윽. 사장님이…… 흐으윽.”
가난이 죄가 되는 시기.
돈이 없다는 게 인간사의 가장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우린 그런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힘겨운 세상살이였다.
* * *
진혁은 말없이 기다렸다.
김수현이 진정돼야 말이라도 더할 수 있으니까.
물론, EICU에서 해야 할 일이 쌓이고 있겠지만, 상관없었다.
업무 로딩?
제 능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윤희철?
뭐라고 하면, 핑계를 댈 생각이었다.
뭐, 카메라가 찍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되지 않겠는가.
지금 중요한 건, 상처 입고 울부짖는 김수현의 마음을 달래 주는 일이었다.
중환자실만큼 보호자와 환자가 단절된 곳도 없었다.
“괜찮아지실 겁니다.”
“흐으윽. 흐윽.”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의식이 돌아오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 그래도. 흐으윽. 흑.”
계속 오열하는 김수현.
그녀가 울먹이며 제 사정을 말하자 진혁이 혀를 찼다.
“곧, 결혼하신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두 달 뒤에 결혼해요. 흐윽. 엄마도 안 계셔서…….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제발요.”
반드시 살려 달라는 말.
김수현이 거듭 고개를 숙이자 진혁이 허리를 숙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불안해하는 보호자를 향한 최소한의 예우였다.
아니, 그보다.
결혼할 자금은 있으면서 왜 곧바로 달려오지 못한 걸까.
순간 의구심이 솟았지만, 말 못 할 사정이 있을 터.
진혁이 서둘러 EICU로 향했다.
* * *
인터뷰로 시간을 잡아먹고.
김수현을 달래며 시간을 쏟았다.
자칫 화낼 수도 있는 상황.
윤희철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뭐, 카메라가 찍고 있었다니까 어쩔 수 없죠. 그러고 보니까 지금도 찍고 있네요. 하하.”
분명 샤우팅이 나와야 했지만, 참는 모습이다.
전담 VJ가 따라붙었으니, 그럴 수밖에.
아니, 어쩌면 말리그라고 충돌을 피하는 걸지도 몰랐다.
“인수인계는 누구한테 받으면 될까요? 이미 다른 구역으로 이동한 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인수인계를 받아야 할 인턴들이 없기에 하는 말.
EICU에서 근무했던 인턴들은 벌써 다른 구역으로 이동했고.
한참 정신없이 움직이는 인턴들은 원래 이곳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윤희철이 제대로 깎지 못한 수염을 쓰다듬었다.
“아아, 일단 간호사 쌤들이 요청하는 것부터 하고 있어요. 필요하면 부를게요.”
“알겠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숙이며 주위를 훑었다.
EICU.
이른바 응급중환자실.
심혈관과 뇌혈관 응급 환자에 대한 처치를 담당하고.
집중 치료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이곳에서 일차로 환자를 케어하고.
NS(신경외과)나 CS(흉부외과) 중환자실(ICU)로 환자를 전원시킨다.
때로는 내과 계열 중환자실로도 옮기기도 했으니, 일종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EICU를 살피고 있을 때.
간호사가 소리쳤다.
“이 선생님! 여기 C-line 드레싱 있어요.”
“네! 갑니다!”
진혁이 서둘러 움직였다.
그러고는 차트를 확인했다.
혈액을 투석하는 중인 상황.
투입 경로라 할 수 있는 C-line을 드레싱 해야 할 시기가 온 거다.
투석실 전문간호사들은 직접 드레싱을 한다지만, 웬만한 ICU에서는 인턴이 하는 일.
“바로 시작할게요.”
“하실 수 있으시죠?”
“그럼요.”
“역시!!”
“너무 믿으시는 거 아닙니까?”
간호사와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했기에 하는 농담.
그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에이~! 김지연 쌤한테 다 들었어요.”
“그래요?”
“네, 제가 좀 친해요. 호호.”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잠시만요.”
그와 동시에 진혁이 움직였다.
세면대에서 다시 손을 씻는다.
EICU에 들어오며 이미 씻었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감염 방지는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다시 베드로 돌아온 뒤 멸균 장갑부터 착용했다.
“환자분, 고개 돌리실 수 있으세요? 이래야 덜 아파서요.”
드레싱 중에 환자가 몸을 움직이며 C-line이 당겨질 수도 있기에 하는 말.
물론, 가시성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어, 어디로…….”
“왼쪽으로요.”
“네에…….”
환자가 몸을 움직였다.
제대로 대답할 기운도 없는 거다.
환자가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자, 진혁이 환부를 살폈다.
C-line이 삽입된 곳은 오른쪽 가슴.
먼저 기존 필름부터 제거해야 했다.
가장자리부터 조심스럽게 떼낸다.
그러고는 피부 상태부터 확인했다.
염증 현상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크게 이상은 없는데.’
