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60)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60화(60/388)
60화. 마지막 잎새 (9)
심도자실에 들어선 한동수.
당장 진혁을 보며 반색했다.
“이야, 우리 막내아들이 여길 다 왔네?”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에 발린 말도 잘하고. 어~! 아주 이뻐 죽겠다니까?!”
한동수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그가 이번에 도입한 신형 기계를 가리켰다.
“이게 바로 최신형 기계다. 어! 내가 예산 따려고 얼마나 싸운 줄 알아?”
“…….”
“빌어먹을 운영회의에서 반려만 안 했어도 우리가 최초로 시술하는 거였다고. 안 그러냐, 진석아.”
“기록을 뺏긴 게 원통할 뿐입니다!”
“킥킥. 뭐, 수술 건수로 압도해 버리면 그만이지. 안 그래?”
“밟아 주시죠. 교수님.”
“오냐. 밟아 주마.”
열의를 불태우는 대화.
학회 주관 세미나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다른 병원을 상대로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너무 가볍다는 생각도 잠시.
집도에 들어가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동수의 표정이 변했다.
“김순덕 환자, RFCA 시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이미 사타구니 안쪽 대퇴정맥 부근은 국소마취가 끝난 상황.
그가 바로 절개를 시작했다.
스윽.
길이는 3cm.
절개 부위를 최소화한다.
대퇴정맥에 카테터만 삽입하면 됐으니까.
“전극도자.”
“여깄습니다.”
“흐음.”
그의 손놀림이 신중해졌다.
끝은 일자 모양.
반대편은 손잡이가 달려 있다.
고주파로 병변을 기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심장까지 밀어 넣어야 했고.
대퇴정맥은 심장까지 가는 통로일 뿐이었다.
스으윽.
사그락.
모니터를 보며 계속 손을 놀린다.
전극도자가 조금씩 전진했다.
느릿느릿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얼마나 됐을까.
한동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카테터.”
“여깄습니다.”
“흐음.”
이번엔 카테터를 밀어 넣어야 한다.
끝에는 ○ 모양의 고리가 달려있고.
반대편에는 전극도자와 마찬가지로 손잡이가 있다.
손잡이를 이용해 고리를 키울 수도, 줄일 수도 있는 거다.
전기 신호를 확인하는 용도였으니, 일종의 스캐너다.
스으윽.
사그락.
조심스럽지만.
빠르게 밀어 넣는다.
중간에 가이드 와이어가 걸릴 수도 있는 일.
심장까지 가는 길은 멀기만 느껴졌다.
잠시 후.
전극도자와 카테터가 심실 내부로 진입했다.
“ACT(Activated Clotting Time, 활성화 응고 시간) 수치 보고해.”
헤파린(혈전 형성 방지) 투약 전 용량을 가늠하기 위한 일.
ACT 수치를 체크하는 건 기본이었다.
“131 나왔습니다.”
“5,000IU 밀어 넣어.”
“네. 헤파린(Heparin, 혈전 형성 방지) 투약합니다.”
곧, 고용량의 헤파린이 투약된다.
이를 잠깐 지켜본 한동수가 다시 손을 놀렸다.
동그란 고리가 붙어 있는 카테터를 움직이며 3D 지도를 그린다.
슥슥.
삭삭.
만화가라도 된 것처럼 채색한다.
도화지는 김순덕의 심장.
물감은 검은색, 붉은색, 초록색.
일순 간단해 보이면서도 간단하지 않다.
심장의 겉면은 검은색.
내부는 붉은색.
전기 신호를 보내는 조직은 초록색.
각기 다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젠 나쁜 신호를 보내는 조직들을 감별하고 절제할 차례.
초록색 중에 나쁜 놈들을 골라내고, 전기 자극을 통해 병변을 기화시키면 끝이었다.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해도 무방한 거다.
하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질문이라서 그런데.”
“…….”
“혹시 우리 막내아들이 맞힐 수 있을까? 어떤 놈들이 못된 놈들인지 말이야.”
한동수의 고개가 진혁을 향했다.
* * *
시술 중에 무슨 대화냐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제식으로 이뤄지는 의료계의 교육 체계상, 환자를 앞에 두고 교육하는 일이 빈번했다.
