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78)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78화(78/388)
78화. 첫 방영 그 후 (17)
첫 집도를 끝낸 레지던트의 심정은 어떨까.
밀려드는 온갖 감정에 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감격하는 게 보통이었다.
이는 퍼스트 어시를 처음 섰을 때도 마찬가지다.
왜 그렇지 않은가.
햇병아리에 불과했던 자신이, 어느덧 집도의의 손과 발이 돼 주도적으로 수술에 참가했다는 말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김윤택은 주체할 수 없는 감격으로 인해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R1(레지던트 1년 차) 주제에 퍼스트를 서는 의사.
아신 병원에서 아마 자신이 최초일지도 몰랐다.
‘내가, 내가 각성한 거야. 내가!!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집중하자! 집중해! 난 할 수 있다!’
김윤택의 얼굴에 굳은 결심까지 서리자.
어이없단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던 한동수가 말했다.
“고정 작업부터 시작해.”
“예.”
한동수가 케뉼라를 붙잡으며 각도를 조율하는 사이.
김윤택이 이를 고정한다.
진혁도 그를 도왔다.
먼저 히모스탯 포셉으로 펄스 스트링을 하며 매달았던 고무관을 고정시킨다.
곧, 흐물거리던 고무관이 히모스탯 포셉과 연결돼 뻣뻣하게 위로 솟는다.
거기에 한동수가 잡고 있던 케뉼라까지 더해, 김윤택이 타이를 하기 시작했다.
고무관과 케뉼라를 묶는 작업이었다.
순식간에 끝난 고정 작업.
그리고 커트.
“커트 끝났습니다.”
김윤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혁이 히모스탯 포셉을 빼냈다.
고정 작업이 끝난 이상 임시 지지대 역할도 여기까지였다.
그 모습에 한동수는 기막혀했다.
‘한 놈은 뿌듯해 죽겠다는 표정이고, 한 놈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고?’
한동수의 고개가 진혁을 향했다.
“야. 이진혁이.”
“네, 과장님.”
“이것도 논문에서 봤냐?”
“아뇨. 동영상을 봤습니다.”
“무슨 동영상?”
“교육용 술기 동영상을 봤습니다.”
“동영상을 따라 하고 있을 뿐이라고?”
“네.”
“지금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진혁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한동수가 혀를 차고는 계속해서 손을 놀렸다.
당장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곧, 그가 케뉼라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툭툭.
툭툭.
체외순환사가 했듯이 공기를 제거하는 작업이다.
그와 동시에 진혁이 생리식염수를 채운 시린지를 김윤택에게 건넸다.
다음에 어떤 작업을 할지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동수는 체외순환기에 연결된 케뉼라와 대동맥에 꽂혀 있는 케뉼라를 연결했다.
이를 돕기 위해 김윤택이 시린지로 식염수를 뿌렸다.
이 또한 공기 유입을 막기 위한 절차 중 하나.
딸깍.
한동수가 어느새 연결된 양쪽 도관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공기가 유입됐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허나, 공기 방울이 보이지 않는다.
연결이 잘된 거다.
“겸자 풀어.”
“네.”
진혁이 겸자를 풀면서, 삽관 작업이 끝났다.
하지만 이제 첫걸음을 뗐을 뿐.
상대정맥, 하대정맥에도 같은 작업을 해야 했다.
* * *
어느덧 상대정맥과 하대정맥에도 캐뉼레이션을 끝낸 상황.
김윤택은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이건 정말 꿈이 틀림없었다.
‘내가 지금 CPB(심폐우회술)를 하고 있어. CPB를 하고 있다고!!’
비록 옆에서 변종.
아니, 괴물 인턴이 자신을 돕고 있었지만, 자신도 변종이었다.
힘을 숨긴 천재가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1년 차가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 줄 리 없지 않던가.
‘난 뒤늦게 재능을 각성하는 타입인가?’
그렇게 김윤택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한동수가 손을 놀려 대동맥 바로 아래에 또다시 관을 삽관했다.
심정지액을 주입하기 위한 관이다.
“클램프.”
클램프를 건네받은 한동수가 대동맥을 겸자했다.
“바이패스 돌릴 준비해.”
곧, 마취과 전문의와 체외순환사가 바삐 손을 놀리기 시작한다.
“준비됐습니다.”
