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80)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80화(80/388)
80화. 첫 방영 그 후 (19)
어느덧 돌아온 경증처치구역.
떨떠름한 표정의 오태상이 보이자, 진혁이 냉큼 다가갔다.
‘넌 이제 끝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태상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선생.”
“네, 선생님.”
“앞으로 액팅하기 전에 보고부터 해요.”
“네?”
“원래 오더를 받고 액팅하는 게 맞으니까 절차대로 하라고요.”
“그동안 노티하지 말라고 하셔서 계속 혼자 액팅해 왔습니다만.”
태연히 답하는 진혁.
그 모습에 오태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누군가가 방송을 보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이진혁이 어떻게 나올지 뻔히 예상됐기 때문이다.
‘다 말할 생각이구나! 이 새끼가 진짜!’
오태상이 목소리를 낮춘 채 으르렁거렸다.
다분히 VJ를 의식하는 행동이었다.
“너, 내가 우습냐. 내가 우습냐고!”
“그런 건 아닙니다.”
“다른 과였으면 넌 진작에 죽었어. 옥상에 끌려갔다고.”
“……!!”
“내가 안 때리니까 병신 핫바지로 보이냐! 과장님 지시만 아니었어도 진짜!”
ER 내에서는 어떠한 폭행도 금한다는 박영진의 지시.
이를 무시할 수 있다며 오태상이 겁박했다.
‘뜻대로 안 되니까 협박인가. 쯧쯧.’
카메라에 목소리가 담길까 봐 신경 쓰는 모습이 우스웠지만, 진혁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까불면 죽을 줄 알아.”
“예.”
재차 고개를 숙이는 진혁을 뒤로하고 오태상이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 모습에 진혁이 실소했다.
‘이제 와서 겁박하면 어쩔 건데?’
이미 벌어진 일.
이제 와 주워 담을 수 있을까.
다시 일에 매진하려던 찰나.
오태상이 했던 협박이 떠오르자, 진혁이 쓰게 웃었다.
‘뭐,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닌 건가.’
폭언과 폭행,
하급자에 대한 갑질이 난무하는 시기.
ER은 박영진을 무서워해 그런 일이 없었지만, 다른 과는 조인트가 기본이었고.
아신 병원 소속은 아니지만, 뺨을 맞아 고막이 파열된 레지던트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 시기였다.
심지어, 뺨을 맞아 고막이 파열된 경우도 있지 않던가.
‘뭐, 미래에도 폭행과 폭언은 없어지지 않으니까.’
애써 쓴웃음을 감춘 채 다시 일하려던 찰나.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딸깍.
“네, ER 인턴 이진혁입니다. 네?!”
곧, 진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예상치도 못한 전화였기 때문이다.
* * *
“기자님, 제가 지금 근무 중이라서요. 다음에 통화해야 할 거 같습니다.”
뚜욱.
앵무새도 아니고 똑같은 말의 향연.
벌써 몇 번째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지 몰랐다.
‘내 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질이지?’
의아함도 잠시.
또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딸깍.
“네? 인터뷰요? 기자님, 지금 인터뷰는 어렵습니다.”
뚜욱.
전화를 끊은 진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기자들이 계속해서 전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핸드폰을 꺼 버릴 수도 없는 일.
긴급한 전화가 오면 받아야 했기에, 액팅을 하다가도 계속 누구한테 온 전화인지 확인해야 했고.
이 때문에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또다시 울리는 전화.
진혁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누가 의도적으로 유출한 건가?’
제 번호가 유출된 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전화가 올 리가 없었다.
인터뷰 일정은 보통 홍보팀을 통해 어레인지하지 않던가.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ER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기자님들,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잠깐, 잠깐이면 됩니다! 인터뷰만 합시다.”
“안 됩니다!!”
“5분이면 된다니까요! 인터뷰 좀 하자고요!”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
기자들의 난입을 막는 원무과 직원과 밀고 들어오려는 일단의 기자들.
곧, ER 입구를 지키던 방호원까지 나서자 진혁이 당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 * *
뜻하지 않게 휴가를 낸 상황.
아니, 쫓겨났다고 봐야 맞았다.
인터뷰를 하고 싶다며 ER을 찾아오는 기자들 때문에 혼란스러워지자, 박영진이 진혁을 내보낸 것이다.
자차로 출퇴근하는 교수님의 차까지 얻어타고 기자들의 눈을 피해 집으로 돌아왔건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에 붙어 있는 메모를 확인한 진혁의 표정이 굳었다.
[엄마 여행 갔다 올게! 아빠도 휴가 냈어!]별일 없을 거라고 그렇게 설명했건만, 마음이 안 좋으셨는지 결국 여행을 떠나신 것이다.
