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70)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70화(70/388)
70화. 첫 방영 그 후 (9)
자리에 앉기 무섭게 박영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
“기획안 때문에 왔나? 이 PD가 벌써 오케이를 했어?”
이현아가 검토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는 박영진.
진혁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보고드려도 되겠습니까?”
“이 선생이? 흐음. 보고해 봐.”
“이 PD와 오프라인 미팅은 진행했지만, 기존에 보고드린 기획안을 수정하고자 합니다.”
“음?”
순간 김상혁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곧장 의료 소송 건부터 보고할 줄 알았던 탓이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는 박영진이 소파에 등을 기대며 호기롭게 물었다.
“좋은 의견이 있나?”
“처음에 보고드린 기획안은 ER보단 GS에 좋은 점이 더 많았습니다. 술기 대회는 특히 그렇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단순히 응급 환자에 대한 초동 대처뿐만 아니라, 우리 ER도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 줄 필요가 있을 거 같습니다.”
순간 박영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진혁이 ‘우리’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박영진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관심을 표했다.
“계속해 보지.”
“이중 맹검 위약 대조 연구를 하는 겁니다.”
“위약 대조 연구?”
“예. EICU(응급중환자실)에서 섬망 환자를 대상으로 매번 할돌(할리페리돌)을 처방하고 있습니다. 오늘 액팅 아웃 환자가 발생했는데 이를 검증해 보고 싶습니다.”
황산마그네슘 투약 건은 쏙 빼고 하는 보고.
그 건은 설득할 논리가 없었기에 일단 뒤로 미뤘지만, 할리페리돌도 선뜻 납득되지 않는 제언인 모양이었다.
“제약사에서 충분히 연구했을 텐데?”
“섬망은 이른바 정신적, 심리적 장애. 이를 약물로 치료할 수 있는지는 계속 논란이 돼 왔습니다.”
“그래서 검증을 하자?”
“결과가 좋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흠.”
“의료 발전을 위해 연구하는 ER의 모습을 보여 주면, 대외적인 이미지가 크게 개선될 겁니다.”
이러나저러나 좋을 거라는 말.
임상 연구를 꼭 성공시킬 생각이었지만, 그를 설득하기 위해 톤을 다운시켰다.
설득력이 있었던 걸까.
박영진이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쳤다.
또옥.
또오옥.
잠시 고민하던 그가 희게 웃었다.
“좋군.”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
순간 김상혁이 치고 들어왔다.
이제 의료 소송을 보고할 차례.
막내인 진혁을 보호할 생각이었기에, 박영진의 기분을 더 띄워야 했다.
“결과가 좋다면 KSME(대한응급의학회) 학술 대회에 발표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건 결과가 좋았을 때 얘기지.”
“플랜 B도 찾고 있습니다.”
“그래?”
“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또 다른 후보군을 추리겠다는 말.
박영진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부교수나 펠로우도 하지 못한 일을 고작 인턴과 레지던트가 채워 주고 있으니, 만족스러웠다.
“세월이 참 쏜살같이 지났어.”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이 나이가 돼 버렸지. 근데 나이를 먹고 보니 말이야. 바라는 게 점점 많아져.”
박영진이 제 속내를 드러내려 하자 김상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후배들한테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는 걸 처음 봤기 때문이다.
“우리 과도 언제까지 과로 남아 있을 순 없지. 센터. 센터로 개편하는 게 내 목표야.”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김상혁이 목청을 드높였다.
위에서 당겨 주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는 병원 생활.
윗사람이 바라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 해야 마땅했다.
게다가, 이런 모습을 보여야 의료 소송 건을 보고했을 때 박영진의 화를 누그러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에 박영진이 만족스러운 듯 턱을 쓰다듬었다.
물론, 그의 또 다른 욕망.
KSME(대한응급의학회) 학회장이 되고 싶다는 건 말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진혁이 다른 결재판을 꺼내 들었다.
의료 소송 건이 정리된 문서였다.
* * *
그 어느 곳보다 보수적으로 유명한 병원.
공개 검증을 하자는 말을 모욕으로 여길 수도 있었다.
특히 검증의 대상이 된 NS에서는 난리가 날 터.
아니나 다를까.
진혁의 보고에 박영진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런 일이 있었군.”
조금 전까지 호기롭게 제 목표를 말했던 모습과는 정반대되는 모습.
김상혁이 끼어들려고 했지만, 진혁이 서둘러 말했다.
자신은 어차피 떠날 사람.
그가 다치는 게 싫었다.
“사건 경과부터 대응 방안까지 정리한 보고서입니다.”
