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72)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72화(72/388)
72화. 첫 방영 그 후 (11)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진혁이 쓰게 웃었다.
오지호가 자신을 욕심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탓이다.
아니, 어쩌면 예상했어야 했다.
『외과의사 사람들』이라는 후속작에 벌써부터 욕심을 부린다는 오지호가 아니던가.
미디어의 힘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거다.
아니, 어쩌면 그도 평범한 써전일지도 모른다.
그 자신이 평생을 바친 GS가 무너져 내리는 걸 보지 못하는 평범한 외과의사 중 한 명인 거다.
그래, 그래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병원장이 왜 저런 소리를 하겠는가.
망해 가는 외과 계열이 눈에 보여서 그런 거다.
아신 병원이야 그나마 형편이 좋았지, 다른 곳은 점점 씨가 마르고 있었으니까.
순간 외과 계열의 현실이 떠오른다.
자신한테 집착하는 한동수.
왜 그러겠는가.
다 사람이 없어서다.
당장 환자가 죽어 나가는데,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그랬으리라.
그래서 더 욕심을 내는 것이리라.
하지만, 저렇게 발버둥 친다고 흘러가는 물결을 막을 수 있을까.
이미 대세는 기울어진 상황.
흔히 말하는 인기과를 향한 쏠림 현상은 더욱 심해질 터였다.
‘좋은 방법이 없는 건가.’
한참 고심하던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원가보다 못한 수가.
방법을 찾기는 요원해 보였다.
그렇게 짧은 상념에 빠져 있던 순간.
띠잉-.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진혁이 반사적으로 문 앞으로 다가섰다.
하지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볼 양쪽이 툭 튀어나와 늘어진 살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늙은 의사가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볍게 묵례하며 뒤로 물러났건만, 뭔가 못마땅한 시선이 느껴진다.
의아함도 잠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가 말을 걸었다.
“자네가 이진혁 선생인가?”
“안녕하십니까.”
누군지도 모르고 하는 인사.
고개를 숙였다가 들어 올리며 가운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다.
절로 나오는 침음성.
“아……!”
육선재의 청탁을 받고 자신을 내쫓으려 했던 부원장 부재일.
그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이유 없이 미운 사람도 있는 법.
하물며, 그 이유가 충분하다면 어떨까.
꼴도 보기 싫은 법이었다.
지금 진혁을 바라보는 부재일의 심정이 딱 그랬다.
“왜 여기에 있지?”
“…….”
“왜 인턴 주제에 병원장실 주위를 어슬렁거리냐 이 말이야!!”
적대감이 가득한 물음.
진혁이 외압을 폭로했고 이로 인해 톡톡히 망신당했다고 여긴 부재일의 표정은 표독스러웠다.
게다가 진혁을 의사로서 본분도 잊은 채 유명세만 쫓고 있는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던가.
“왜 말이 없지? 켕기는 거라도 있나?”
“잠시 심부름을 다녀왔습니다.”
“심부름? 병원장님이 자네를 불렀나?”
“아닙니다. 박영진 과장 심부름이었습니다.”
“그래? 지금 박 과장도 안에 있나?”
“예.”
“흐음.”
거짓과 진실을 뒤섞어 늘어놓았지만, 늘어진 턱살을 매만지며 골똘히 생각에 몰두하는 부재일.
그 모습에 진혁이 혀를 찼다.
축 처져 있는 심술보가 그의 성격을 보여 주고 있었다.
‘거참. 성격 한번 더럽게 생겼네.’
속으로 혀를 차던 찰나.
부재일이 다시 쏘아붙였다.
“의사는 말이야. 본분에 충실해야 하는 법이야.”
“…….”
“마땅히 해야 할 일과 지켜야 할 일이 있다 이 말이야. 근데 자네는 지금 뭘 하고 있지?”
“예?”
“방송 출연에만 정신을 팔아서 되겠냐 이 말이야!”
순간 진혁이 입술을 앙다물었다.
환자에게 항상 진심이었던 자신을 모욕하는 말이니까.
하지만, 곧.
진혁의 표정이 사라졌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는 법.
그냥 개소리라고 치부하면 그만이었다.
부재일의 헛소리는 한동안 계속됐지만, 진혁은 딴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갈비탕이나 먹으러 갈까. 아니, 아니야. 오늘은 부대찌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병원 생활.
저녁 메뉴를 정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진영국 건도 잘 마무리될 거 같지 않던가.
* * *
진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김상혁이 달려왔다.
“어떻게 됐어?”
“잘 끝났습니다.”
“그래? 그래도 기대는 말자.”
“네?”
“원래 어르신들이 앞뒤가 다르잖아.”
앞에서는 알겠다고 해 놓고 뒤에선 다른 말을 하는 경우가 있기에 하는 말.
진혁이 말을 삼켰다.
병원장한테 영입 제안을 받았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는 말을 하면.
‘기겁하겠지.’
그 반응이 뻔한 것이다.
진혁이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부원장님은 혹시 어떤 분입니까?”
