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59)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59화(59/388)
59화. 마지막 잎새 (8)
컨퍼런스와 회진은 금세 끝났다.
어느덧 면회 시간.
분명 출근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김수현이 모습을 보이자 진혁이 놀라워했다.
뭔가 심경 변화가 있는 듯 보였다.
“흐윽. 아빠.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빠.”
끝없이 죄송하다고 외치는 김수현.
김순덕 또한 눈물을 흘렸다.
진혁이 말을 걸었을 때 흘렸던 눈물이 아니라 그건 진짜 눈물이었다.
딸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다시 봐서 반갑다는 안도감이 섞인 눈물이었다.
짧은 면회 뒤.
진혁이 말했다.
“아버님을 흉부외과로 모셔 갈 겁니다.”
“입원하는 건가요?”
“입원하기 전에 시술부터 할 겁니다.”
“수술이요? 방금 막 깨어나신 건데…….”
“수술이 아니라 시술입니다. 아직 심장 박동이 불안정해서요. 고주파를 이용한 치료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흉부외과에서도 충분히 검토하고 결정한 거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전극도자절제술(RFCA)를 하기로 했다는 말.
98년도에 도입된 시술이었지만, 미래에는 그 안정성이 담보돼 있었다.
“안전한 거지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통증도 거의 없어서 마취도 하지 않고 진행하니까요.”
“…….”
“물론, 국소마취는 진행할 겁니다. 이건 동의서고, 예상되는 부작용으로는…….”
진혁이 한참 설명을 이어 가자, 김수현이 동의서에 사인했다.
그러고는 곧장 고개를 숙였다.
“감사 인사도 못 드린 거 같아서요.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다행히 의식도 돌아왔고 바이탈도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시술도 가능한 거고요.”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
“정원에 가 봤어요. 그래서 더 포기하지 않았는지도 몰라요. 회사도 그래서 안 갔고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거듭 사의를 표하는 김수현.
진혁이 손을 내저었다.
“너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단 저녁 면회는 시간 맞추기 힘드신 거죠?”
“네. 지금 가 봐야 해서요. 사실, 아침 면회도 사장님한테 간신히 허락받았어요. 밤늦게까지 일하는 조건으로요.”
“면회하실 수 있게 흉부외과에 연락해 두겠습니다. 시술이 끝나면 그쪽 중환자실로 옮길 거라서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수현이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사실 아버지 곁에 있고 싶으리라.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시술이 어떻게 끝날지 알고 싶으리라.
하지만, 냉혹한 현실이 그녀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하……. 진짜 어쩌다가…….’
진혁의 눈에 안타까움이 서렸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지만, 현실의 드높은 벽은 어쩔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병원비라도 마련하기 위해 저러는 게 분명했다.
매일 수천 명의 실업자가 쏟아져 나왔고.
통계에 잡힌 실업자만 160만 명.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실업자만 200만 명이 넘는 시대였다.
누구의 잘못일까?
정치권? 금융권?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평생직장이라는 말을 믿었던 회사원?
모르겠다.
어쩌면 그 누구도 잘못한 게 없는지도 모른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한국.
자원 하나 없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정도로 다들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병이 이유 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다들 아파하고 있었다.
* * *
진혁이 곧장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딸깍.
“예, 선배님. 저 진혁입니다.”
[왜? 아까 그 환자 때문에?]“네, 겸사겸사 전화드렸습니다.”
[테이블 데스는 피했어.]“아……! 감사합니다.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
[아직 지켜봐야 돼.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수술실에서…….]정진석이 한참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아직 바이탈이 위태위태했지만, 흉부외과 ICU에서 집중 케어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번엔 진혁이 입을 열었다.
“보호자가 사정이 있어서요. 그게…….”
[어렵긴 뭐가 어려워. 우리 막내 부탁인데.]“감사합니다.”
[그보다, ER이야 CS야?]“…….”
[빨리 정해라. 답답해 죽겠다.]“예, 선배님.”
[선배라고 부르는 건 좋네. 아, 그리고 한 교수님이 난리다. 난리. ER이랑 전쟁한다고 난리라고.]갑작스러운 말.