물론, 한동수가 저럴 수 있는 건 김순덕이 잘 버티고 있어서다.
잠시 고민하던 진혁이 말했다.
“논문을 본 적이 있습니다.”
“뭐? 논문을 봤어?”
“네.”
“갓 도입된 시술인데?”
“미국 논문을 봤습니다.”
“하……!”
한동수가 기막혀했다.
갓 도입된 시술이거늘.
벌써 논문을 봤단다.
그래서 나쁜 신호를 보내는 조직을 감별할 수 있단다.
“이런 케이스의 경우…….”
“뜸 들이지 말고 말해. 심장 떨린다.”
“PV(Pulmonary Vein, 폐정맥)랑 LA(Left Atrium, 좌심방) 사이의 접합 부위가 말썽인 놈들이라고 배웠습니다.”
“짚어 봐.”
“네. 그러니까 여기랑 여기입니다.”
빠르고 불규칙한 자극을 방출하는 기전.
이를 정확히 짚어 낸다.
한동수가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거기가 기전이라고?”
“네.”
“그러니까 거길 어블(Ablation, 고주파 절제)하라는 거지?”
“네. 여기서 생성된 전기적 유발 자극이 방출되면서 AF(Atrial Fibrillation, 심방세동)를 만들어 냅니다.”
확신에 찬 대답.
한동수가 갑자기 욕설을 내뱉었다.
“와. 시발. 너 대체 뭐 하는 놈이냐?”
“네?”
“인턴이라며?”
“…….”
“넌 그냥 CS다. 어? 아주 안 오기만 해 봐. 혀 깨물고 콱 죽어 버린다.”
조금 전엔 욕을 하더니.
이번엔 협박이다.
그만큼 탐이 나는 거다.
한동수의 고개가 정진석을 향했다.
“진석아. 혹시 이거 꿈이냐?”
“저랑 동시에 꿈을 꾼다고요?”
“그래. 잠을 못 자니까 이젠 수술하는 꿈을 꾸는 거 같다.”
“저도 그런 걸까요?”
“그래.”
정진석이 눈을 뻐끔거렸다.
“그래도 수술은 해야겠죠?”
“그래, 꿈이라도 해야지. 환자가 죽으면 찝찝하잖아. 안 그래?”
“그렇죠.”
“와. 진짜. 씨발. 말도 안 되는데.”
한동수가 투덜거리며 다시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말은 멈추지 않는다.
“일단 꿈이라도 어블(고주파 절제) 시작한다.”
“네.”
그렇게 시작된 절제.
심장 내부는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다고 알려졌지만, 고주파 전기 자극을 쏘자 김순덕이 움찔거렸다.
심장 주변 근육이 자극되며 미약한 통증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시술이 끝나기 무섭게 한동수가 으르렁거렸다.
“ER이랑 전쟁이다, 전쟁. 내 건 절대 못 뺏겨.”
눈앞에서 보는 ER을 향한 선전 포고.
거기에 더해 정진석마저 입술을 앙다물었다.
“교수님, 저 이제 못 하겠습니다.”
“뭘 못 해.”
“밀당하는 거 그만두렵니다. 이제부터 저도 당기겠습니다.”
“뭐? 그럼 누가 밀어?”
“그냥 대놓고 당겨야죠. 무조건 잡아야 합니다.”
“그래, 같이 당기자. 이젠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거라고.”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진혁이 쓰게 웃었다.
원래 이런 건 몰래 해야 하는 게 아니던가.
아니, 어쩌면.
정면 돌파밖에 모르는 CS다운 모습이지 않을까.
좋아하면 안 되는데, 뿌듯해하면 안 되는데.
어차피 전공은 내 맘대로 정할 거라고 말해야 하는데.
웃음이 나는 건 왜 그럴까.
* * *
모든 시술이 끝난 상황.
간호사와 레지던트들이 캣(CAT, 심도자실)을 정리하자, 진혁이 입을 열었다.
“저, 그게.”
갑자기 한동수가 귀를 막았다.
“안 들린다. 안 들려. 안 들린다고.”
