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8)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8화(8/388)
8화. 온천 여행 (2)
중년 사내의 경동맥을 짚었다.
맥이 뛰는지 확인하기 위한 촉진이었다.
한데, 맥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이어지는 촉진.
이번엔 세신사였다.
또다시 활력 징후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엔 일렀다.
‘쓰러진 지 얼마 안 됐어.’
하지만.
문제는 혼자라는 것.
쓰러진 사람들을 전부 구할 수 없다는 현실은, 발을 디뎠을 때부터 각오했지만 진혁 또한 사람인지라 망설여졌다.
제 선택에 따라 누군가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일단은…….’
진혁의 선택은 세신사였다.
먼저 그를 베드로 들어 올렸다.
혹시 모를 2차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일이다.
하지만.
“끄으으윽.”
취객을 부축하는 것도 힘든 마당.
정신을 잃고 숨도 쉬지 않는 사내를 들어 올린다는 건 쉽지 않았다.
다시 온 힘을 다했다.
“끄아아악!”
세신사를 간신히 끌어 올린 다음 그 위에 올라탔다.
베드 옆에서 CPR을 하기엔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깍지를 낀 채 손바닥 밑부분을 흉골 아래쪽에 가져다 댔다.
그대로 온 힘을 다해 눌렀다.
후욱.
후욱.
하나. 둘.
하나. 둘.
규칙적인 속도로.
강하게.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압박했다.
전기 감전에 따른 다발성 장기 손상.
의식 소실, 기억력 감퇴, 대뇌 장애, 감각 운동 소실 등 감전에 따른 후유증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운 지 오래.
생존 가능성도 희박했고.
살아난다 해도 후유증이 예상됐지만, 그저 한 사람이라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후욱.
후욱.
하나. 둘.
하나. 둘.
정신없이 CPR을 이어 가던 그때.
유리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을 불러와 달라고 청했건만, 아들이 걱정돼 참지 못하고 들어왔다.
“진혁아!”
“아빠!!”
“잠깐 기다려!!”
저벅저벅.
저벅저벅.
아버지의 행동은 거침없었다.
곧, 자신과 한참 대화하던 중년 사내 앞에 선 아버지.
그를 또 다른 베드 위로 끌어 올린 다음.
아버지도 CPR을 하기 시작했다.
군대를 다녀온 이라면 누구나 배우는 CPR.
써먹을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지만, 아니었다.
우드드득.
우드득.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둘 다 멈출 줄 모르고 몸을 움직였다.
사실, 욕심인지도 몰랐다.
한 명한테만 번갈아 CPR을 하는 게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었다.
그만큼 CPR을 정자세로 한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 대충하는 척을 해 봐야 끄떡도 하지 않는 게 심장이란 놈이었다.
하지만.
생명의 경중을 따질 자신이 없는 상황.
주어진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제발, 제발……!!’
연신 흉부를 압박하는 둘.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조금씩 진혁과 아버지의 행동이 굼떠지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거친 숨소리.
점점 느려지는 동작.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와 진혁은 지쳐 갔다.
어느새 땀은 비 오듯 쏟아졌고.
근육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교대, 교대할 사람이 필요했다.
병원에서도 1분마다 교대하는 게 현실이지 않던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누군가 달려오기만 기다리던 그때.
드디어 유리문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뭐 해! 빨리 문 열어!”
“아, 아직 전기가 흐를지도 모릅니다.”
“이 새끼가 진짜! 비켜!!”
덜컹.
문이 열리며 정장 차림의 사내가 구두를 신은 채 들어왔다.
동해호텔 지배인인 정창수였다.
곧, 상황을 파악한 그가 소리쳤다.
“뭐 해! 다들 달라붙어!”
“하, 하지만.”
“오늘 잘리고 싶지 않으면 당장 움직여!!”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창수가 달려들었지만, 직원들은 여전히 망설였다.
그들은 정창수가 멀쩡한 걸 확인하고 나서야 움직였다.
* * *
“비키세요. 들것 나갑니다.”
“비켜요, 비켜. 당장 이송해야 합니다.”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시신을 수습하는 구급대원과 맥이 돌아온 세신사와 중년 사내.
