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69)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69화(69/388)
69화. 첫 방영 그 후 (8)
어느덧 인턴 휴게실.
차트를 확인한 김상혁이 무거운 표정을 짓자, 진혁이 한참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러자 김상혁이 쓰게 웃었다.
“결국, 너 때문이라는 거네.”
“아직 짐작일 뿐입니다.”
“일단 출력해 보자.”
곧 김상혁이 출력된 차트를 책상 위에 펼쳤다.
그러고는 환자 사후에 입력된 것들을 검은색 펜으로 삭선했다.
“봐 봐. 없어도 완벽하다고.”
“그렇죠.”
“ER은 자세히 썼는데, NS는 자세히 안 쓴 게 부담되니까 밀어 넣었다는 말밖에 안 되잖아. 그냥 전화해 봐야겠다.”
곧장 핸드폰을 꺼내 드는 김상혁을 진혁이 만류했다.
“괜히 시끄러워지지 않을까요?”
“있어 봐. 나도 병원 짬밥만 벌써 5년째야.”
“그래도…….”
“가만있어 보라니까.”
진혁의 어깨를 툭 쳐 주곤 누군가와 통화하는 김상혁.
전화를 끊은 그가 쓰게 웃었다.
“백 프로야, 백 프로.”
“음…….”
“대놓고 물어보진 못했는데, 말하는 뉘앙스가 딱 그렇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일단 보호자를 만나 보려고 합니다.”
“만나서 뭐 어쩌게.”
“얘기는 들어 봐야죠. 혹시 타협점이 있다면 찾으면 되고요.”
“타협점?”
김상혁이 의아해하자 진혁이 한참 동안 설명을 이어 갔다.
그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었다.
* * *
뜻하지 않게 또다시 근무를 빼먹은 상황.
인턴 교육을 맡은 오태상과 장길만은 자신을 터치하지 않은 지 오래였지만.
EICU에서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인상을 찌푸릴 터였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이 문제부터 해결한다.’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수도 없는 일.
또다시 김상혁의 힘을 빌어야 했다.
그렇게 병원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보호자를 기다리고 있을 때.
정장을 입은 사내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전화드렸던 진영국입니다.”
“이진혁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색하지만 정중한 인사.
자리에 앉은 진영국의 안색은 초췌해 보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부친의 부고에 정신없을 테니까.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갑자기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많이 힘드시지요?”
“이렇게 힘들 줄은……. 세상이 다 무너지는 느낌입니다. 상태가 계속 안 좋으셔서 중환자실에서 오래 입원했다가 결국 돌아가셨으니까요.”
“원래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일은 다들 힘들어하십니다.”
진영국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곧.
그가 날카로운 감정을 드러냈다.
“전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전부 아신 병원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진혁의 말에 진영국이 가방에서 진료기록부를 꺼내 들었다.
사본을 원무과에서 받은 모양이었다.
“진료기록부입니다.”
“사본을 떼신 거군요.”
“네. 근데 이상한 점이 있더군요.”
“?”
“응급실에서 분 단위로 차트를 기록한 것도. 신경외과 레지던트가 콜을 거부했던 것도 전부 확인했습니다.”
“아…….”
순간 진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보호자가 소송을 결심한 이유.
그건 자신의 행동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 거였나…….’
티를 내진 않았지만,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저 노티를 해도 내려오지 않는 레지던트들을 조지기 위해 했던 행동.
그 행동이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었다.
* * *
진혁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처음엔 환자분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점점 안 좋아지셨죠. 신경외과에선 내려오지 않았고요.”
“신경외과에서 바로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맞습니다.”
“음. 이걸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지…….”
“편하게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진혁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어 갔다.
“신경외과 레지던트 선생님은 환자 상태가 나쁘지 않아 보존적 치료, 그러니까 약물을 투약하며 경과를 지켜보자고 한 거였습니다.”
“…….”
“처음에 콜을 거부한 것도 맞고, 상태가 심상치 않아 제가 다시 콜을 했을 때 거부하신 것도 맞습니다.”
“……!”
“하지만 내려오신 시점엔 충분히 조치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결국, 늦게 내려온 건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네.”
