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55)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55화(55/388)
55화. 마지막 잎새 (4)
간식 취급에 놀란 것도 잠시.
진혁이 한동수를 훑었다.
왜 제 기억 속엔 없는 걸까.
대한흉부외과학회 주관으로 열리는 춘계 학술대회에서도.
추계 학술대회에서도.
그 어떤 세미나에서도 그를 본 기억이 없었다.
대체 왜.
왜 기억에 없는 걸까.
뭐, 이유야 정확히 몰랐지만, 짐작 가는 바는 여럿 있었다.
병사 아니면 은퇴.
미국 유학.
혹은 타과로의 전과.
더블보드를 따서 다른 과 전문의로 일했을지도 몰랐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분명한 건 있었다.
인재 욕심이 그득한 저 흉부외과의 부교수가 어떤 이유에선지 사라진다는 거다.
그건 아마도…….
‘10년이 남은 건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게 틀림없었다.
서신대에서 펠로우 생활을 할 때쯤부터 교수님들을 수행하며 학회를 다녔으니까.
진혁이 한참 말이 없자, 한동수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쭈. 왜? 간식 취급해서 기분 나쁘냐!?”
“아, 아닙니다.”
“그럼 뭔데?”
“…….”
진혁이 말을 삼켰다.
CS로 오라고 벌써부터 그렇게 성화면서, 넌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볼 순 없었다.
그래서 말을 돌렸다.
“혹시 김순덕 환자 때문에 오신 겁니까?”
다른 일 때문에 왔을지도 몰랐지만, 그냥 던져 본 멘트.
“뭐, 겸사겸사. 어때? 할 만해?”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야~! 말은 또 잘 돌리네?”
“그게……. 보호자인 딸이 곧 결혼한다고 합니다. 꼭 살려야 하는 환자입니다.”
그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말.
모든 환자에게 집착했던 진혁의 지론과는 어긋난 말이기도 했다.
한동수도 당장 미간을 찌푸렸다.
“꼭 살려야 하는 환자? 그럼 죽여도 되는 환자도 있냐? 그게 누군데? 어?! 정신 교육 좀 받아야겠는데!”
“제가 실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진혁이 곧바로 고개를 숙이자 한동수가 표정을 풀었다.
“반성이 빨라서 좋단 말이지. 어디야? 꼭 살려야 하는 환자 좀 보자.”
* * *
잠시 후.
진혁의 노티가 끝나자 한동수가 차트부터 확인했다.
장난기가 넘쳤지만, 환자를 살필 땐 그도 진심이었다.
‘닥치고 수술’을 외칠 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기도 했고.
테이블 데스 확률을 따지거나, 가능성을 가늠하는 건 딱 질색인 그다운 모습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 차트를 확인하고 있을 때.
윤희철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교수님, 오셨습니까.”
“오냐, 왜? 빨리 가라고?”
“아, 아닙니다.”
한동수의 반응에 윤희철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의 반응을 가볍게 무시한 한동수의 고개가 진혁을 향했다.
“페리카디오센테시스(Pericardiocentesis, 심장천자) 후 컴플리케이션(Complication, 합병증) 확률은? 맞추면 TO 준다. 콜폰 TO 준다고.”
CS에 배정된 콜폰 TO를 준다는 건 핸드폰 비용을 지원해 주겠다는 말.
삐삐를 사용하는 이들에겐 기본 지원되던 통신비였지만, 핸드폰은 달랐다.
그 TO가 매우 한정적이었으니, 뜻하지 않은 선물인 거다.
‘핸드폰 요금만 내줘도 부담이 확 줄지.’
게다가, 망설일 것도 없었다.
예전 같으면, 그의 반응이 부담스러웠을 테지만 지금은 달랐다.
목표를 세우지 않았던가.
인턴이라는 제약을 풀려면 병원 내부에서도 유명해져야 했다.
“대략 5% 내외입니다.”
“대략 5%? 맞아? 진짜? 정말?”
“네.”
“바꿀 기회를 준다. 자, 하나, 둘, 셋!”
“바꾸지 않겠습니다.”
단호한 대답.
한동수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 안 속네? 보통 바꿀 기회를 준다고 하면 혼란스러워하는데 안 속는단 말이지.”
“…….”
진혁이 침묵하자, 윤희철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저 교수님, 지금 촬영 중이라서 조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EICU라서…….”
“촬영? 그게 뭐! 이거 내보낼 겁니까?”
한동수의 고개가 휙 하니 돌아갔다.
김석대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편집해야죠.”
“내보내면 소송할 겁니다.”
“하…….”
뜬금없는 협박에 김석대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적응되질 않는 모양이었다.
한동수의 고개가 다시 진혁을 향했다.
“5%라는 말 앞에 설명이 빠진 거 같은데?”
“소노(초음파)를 보면서 하면 5%, 보지 않으면 20%입니다.”
“오오! 정답!”
진혁의 대답에 한동수가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단순히 찍어서 맞춘 게 아니라는 뜻이니까.
‘이 정도면 이론적 성취도 훌륭한데? 어디 더 테스트를 해 볼까?’