감전 쇼크로 욕탕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의식이 없는 사내와 그들의 가족까지 뒤엉켜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그렇게 다들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진혁이 축 늘어져 있었다.
온몸에 기운이 빠져 서 있을 힘도 없었다.
‘그래도 살린 건가.’
가슴 벅찬 뿌듯함이 가시기도 전에.
찰싹!
“아!”
고통이 밀려온다.
도끼눈을 한 채 자신을 흘겨보는 어머니가 범인이었다.
“엄마!”
“으이구!”
얕은 한숨과 타박.
그녀가 다시 손을 휘둘렀다.
이번엔 아버지 차례였다.
등짝을 한 대 맞은 아버지가 항변했다.
“칭찬은 못 할망정! 왜 때리고 난리야!”
“아이고! 잘났어요. 잘났어!!”
“그럼 잘났지. 흐흐.”
“뭘 잘했다고 웃어요!!”
“살렸으면 됐지 뭘 그래!”
“아효. 내가 못 살아. 내가 못 산다고!!”
“못 살긴 뭘 못 살아!”
금세 티격태격하는 부모님.
그 모습에 진혁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팔이 후들거렸지만, 어머니를 걱정시킬 순 없었다.
* * *
그날 밤.
바닷가가 훤히 보이는 횟집.
평소와 같은 저녁이었다면 웃음소리가 가득했을 테고.
바닷바람과 해변을 밝게 비추는 야경에 심취해 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은 탓이다.
사실 서울로 바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동해로 내려온 당일에 곧장 올라갈 순 없는 일.
억지로라도 바람을 쐬러 나왔다.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아버지의 물음에 진혁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다들 어떻게 됐을지 걱정돼서요. 아쉽기도 하고요.”
“넌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어.”
“그래. 엄마는 너까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제정신이 아니었다니까.”
“나는? 나는 걱정 안 했고?”
“어휴! 말해 뭐 해요!”
“흐흐, 그렇지?”
“그럼요.”
놀란 심정을 억지로 숨기려는 부모님.
그 마음이 오롯이 느껴져 마음이 울렁였다.
얼마나 놀라셨을까.
만일, 그 와중에 자신이 잘못됐더라면.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었으리라.
사실, 그만큼 무모한 행동이었다.
환자 앞에선 찰나의 고민도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면접장에서 했지만, 그건 제 안전이 보장됐을 때 할 수 있는 말.
자식을 앞세우는 참담한 일을 겪게 할 순 없었다.
어두컴컴한 바다를 바라본 뒤, 진혁이 소주를 들이켰다.
그러자 쓴맛이 입안을 맴돈다.
네 번 연속으로 사망 선고를 했던 그 옛날처럼.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먹는 술은 항상 맛이 없었다.
“의사도 사람이야, 사람. 슈퍼맨이 아니라고.”
“저도 알아요.”
“모든 사람을 구할 순 없어.”
중년 사내와 세신사 사이에서 망설였다는 걸 알기에 하는 위로.
어머니의 말을 듣다 보니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다.
“엄마랑 환자랑 둘 다 위험하면 누구를 구해요? 한 명만 선택할 수 있으면요.”
“얘가 진짜!! 당연히 엄마를 구해야지!!”
“그렇죠?”
“그럼!”
그래.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다.
어쩌면 자신은 생명의 경중을 따졌던 게 아닐까.
어차피 돌아가실 어머니라며 말이다.
물론 암세포가 온몸에 번져 손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최소한 어머니의 임종만큼은 지켰어야 했다.
또다시 떠오른 후회.
순간 울음이 터져 나왔다.
“죄송해요, 흐윽. 죄송해요!”
“어머! 얘가 진짜!!”
정말 이상해진 아들의 모습.
부모님이 기함했지만, 진혁은 한동안 눈물을 쏟아 냈다.
이번 일의 여파가 커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 * *
그 시각.
강원일보 기자인 강기재가 동해 파출소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이~ 김 순경, 좋은 소식 없어?”
“왜 또 파출소에서 이러십니까! 경찰서라도 가 보세요!”
“에이, 같은 서울 출신끼리 이러기야?”
“여기서 동향이 왜 나옵니까!”
