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7)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7화(7/388)
7화. 온천 여행 (1)
금세 다가온 김명숙 여사.
이태희의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어머니가 말했다.
“여자 친구랑 헤어져서 아신 병원에 간다더니…….”
어머니가 오해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태희마저 묘한 눈빛을 보냈다.
‘뭐야 실연당해서 타교 지원한 거야?’
뭐, 이런 한심한 눈빛이었다.
‘그런 거 아니라고! 아. 쫌!’
오해가 겹치고 있었다.
* * *
일주일 후, 동해호텔 앞.
인턴 교육이 시작되기 전, 어렵사리 부모님을 설득해 여행을 왔다.
진혁이 짐을 챙겨 들기 무섭게, 아버지가 손을 내밀었다.
“아빠도 좀 줘.”
“아니에요. 제가 끌게요.”
“손도 없는데 뭘 무리하고 그래.”
“괜찮아요.”
“여보, 냅둬요. 지가 한다는데 뭘 그래요.”
“나도 그냥 해 본 말이야.”
아버지가 너스레를 떨더니 어머니와 팔짱을 끼고 호텔 안으로 향했다.
그렇게 비싼 곳은 아니었지만, 해수욕장 바로 앞에 있었고.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는 이유로 인기가 많았던 곳이다.
체크인 후 들어온 온돌방.
짐을 내려놓기 무섭게 어머니가 나갈 채비를 하자, 진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나가시게요?”
“그럼!”
“왜 이렇게 서두르세요?”
“본전 뽑으려면 바로 가야지! 너도 어여 준비해!”
어머니의 말에 진혁이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빠도 지금 가실 거예요?”
“오랜만에 아들이랑 목욕이나 할까.”
“그럼 저도 준비할게요.”
그렇게 내려온 온천.
텅 비어 있다고 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평일에 온 탓도 있겠지만, 국가 부도라는 엄혹한 시기라서 더 그런 걸지도 몰랐다.
‘이 정도면 전세 낸 느낌인데?’
철렁.
온천탕에 몸을 담그자, 뜨거운 물이 주는 안락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뿐이랴.
거대한 크기의 온천탕을 고작 대여섯 명밖에 쓰지 않는다는 생각은 만족감으로 이어졌다.
“허어, 좋다. 좋아.”
“저희 자주 여행 와요.”
“적응하느라 바쁠 텐데. 뭘.”
“그래도요.”
“젊을 때 아껴야 하는 법이다. 여행보다 돈 모을 생각 하고. 월급 받으면 꼭 저금하고.”
삶의 연륜이 느껴지는 아버지의 조언.
진혁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저축도 많이 할게요.”
“엄마 용돈은 따로 챙겨 주고.”
“아빠는요?”
“아빠도 알아서 줘야지.”
“!”
“의사 아들 용돈 좀 받아 보자!”
방금까지 저축을 강조하던 아버지의 너스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눈물이 났다.
‘예전에는 왜 몰랐지…….’
애써 눈물을 참을 때.
같은 탕에 있던 중년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아드님이 의사예요?”
“네, 아신 병원 의사예요, 의사.”
“아이구. 좋으시겠습니다. 아들 하나 잘 키우셨네요.”
“잘 키웠죠. 아. 요놈이 글쎄 효자예요, 효자. 학원도 보내지 않았는데 지 혼자 공부하더란 말입니다.”
“부럽습니다.”
“하하. 그렇긴 하죠.”
IMF의 유탄을 온몸으로 맞아 명퇴한 아버지.
그늘만 졌던 아버지에게 유일한 자랑거리가 자신이었다.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참 자랑을 이어 갔다.
.
.
.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지자, 진혁이 이를 만류했다.
“너무 오래 있으면 심혈관에 안 좋아요.”
“그래? 그럼 이제 나가 볼까. 우리 의사 선생님 말씀을 따라야지. 으쌰!”
곧바로 탕에서 나온 둘.
재밌는 건, 방금까지 아버지와 얘기하던 중년 사내마저 따라 나왔다는 거다.
의사가 하는 말이니 무시하긴 그랬으리라.
“땀이나 빼러 갈까?”
“아뇨, 지금 가시면 조금 그래요.”