“네?”
“한 마디도 꺼내지 마. 뭐, 부담된다. 생각해 보고 결정할 거다. 내 진로는 내가 정한다. 이런 말은 하지 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그 말에 한동수가 어처구니없어했다.
집도의를 향한 인사였건만, 헛다리를 제대로 짚은 탓이다.
민망함이 극에 달한 그가 소리쳤다.
“뭐 해! 환자 옮기고 애들 붙여서 킵시켜. 환자 죽으면 다들 죽는다!!!”
한동수도 민망함을 아는 사내였다.
* * *
심도자실을 나온 한동수는 곧바로 약속을 이행했다.
CS 몫으로 배정된 통신비 지원 TO에 진혁의 이름을 밀어 넣은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단 소속이 달랐다.
지원팀에서 난색을 표했지만, 우격다짐을 막지 못했을 뿐이다.
그에게 인사를 한 뒤.
진혁은 SICU(외과계 중환자실)로 향했다.
시술을 마친 김순덕이 있는 곳이었다.
‘흐음. 생각보다 괜찮은데?’
조금씩 EKG(심전도) 그래프가 안정을 되찾고 있기에 하는 생각.
계속 약물을 투약하고.
케어해야 했지만, 완전히 고비를 넘긴 것이다.
SICU에 근무하는 이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곧장 1층으로 내려왔다.
이미 오프 시간을 한참이나 까먹은 상황.
이젠 퇴근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김수현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하러 갔던 보호자.
결과가 궁금해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연락은 따로 해 줘야겠지.’
진혁은 곧장 인턴 휴게실로 향했다.
보호자의 전화번호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 * *
진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건만, 뜻밖의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안 갔어? 자?”
“…….”
책상에 엎드려 있는 이태희는 말이 없었다.
아니, 그녀의 반응은 수상하기만 했다.
분명 문이 열릴 때 움찔했던 걸 보면, 자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진혁이 다시 한번 그녀를 불렀다.
“무슨 일 있었어?”
“…….”
“자는 거야?”
“…….”
여전히 대답이 없다.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린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
딸깍.
딸깍.
타다닥.
몇 번의 클릭으로 알아낸 김수현의 연락처.
전화를 걸기 무섭게 통화음이 들린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직원과 고객을 사랑하는 ○○회사입니다~!’라는 안내 문구였다.
순간 실소가 나왔다.
직원을 사랑한다니?
정말일까?
부품으로 여기는 게 아니고?
곧, 그녀와 통화할 수 있었다.
“……당분간 안정을 취하면서 회복에만 집중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감사 인사.
뿌듯한 마음이 밀려와 절로 웃음이 나왔다.
후유증이 있을지도 몰랐지만, CS에서 확실하게 케어한다고 했으니 한시름 놓은 거다.
‘그래, 이 맛에 하는 거지. 하하.’
진혁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곧바로 얼굴을 굳혀야 했다.
그건 이태희 때문이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버린 그녀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보호자한테 연락한 거야?”
“어, 궁금해할까 봐. 방금 CS로 트랜스퍼한 환자 옵(수술) 들어간 거 참관하고 왔거든.”
“살았다는 거지?”
“통화 들었으면 알 거 아니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상황.
분명 평소처럼 말했건만, 그녀가 울음을 터트린다.
“흐윽. 흐으윽.”
“?”
“흐으으윽. 나는, 나는 환자가 죽었어. 고작 6살이었는데…… 고작 6살이었는데 죽었다고!!”
“아……!”
로테이션에 따라 요즘은 소아응급실에서 근무하던 이태희.
소아 환자의 죽음으로 멘탈이 나간 모양이었다.
“…….”
진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응시했다.
속상했으리라.
아니, 자신의 무기력함이 원망스러웠으리라.
꼭 살리고 싶었던 환자가 죽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었으니까.
“흐으윽. 흐윽. 끄윽.”
이태희는 계속해 오열했다.
울고, 또 울었다.
그녀에게 다가간 진혁이 말없이 등을 토닥거렸다.
괜찮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이 또한 의사가 되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지금 이 감정을 잊지 말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라고.
이런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말없이 위로해 줘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