“나도 먹고 좀 살자! 먹고 좀 살아!”
털썩.
소파에 앉은 강기재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말을 이어 갔다.
“경찰서에 가 봤자 소스가 없다고. 소스가 없어! 전부 생계형 도둑질 얘기뿐인데 가서 뭐 하냐 이 말이야!”
“여기도 다를 게 없어요. 저도 딱히 없다고요!”
“진짜 없어?”
“진짜 없어요!”
“뭐, 그럼 할 수 없지. 한숨 잘 테니까 깨워 줘.”
소파에 벌러덩 누워 버리는 강기재.
소스를 알려 줄 때까지 버틸 기세였다.
한숨을 내쉰 김 순경이 입을 열었다.
“오늘 사고 말입니다.”
“뭐? 감전 사고? 승압 작업하다가 그랬다며.”
“그거 말고 말입니다.”
“전기 공사한 사람이 무면허라는 거? 아니면 업체 사장이 잠적한 거?”
다 알고 있다는 말투.
동해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진혁의 활약을 전해 들은 김 순경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미담인데, 듣기 싫으면 마십쇼!”
“뭐, 미담!?”
“네, 맨날 찾으시는 그 미담입니다.”
“무슨 미담인데?”
“맨입으로 말씀드릴 순 없죠.”
“아, 뭔데 그래! 김 순경도 알잖아. 요새 다들 힘들어한다고!”
“네네, 국민들에게 힘을 줘야 한다는 말씀 귀에 딱지가 붙도록 들었습니다. 보름간 출입 금지. 어때요?”
“코오올!!”
미담은 정말 소중했다.
다들 힘들어하는 시기지 않던가.
외환 위기로 실의에 빠진 국민에겐 영웅이 필요했다.
* * *
다음 날 아침.
동해호텔 앞.
후배인 이현정과 함께 강기재가 서 있었다.
“어이, 이현정이. 업체만 뒤지는 게 말이 되냐?”
“자격증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면서요.”
“아, 됐고! 잘 봐.”
“뭘요?”
“이 사수가 어떻게 하는지 잘 보라고! 이래 봬도 내가 메이저 출신이야!”
“네네, 그러시겠죠.”
이현정이 내키지 않는 듯 대답했다.
다른 기자들은 잠적해 버린 업체 사장을 찾으려고 혈안인 상황.
자세한 사정도 알려 주지 않은 채 끌고 왔으니, 당황스럽기만 했다.
“퉤.”
강기재가 씹던 껌을 내뱉자, 이현정이 질색했다.
“이거 경범죄예요! 경범죄!”
“어쭈! 정의의 사도 납셨다.”
“하!”
“일단 따라와!”
그렇게 밀고 들어간 동해호텔.
강기재의 명함을 확인한 정창수가 피곤한 얼굴을 했다.
사태 수습에만 힘써도 모자랄 시간이었다.
“어제 다 말씀드렸습니다만.”
“인터뷰 좀 합시다.”
“더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 거, 참. 척하면 척 아닙니까.”
“?”
“온천탕 안으로 뛰어든 의인이 있다면서요? 다 듣고 왔습니다!”
인터뷰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말.
정창수가 고민 끝에 말했다.
“인터뷰는 나중에 하시죠. 지금 경황이 없으실 겁니다.”
“우리 지배인님. 이거, 큰일 날 소리 하시네. 호텔 입장에서도 좋은 겁니다, 좋은 거!!”
“?”
“다들 공분하고 있어요! 돈 아끼려고 무허가 업체 쓴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원래 거래하던 업체가 부도나는 바람에 바꾼 겁니다!”
정창수가 억울해했다.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손님의 안전과 직결된 부분까지 장난칠 만큼 막장은 아니었다.
“다들 힘들어 죽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좋은 소식은 없고, 안 좋은 소식만 들리니까요. 이럴 때 이런 미담을 기사로 내보내면, 얼마나 좋습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뛰어들었다면서요!”
“……!”
“어! 호텔도 좋고! 그 의사 선생님도 좋고! 이거 나 좋자고 하는 거 아닙니다!”
결국, 정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살기로 했던 진혁의 생각과 다르게, 일이 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