“시작하셔도 됩니다.”
“바이패스(심폐순환기) 온.”
“바이패스 온!”
“쿨링 다운(체온을 내림)!”
“쿨링 다운 시작합니다.”
그와 동시에 주입되는 심정지액.
기계음을 내며 돌아가는 체외순환기까지.
요란한 소리가 수술실을 울렸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소리를 내는 주범은 흔히 말해 인공심폐기였다.
상대정맥과 하대정맥에서 피를 받아 산소를 보충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한 혈액을 다시 대동맥에 넣어 주는 기계였다.
곧, 체외순환사의 보고가 시작됐다.
“30초 지났습니다. 체온 32.8도입니다.”
“심장 천천히 멈추기 시작합니다.”
“체외심폐순환기 1분 됐습니다. 체온 31.3도입니다.”
“아직 심장 안 멈췄습니다.”
심폐순환기가 러닝하는 시간과 온도를 노티하는 체외순환사.
체온을 낮춰 몸의 신진대사 활동을 강제로 저하시키고 있었고, 집도의에게 그 시간을 보고해야 했다.
거기에 더해, 김윤택이 서서히 멈추고 있는 심장 상태를 보고한다.
인공심폐기를 돌리는 행위 자체가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기에 다들 신중을 기하여 복창하는 것이다.
그렇게 체온을 떨어트리는 동안 한동수는 계속 병변을 살폈다.
당장 조치할 병변은 오른쪽 폐.
흔히 우상엽이라 부르는 곳.
정확히 말하면 우상엽과 심장을 잇는 폐동맥이었다.
“체온 30도입니다.”
“심장 완전히 멈췄습니다.”
“체온 27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쿨링 다운 스탑.”
“스탑 하겠습니다.”
“BP(혈압)는?”
“아직 잘 버티고 있습니다.”
한동수가 다시 고개를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약간 지체됐지만,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
이게 다 이진혁 때문이었다.
그가 자연스럽게 김윤택의 손을 유도하고 있었다.
‘변종은 변종이라는 건가.’
한동수가 다시 굳건히 닫혀 있는 수술실 문을 힐끔 쳐다봤다.
지금쯤이면 오명택이든 누구든 들어와야 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변종이 활약하고 있었고, 착각에 빠진 1년 차가 함께하고 있었다.
아니, 그 무엇보다 집도의가 자신이었다.
자신도 한때 천재라고 불리지 않았던가.
‘내가 바로 한동수라고!!’
자기애가 강한 건 한동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 * *
어느덧 완전히 박동을 멈춘 심장.
다들 그 시선을 폐동맥으로 돌렸다.
폐동맥은 여전히 터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고, 우상엽과 폐동맥을 잇는 접합부는 염증에 의해 침식돼 있었다.
이제 가성동맥류를 제거하고, 혈관을 복원할 차례.
한동수가 다시 손을 놀리는 순간.
수술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뒤이어 들어오는 인물.
오프 중에 불려 온 오명택이었다.
병동 담당을 아무나 데려오라고 했더니, 실패한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됐어.”
“서두르겠습니다!”
오명택이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수술 가운을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동수의 손놀림은 멈추지 않았다.
서걱.
서걱.
“포츠포셉.”
“클램프.”
“메젠바움.”
계속해서 내리는 오더.
그리고 이를 진혁과 김윤택이 뒷받침했다.
어느새 수술대 옆에 선 오명택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 모습을 지켜봤다.
자신이 들어온 이상 한동수가 당연히 기다릴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오명택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을 했다.
고작해야 레지던트 1년 차인 김윤택.
거기에 더해 ER 인턴인 이진혁까지.
그들이 한동수를 보조해 수술을 이어 가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윤택이가 어느새…… 아니, 아니야. 김윤택이 하는 게 아니야.’
오명택의 시선이 이진혁을 향했다.
그는 자신이 들어왔음에도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한동수가 수술 도구를 말하기 전에 먼저 김윤택에게 그 도구를 건넨다.
그럼 김윤택이 자연스럽게 한동수에게 건넸다.
게다가 이진혁은 슬쩍 손등을 밀거나 손을 놀려 김윤택의 손을 유도하고 있었다.
아니, 그뿐이 아니었다.
유도가 안 될 때는 자신이 직접 한동수를 돕고 있었다.
