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75)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75화(75/388)
75화. 첫 방영 그 후 (14)
폐동맥 가성동맥류가 파열된다면 환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
빠른 진단과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스텝을 밟아야 했지만, 이럴 땐 선을 넘어도 괜찮다고 여겼다.
지난번에 한 번 경험하지 않았는가.
닥술(닥치고 수술)을 외치는 CS라면 영상 판독 없이 바로 내려올 수 있었다.
진혁이 당장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으음. 수술실에 계신 건가.’
정진석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번엔 CS 당직 번호로 전화했다.
딸깍.
[네, 김윤택입니다.]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망설일 틈이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ER 인턴 이진혁입니다.”
[아아, 얘기 많이 들었어요. CS로 오기로 했다면서요?]“그보다 선생님, 환자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환자요?]“네. 49세, 남환, 권민상, Asthmatic attack(천식 발작)으로 내원했습니다. 내원 당시 BP 90/55, 세츄레이션 80%. 인튜베이션 진행 후 벤틸레이터 연결했습니다. CT 촬영 결과 Pulmonary trunk pseudoaneurysm(폐동맥 가성동맥류) 의심 소견입니다.”
[어어, 잠깐만요.]딸깍.
딸깍.
다급히 마우스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환자 이름으로 검색해 보는 거다.
하지만, 곧.
[어? 판독 소견은요? 아직 안 나왔어요?]“금방 나올 거 같습니다.”
[근데 Pulmonary trunk pseudoaneurysm인 건 어떻게 알아요?]“아…….”
진혁이 나직이 탄식을 토했다.
PACS를 통해 판독 소견이 달리지 않은 CT 영상을 봤을 게 분명한 상황.
하지만, 폐동맥 가성동맥류라는 걸 알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1년 차인 건가?’
진혁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가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혹시 다른 선생님들은 안 계실까요.”
[네, 다들 OR에 계세요. 일단 나오시면 바로 노티해 볼게요.]“알겠습니다.”
뚜욱.
전화를 끊은 진혁의 표정이 굳었다.
노티해 보겠다는 말.
긍정적인 반응이다.
당장 다른 과에 전화했다면, 인턴 주제에 무슨 판독이냐고 난리를 쳤을 거다.
아니, 다른 선생님은 안 계시냐고 묻는 순간 전화를 끊었을 거다.
최소한 그러지 않았기에, 좋아해야 했다.
하지만, 좋아할 수 없었다.
그 자신도 권민상에 대한 검사를 서두르지 않았지만, 그건 폐동맥 가성동맥류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의 판단.
지금은 당장 수술을 해야 했다.
* * *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었다.
인턴 잡(Job) 중 가장 중요한 게 뭐겠는가.
바로 푸시와 루틴 처방전 작성이 아니던가.
영상 판독실에 전화를 걸어 푸시를 해야 했다.
딸깍.
“선생님, ER 인턴 이진혁입니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만, 환자 번호 XXXXXXX. 권민상. 판독 부탁드립니다. 응환(응급 환자)이라서 그렇습니다.”
정중한 푸시.
하지만, 상대의 반응이 영 아니었다.
[급하지 않은 환자가 어딨는데요. 뭐, 전화만 하면 죄다 응환이래.]“선생님, 진짜 이번에는 달라서요.”
[뭐가 다른데요? 아, 이진혁 선생이라고 했죠?]“예, 이진혁입니다.”
[사고 쳐 놓고 좀 뻔뻔한 거 같은데요?]“예?”
[왜 이것도 차트에 기록할 거예요?]“아, 아닙니다.”
[뭐, 기록해 보든가요. 어차피 난 원칙대로 할 겁니다. 지금 판독해야 할 영상이 몇 개나 되는 줄 알아요? 어디 한번 해 보든가요. 누가 손해인지 보자고요.]삐딱한 상대의 대답.
진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선생님, 진짜 급해서 그렇습니다.”