진혁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전쟁이요?”
[어, ER에서 너 막내라고 부른다고 말씀드렸더니 엄청 화내셨어. 첨엔 그래서 내려가셨던 거야.]순간 모든 정황이 이해된다.
갑자기 EICU에 등장한 한동수.
콜폰 TO를 주겠다며 내기를 제안했고.
자신이 승리했다.
하지만, 환자를 보러 내려온 줄 알았더니, 자신을 보러 내려왔단다.
‘ER에서 막내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런 거야? 하!’
기막힌 상황.
진혁이 아무것도 모르는척하며 말했다.
“아까 뵀을 때는 그런 말씀 없으셨는데요. 절 양아들이라고 부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양아들? 그거 그냥 무시해.]“네?”
[아씨. 이 양반이 진짜 부담을 팍팍 주고 오셨네!! 나한테도 그랬어.]“진짭니까?”
[진짜라니까! 내가 27번째 양아들이야.]진혁이 대답 없이 핸드폰을 한참 내려다봤다.
헛웃음이 나와서다.
독자인 줄 알았더니 가족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27번째라니.
다른 양아들들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 다 도망갔나?
* * *
뭔가 속은 느낌에 머리카락이 쭈뼛거릴 때.
정진석이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혹시 바로 퇴근하냐? 지금 퇴근 시간 넘긴 거 아니야?]“맞습니다. 김순덕 환자 퍼미션(동의서) 받는 거 때문에요.”
[그럼 Car-In(수술실로 환자를 옮기는 행위) 하면서 잠깐 보고 갈래?]“알겠습니다.”
뚜욱.
짧지만 긴 통화.
어찌 됐든 제 부탁을 들어준다는 말이니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정진석이 왜 올라오라고 하는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그때까지는 수술실에 들어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Car-In.
환자를 수술방으로 옮기는 일을 말한다.
사실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통의 환자라면 용역 업체가 이송을 맡았지만, 중환자의 경우 의료진이 킵을 서야 했고.
김순덕의 경우 같이 옮겨야 할 장비가 많았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도착한 CS.
로젯(수술 대기실)에 도착하자 심각한 얼굴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이들이 가득했다.
ER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렇게 분위기를 살필 때.
깡마른 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진석이었다.
“선배님.”
“촬영은 여기선 안 해?”
“네. 아무래도 CS니까요.”
“아. 그래? 여기서도 하면 좋을 텐데. 어차피 시청자들도 궁금해할 거 아니야.”
뭔가 아쉬운 얼굴.
지금 이를 논할 때가 아니었기에, 진혁이 말을 돌렸다.
“나중에 한번 말해 보겠습니다. 환자는 어떻게 할까요.”
“곧 사람들이 올 거야. CAT(심도자실)으로 옮겨야 하거든. CV(심장내과)랑 같이 쉐어하고 있어.”
“…….”
“혹시 RFCA(전극도자절제술) 시술 참관하지 않을래? 이게 우리도 도입한 지 얼마 안 됐거든. 신기술이야. 신기술.”
“네?”
갑작스러운 참관 제안.
처음엔 당황했지만, 진혁이 바로 대답했다.
김수현을 대신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방해 안 되게 조용히 서 있겠습니다.”
“오케이. 좋아~! 절대 부담 주는 거 아니고. 그냥 우리 과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보여 주려는 거야. 오케이?”
“참관은 인턴의 특권이죠. 감사합니다.”
통상 관심 있는 과의 수술방에 들어가 참관하기에 하는 말.
물론, 인턴의 참관은 집도의의 허락이 필요했다.
“근데 CV에서는 오케이 한 건가요?”
“뭐?”
“RFCA가 그레이한 부분이 있는 거 같아서요. 사실, 영역이 겹치잖아요. CV에서는 자신들이 집도해야 한다고 주장할 거 같아서요.”
“아……!”
별로 밝히고 싶지 않은 영역 싸움을 언급하는 진혁.
정진석의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소문이 아직도 돌아?”
“네?”
