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66)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66화(66/388)
66화. 첫 방영 그 후 (5)
20대 중후반인 남녀 네 명.
식사 자리가 곧 술자리였다.
“여기 소주 한 병이요~!”
아르바이트생이 소주를 내오자 이현아가 곧장 병을 흔들었다.
“우리 한 잔 꺾고 할까요? 어색함도 풀고요.”
“좋습니다. 하하.”
“뭐. 그러죠.”
박영진의 지시 때문에 술을 마시면 안 됐지만, 진혁은 워낙 자기 관리에 자신이 있었고.
장혁준은 금사빠처럼 넋이 나가 있었다.
술잔을 꺾기를 수차례.
어느 정도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장혁준이 정아름을 향해 말했다.
“PD님은 어디서 일하세요?”
“저는 반쪽이에요.”
“반쪽이요?”
“시사교양국처럼 시사를 다루는 것도 아니고 완전 예능을 다루는 것도 아니라서요. 그냥 반반이라고 할 수 있죠.”
“이야. 저도 반쪽인데.”
“네?”
“아직 의사 면허만 있지 완전체가 아니라서요.”
“어머, 그래요?”
넉살도 좋고 구김살이 없는 장혁준.
정아름도 싫진 않았는지 반응이 좋았다.
기획안에 대한 이야기를 할 틈도 없이 시끄러운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 후.
여자들이 단체로 화장실을 가자 진혁이 장혁준의 허리를 쳤다.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요.”
“영상 편지요. 영상 편지.”
“아, 몰라요. 몰라.”
“뭘 모른다는 거예요?”
“아, 괜히 분위기 망치지 말라고요.”
“?”
“어차피 헤어질 위기인데 잘됐어요.”
출발할 때와 180도 다른 장혁준.
진혁이 혀를 내둘렀다.
* * *
그 시각 이현아와 정아름은 화장을 고치느라 바빴다.
립스틱을 바르던 이현아가 묘한 눈빛으로 정아름을 바라봤다.
“마음에 드는 거 같은데?”
“마음에 드네요.”
“그래? 그럼 잘해 보든가.”
“그래야죠.”
“그래, 장 선생 성격이 괜찮아 보이더라.”
“음? 전 이진혁 선생을 찍었는데요. 과묵한 게 마음에 들어서요.”
“뭐어~!!”
순간 립스틱을 바르던 손을 멈추는 이현아.
그녀가 황당한 듯 되물었다.
“장 선생이 아니라 우리 막내 선생이야?”
“그 호칭 싫어하던데.”
“야. 어딜 넘봐.”
“뭘 넘봐요. 어차피 선배가 찜한 것도 아니잖아요.”
“야. 그래도 이건 상도덕이 아니지.”
“연애에 상도덕이 어딨어요.”
“와. 이게 아주.”
이현아가 도끼눈을 뜨자 정아름이 혀를 내밀었다.
“어차피 소개시켜 주려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뭐?!”
“그냥 분위기도 맞출 겸, 1:1보다 2:2가 좋아서 데려온 거잖아요. 내가 선배를 몰라요?”
“와.”
너무도 명백한 사실.
이현아가 얕은 침음성만 내뱉었다.
뜻하지 않은 변수가 나타났다.
* * *
사실, 처음엔 흥미가 돋았다.
아니, 호기심이라고 해야 맞았다.
한마디도 지지 않는 회의.
자신에게 틱틱거리는 거까지 마음에 들었다.
사랑? 사랑 따위는 아니었다.
얼마나 만났다고 사랑이란 말을 붙인단 말인가.
그냥 호감이었다.
하지만, 정아름의 난입.
거기에 더해 진혁까지 그녀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새로운 기획안을 짰다는 말이죠?”
“네, 그러니까.”
“아뇨, 잠깐만요.”
“?”
“지금 일 때문에 나오셨다?”
“아……. 그건 아닌데요.”
“그게 아니긴요. 지금 그거잖아요.”
밥을 산다는 말과 머리에 잔뜩 힘을 주고 온 일.
거기에 더해진 반전.
그 모든 게 승화작용을 일으켜 이현아를 자극했다.
“난 또 고마워서 밥이나 먹자고 한 줄 알았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요.”
“일은 일이다?”
할 말이 없던 진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녀가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태희에 이어 이현아까지.
여자는 정말 어려운 존재였다.
* * *
정아름의 중재로 계속된 술자리.
분위기는 금세 풀렸지만, 술에 취한 장혁준이 문제였다.
“3개월이라고……? 정말 3개월이라고?”
“아직 비밀입니다.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요.”
“와. 망했어요. 망했어. 망했다고요.”
“…….”
“다 말할 거예요. 다 말할 겁니다!!
“……!!”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살 순 없다고요. 안 그래요?!”
술에 취한 장혁준이 흥분하자 진혁이 혀를 찼다.
