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83)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83화(83/388)
83화. 잡았다. 요놈! (3)
뜻하지 않게 전 국민에게 홍보된 상황.
방송일 아침 조간신문부터 『응급실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더니.
석간신문에서 절정을 이뤘다.
어머니는 방송 시작 전부터 호들갑이었다.
“진혁아~!! 방송 시작한다!!”
“잠시만요!”
“빨리 오지 않고!”
“잠깐 글 좀 쓰고요.”
“무슨 글을 써?”
“그런 게 있어요.”
“혹시 연애 편지니?”
“아뇨. 그럴 시간이 어딨어요.”
방에서 『엄마, 성형외과가 가고 싶어요!』를 쓰고 있던 진혁의 말에 어머니가 도끼눈을 떴다.
“여자도 만나고 그래야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어머니.
친구 중엔 아들을 장가 보낸 경우도 있다 하니,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었다.
짝을 찾기는커녕, 시도조차 못 한 진혁이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나중에 만날 거예요.”
“누구? 누구를 만날 건데?”
“여보, 예고편 나오네. 예고편.”
“어머, 내 정신 좀 봐. 진혁아! 어서!”
어머니가 냉큼 TV 앞으로 달려가자 진혁도 마지못해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다들 말을 아끼며 방송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1분, 2분, 3분.
방송 전에 나오는 광고는 계속됐다.
이는, 드높아진 프로그램의 위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기다림 속에 시작된 방송.
초반부는 진혁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어레스트 환자를 CPR 하는 이들.
곧, 가망이 없다고 여겼는지 보호자에게 찾아가 DNR(Do Not Resuscitate, 연명 치료 포기) 동의서를 받는 장면이 나왔다.
“끄으으윽. 끄으윽.”
스스로 제 친족의 죽음을 인정하는 동의서에 사인하며, 오열하는 보호자의 모습까지 빠르게 이어진다.
그렇게 20분 후.
어머니가 볼멘소리를 했다.
“오늘은 편집이 좀 그런데?”
“그러게. PD한테 밉보인 건가?”
순간 진혁이 움찔거렸다.
이현아의 문자에 답장하지 않은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설마. 무슨 앙심을 품겠어?’
그렇게 계속된 방송.
한참이 지나 진혁의 얼굴이 TV에 나오자 어머니가 좋아했다.
“그래, 이거지. 이거!”
“우리 아들 보기 좋다.”
거기에 호응하는 아버지까지.
그 모습에 진혁이 뿌듯해했다.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해하는 부모님이셨지만, 소소한 기쁨을 드릴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 * *
진혁의 단독 샷은 계속됐다.
갑자기 혼자서 오더하고 액팅하는 진혁.
거기에 더해, CT 판독이 나오기도 전에 CS를 콜하고 환자의 병명까지 밝혀내자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사 다 됐어! 이제 진짜 의사인 거야!”
계속되는 감탄이 무색하게 방송은 빠르게 진행됐다.
어느덧 CS 수술실에 나타난 진혁.
심폐우회술을 할 때 손을 보태는 모습.
대동맥에 케뉼라(관)를 꽂아 넣을 때 김윤택과 한동수를 돕는 모습까지 나오자 다들 입을 턱 하니 벌렸다.
아들이 진짜 의사가 됐다는 게 절로 실감 났기 때문이다.
물론, 진혁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이걸 벌써 내보낸다고? 대체 잠을 자기는 한 거야?’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일.
영혼까지 갈아 넣어 편집한 게 분명했다.
* * *
한 시간이라는 방송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방송은 빠르게 끝났다.
진혁이 아직도 여운에 빠진 부모님의 눈치를 살폈다.
분명 제 손놀림을 보고 궁금증을 토해 낼 거라고 여긴 탓이다.
‘뭐라고 변명하지.’
한동수에겐 동영상을 한 번 보면 다 따라 할 수 있다고 고백하며 핑계를 댔지만, 부모님한테까지 그럴 순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ER 소속 인턴이 CS 수술실에 들어가는 게 어색하지도 않은 모양.