“아니, 올 초에 있었던 일을 네가 어떻게 아냐고. 안 그래도 장비 도입할 때부터 말이 많았거든.”
대답할 수 없는 질문.
이럴 때 말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몰랐습니다.”
“몰랐다고?”
“네, 그냥 짐작했습니다.”
“흐음.”
정진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게.
고작 인턴 주제에 CS(흉부외과)와 CV(심장내과) 간의 영역 다툼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차츰 경피적 시술이 늘어나면서, 심장 파트는 CV 쪽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CS에서는 뺏기기 싫어서 싸우는 중이었고.
“서신대 병원도 알력 다툼이 심한가? 폴리클(PK, 임상 실습생) 때 본 거야?”
“…….”
“뭐,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데니까 똑같겠지. 아무래도 둘 다 심장을 다루니까 우리 쪽 CV도 난리 쳤지. 뭐, 거의 전쟁이었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납득하며 설명하는 정진석.
진혁은 그의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정진석이 말을 이어 갔다.
“교대로 했다고는 해도 한 교수님이 많이 해 보셨어. 워낙 잘하시니까. 잠깐만.”
그가 곧장 핸드폰을 꺼냈다.
환자를 옮길 이들이 오지 않자 푸시하는 거다.
* * *
정진석과 대화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CS에는 세 개의 파트가 있다고 했다.
성인심장 파트
폐식도 파트
소아심장 파트.
레지던트인 정진석은 순환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성인심장 파트 소속이었다.
잠시 후.
환자를 인계한 진혁이 심도자실(CAT)에 먼저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거대한 크기의 디텍터다.
혈관 조용히 가능해야 했으니, 크기는 말할 것도 없이 컸다.
반가운 눈빛으로 이를 바라본 뒤.
진혁의 시선이 고주파 전극도자절제술(RFCA) 장비로 향했다.
심장 구조를 3차원으로 복제할 수 있는 의료기기.
컴퓨터로 인터페이스 한 뒤, 이상 리듬을 유발하는 곳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장비였다.
자신 또한 많이 다뤄 봤기에, 갑자기 손이 근질근질했다.
가슴마저 콩닥콩닥 뛸 정도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세차게 박동하는 심장.
그리고 찌릿찌릿한 느낌까지.
교감 신경이 흥분하면서 신호를 보내는 게 틀림없었다.
‘천생 써전(Surgeon, 외과의)을 할 운명인가.’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상황.
그저 바이탈과로 간다는 결정만 했다.
허나, 이놈의 몸뚱어리는 마치 제 자리를 찾은 것처럼 반응하기 바빠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환히 웃던 진혁의 표정이 무표정으로 변했다.
마인드 컨트롤은 써전의 기본.
항상 냉정해야 했다.
그게 참관일지라도 말이다.
그때, 갑자기 심도자실의 문이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부산스럽게 들어왔다.
시술 전에 해야 할 검사를 마친 뒤, 김순덕과 함께 이동한 이들이었다.
“라인 꼬이지 않게 조심해!”
“어어. 호흡기 빠지지 않게 하라니까!”
“발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서로 주의를 주며 환자를 옮기는 이들.
김순덕이 심도자실의 베드에 몸을 뉘인 건 한참 뒤였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정진석이 말했다.
“Propranolol(베타차단제) 120mg, Verapamil(칼슘차단제) 160mg 주세요.”
“네.”
저하된 심기능을 보조하고.
심실 반응을 적절히 조절하기 위한 약을 투약한다.
정진석의 오더가 이어졌다.
“소타롤(Sotalol, 비정상적인 심장 리듬을 치료하는 약물) 80mg 주세요.”
이를 지켜보던 진혁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시술 직전에 여러 가지 약물을 투약한 상황.
심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1분, 2분, 3분, 5분.
짧지만 긴 시간이 흐른다.
의식이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김순덕.
특별한 이벤트가 생긴다면 큰일이었다.
별일이 없다고 생각한 정진석이 전화기를 들었다.
딸깍.
“교수님. 준비 끝났습니다.”
뚜욱.
이제 본격적인 시술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