물론 그 자신도 김현수에게 근무 기간이 연장된다고 운을 띄웠다.
하지만, 장혁준은 말 그대로 사고 칠 기세.
그를 단속해야 했다.
“소문나면 다 죽는 거예요.”
“왜 죽어요.”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없긴 왜 없어요. 우리 네 명이 아는데요.”
“…….”
“치프도 알고, 과장님도 아는 거잖아요!!”
“우리가 술 먹은 건 아무도 모르죠. 안 그래요?”
누군가가 소문의 진상을 조사하면 결국 털어놓게 돼 있다는 말.
야마(족보)를 유출한 범인도 쉽게 잡히는 게 폐쇄적인 병원이었다.
박영진이 내린 금주령을 어겼다는 사실을 깨달은 장혁준이 침묵했다.
그러자 이현아가 새로운 제안을 해 왔다.
어느새 기분이 풀린 듯 보였다.
“우리 재밌는 게임 할까요?”
진혁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게임이요?”
“대학 다닐 때 미팅 안 해 봤어요?”
“해 봤죠.”
“그럼 이 타이밍에 뭘 해야 하죠?”
“뭘 하는데요?”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때, 의기소침해 있던 장혁준이 눈을 번뜩였다.
“오오오!! 콜입니다! 콜!!”
“오오! 역시! 우리 장 선생님! 젊어요! 젊어.”
“하하. 애늙은이랑은 다르죠. 지목 게임을 하자는 거잖아요.”
갑자기 태세를 전환하며 히죽거리는 장혁준.
그 모습에 진혁이 혀를 찼다.
어린애도 아니고 이 나이에 무슨 지목 게임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미 불타오른 이들을 막을 순 없는 일.
진혁이 마지못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이현아가 묘한 눈길로 싱긋거렸다.
“자. 하나, 둘, 셋 하면 지목하는 겁니다.”
“꼭 해야 하는 겁니까?”
“자꾸 이럴 거예요?”
“아니, 나이가 몇인데.”
“계속 그러면 기획안 빠꾸예요. 빠꾸.”
“고작 이거 때문에요?”
“삼다리 걸치셨으니까 다른 방송사로 가시든가요.”
“하……!”
진혁이 혀를 차자 이현아가 그대로 게임을 진행했다.
“자. 하나, 둘, 셋!!”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젓가락으로 서로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순간 희비가 엇갈렸다.
지목 게임은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의 탄식과 함께하는 법이었다.
* * *
장혁준은 정아름을 가리킨 상황.
하지만 그의 젓가락이 허공에서 외롭게 흔들렸다.
이현아와 정아름이 진혁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으으으으. 이게 대체……!!”
장혁준이 휙 하니 고개를 돌려 진혁을 노려봤다.
벌써 세 번째 노려봄이었다.
반면, 젓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지목한 진혁.
당연히 원성이 터져 나왔다.
“와. 나 안 해. 촬영 안 해. 보복할 거야.”
도끼눈을 뜨는 이현아.
거기에 자신을 노려보는 장혁준.
정아름의 섭섭한 표정까지.
나라를 팔아먹은 대역죄인이 여기 있었다.
“어머, 진짜 너무해요.”
“이런 게 어딨어요!! 게임 처음 해 봐요?!!”
“와……. 진짜. 너무하네. 너무해.”
날카로운 말과 매서운 눈빛 공격이 계속됐다.
그 모습에 진혁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 자신을 지목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하지만 변명이 통하지 않는 상황.
진혁이 묵묵히 비난의 화살을 감내했다.
사실, 술김에 이현아를 지목할 뻔했다.
얼굴도 예뻤지만, 키도 크고 몸매 또한 늘씬했으니까.
알코올이 가져다주는 정신 착란 효과인지.
아니면 빨간 립스틱이 조명에 반사된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그녀를 가리킬 뻔했다.
하지만 방송계에 종사하는 그녀의 직업이 걸렸다.
거기에 더해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뭐, 편집을 잘해 달라고 아부하는 거 같잖아.’
사실 이현아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기획안대로 진행된다면 술기 대회 우승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그때, 탁자 위에 올려둔 진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갑자기 온 전화.
모르는 번호였지만, 진혁이 냉큼 전화를 받았다.
구세주나 다름없는 전화였다.
“네, 이진혁입니다.”
[아신 병원 인턴 이진혁 선생님 맞으십니까?]“네, 맞습니다만.”
[저는 진영국 변호사라고 합니다.]“네? 변호사요?”
[선생님이 초진을 보셨던 진종호 씨 아들 되는 사람입니다. 기억하십니까?]진종호라는 이름.
곧바로 기억나진 않았다.
하지만, 곧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NS(신경외과) 레지던트인 이상민과 신경전을 벌여야 했던 환자.
이상민을 불러내기 위해 수없이 차트를 기록해야 했던 그 환자였다.
한데, 보호자가 뜬금없이 전화를 해 왔다.