“뭐가 그래?”
“뜨거운 물에 너무 오래 있었어요.”
“그래?”
“네, 제가 때 밀어 드릴까요?”
진혁이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사실, 낯부끄러운 말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란 게 원래 살갑지 않은 법이었다.
“얼른 앉아 보세요.”
“네가 왜 때를 밀어?”
“?”
“때는 전문가가 밀어야 시원한 법이야.”
“아!”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
거기에는 이태리타월을 머리에 두른 세신사가 서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맞이하는 손님이리라.
* * *
아버지의 등을 밀어 드리며 온기를 느끼고 싶다는 로망은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아버지가 즐거워하고 있다는 게 절로 느껴졌으면 된 거다.
‘그간 고생만 하셨는데…….’
말없이 눈물을 훔치던 진혁이 탈의실로 나온 건 한 시간 후였다.
어느덧 옷을 갈아입고, 탈의실 안 평상 위에 식혜와 구운 계란을 펼쳤다.
“껍질이 잘 안 까지는데요?”
“잘 좀 해 봐.”
툭툭.
평상 모서리에 계란을 내리치면서도, 진혁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때밀이는 어떠셨어요?”
“때는 역시 전문가가 밀어야 해.”
“그렇게 좋으셨어요?”
“그럼. 아주 묵은 때가 다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너도 했어야 했는데. 쯧.”
“전 다음에 할게요.”
때를 자주 밀면 피부건조증에 따른 피부 노화가 오기 때문에 건강상 좋다고 할 수 없었지만, 어른들의 생각은 달랐기에 이를 굳이 말하지 않았다.
뭐, 이 정도 사랑이라면, 이태리타월이 아니라 코리아타월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잠시 후.
둘은 매표소 앞에서 어머니를 기다렸다.
진혁의 피부는 윤기가 좌르르 흘렀고, 온천욕의 효능인지 한층 젊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 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 없는 어머니 때문에 뽀얗던 피부마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너무 일찍 나왔나 봐요.”
“먼저 올라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구요.”
“아니, 이 여편네는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야.”
“여자는 원래 오래 걸리잖아요.”
“기다리는 사람도 생각해야지!”
아버지가 한창 투덜거릴 때.
어머니가 밝은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자 진혁이 손을 흔들었다.
“어떠셨어요? 좋으셨죠?”
“그럼~! 뭐니 뭐니 해도 온천욕이 최고지! 어때? 엄마 얼굴 뽀송뽀송해진 거 같지 않니?”
“한참 젊어 보이시는데요?”
“엄마 아직 젊거든? 근데 여기 망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왜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남탕도 그랬니?”
“아, 아뇨. 아주 없진 않았어요.”
숙박객뿐 아니라 동네 주민들한테도 유료로 개방하고 있다지만, 정말 장사가 안되는 모양.
진혁과 대화를 나누던 어머니가 뚱한 표정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당신은 표정이 왜 그래요?!”
“내가 뭘?!”
“아니, 뭐 불만 있는 사람 같잖아요.”
“불만은 무슨. 가자고. 가.”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는 아버지.
진혁이 밝게 웃었다.
‘예전에는 이런 모습을 왜 몰랐지.’
다시 한번 행복감이 치밀어 오른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게.
아니, 무심코 넘길 수도 있는 작은 손짓과 몸짓에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회귀자의 특전처럼 느껴졌다.
* * *
그렇게 방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갑자기 천장 등이 꺼지며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렸다.
“아아아악!!!”
“커억!”
당황스러움도 잠시.
진혁이 굳은 얼굴로 남탕을 바라봤다.
‘설마 감전 사고?’
진혁이 다시 고개를 돌려 카운터를 바라봤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의존해야 했지만, 카운터를 보던 직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 얼마 전에 전기 공사를 했습니까?!”
“어, 어제 전기 공사를 했습니다.”
“!”
“수압이 약해져서 모터를 손봤습니다.”
“!!”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손을 댔다는 말.
진혁이 다시 고개를 돌려 남탕을 바라봤다.
감전 사고가 발생했다면 대부분 즉사.
그렇다면 방금 들려온 소리는 숨이 끊어지기 전에 내뱉은 단말마의 비명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단언할 순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잠깐 확인 좀 하고 올게요!”