진혁의 단호한 대답에 진영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레지던트가 빨리만 내려왔어도. 아니, 진료만 빨리했어도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진 않았을 겁니다.”
거듭된 부인.
그는 부친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찾고 있었다.
진혁이 다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뇌 경막을 절개하고 그 틈으로 고여 있는 피를 빼내 뇌압도 낮췄습니다.”
“하지만 돌아가셨죠.”
“원래 급성경막하 출혈은 수술이 성공하더라도 후유증과 치명률이 높은 질환입니다.”
“…….”
“진료 과정에 아무런 실수가 없더라도 죽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말씀입니다. 필요하시다면 논문을 정리해서 드릴 수도 있습니다.”
또다시 단호한 대답.
진혁의 어조에 진영국이 반발했다.
“죄송하지만, 선생님께선 아직 인턴이시지요.”
“믿지 못하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그럼 정확히 제게 원하는 게…….”
“증인이 돼 주셨으면 합니다.”
믿지는 못하지만, 증인은 돼 달라는 말.
어찌 보면 무례한 요청이었지만, 진영국의 눈은 결연해 보였다.
‘이미 사고라고 단정 짓고 있구나.’
진혁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이건?”
“녹음기입니다.”
“!”
“보험용으로 가지고 나가라고 하더군요.”
“제가 장난칠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혹시 모르니까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진영국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진혁에 대한 숱한 언론 보도를 믿고 연락을 했건만, 녹음기를 갖고 나오다니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안 그래도 병원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지 않던가.
“보호자분을 만난다고 하니 누가 가지고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녹음을 하셨군요.”
“아뇨, 녹음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
“제 의지를 보여 드리는 겁니다. 부친을 잃은 분께 이런 장난을 치고 싶진 않았습니다. 의료인이기 전에 저도 사람입니다.”
“……!!”
“저는, 진영국 씨를 돕고 싶어서 나온 겁니다. 저도 부모님이 계십니다.”
진심이 가득 담긴 말.
순간 진영국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의 죽음 후, 제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료기록부를 떼는 것조차 힘들지 않았던가.
“선생님, 저는…….”
“…….”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그냥……, 그냥 모든 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제발 도와주십쇼.”
손을 덜덜 떨기 시작하는 진영국.
그도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업인 변호사이기 전에,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사람이었다.
그저 제 아비를 잃고 분노와 슬픔에 가득 차 어쩔 줄 몰라 하는 한 명의 인간인 것이다.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린 뒤.
진혁이 입을 열었다.
“소송을 하신다면 어려운 길이 될 겁니다.”
“이미 각오했습니다.”
“패소율이 높으신 것도 알고 계시지요.”
“알고 있습니다. 감정평가서조차 써 주길 거부하는 병원이 많았습니다. 친구들도 손을 젓더군요.”
“잘못 증언하면 배신자로 낙인찍히니까요.”
어려운 의학 용어가 가득한 진료기록부.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선 권위 있는 의사들에게 진료기록을 감정받아 법원에 제출해야 했지만, 이 또한 어려움이 컸다.
그의 기색을 살피던 진혁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혹시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응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네?”
“그게…….”
진혁이 한참 설명을 이어 가자 진영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었다.
* * *
커피숍에 홀로 남은 진영국은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도 변호사인 만큼 의료 소송의 패소율이 얼마나 높은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진료 기록지를 사후에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문제가 될 만한 상황에 직면하면, 차트를 언제든지 뒤늦게 입력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사후에 진료기록지를 입력해선 안 된다는 명문화된 법규도 없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진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제안을 해 왔다.
‘공개 검증을 하자고? 방송국이 개입하면 중립적으로 검증할 수 있을 거라고?’
폐쇄적인 병원이 응할지 모를 제안.
진영국이 그 가능성에 대해 한참 곱씹기 시작했다.
‘가능할까?’
그러다 문득 진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차피 패소율이 높지 않냐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냐고.
병원은 거절할 수 없을 거라고.
한참 방송 중이지 않냐고.
자신도 부모님이 있다고.
순간 진영국이 훌쩍거렸다.
“흐윽.”