* * *
세상일은 뜻대로 되는 게 없다고 했던가.
조용히 살고자 했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유명해졌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더 유명해지고자 했던 일이 뜻하지 않은 결과로 돌아오고 있었다.
뚜욱.
전화를 끊은 진혁이 얼굴을 굳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분 단위로 차트를 기록하며 살폈던 환자.
병세가 바뀌는 변환점이 오기 전부터 NS를 콜했고, 결국 이상민을 끌어내 트랜스퍼시켰다.
하지만, 죽었단다.
진혁의 반응이 심상치 않자 앙심을 품은 장혁준이 엉뚱한 소릴 내뱉었다.
“혹시 누구 때렸어요?”
“아뇨.”
“그럼 변호사는 뭔데요. 갑자기 전화 오는 게, 보통 수상한 게 아닌데요?”
“…….”
뜬금없는 장혁준의 공격과 석연치 않은 진혁의 태도.
이를 심상치 않게 여긴 이현아가 나섰다.
“뭔데 그래요.”
“…….”
“그러고 있지만 말고 말 좀 해 봐요.”
계속된 성화에 진혁이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환자가 사망했어요.”
“근데 변호사가 왜 연락해요?”
“보호자가 변호사인데, 도와달라네요.”
“?”
“의료 소송을 하고 싶대요. 제가 초진을 본 환자거든요.”
“아……!!”
순간 이현아의 얼굴이 경직됐다.
의료 소송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
그 의미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장혁준마저 갑자기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장혁준이 제 입을 틀어막았다.
“히끅.”
그도 어지간히 놀랐으리라.
의사가 송사에 휘말린다는 건 끔찍한 일.
자칫 증언이라도 잘못한다면 배신자로 낙인찍히기 쉬웠고, 애원하는 보호자를 외면하는 것 또한 괴로운 일이었다.
불편한 침묵과 히끅거리는 소리가 장내를 휘감는 가운데.
이현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병원을 상대로 소송한대요?”
“정확히는 신경외과(NS) 주치의를 상대로요. 신경외과로 전과한 환자예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요?”
“일단 확인부터 해야죠.”
“음.”
이현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초진을 봐서 전화한 거라고? 아니, 그게 아니야. 상대가 이진혁이라서야.’
3선 국회 의원과 맞서 싸운 이진혁.
불의에 맞서 싸운 그의 이미지 때문에 전화한 게 분명했다.
무작정 거절한다면 진혁의 행태를 두고 언론 플레이를 할 수도 있는 상황.
불길한 상상이 들자 이현아가 냉수를 들이켰다.
꿀꺽.
꿀꺽.
“와……. 이거 꿈 아니지?”
정아름이 얼굴을 굳힌 채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아니죠.”
“우리 혹시 망한 거냐?”
“와. 지금 프로그램 걱정할 때예요?”
“둘 다 걱정돼서 하는 말이거든?”
“아닌 거 같은데요?”
“이게 진짜. 둘 다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니까.”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 같은 대화.
이현아와 정아름이 티격태격했지만, 진혁의 얼굴은 풀릴 줄 몰랐다.
* * *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를 보는 상황.
때문에 환자를 트랜스퍼시킨 뒤엔 신경 쓰지 않는 게 상례였다.
인계가 끝난 순간부터는 해당 과에서 환자를 케어하니까.
하지만 보호자가 아무 이유 없이 소송을 입에 담았을 리가 없었다.
‘일단 왜 죽었는지부터 확인한다.’
진혁은 술집에서 나온 뒤 곧장 택시를 잡아탔다.
그렇게 문을 닫으려는 순간.
이현아의 손이 훅 들어왔다.
“기획안은 메일로 보내 줘요.”
“고마워요.”
“위에 바로 보고하고요.”
“…….”
“아직 인턴이잖아요.”
“……!!”
“감당하기 어려울 땐 선배를 찾는 게 도리예요. 혼자 끙끙거리면 답도 없어요. 막내의 특권이라고요.”
그녀 나름의 위로.
진혁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평소라면 타지 않았을 택시.
진혁은 눈을 감은 뒤 그날 일을 떠올렸다.
이상민과 충돌했던 만큼 기억은 생생했다.
환자 나이는 60대 후반.
넘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단 이유로 내원했다.
처음엔 명료했던 의식 레벨이 변해 가자 청진을 시도했고, Bradypnea(비정상적으로 느린 호흡)을 확인했다.
검사 결과는 급성경막하 출혈.
차트를 써 가며 쇼를 한 덕분에 늦지 않게 환자를 인계했다.
하지만, 결국 환자의 죽음으로 끝나 버린 상황.
보호자가 소송까지 검토할 정도라면…….
‘NS로 트랜스퍼한 후에 과실이 있었던 건가. 아니, 아닐 수도 있다.’
차트를 확인하기 전까진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의료진이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았음에도, 환자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보호자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