인턴이 저렇게 손을 놀릴 수 없다는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어머니는 수술에 들어갔던 환자의 생사만 궁금해하셨다.
“어떻게 됐어? 죽었어? 살았어?”
“저도 몰라요.”
“아니, 어떻게 몰라!”
“다음 주에 보시면 될 거 같아요.”
진혁은 씩 웃으며 수술 결과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다.
물론, 환자가 죽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권민상은 아직 입원 중이었고.
좀 더 괜찮아지면 퇴원할 예정이었다.
잠시 후.
다시 방으로 들어온 진혁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이현아한테 답장하지 않았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녹음기를 가져다주려고 병원까지 찾아왔었는데…….’
한참 편집으로 바쁜 상황.
자신을 걱정해 달려온 그녀였다.
문자 한 통은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성적인 호감 따위는 없었다.
어쩌다 보니 비즈니스 관계를 맺었고, 문자 한 통 해주는 건 예의라고 여겼다.
[나중에 언제 같이 밥이나 먹어요. 아, 이거 아부 아닙니다.]으레 하는 말을 남겼다.
언제 한번 밥 먹자.
뭐, 이런 느낌으로.
* * *
어느덧 다시 출근한 상황.
성황리에 끝난 방송과 달리 ER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박영진은 잔뜩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오태상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아무런 지시도 받지 않고 액팅하던 진혁의 모습이 그대로 방송에 나갔기 때문이다.
‘뭐, 당연한 수순인 건가.’
진혁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움직일 때였다.
“이 선생은 잠깐 얘기 좀 하지.”
오태상을 부를 거라고 여겼던 박영진이 진혁을 호출했다.
박영진의 뒤를 따라 과장실까지 들어선 진혁이 의아한 낯빛을 띄웠다.
‘왜 날 먼저 불렀지? 오 선생에 대한 일을 물어보려고? 아니면 수술실에 들어간 걸 문제 삼으려고? 그건 미리 허락을 받았을 텐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진혁은 묵묵히 기다렸다.
곧, 박영진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이 선생.”
“네, 과장님.”
“교수를 사칭한 적이 있나?”
“네?”
“사칭한 적이 있냐고 물었네만.”
당연히 없다고 대답해야 했다.
하지만, 진혁의 뇌리에 옛일이 스쳐 지나갔다.
김현수가 ABGA에 실패했던 환자.
오태상의 지시로 ABGA를 하려고 했지만, 그가 거부하자 속삭인 적이 있었다.
– 이번엔 다를 겁니다.
– 아니, 뭐가 다른데?
– 그러니까 당신이 뭐냐니까. 어! 지금 손목이 다 멍들었다고. 얼마나 아픈 줄 알아!
– 사실 제가 예전에 교수였습니다. 한 번에 해 드리겠습니다. 실패하면 민원 넣으셔도 좋습니다.
환자를 위해서 했던 선의의 거짓말.
그 일이 뜻하지 않게 발목을 잡고 있었다.
* * *
진혁이 박영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거짓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칭했다는 말이군.”
“죄송합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경위를 묻는 박영진 앞에서 진혁이 덤덤한 어조로 예전 일을 털어놓았다.
“ABGA에 수차례 실패했던 환자를 중간에 팔로업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환자가 레지던트도 아니고 교수를 불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교수 행세를 했다?”
“예, ABGA를 빨리하지 않으면 조직이 허혈되거나 괴사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부득이하게 환자를 속였지만,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진혁이 덤덤한 어조로 지난 일을 말했다.
그러자 박영진이 호통을 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턴이 교수를 사칭해!”
“죄송합니다.”
깔끔한 해명과 사죄.
박영진은 더 이상 혼내지 않았다.
감히 주머니 속 사탕을 건드리려는 놈이 생겼으니까.
사탕은 주머니에 있어야 제맛이었다.
그때였다.
김상혁이 상기된 얼굴로 과장실로 들어왔다.
“과장님, 민원인 신분 확인했습니다.”
“그래?”
“네, 이 선생한테 속았다며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모양입니다.”
“이 선생 처치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그랬던 건가?”