박영진은 결재판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괜한 짓을 했군.”
“우리 ER에도 피해가 갈 수 있어 정리해 봤습니다.”
피해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결재판을 건네받는 박영진.
하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쪽에서 소송을 걸어온다면 시끄러워지겠지. 하지만, 우리도 대응하면 그만이야.”
“지저분한 언론 공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음.”
“상대는 변호사. 그 나름의 인맥이 있을 겁니다.”
“그냥 귀찮아질 뿐이야.”
생각보다 강경한 반응.
순간 진혁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사실, 말씀하신 대로 대응하면 그만이긴 합니다.”
“?”
“KNS(대한신경외과학회)도 동원하고, KMA(대한의사협회)에도 나서 달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
“대중들은 권위 있는 의사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못할 겁니다. 보호자가 언론 플레이를 하면, 저희도 하면 그만이지요.”
갑자기 달라진 진혁의 태도.
거기에 더해 구체적인 방안까지 토로하자 박영진이 의아해했다.
“포기가 빠르군.”
“결정권자의 생각에 맞출 뿐입니다.”
“내가 결정하면 따르겠다?”
“예. 다만…….”
“다만?”
“우리 ER은 손해를 볼 겁니다.”
단정적인 말투.
박영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우리가 입을 손해는?”
“이번 방송을 통해 우리 ER은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인식을 대중한테 심어 줬습니다.”
“……음.”
“하지만 결이 다른 행보를 보인다면 다들 실망할 겁니다.”
“행려 환자를 치료해 줬던 거라든지, 가족을 찾아갔던 게 전부 무의미해질 거란 말이군.”
박영진이 쓰게 웃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진혁이 서둘러 말을 이어 갔다.
“그뿐이 아닙니다. 시청률도 곤두박질칠 겁니다.”
“흐음.”
“최악의 경우엔 방송사도 대안을 찾으려 할지 모릅니다.”
“갈아타기를 한다?”
“네, 다른 병원을 컨택할지도 모릅니다. ER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딜 가나 비슷하니까요.”
시청률이 떨어지면 프로그램을 조기 종영하기보다 다른 병원을 컨택할 거라는 말.
박영진의 마음이 흔들리는 게 보이자 진혁이 쐐기를 박았다.
“공개 검증을 하면 대중의 신뢰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습니다.”
“흠.”
“아신 병원은 다른 병원하고 다르구나. 환자를 위해, 보호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대중이 할 겁니다. 그리고 이는 무형의 자산으로 이어질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진혁이 말을 멈췄다.
이미 할 수 있는 건 다한 상황.
선택은 박영진의 몫이었다.
* * *
박영진을 설득하기 위해 대응에 따른 장단점을 설명했고 당근까지 제시했지만 그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만큼 리스크가 큰 결정인 탓이다.
하지만, 진혁은 실망하지 않았다.
되레 반드시 이번 일을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결심하다 보니 또다시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의료 소송에 시달리는 의사.
가족을 의료 사고로 잃고 울부짖는 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에 있는 기관이 있었다.
바로, 의료분쟁 조정중재원이었다.
지금까지 공개 검증에 임하자고 한 건, 어떻게 보면 수동적인 대응에 불과할 뿐.
이번 일을 통해 사회적 변화도 한번 이끌어 보고자 했다.
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뭐 밑져야 본전이 아니던가.
잘 엮는다면 좋은 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진혁과 달리.
김상혁은 머리를 쥐어 싸며 괴로워했다.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여긴 거다.
“과장님 말대로 보호자가 소장을 접수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실제로 소송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다고.”
“아뇨, 반드시 소송할 겁니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아……. 일단 진혁이 너 근무 구역부터 바꿔야겠다.”
“네?”
“EICU에서 경증처치구역으로 다시 돌린다고. 지금 거기도 난리잖아.”
“알겠습니다.”
순간 진혁의 표정이 밝아졌다.
안 그래도 윤희철한테 미안했던 터였다.
김상혁이 또다시 우려 섞인 말을 해 왔다.
“녹음도 안 했다며. 상대는 녹음했을 수도 있어. 변호사잖아, 변호사. 선의가 항상 선의로만 해석되는 게 아니라고.”
“맹자가 말한 것처럼 세상에 악은 없다고 생각하렵니다.”
뜬금없는 맹자 타령.
김상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선설을 이야기하려고?”
“아뇨, 선(善)과 불선(不善)만 있다는 말입니다.”
“뭐?”
“보호자가 어떤 행동을 보여도 그 또한 아픔의 발로라고 생각하려고요. 악이 아니라 불선(不善)인 거죠.”