“소독 시작하겠습니다.”
환자는 대답이 없었다.
허나, 움직이지 말라는 의미의 경고는 이미 한 상황.
베타딘 면봉으로 드랩(Drap, 소독)을 시작했다.
삽입된 카테터를 중심으로.
한 번, 두 번, 세 번.
오른쪽으로 원을 그리며 소독한다.
그리고 또다시 베타딘 면봉이 들어있는 필름지를 뜯는다.
다시 한 번, 두 번, 세 번.
소독을 반복한다.
그 모습에 옆에서 지켜보던 간호사가 말했다.
“저 먼저 가 볼게요.”
“네.”
새롭게 붙일 투명 필름보다 베타딘 면봉으로 소독하는 면적이 컸기에 안심하고 가는 그녀.
혹시 모를 세균의 유입을 막고.
청결과 무균 상태를 유지하고.
박테리아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한 일이었다.
‘기본 중의 기본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한 게 인턴이니까. 당연하겠지.’
진혁이 쓰게 웃으며 다시 필름지를 뜯는다.
베타딘 면봉을 꺼내, 카테터 관 윗면과 아랫면도 꼼꼼히 소독한다.
안에서 밖으로.
다시 안에서 밖으로.
수차례 움직인 뒤, 그대로 손을 멈췄다.
포비돈 요오드 액이 마르길 기다리는 거다.
30초, 1분, 2분.
소독액이 마르자 다시 손을 놀린다.
카테터를 고정하고.
투명 필름을 붙이는 거다.
이젠 차트에 기록만 하면 끝.
눈 깜짝할 사이에 드레싱을 끝낸 진혁이 말했다.
“끝났습니다. 환자분. 다시 고개 돌리셔도 됩니다.”
다시 대답없이 고개를 돌리는 환자.
그에게 말을 걸려던 찰나.
또다시 누군가 진혁을 불렀다.
“이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네!”
진혁이 오기만 기다렸던 이들.
밀린 업무가 쏟아지고 있었다.
* * *
인턴이 하는 일이야 보잘 것 없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
누군가는 허드렛일이라고 하지만,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그렇게 정신없이 액팅을 한 뒤.
짬이 난 진혁이 김순덕 환자 앞에 섰다.
아직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EKG(심전도) 그래프.
Irregular Heartbeat(불규칙한 심장 박동, 부정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모양이 들쑥날쑥했고, 인터벌 또한 불규칙했다.
심실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엇박을 이루고.
파동 또한 정상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곧장 차트를 살폈다.
베타차단제(교감 신경계 말단에서 분비되는 베타 수용체를 차단하는 약물)를 투약하고 있었고.
심정지를 막기 위한 약물부터, 떨어진 심기능을 끌어 올리기 위한 약물까지 투약했지만, 아직 불안정했다.
‘조치할 건 전부 다 했는데…….’
이미 CS에서 한 번 다녀간 상황.
저체온 치료까지 하는 이상, 추가로 할 수 있는 게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상태가 호전되고 김순덕이 의식을 차리길 기다려야 하는 거다.
‘해 줄 수 있는 게 진짜 없을까?’
잠깐의 고심.
순간 진혁의 눈이 번뜩였다.
로딩에 허덕이는 다른 인턴이라면 하지 못 할 테지만,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있었다.
* * *
진혁이 김순덕한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따님이 김수현 씨죠? 두 달 뒤에 결혼한다고 들었습니다.”
“…….”
“아빠한테 꼭 전해 달래요. 너무너무 사랑한다고요. 아빠가 죽으면 결혼도 안 할 거랍니다. 식장에 안 들어갈 거래요.”
“…….”
“반드시 아빠 손 잡고 식장에 들어갈 거랍니다. 그러니까 꼭 일어나세요.”
김수현이 하지 않은 말.
거짓말을 더 했다.
무의식이 의식에 관여하듯, 그가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우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환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또르륵.
거짓말 같은 일.
진혁이 태연한 얼굴로 김순덕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마사지를 하듯 그의 손을 계속 어루만졌다.
“싸우세요. 이겨 내세요.”
“…….”
“이까짓 병 때문에 평생 키운 딸내미 결혼식도 못 볼 순 없지 않습니까! 김순덕 씨는 가장 아닙니까. 가장이니까 이것도 이겨 내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다시 흐르는 눈물.
비현실적이라고 할 만한 일이 계속됐다.
허나, 미동도 없는 진혁.
계속 말을 걸고 마사지를 할 뿐이다.
* * *
그 시각.
진혁의 전담 VJ인 김석대는 입이 근질거려 죽을 지경이었다.
궁금증이 도져 카메라까지 들썩일 판.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당장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촬영을 망칠 수도 없는 일.
프로 정신을 발휘해 꾹 눌러 참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기회가 오자 김석대가 따져 물었다.
“아니,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