“그건 아닌가 봅니다. 오래 기다렸다면서 불만을 엄청 써 놨습니다.”
“대기가 길어져서 그랬다?”
“네, 차트도 확인했습니다만, 이 선생 술기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흐음.”
“호흡기내과로 전원시키기 전에 대기가 길어진 게 불만이었던 모양입니다.”
박영진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걸 부원장 쪽에서 건드렸다?”
“정황상 그쪽에서 건든 게 분명합니다. 한참 전에 올린 글이었습니다. 지금 문제 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김상혁의 보고는 한동안 계속됐다.
* * *
오태상에 대한 문제를 논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뜻하지 않은 상황.
진혁의 표정은 덤덤했다.
크게 문제가 될 거라고 여기진 않았다.
아니, 문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이건 대응의 영역이었다.
구재완이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유출했던 건 대응 방법이 없었지만, 이 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재일, 어디 한번 해 보자 이거지.’
부원장이 사사건건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육선재의 외압을 폭로한 일.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었으리라.
자신이 점점 유명해지는 일.
외과 계열에서 스타 의사가 만들어지는 게 싫었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치졸하게 나오다니 당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했지.’
그렇게 맞대응을 결심하던 순간.
박영진이 뜬금없는 말을 했다.
“녹음기는 갖고 왔나?”
“예, 과장님.”
품에서 녹음기를 꺼내는 김상혁.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까지 책상에 올려둔다.
박영진의 고개가 진혁을 향했다.
“당장 전화부터 해. 정중하게 사과하고.”
“예, 알겠습니다.”
진혁이 핸드폰을 꺼내 들자 박영진이 녹음기 버튼을 눌렀다.
뭐라 항변할 틈도 없이, 민원을 올렸던 최준만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최준만 씨 되십니까?”
[누구쇼?]“저 아신 병원 인턴 이진혁입니다.”
[아…….]“민원을 올리신 걸 지금에서야 확인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
진혁이 깔끔하게 사과했다.
어차피 ABGA에는 문제가 없는 상황.
그에게 미안함도 없었다.
환자를 설득하기 위해, 거짓말도 많이 하는 편이니까.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한 법이지. 근데 왜 대답을…….’
의아함도 잠시.
최준만의 민망한 목소리가 울렸다.
[죄송하긴요. 됐습니다. 허허.]존댓말을 하다가 반말을 하며 막무가내로 나왔던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
진혁이 거듭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조직이 허혈되거나 괴사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이고. 선생님. 괜찮습니다. 괜찮아.]“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그냥 욱해서 올린 건데……. 이게 뭔 일인지.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허허.]“그래도 제가 잘못한 일입니다.”
[아니, 글쎄 그게 방송을 보기 전에 올린 거라, 허, 참. 민망하게 전화까지 다 주시고.]최준만의 얘기는 길었다.
갑자기 확인 전화가 왔더란다.
이젠 괜찮다고, 홧김에 올린 거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근데 자신 때문에 한 소리를 들어서 미안하단다.
거기에 더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지금처럼만 해 주시면 됩니다! 언제 사인 하나 해 주십쇼.]사인까지 해 달라는 말을 해왔다.
진혁이 희게 웃으며 말했다.
“차라리 식사라도 한번 하시지요.”
[저야 좋지요.]“혹시…….”
[편하게 물어보십쇼.]“확인 전화를 한 선생님의 연락처를 좀 알 수 있을까요.”
곧 핸드폰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 * *
잠시 후.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장을 집어 든 박영진이 냉소했다.
“범인을 잡았군.”
“누군지 당장 확인해 보겠습니다.”
“내 컴퓨터로 확인해.”
“예.”
김상혁이 서둘러 인트라넷에서 연락처를 검색했다.
최준만한테 확인 전화를 했다는 의사가 누군지는 금세 드러났다.
소화기내과 레지던트 3년 차 박태준.
그가 범인이었다.
아니, 그에게 확인 전화를 해 보라고 시킨 놈이 진정한 범인이었다.
‘잡았다. 요놈.’
이젠 대응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