[아니, 안 급한 환자가 어딨냐고요.]“…….”
[왜요? 뭐, 어디 조져 보라니까요. 우린 순서대로 내보낼 거고, 그쪽은 자기 환자만 먼저 빼 달라는 건데. 나중에 문제 생기면 누가 이기나 봅시다. 끊습니다.]뚜욱.
그대로 끊긴 전화.
진혁의 표정이 굳었다.
운영회의에서 자신이 기획했던 안건이 통과된다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건만, 이를 모르는 이들의 반응은 짜증을 유발했다.
아니, 그 자신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적대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이건 차트로 조질 수도 없는 건데. 그냥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는 건가.’
명분마저 저쪽에 있었다.
다들 서로 급하다고 푸시하며 자기 환자부터 빼 달라고 하는 상황.
원칙대로 하겠다는 쪽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1분, 3분, 5분.
딱 5분을 더 기다렸다.
PACS를 띄워 CT 영상을 확인했지만, 판독 소견은 없었다.
어차피 CS에서도 바로 내려올 수 없는 상황.
진혁이 다시 푸시를 했다.
딸깍.
“예, 선생님. 저 ER 인턴 이진혁입니다. 죄송하지만…….”
[아, 순차대로 나갈 건데 왜 이렇게 전화질이에요. 좀 기다려요.]“응급이라서 그렇습니다.”
[아니, 여기 응환 아닌 환자 아무도 없다니까요?]“진짜 응환입니다. 응급이면 순서 무시하고 해 주실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 여기 다 응환이라고요!!]“선생님. 부탁드립니다.”
[끊어요.]뚜욱.
핸드폰을 내린 진혁이 쓰게 웃었다.
선배들한테 가장 사랑받는 인턴은 푸시를 잘하는 인턴이라더니, 자신은 낙제점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만큼 일이 많아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렇게 사정사정해야 하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을까.
* * *
진혁이 이를 악물었다.
원래 일을 하다 보면 수많은 난관이 있는 법.
장애물은 그냥 뛰어넘으면 그만이었다.
마냥 기다릴 순 없으니 편법을 찾아야 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김상혁이었다.
‘치프한테 보고하고 부탁해 봐?’
곧,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김상혁의 푸시마저 통하지 않는다면 괜히 시간만 축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혁이 한참 말없이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여전히 자신을 찍고 있는 김석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드는 생각.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감독님. 저 좀 도와주세요.”
김석대가 의아한 듯 물었다.
“어떻게 말입니까?”
“제가 지금 영상 판독실로 갈 건데요. 잘 찍어 주셔야 해요.”
“뭐, 지금도 찍고 있는데요. 왜요? 싸우시게요?”
“에이, 싸우면 큰일 나죠. 그럼 바로 쫓겨날 텐데요.”
“그럼 어떻게 하시게요?”
“핍박받고 와야죠. 가서 욕먹는 거 몰래 찍어 주세요.”
“몰래 찍고 있다가, 나중에 짜잔 하고 나타나라는 거죠? 그래야 그쪽에서 원하는 걸 빨리 해 줄 거라는 거고요.”
“네.”
“뭐 해요, 빨리 갑시다. 이러다 큰일이라도 나면 찝찝하잖아요.”
김석대도 진혁만큼 서둘렀다.
권민상 환자와 라뽀를 형성하기 위해 했던 대화.
그도 전부 들었다.
* * *
아신 병원 영상 판독실.
영상의학과 전문의인 구철민은 진혁을 보고 당장 인상을 찌푸렸다.
“왜 왔어요.”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 영상 판독 부탁드립니다.”
“지금 하는 거 안 보여요? 순서대로 하고 있잖아요.”
“5분만 시간을 좀 내주시면…….”
“순서를 바꿔 달라는 거잖아요.”
“응급이면 바꿀 수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하, 진짜 짜증 나네. 야!”
진혁이 질척거리자 구철민의 말투가 변했다.