‘아무리 변종이라지만……. 하.’
카메라가 찍고 있었지만,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미친놈.”
순간, 한동수의 손이 멈췄다.
“오명택이. 지금 오프 중에 불렀다고 욕한 거냐?”
“아, 아닙니다.”
“그럼 뭔데?”
“그게…….”
“많이 컸다? 카메라 앞에서 욕도 하고. 어!?”
순간 대답이 궁색해진 오명택이 말을 돌렸다.
“오프 중에 외출한 절 탓한 겁니다.”
“그래?”
“네, 얌전히 잠이나 잘 걸 그랬습니다. 맨날 이럴 줄 알면서도 잠깐 외출한 제가 미친놈입니다.”
“헛소리 그만하고 자리나 바꿔. 이진혁이.”
“넵.”
“고생했다. 뒤로 빠져.”
“네.”
순간 포메이션이 바뀐다.
김윤택이 다시 진혁이 서 있던 자리로.
그리고 빈 자리에 오명택이 자리했다.
애초에 진혁은 참관하러 온 상황.
정상 포메이션으로 되돌린 것이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수술.
진혁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엔 진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 * *
몇 시간 후.
수술실 문이 열리며 피곤해 보이는 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유난히 얼굴이 밝은 사내가 있었다.
그건 1년 차 햇병아리 김윤택이었다.
‘내가 해냈어! 내가 해냈다고!!’
주도적으로 뭔가를 했다는 느낌.
환자를 살리는 데 일조했다는 가슴 충만한 만족감에 그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윤 선생님, 제가 해냈습니다. 해냈다고요!”
PA 간호사인 윤지혜가 싱긋 웃었다.
“고생하셨어요.”
“제가 각성한 걸까요?”
“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주인공이 갑자기 각성하잖아요. 위기에 처한 순간 잠재력이 폭발한 거죠. 하하.”
“호호, 선생님. 재능이 있으신가 봐요.”
“그렇죠? 그런 거죠? 이거 어쩌죠? 방송 보면 다들 난리 날 텐데.”
“어머! 그건 생각 못 했네요!”
PA 간호사인 윤지혜가 적당히 맞장구쳐 주자 김윤택이 또다시 좋아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혁이 희게 웃었다.
‘귀엽네, 귀여워. 나도 저럴 때가 있었나.’
냉정히 말하면 김윤택은 착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 착각이 그의 성장에 밑거름이 될 테고.
고된 생활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될 터였다.
뿌듯함, 자부심, 자기만족, 희열.
결국, 이런 감정들이 있어야 버틸 수 있는 게 CS였다.
물론 진혁 또한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한 수술.
묘한 흥분이 온몸을 휘감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 감정이 차게 식는다.
자신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한동수 때문이었다.
‘뭐라고 변명하지? 뭐, 이미 망한 건가.’
인턴 주제에 집도를 한 것도 아니고, 세컨 어시만 섰으니 선을 넘은 건 아니었지만.
변명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손을 까딱거리는 한동수.
진혁이 쓰게 웃으며 뛰어갔다.
* * *
수술이 끝났다고 안심할 순 없는 일.
합병증이 발발하진 않는지.
혹은 환자 상태가 나빠지지는 않는지 지켜봐야 했다.
일종의 Post OP(수술 후 관리)이다.
하지만 이는 밑에 애들이 하면 될 터.
환자를 회복실로 옮기게 한 뒤, 한동수는 곧장 진혁을 호출했다.
“어이. 이진혁이.”
“네, 교수님.”
“아니, 아들아.”
“…….”
“어쭈. 대답 안 해? 이제 설명을 좀 들어 볼까 하는데. 납.득.가.능.하.게 말이야.”
“그게 그러니까…….”
진혁이 한참 변명을 이어 갔다.
한동수가 코웃음을 쳤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무슨 이야길 해도 믿질 않는 한동수.
한참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결국, 진혁이 제 정체를 고백했다.
“사실, 제가 천재입니다.”
“뭐?”
“동영상을 한 번 보면 다 따라 할 줄 아는 그런 천재입니다.”
진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잠재력을 운운하던 김윤택과 그 자신이 달라 보일 게 없어 보였던 것이다.
이 쪽팔림은 평생 기억할 것 같았다.
아니, 이불킥을 확정 짓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