“Pathogenesis(발병 기전, 병의 발생 원인)는 뭔데? 컴플리케이션(합병증)이 왜 왔냐고.”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몰라? 이야, 우리 막내가 이제 진짜 막내다워지는데?”
능글맞게 웃는 한동수.
반면, 진혁은 덤덤했다.
모른다는 말에 담긴 함의가 달랐다.
“발병 기전이 확실치 않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확실치 않다?”
“네, 심장 충격에 의한 영향이 뒤늦게 나타났을 수도 있습니다.”
“또? 또 있을 텐데?”
“삼출액이 배액되면서 Nervous system(신경계) 간에 인터액션(Interaction, 상호 작용)이 일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부교감 신경과 교감 신경 간의 상호 작용이 심장 기능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는 말.
한동수의 표정에 놀라움이 배어났다.
거기에 더해,
윤희철 또한 움찔거렸다.
‘뭐야, 이걸 대답한다고?’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진혁.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동수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또 있을 텐데?”
“카테콜아민(Catecholamine,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에 영향을 받아 혈관이 수축됐을 수도 있습니다.”
“혈관이 수축되면 어떻게 되는데?”
“심실의 확장기말 압력이 높아지면서 기능 부전이 생길 수 있고. VT(심실빈맥)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삼출액이 배액되면서 심낭 내 압력이 내려가고, 이에 따라 심실이 급격히 확장되면서 오투(산소) 불균형이 일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심근 Stunning(Myocardial Stunning, 심근기절)이 유발된다는 말을 뭘 그렇게 어렵게 해?”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지만, 한동수의 표정은 밝았다.
이론적 성취 또한 괜찮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도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 과실이긴 하지만, 김순덕 환자의 직업은 버스 기사. 다치거나 죽은 승객 때문에 괴로웠을 겁니다.”
“그래서?”
“심리적, 신체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을 때 Transient ventri-cular apical balloning(일시적으로 심실이 부풀어 오르는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배웠습니다.”
“뭐? 누구한테 그런 걸 배웠는데!?”
한동수의 표정에 의아함이 묻어 나온다.
순간 진혁이 제 실수를 깨달았다.
‘아직 논문이 안 나온 건가? 과거로 돌아왔다고 할 수도 없는데. 하…….’
어떤 핑계를 대야 할지 고민하는 가운데.
한동수가 재차 채근했다.
“어디서 배웠냐니까? 어!?”
산전수전 다 겪은 진혁이었지만, 이때만큼은 진짜 당황스러웠다.
과거로 돌아왔다고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 * *
지금은 1998년.
마지막에 한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발표되지 않는 논문을 가지고 인턴이 떠들었으니, 한동수의 반응도 이해됐다.
대답이 궁색한 진혁이 한참 머리를 쥐어짰다.
허나, 대답할 길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 심각한 게 있었다.
그건 앞으로 벌어질 실수들이다.
의대에 진학할 정도로 엉덩이도 무겁고 머리도 비상했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목표를 세웠고, 이를 달성할 정도로 근성도 좋았다.
하지만.
논문의 발행 연도까진 기억하지 못한다.
결국.
‘앞으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게 뻔하구나. 하, 시작부터 난관인데?’
신분의 제약을 탈피한다는 목적으로 아무 말이나 막했다가는 또라이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거다.
짧은 상념은 한동수의 채근에 바로 깨졌다.
“어쭈. 왜 대답을 안 해!”
“논문에서 봤습니다.”
“무슨 논문을 봤는데?”
“그게…… 제목이 기억나질 않습니다.”
“보긴 봤는데, 기억나질 않는다고? 정말?”
“네.”
팔짱을 낀 채 자신을 쳐다보는 한동수.
자신도 모르는 내용이 나왔으니, 한참 고민하는 눈치다.
곧, 그가 히죽거렸다.
뭐, 돌아가서 찾아보면 그만.
일단 진혁이 CS 논문을 찾아봤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뭐, 우리 막내가 아주 기특하단 말이야.”
“?”
“벌써부터 논문도 뒤지고. 어?! 그것도 CS 논문을 말이야. 하핫. 안 그렇습니까? 지금은 ER에 있지만, CS로 올 인재입니다. 인재!”
“네? 아, 그렇죠……. 하하.”
김석대가 어색하게 웃으며 동의했다.
이미 정진석과 김상혁의 싸움을 한 차례 봤던 상황.
진혁을 두고 알력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런 건 방송에 내보내야죠?”
“네?”
“교수의 날카로운 질문에 막힘 없이 대답하는 CS 막내 인턴!! 어떻습니까? 캬~!!”
“아까는 소송하신다고…….”
“에이~! 농담이죠, 농담. 내보내실 거죠?
“그게 편집은 PD님 몫이라서요.”
“아니, 아깐 편집한다면서요!”
김석대가 어색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자.
한동수의 고개가 휙 하니 돌아갔다.
이현아를 찾는 눈치.
진혁이 대답을 대신했다.
“퇴근했을 겁니다.”
“뭐? 퇴근? 같이 날밤 까는 게 아니고?”
“네, 그보다 교수님.”
“왜? 뭐?”
“김순덕 환자는 혹시…….”