“왜? 같이 보고받으셨어?”
“아뇨, 오다가 마주쳤는데 궁금해서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진혁.
김상혁의 표정이 굳었다.
“일단 따라와.”
“네?”
“잠깐 담배나 피우러 가자고.”
“알겠습니다.”
잠시 후.
담배를 입에 문 김상혁이 뻐끔거렸다.
“너 만나고 담배가 늘고 있다. 늘고 있어~!”
“그건…….”
“됐고. 일단 2년에 한 번씩 선거하는 건 알지?”
“몰랐습니다.”
“뭐, 지금부터 알면 되겠네. 거기서 1등 하면 병원장, 2등 하면 부원장이 되는 거야.”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의 방식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보통 러닝메이트 개념으로 나가지 않나요? 병원장과 부원장이 페어로 나가서 상대 후보와 경쟁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예전에는 그랬지.”
“?”
“근데 이게, 한쪽에서 독식하니까 견제가 이뤄지지 않는 거야. 한쪽으로 쏠리는 거지.”
“…….”
“부작용도 심했지. 보복하는 경우도 많았고.”
“예산으로 보복하는 거군요.”
“뭐,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
한정된 재원.
그에 따른 분배.
고가의 장비를 구매하고 싶은 건 어느 과나 마찬가지였기에, 싸움이 너무 치열했다는 말이었다.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말이기도 했고.
김상혁이 다시 담배를 뻐끔거렸다.
“뭐, 지금은 선거 제도도 바뀌었고. 다 지난 일이지. 아무튼, 부원장님은 신경 쓰지 말라고. 어차피 내과 계열로는 못 갈 거 아니냐고.”
진혁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과 계열은 애초에 선택지에 없었다.
아니, 그건 그렇고 부원장이 생각하는 의사의 본분이 대체 뭘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 *
진혁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김상혁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부원장이 개입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외과 계열이 원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임상 계열의 힘이 컸다.
하지만, 이번 건은 자신이 없었다.
그가 한참 걱정을 늘어놓자, 진혁이 말했다.
“괜한 우려 같습니다.”
“뭐? 왜 이렇게 확신하는데?”
“사실, 병원장님이 영입 제안을 하셨습니다. GS로 올 생각이 없냐고 하셨고. 아무튼, 그 정도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뭐!!!”
김상혁이 너무 놀라 담배를 떨어트렸다.
병원장이 고작 인턴한테 영입 제안을 하다니.
병원이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 * *
사실, 김상혁은 골치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진혁의 제안으로, 『응급실 사람들』을 기획해 보고했고 이를 성사시켜 박영진의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물론, 자신도 환자한테 집착하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 매달린다.
진혁한테 환자한테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 자신도 지키지 못하고 있기에 했던 말이었다.
허나, 이번 일에서 NS의 잘못은 없어 보였고.
부친을 잃은 보호자가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있었다.
한데, 병원장이 그렇게 좋아했단다.
아니, 숫제 영입 제안까지 했단다.
‘뭐야, 이게 말이 돼? 고작 인턴한테?’
의료분쟁 조정중재원에 대한 안건은 보지 못한 상황.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진혁이 새로운 기획안은 패싱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김상혁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이거 꿈이냐?”
“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으니까 꿈까지 꾸네. 하하. 너무 진짜 같잖아.”
“하하…….”
어색하게 따라 웃는 진혁.
김상혁이 그 모습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루시드 드림(Lucid dream, 자각몽)이 이런 거잖아.”
“…….”
“그래. 그러니까 담배도 맛있고. 뭐, 색깔도 구별할 수 있는 거고. 안 그래?”
“에덴이 그런 말을 하긴 했죠.”
자각몽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정신과 의사.
F. V. 에덴.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자각한 순간,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김상혁이 농을 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진혁도 희게 웃으며 장난을 쳤다.
“꿈이니까 반말 정도는 괜찮겠죠?”
“뭐?”
“상혁아?”
순간 김상혁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야. 이진혁이. 너!! 조금 친해졌다고 이젠 반말까지 하냐.”
“농담이었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숙이며 입맛을 다셨다.
사실, 과거로 돌아오며 아쉬운 게 있었다.
그건 한참 어린 레지던트들에게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거였다.
한 번쯤은 반말해 보고 싶었다.
* * *
그날 저녁 언론의 공격이 시작됐다.
시작은 석간신문이었다.
[의료 소송에 휘말린 아신 병원!] [과실은 없었나. 속절없이 죽은 환자!] [방송 진정성마저 의심되는 상황!] [응급실 사람들, 위기에 처하다.]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유가족의 절규!] [이진혁도 관련돼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자극적인 제목의 기사.
한창 『응급실 사람들』들이 방영 중이었기에, 사회면은 의료 소송 건으로 도배돼 있었다.
게다가 분명 NS로 트랜스퍼된 후에 환자가 죽었건만, 괜히 진혁을 걸고넘어지고 있었다.
그가 초진을 봤던 환자라는 이유.