뭐,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선배들의 독촉에 푸시를 하기 위해 영상 판독실로 달려오는 인턴이 어디 한 둘인가.
과마다 자기 환자부터 봐 달라고 하는 통에 때아닌 권력을 누리고 있었지만, 이진혁한테 해 주긴 싫었다.
결국, 문제를 일으킨 놈.
방송을 타고 조금 유명해졌다고는 하지만, 말리그일 뿐이었다.
“선생님.”
“닥치고 그냥 가라.”
“…….”
“그냥 꺼지라고. 일하는 거 방해하지 말고.”
“선생님, 그래도 응환입니다. 한 번만 봐주시면…….”
진혁이 또다시 질척거렸다.
판독을 할 줄 모르는 CS 당직 김윤택에게 시그널을 주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바로 수술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집도의한테 정확한 정보 전달이 우선이니까.
게다가, 내흉동맥 럽쳐(파열)처럼 영상에 확연히 보이는 것도 아니지 않던가.
진혁이 한참 말없이 서 있자, 그가 신경 쓰였던 구철민이 다시 소리쳤다.
“아, 그냥 가라고. 이 새끼가 진짜.”
그렇게 뭐라 한소리를 하려던 찰나.
VJ인 김석대가 카메라를 들고 영상 판독실로 들어왔다.
밖에서 이미 녹음을 다 딴 상황.
그가 카메라를 비추자 구철민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뭐야. 이거!!”
당황한 그와 달리 김석대는 씩 웃었다.
“아따, 욕 한번 찰지게 하시네. 이 선생님, 지금 이거 문제 될 만한 상황인 거 맞죠?”
구철민의 표정이 똥 씹은 얼굴로 변했다.
아니, 괴음을 냈다고 해야 할까.
“끄으으윽.”
말리그의 함정에 된통 빠져 버렸다.
* * *
차트 조지기가 아닌 카메라 동원하기.
또다시 적을 만들었다.
영상의학과의 경우 ER과 긴밀히 소통해야 하는데, 전문의 한 명을 적으로 만든 거다.
‘뭐, 어차피 적인 건가.’
자신을 좋아하는 이들도 생겼지만, 여전히 싫어하는 이들도 많았다.
뭐, 협진을 위해 조금씩 그 범위를 넓혀 가고 있었지만, 전부 다 제 편으로 만들 순 없는 것이다.
중요한 건 환자를 살린다는 본질.
그러면서도 교묘하게 선을 넘지 않는 거였다.
영상 판독실 밖으로 나온 진혁이 바로 정진석한테 전화를 걸었다.
수술실에 있다곤 했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딸깍.
“선배님, 저 진혁입니다.”
[어어, 괜찮아? 어때? 마음이 좀 그렇지?]“괜찮습니다.”
[그래, 괜찮아. 괜찮다고. 인마! 네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NS에서 괜히 몰아가는 거야!]“…….”
[It’s not your fault. 오케이?]“그거 때문에 전화한 건 아닙니다. 혹시 김윤택 선생한테 노티 못 받으셨습니까?”
[뭐? 노티? 나 수술실에서 방금 나왔는데?]당황스러운 목소리.
진혁이 환자 때문에 전화할 줄 몰랐다는 눈치다.
로젯에 있어 김윤택의 보고도 받지 못한 눈치고.
진혁이 빠르게 노티를 하자, 곧바로 전화가 끊겼다.
* * *
보수적인 병원.
일이 커질 때면 항상 희생양을 찾고 그에 따른 문책을 한다.
그래서 타교생인 진혁이 고민을 털어놓으려 전화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교수님!!”
“왜, 인마.”
“막내한테 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왜? 우리 아들이 울고 있대?”
“아뇨, 그게 아니라요. 그러니까.”
정진석이 뭐라 설명을 이어 가려던 순간.
한동수가 그의 말을 싹둑 잘라 먹었다.
“야. 울지 말라고 해!”