순간 기분이 좀 그랬다.
어쩌면 환자도 살리고, 신분의 제약도 풀고, 사회적 변화도 이끌면서, 부모님께 효도도 하겠다는 자신의 목표를 전부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꽈아아악.
할 수 있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아니, 반드시 해야 했다.
처음 사는 인생도 아니고, 인생 2회차지 않던가.
두 번 사는 인생이니 못할 게 없어야 했다.
‘반드시 해낸다.’
굳은 결심을 한 뒤, 진혁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부모님은 아직 핸드폰이 없는 상황.
삐삐로 음성 녹음을 남겨야 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을 때였다.
갑자기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 * *
원주 버스 터미널.
진혁은 최지봉이 일러 준 주소로 곧장 움직였다.
원주시 중원동에 있는 전원주택 단지였다.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나.’
대기업 회장님들이나 거주할 것 같은 집들이 줄지어 있는 가운데, 병원장을 부친으로 둔 최지봉의 집은 그 어느 곳보다 거대했다.
띵동.
벨을 누르기 무섭게 열리는 문.
넓디넓은 정원을 지나자 걸어 나오는 최지봉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진혁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건넸다.
“교수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오랜만은 무슨.”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으신 거죠?”
“네가 내 마누라냐.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그래도요. 어떻게 하기로 하신 거예요?”
숨도 쉬지 않고 빠르게 안부를 묻는 진혁.
제 건강을 생각하는 제자의 마음이 느껴졌는지 최지봉이 밝게 웃었다.
“네 앞가림이나 잘해. 그래, 뭐 어려운 건 없고?”
“병원 생활이 뭐 다 그렇죠.”
“어째 다 겪어 본 사람처럼 말한다?”
“그냥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요.”
“기자 회견은 봤다. 어떻게 된 거야.”
“그게 그러니까…….”
진혁이 한참 설명을 이어 갔다.
소속 병원이 달랐기에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었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최지봉이 혀를 찼다.
“그놈 아주 웃기는 놈일세.”
“네?”
“부원장 말이다. 아주 웃기는 놈이야. 그놈 이름이 뭐라고?”
“부재일 부원장님입니다.”
“님은 무슨. 그냥 나가 뒈지라고 해라.”
순간 진혁이 쓰게 웃었다.
따뜻하고 항상 인자한 모습만 보였던 교수님.
그의 모습이 전부 가식이라는 게 생각났다.
* * *
진혁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항암은 어떻게 하시기로 하셨어요?”
“어블(절제)할 거다. 날짜도 잡았고.”
“병원은 그럼…….”
“카톨릭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집도의는 최익준이고. 그 양반이 나름 대가야.”
췌장암을 다루는 의사 중 한 명인 모양.
친분이 없는 사람이었다.
‘교수님도 엄청 알아보셨겠지.’
사실, 1기라서 절제가 가능한 일.
3기만 돼도 췌장을 절제해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 그나마 희망이 있었다.
그때, 최지봉이 잊고 있던 일을 꺼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약속은 언제 지킬 거냐.”
“네?”
“왜? CS로 안 갈 거야?”
“아, 그게…… 아직 고민 중입니다.”
“뭐!”
“생각이 많아서요. 고민도 되고요.”
“생각은 무슨!”
최지봉의 성화에 진혁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췌장암 검사를 받으면 CS로 가겠다는 약속.
검사를 받게 하기 위한 블러핑이었지만, 그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우리 CS는 끈질기단 말이야.’
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우리’라는 말.
순간 진혁이 혀를 찼다.
이놈의 몸뚱어리와 마음은 여전히 CS를 우리라고 부르고 있었다.
* * *
어느덧 저녁 늦은 시간.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버스 터미널 앞 커피점에서 진혁이 전원이 꺼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다시 전원을 켤지 말지 고민하는 거다.
‘뭐, 언제까지 피할 순 없으니까.’
그렇게 다시 켠 핸드폰.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핸드폰을 켜자마자 부재중 전화와 문자를 알리는 알림이 뒤늦게 쏟아졌다.
부재중 전화만 수십 통.
문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체 누가 유출한 거야. 넌 잡히면 죽었다.’
진혁이 누군지도 모를 유출범을 향해 이를 갈며 문자함을 뒤졌다.
꼭 답장해야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 뒤적거리다 확인한 이현아의 문자.
그녀가 보낸 문자는 꽤 많았다.
[막내 선생님~! 시간 될 때 연락 좀 줘요.] [아!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연락 좀 달라니까요!] [업무 때문에 연락한 거예요!] [막내 선생님!]그뿐이 아니었다.
이태희가 보낸 문자도 눈에 들어왔다.