사실 진혁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협박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불의에 맞서 싸운 이미지가 다 거짓이었냐고, 본모습을 폭로하겠다고 하면 제 뜻대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선의로 문제를 풀고자 했다.
순간 항상 바르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며.
세상살이가 원래 그런 거라며 강조했던 착하디착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아버지가 같은 하늘 아래 없다는 사실마저 떠오르자 서글픔이 물밀듯 밀려온다.
“끄으윽. 끄윽.”
쏟아지는 눈물과 떨리는 몸.
다시 억장이 무너져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
그가 너무도 보고 싶었다.
* * *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문제.
이를 해결할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나는 살고 너는 죽는 방법.
다 같이 죽는 방법.
다 같이 사는 방법.
진혁의 선택은 다 같이 사는 방법이었다.
사실,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이현아가 건네준 녹음기?
만일을 대비하긴 좋았지만, 수동적인 대응이었다.
일이 커진다면 녹취만으론 수습이 불가능했으니까.
그래서 진영국에게 공개 검증을 제안했다.
괜한 구설수도 피할 수 있고.
보호자도 억울함을 풀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를 위해선 해결해야 할 게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미리 김상혁의 동의를 얻었건만, 그가 또다시 우려를 표했다.
“그 방법밖에 없는 거 같아서 동의하긴 했다만, 이제 어떻게 할래. 보호자도 생각해 본다고 했다며.”
“일단 기획안을 수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이 PD가 검토하고 있는 거?”
“네, 조금 더 보완해야 할 거 같습니다. 원래 원하는 걸 얻으려면 상대가 원하는 것부터 줘야 하는 법입니다.”
“그 상대가 누군데?”
“과장님입니다.”
* * *
EICU에 근무하며 알게 된 일.
그건 약제의 유용성 검증도 미흡하다는 거였다.
할리페리돌 그리고 황산마그네슘의 효과 검증을 기획안에 담고.
환자도 구하고, 박영진도 설득하고, 의료 소송 건도 해결할 생각이었다.
또다시 시작된 수정 작업은 고됐다.
기획안을 수정하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약효를 검증하기 위한 임상 연구가 기획안에 들어간 게 결정적이었다.
대조군을 설정한 뒤.
한쪽에는 진짜 약을.
다른 쪽에는 위약을 투약한다.
그다음에 효과를 살핀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중 맹검(Double blind)을 하자고 제안했다.
의료진도 어떤 환자가 위약을 먹었는지 모르게 해, 연구 결과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법이었다.
타닥.
타다다닥.
윗선의 논문을 대필하거나 보조했던 경험이 있었던 김상혁이 주로 기획안을 고치는 사이.
진혁도 가만있진 않았다.
장혁준에게 전화를 걸어 재차 상황을 파악했다.
“다른 동기한테 물어본 거죠?”
[네, 이놈은 입이 싸서 그냥 술술 불던데요?]“확실하다는 말이죠?”
[확실하다니까요.]“고생했어요.”
뚜욱.
결국, 자신 때문에 차트를 밀어 넣었다는 말.
NS의 처치에는 이상이 없었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진혁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타다닥.
사건 개요부터 경과.
그간 있었던 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그렇게 몇 시간 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김상혁에게 고했다.
“일단 부딪쳐 보시죠.”
“솔직히 자신 없다. 부러트릴 자신이 없다고.”
“과장님도 거절하시진 않을 겁니다.”
“왜?”
“피해가 크니까요. 소송이 시작되면 당장 시청률이 떨어질 테고, 원하는 그림도 나오질 않을 겁니다.”
박영진이 거부했을 때 잃을 만한 것들을 나열한 진혁이 또 다른 제안을 해 왔다.
“이번 건은 제가 보고하겠습니다.”
“왜? 반응이 안 좋을까 봐?”
“네, 치프보다는 제가 혼나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야이씨. 너 내가 그 정도로밖에 안 보이냐? 내가 아무리 후배한테 무관심하다고 해도, 넌 아니라고.”
갑자기 화를 내는 김상혁.
그의 말에 진혁이 희게 웃었다.
과거로 돌아온 뒤 만난 새로운 사람들.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많았다.
아, 근데 사탕이라고 생각하는 건 좀 어떻게 안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