“하……. 난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김상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어 갔다.
“어떨 때는 정치질에 능한 것 같다가도 어떨 때는 순진무구해 보이고. 네가 이해가 안 된다고. 넌 대체 뭐 하는 놈이냐?”
“인간은 다면적인 존재니까요.”
“그런 대답도 이상하다는 거야.”
“…….”
“애늙은이도 아니고, 무슨 대답이 그러냐고.”
김상혁이 혀를 차자 진혁이 희게 웃었다.
그러고는 곧장 제 생각을 드러냈다.
“때로는 선택을 강요할 필요도 있습니다.”
“뭐?”
“보호자에게 전화하겠습니다.”
“뭐라고 할 건데?”
“그게…….”
진혁이 설명을 이어 가자 김상혁이 벌떡 일어났다.
안 그래도 조마조마했는데 대형 사고를 칠 기세였다.
* * *
녹음기를 오픈하고 공개 검증을 제안하며 어렵게 쌓았던 신뢰.
박영진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신뢰마저 깨질 수 있기에, 행동을 강요하고자 했다.
하지만 김상혁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안 돼! 절대 안 돼!!”
“이대로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그렇다고 솔직히 말한다는 게 말이 돼? 그러면 바로 소장을 접수할 거 아니냐고!!”
“그럼 그냥 시간을 끌까요?”
“!!”
“그러다 신뢰를 완전히 잃을 수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병원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좀 더 기다려 봐도 되잖아.”
“수동적인 대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차피 공개 검증을 제안한 이상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입니다.”
김상혁이 얕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당장 언론부터 가만있지 않을 거야.”
“가만있지는 않겠죠. 때로는 반전이 있을 때 효과가 큰 법입니다.”
처음에는 비난하는 사람도 늘고 시끄럽겠지만.
결국, 공개 검증에 나서면 대중과 언론의 이목이 더 집중될 거라는 말.
원래 드라마는 반전이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 * *
진영국과의 통화는 어렵지 않았다.
워낙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기도 했고 그도 변호사인 만큼 상황을 쉽게 이해했다.
하지만 이현아가 문제였다.
도움이 필요해 솔직히 말했건만 그녀는 방방 뛰었다.
[미쳤어요?!]“그냥 외면만 할 순 없잖아요. 어차피 진영국 씨는 소송할 생각이었습니다.”
[녹음은 왜 안 했는데요!! 지금 당장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고요! 막내 선생님도 다칠 수 있어요!!]“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의대를 졸업할 때 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입니다. 저는 이 선서를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진심이 가득 담겨 있는 말.
어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않고 환자를 살리는 데만 매진했던 만큼, 정말 진심이었다.
비록 그 선택에 울부짖으며 후회했지만, 환자와 보호자를 대하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없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고 뭐고 난 모르겠다고요. 이거 성사 가능성은 있는 거예요?]“소장이 접수되면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플랜 B는 세워 둔 거죠?]“PD님을 위한 플랜 B는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다른 병원을 섭외하는 겁니다. 어차피 ER은 거기서 거기니까요.”
[하…….]순간 이현아가 기막혀했다.
제 본능을 자극하듯 조그만 틈도 보여 주지 않던 이진혁.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생각해 주고 있었다.
‘이 사람이 대체 뭐라는 거야!!’
입술을 질끈 깨문 이현아가 소리쳤다.
[저 그렇게 의리 없는 년 아니거든요!]“고마워요. 그럼 저 좀 도와주세요.”
[일단 언론에서 물어뜯기 시작하면 반격하라는 거잖아요. 미리 준비도 하고요. 그렇죠?]“바로 내보내면 안 되고, 우리 홍보팀이랑 같이 내보내야 합니다.”
[어디서 훈수질이에요!]뚜욱.
곧바로 끊어진 전화.
날카로운 반응이었지만 진혁이 희게 웃었다.
* * *
모든 일은 위험 속에 이뤄진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모든 행동에는 리스크가 뒤따른다.
그런 면에서 진혁의 행동은 지극히 위험했다.
하나라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면, 당장 리스크에 노출될 테니까.
하지만 상관없었다.
일이 어긋나면 또 다른 방안을 강구해 대응하면 그만이었다.
다음 날, 진영국 변호사로부터 문자가 왔다.
[오늘 소장 접수했습니다. 내용 증명도 보냈습니다.]진혁이 새로운 기획안을 들고 과장실로 향했다.
김상혁이 다칠까 싶어 그에게는 보고하지 않은, 위험한 기획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