“……네?”
“우리 CS로 오면 다 해결된다고 전해!”
“!”
“누가 유배를 보내? 그냥 CS로 데려오면 그만이야.”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
아니, 당연히 이진혁은 내 거라는 반응이었다.
정진석이 떨떠름한 얼굴로 장단을 맞췄다.
“유배 때리면 우리야 좋긴 한데요.”
“근데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 아, 아니다!”
“네?”
“가서 위로 좀 하고 와.”
“아…….”
“이 자식이 빠져 가지고. 야, 정진석이.”
“네, 교수님.”
“너 인마, 여자도 안 만나 봤냐? 가서 밥도 사 먹이고, 술도 사 주고. 어! 인마! 제대로 꼬셔야 할 거 아니야!”
갑자기 시작된 면박.
순간 정진석이 발끈했다.
‘일하느라 누굴 만날 틈도 없습니다!!’
하지만, 꾹 참았다.
그는 부교수, 자신은 레지던트.
그 지위를 따진다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재깍 움직여야 할 정진석이 발을 땅에 붙이고 서 있자, 한동수가 채근했다.
“어쭈, 뭐 해. 안 움직여? 이걸 콱! 빨리 가서 술 먹고 들어와. 그대로 집에 가면 죽는다! 알지?”
“그게 아니라요. 환자가 Pulmonary trunk pseudoaneurysm(폐동맥 가성동맥류) 같답니다.”
“뭐? 정식으로 노티했다고?”
“아뇨, 그건 아닌데요.”
“그럼 뭔데?”
“판독 결과가 아직 안 나왔답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판독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당장 OP(수술) 들어가야 할 거 같다는데요.”
순간 한동수의 표정이 굳었다.
영상의학과에서 아무런 소견도 주지 않았는데, 당장 수술해야 한다며 연락했단다.
다른 놈이 이런 짓거리를 벌였다면, 당장 샤우팅을 날릴 터.
그런데 하필 그놈이 이진혁이었다.
물론, 지난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긴 했다.
하지만 같으면서도 묘하게 달랐다.
그때는 레지던트 3년 차인 윤희철의 콜도 있었다.
컨택을 두 명이 동시에 했으니까.
“그걸 보고라고 하냐? 막내아들이 전화했으니까 나보고 확인해 보라는 거 아니야. 이 자식이 죽으려고. 콱!”
“그렇죠. 근데 좀 찝찝해서요.”
“뭐가.”
“막내가 좀 변종이잖아요.”
진혁을 일컫는 말.
변종.
뭣도 모르는 인턴 주제에 너무 특출해서 CS에서 붙인 별칭이었다.
“일단 영상부터 보자.”
“네.”
곧, EMR(전자 의무 기록)과 연동된 PACS(의료 영상 저장 전송 시스템)에 CT 영상이 띄워진다.
한참 동안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던 그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시발, 변종 새끼.”
“네?”
“시발이라고.”
“…….”
“내 스케줄 뒤로 미루고 이머전시로 CAT(심도자실) 잡아!! 마취과 바로 섭외하고!!”
“!”
“판독실에 전화해!! 5분 내로 판독하라고 해. 안 그러면 다 엎어 버린다고 전해!! 전쟁이다, 전쟁.”
“넵!”
정진석이 부산스럽게 움직일 때.
갑자기 한동수가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정진석이 기겁했다.
그래도 명색이 한 과를 대표하는 교수.
한동수를 혼자 보낼 순 없었다.
아니, 혼자 보내면 무슨 사고를 칠지 몰랐다.
* * *
잠시 후.
갑자기 ER 입구가 부산스러워졌다.
“이진혁이 어딨어!!”
“저기 있습니다!”
“당장 환자부터 체크해!!”
다급한 표정의 한동수와 정진석.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달려온 이들까지.
그들이 진혁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환자를 향해 뛰어온다.
진혁이 환하게 웃었다.
역시 CS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