[다행이야.]딱 네 글자만 적혀 있는 문자.
이현아와 달리 간결한 문자였지만, 그녀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졌다.
답장을 한창 쓰고 있는 와중에 또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수신인을 확인한 진혁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냥 수신 거부를 누르는 게 맞았지만 무시하기에는 애매한 인물이었던 탓이다.
가족이 돼 주겠다고 약속했던 강원일보 기자 강기재.
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그냥 무시해? 아니, 그래도 이현아를 소개해 줬는데…….’
망설이던 진혁이 결국 전화를 받았다.
딸깍.
수신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강기재의 우렁찬 목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이야, 우리 이 선생님! 진짜 바쁘십니다. 바빠. 전화도 꺼 놓으시고.]“강 기자님 전화는 받아야죠.”
[안 그래도 섭섭할 뻔했습니다. 가족 아닙니까, 가족. 하하.]“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이야 있죠. 우리 인터뷰 좀 합시다!]“아…….”
[오오!! 환자의 죽음 앞에 인터뷰도 하고 싶지 않은 거군요.]또다시 제멋대로 해석하는 강기재.
진혁이 냉큼 그의 입을 막았다.
“가족끼리 이러는 거 아닙니다.”
[가족이니까 더 해야죠!!]“그럼 가족이 아닌 거겠죠.”
[이제 와서 이러깁니까!]“아직 공개 검증도 하기 전인데, 제가 인터뷰를 하고 다니는 건 좀 아닌 거 같습니다.”
진혁이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지만 강기재는 끈질겼다.
[홍보팀에서는 가능하다고 했는데요?]“네? 홍보팀에서요?”
[혹시 지금 어디십니까?]“원주입니다. 아니, 진짜 홍보팀에서 그렇게 말했습니까?”
[원주요?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뚜욱.
대뜸 전화를 끊는 강기재.
이미 동서울터미널까지 가는 버스표를 사 놨거늘, 무작정 원주로 오겠단다.
‘원주가 조그만 시골 동네도 아니고. 내가 어딨는 줄 알고 오겠다는 거야. 이 양반도 여전하네.’
동해에서 원주까지 오려면 한참이 걸릴 터.
그의 말이 맞는지 당장 확인부터 해 봐야 했다.
* * *
당장 홍보팀장인 최규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깍.
[이 슨상님! 어디십니꺼.]“잠깐 원주에 와있습니다.”
[와예 거까지 갔습니꺼. 퍼뜩 돌아오이소. 인터뷰예. 퍼뜩하라 안 캅니까.]“네?”
[와예 그래 놀랩니꺼.]“아직 공개 검증을 시작도 안 했는데요. 무슨 인터뷰를 하나 해서요. 유족의 심경도 헤아려야죠.”
공개 검증 결과도 안 나왔는데, 병원 측에서 요란스럽게 인터뷰를 하고 다니면 진영국의 기분이 어떨까.
높은 확률로 마음이 상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진영국 씨도 허락했다 안 캅니까!]“진영국 씨도 동의했다고요?”
[하모예.]선뜻 믿기지 않는 대답.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허탈한 웃음만 남기며 전화를 끊어야 했다.
자신이 소송을 걸어 병원도 피해를 봤으니,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해도 상관없다고 했단다.
특히, 언론에 오르락내리락한 진혁에게 미안하다는 말까지 남겼다고 했다.
‘진실만 밝혀지면 다른 건 상관없다는 건가.’
진혁이 쓰게 웃으며 커피를 들이켰다.
안 그래도 자신 보고 발표하라고 했던 의료분쟁 조정중재원.
오지호는 자신이 더 유명해져 외과 계열을 지키는 스타가 되길 원하고 있었다.
부재일이 알면 깜짝 놀랄 만한 집착이었다.
* * *
“고생하셨습니다.”
뚜욱.
진영국과 통화를 마친 진혁이 핸드폰을 내려놨다.
그는 자신을 설득하려고 했다.
–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 인터뷰를 하셨으면 합니다. 저 때문에 괜히 언론에 이름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 부모님도 걱정하실 겁니다.
–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습니다.
– 저보다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세요!
아직 부친을 잃은 슬픔이 가득할 텐데, 자신을 걱정하는 진영국.
이현아의 말대로 대화를 녹음하고 방어적으로 대했다면, 진영국이 이렇게 나왔을까.
아니었다.
선의로 대한 일이 다시 선의로 돌아온 게 분명했다.
진혁이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봤다.
시간이 없는지 초조하게 터미널로 뛰어가는 사람들.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거는 이들부터.
인도턱에 앉아 병나발을 부는 이들까지.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삶에 쫓겨 생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생각보다 일찍 강기재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