진혁이 유명했기에 하는 제목 장사였다.
신문을 확인한 진혁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다른 기사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반격할 준비를 끝냈으니까.
하지만.
[이진혁도 관련돼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자신을 걸고넘어지는 기사가 문제였다.
‘부모님이 걱정하실 텐데.’
그 순간 제 실수를 깨달았다.
가십만 좇는 언론의 본성을 잊은 거다.
진혁이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한참 설명을 이어 갔다.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뚜욱.
전화를 끊은 진혁의 표정은 밝았다.
부모님의 반응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소송의 당사자가 아닌 상황.
그저 유명해진 탓이라고만 여기고 있었다.
이미 반격의 준비도 끝난 상황.
걱정할 건 없어 보였다.
운영회의만 통과하면 되는 거다.
* * *
그 시각, ER은 시끄러웠다.
진혁이 쓴 차트 때문에 보호자가 소송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은 카메라를 의식한 채 떠들기 바빴다.
물론,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이 쌤, 괜찮겠지?”
“그러게 NS에서 이를 갈더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럼?”
“방송이 엎어질 수도 있다잖아.”
“그럼 이 쌤 쫓겨나는 거야?”
“에이, 설마. 솔직히 이 쌤이 잘못한 건 없잖아.”
“시끄럽게 만들었다고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
간호사들은 일이 커졌다는 이유로, 진혁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병원장에게 보고한 걸 모르기에 가능한 일.
진혁이 다시 업무에 복귀한 건 그즈음이었다.
진혁은 곧바로 오태상을 찾았다.
이른바 복귀 신고였다.
“오 선생님.”
“왜요?”
“다시 경증처치구역에서 일하기로 됐습니다.”
“근데요.”
“네?”
“뭘 하느라 그렇게 돌아다니는진 모르겠지만, 그 일이나 해요. 괜히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요.”
지극히 싸늘한 반응.
진혁이 빤히 오태상을 응시했다.
그가 부담스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괜히 진혁과 엮이면 이상민 꼴이 될 터.
말리그는 피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 * *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김진혁.
오태상은 분노가 치미는 걸 억지로 참았다.
말리그가 말리그 짓을 하고 있으니 어찌 그러지 않을까.
결국, 차트를 상세하게 써서 이 사단을 일으켰다.
게다가 저 태도는 뭐란 말인가.
상하 관계가 명확한 병원.
윗사람한테 깍듯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진혁은 아니었다.
깍듯한데 깍듯하지 않다.
뭔가 묘하게 거슬렸다.
그 자신이 행한바 때문에 그러는 걸 테지만, 오태상은 그걸 몰랐다.
뭐 같아도 숙여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재수 없는 놈.’
그때, 오태상의 뇌리에 다른 생각이 스친다.
‘어차피 이진혁은 나가떨어질 거잖아?’
방송이 어그러진다면 박영진의 성격상 철퇴를 내릴 터.
그 원인이 된 이진혁부터 쫓겨날 터였다.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던 그가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뭐, 내가 더 고생한 거 같지만요.”
“?”
“모르는 척하느라 애쓰지 말라고요.”
“!”
진혁이 얕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가 자신이 쫓겨날 거라고 생각하는 걸 눈치챈 거다.
“선생님, 그럼 업무는…….”
“촬영 중이니까 그냥 적당히 하는 척만 해요. 요즘 맨날 자리 비운다고 말이 많으니까. 괜히 나한테 오지 말라고요.”
“그래도 오더는 받아야…….”
“그냥 액팅해요.”
순간 진혁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무슨 이런 무책임한 말이 다 있단 말인가.
‘이 자식이 미쳤네. 인턴을 방기하겠다고?’
하지만, 뭐 상관없었다.
되레 고마운 일이었다.
뜻하지 않은 자유지 않던가.
“간호사 선생님들한테는 어떻게 할까요?”
“나한테 오더받았다고 해요. 나도 따로 말해 놓을 테니까요. 근데, 제대로 액팅이나 할 수 있겠어요? 신경 쓰여서 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걱정은커녕 계속되는 비아냥.
그러나 진혁은 뜻하지 않게 얻게 된 자유가 기쁘기만 했다.
어차피 그의 기대 또한 산산이 조각날 터였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순 없는 일.
선을 넘는 일이었기에, 확실히 해야 했다.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진혁이 말을 더듬거렸다.
“저…… 지금 촬영 중이라서요.”
“근데요.”
“인턴이 혼자 액팅한다는 게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요?”
“방송이 나갈 수나 있을 거 같아요? 이 선생은 통편집 당할 거 같은데요? 그리고 지금 그걸 걱정할 때예요?”
“네?”
“본인은 잘못한 게 없다. 다 이상민 선생 잘못이다. 뭐,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순진하네, 순진해.”
혀까지 끌끌 차는 오태상.
그 모습에 진혁이 순순히 물러났다.
사람은 때로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법이었다.
뜻하지 않게 자유를 얻었다.
이젠 그의 기대를 밟아 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