진혁이 말꼬리를 흐렸다.
논문 얘기가 다시 나올까 싶어 걱정됐기에 하는 말이었다.
뭐, 앞으로의 처치 방향도 궁금하기도 했고.
한동수의 입꼬리가 묘하게 울렁였다.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궁금합니다. CS로 전원시켜야 할 때가 온 거 같습니다.”
“나도 궁금한데?”
“네?”
“네 말대로 컴플리케이션(합병증)이 온 원인은 정확히 몰라. 아니, 짐작 가는 건 많지만, 정확한 기전은 모르지. 그럼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응? 아, 콜폰 TO는 일단 준다. 그러니까 대답해 봐.”
앞으로의 처치를 물어봤건만, 발병 기전이 정확히 뭔지 모를 때는 어떻게 할지를 묻는다.
자신의 성향을 가늠하려는 질문.
그의 의도가 느껴졌지만, 순순히 답했다.
이 또한 신분의 제약을 푸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발병 기전을 밝히는 걸 포기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포기?”
“네, 인과관계를 따지다 보면 끝도 한도 없습니다. 애초에 교통사고가 일어나게 된 이유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포기하자?”
“네, 이럴 땐 과감히 끊어 버려야 합니다.”
발병 기전(Pathogenesis, 병의 발생 원인)을 계속 따지기만 해선 안 된다는 말.
현재 상황에 초점을 맞추자는 말이기도 했다.
진혁이 빠르게 말을 이어 갔다.
“아직 하트 레이트(Heart Rate, 심장 박동)가 불안정합니다. 정상 리듬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의식도 돌아오지 않았지.”
“그 문제야 어쩔 수 없지만, 일단 리듬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진혁의 단호한 대답에 한동수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요놈 봐라. 이거 아주 물건이란 말이야.’
사실, 웬만해선 저렇게 대답할 수 없었다.
고작 인턴이지 않던가.
딱딱한 말투만큼 얼어붙는 게 당연했고.
버벅거리기 일쑤였다.
진짜 열이면 열.
전부 다 그럴 게 분명했거늘.
이진혁은 달랐다.
한동수가 원색적으로 나왔다.
“너 혹시 갔다 왔냐?”
“네?”
“뭐, 조기 졸업한 다음에 3년 정도 일찍 들어왔다가 다시 시작하는 거냐고.”
“면접장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아신 병원이 처음입니다.”
“그래? 진짜? 구라면 어쩔래?”
“…….”
“아, 됐고. 계속해 봐. 그 정도로 고민했으면 앞으로의 처치 방향도 생각한 게 있을 거 아니냐고.”
이젠 처치 방향까지 묻는 한동수.
함부로 대답한다면 인턴 주제에 선을 넘는 거겠지만, 뭐 상관없었다.
누가 물어보면 강압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하면 될 터.
뭐, 한동수의 성격을 모르는 이도 없는 거 같았으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분의 박동을 발생시키고 있는 심장 부위의 미세조직을 기화시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OP(수술) 들어가자고?”
“일단 약물 치료(Drug Treatment)에 집중하면서 경과를 지켜보다, 이펙트(효과)가 없으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의식이 돌아온 다음에 해야겠지만요.”
“이펙트는 어떤 거 같은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반반입니다.”
투약 효과가 그렇게 좋지 않기에 하는 말.
진혁의 대답에 한동수가 피식거렸다.
“원래 반반이 진리인 거 몰랐어?”
“네?”
“병원에서 시키는 치킨은 원래 반반이 진리라고. 다들 취향이 다르니까. 킥킥. 근데 난 뭘 좋아할까? 어?”
중의적인 질문.
진혁이 곧장 대답했다.
“옵(Operation, 수술)을 좋아하실 거 같습니다.”
“왜?”
“CS의 꽃은 옵이니까요.”
“캬~! 정답! 정답이다! 정답이라고!!”
진혁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동수가 이빨을 드러내며 크게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진혁이 탐이나 미칠 거 같았다.
이진혁은 수련만 잘 시킨다면, 숱한 환자의 목숨을 구할 명의가 될 놈이었다.
‘허어, 명의가 될 상이로다.’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한동수가 꾹 눌러 참았다.
* * *
그 시각.
윤희철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혁의 행태가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턴이었다.
아니, 잡부였다.
한데, 대답을 막힘없이 한다.
그것도 확신에 차서.
말투는 교수님께 보고하는 만큼 딱딱했지만, 정말 자신에 차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대답할 수 있지?’
납득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정의를 내리려 했다.
‘이건 뭐 인턴이 아니라 괴물이네, 괴물.’
그래, 이진혁은 괴물이었다.
뭐라 정의할 수 없지만, 윤희철이 내린 결론은 그거였다.
그때 한동수가 뜬금없는 말을 내뱉자.
이를 지켜보던 윤희철의 입이 턱 하니 벌어졌다.
“너 내 거 하자.”
“네?”
“내 거 하자고. 아니, 아들 하면 되겠다. 양아들.”
졸지에 막내에서 양아들로 승격됐다.
아니, 간식에서 양아들이 되었다.
아, 좋아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