진혁의 말에 부모님이 기겁했다.
“안, 안 돼!”
“그래. 일단 119에 신고부터 하자.”
“잠깐이면 돼요.”
“위험해서 안 된다니까!!”
“아……!”
부모님의 반대에, 진혁이 멈칫거렸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기 때문이다.
어렵게 되찾은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지난 잘못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는 무서움까지.
여러 생각이 발목을 붙잡았고, 마치 거대한 태풍에 휘말린 듯 내면이 출렁이며 마구 뒤엉켰다.
찰나의 시간 동안 이어지는 번뇌.
순간 진혁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꽈악.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은 의사였다.
‘다치지만 않으면 된다. 안전을 확보하면서 움직인다.’
결심을 굳힌 진혁이 직원을 향해 소리쳤다.
“119에 신고부터 해 주세요!”
그제야 전화기를 드는 직원.
기본이 안 된 인물이었지만, 진혁은 더 신경 쓰지 않고 벽면에 솟아 있는 스위치로 달려갔다.
딸깍.
딸깍.
스위치를 연신 눌러 봤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얼핏 봐서는 전기가 확실히 나간 듯 보였지만, 방심할 순 없었다.
혹시라도 2차 감전 사고에 휘말린다면, 이대로 모든 게 끝날지도 몰랐다.
* * *
진혁은 먼저 허리를 굽혀 바짓단을 신발 안으로 집어넣었다.
물이 튀어 전기 저항이 내려갈까 싶어 임시로 조치하는 거다.
고무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면섬유도 절연 효과가 있었다.
그 모습에 어머니가 기겁했다.
“진혁아!!!”
“잠깐 다녀올게요.”
“안 된다니까!”
“사람 좀 불러 주세요! 제세동기도 필요해요!”
“아니, 얘가 진짜!!”
부모님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진혁은 카운터로 달려갔다.
수화기 너머로 곧 출동한다는 구조대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1분 1초가 급했다.
덜컹!
흐릿한 햇빛에 의지해 카운터 뒤편에 위치한 배전판을 열자, 수없이 많은 스위치가 눈에 들어온다.
어떤 건 천장을 향해.
어떤 건 바닥을 향해 있는 스위치.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전원이 완전히 차단된 건 아니다!’
진혁이 고개를 돌려 직원을 찾았다.
“배전판은 여기뿐입니까?”
“네.”
직원보다 알바에 가까워 보이는 사내의 말이 믿음직스럽진 않았지만, 곧장 스위치를 껐다.
딸깍.
딸깍.
스위치를 전부 내리기 무섭게, 진혁이 소리쳤다.
“고무장갑 좀 주세요! 손전등도요!”
* * *
접수 카운터가 있던 곳과 달리 외창이 없어 어두컴컴한 탈의실.
손전등을 돌려 여기저기를 비춰봤지만, 불행하게도 사람이 없었다.
‘전부 안쪽에 있는 건가.’
조심스레 온천탕과 탈의실을 가로막고 있는 유리문을 밀었다.
그러자 참혹한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냉탕 위에 얼굴을 처박은 채 몸을 누인 사람부터, 자스민을 첨가했다는 온탕 위에 속절없이 쓰러져 있는 사람들까지.
외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되레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물기가 적은 곳에 있었던 사람만이라도 구한다.’
물속에서 사고를 당했다면, 속절없이 죽었을 거라는 판단.
진혁이 고개를 돌려 빠르게 사방을 훑었다.
그러자 쓰러져 있는 세신사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던 중년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차악.
그들을 향해 발을 내디딘 순간, 몸이 경직됐다.
그건 다시 전기가 흐를 수도 있다는 공포였다.
하지만, 본능을 이겨 내고 앞으로 나가야 했기에, 다시 용기 내 발을 디딘다.
차악.
저벅.
저벅.
그렇게 쓰러진 이들에게 다가가는 진혁의 얼굴은 무섭게 굳어 있었다.
둘 중 한 명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를 먼저 구하는 게 맞을까.
생명의 경중을 따질 수 없기에 지극히 어려운 문제였건만, 세신사와 중년 사내.
둘 중 한 명을 먼저 조치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