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84)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84화(84/388)
84화. 잡았다. 요놈! (4)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는 법.
그때마다 동요할 필요는 없었다.
일이 터지면 대응하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의 경우엔 침묵해야 했다.
대응 방법이 있었지만, 아직은 인턴.
아슬아슬한 선을 지키며, 박영진의 의견을 들을 차례인 것이다.
그도 한 과의 과장인 만큼, 노련할 테니까.
“이 선생. 자넨 경고야. 경고.”
“죄송합니다. 과장님.”
“세 번은 봐줄 수 없어. 난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야. 알았나?”
“예, 과장님.”
진혁이 다시 고개를 숙이자 박영진이 표정을 풀었다.
“그보다, 부원장 쪽에서 긴급 운영회의를 소집했어. 징계를 요구할 거야.”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어차피 징계를 때리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 나온 말.
오지호도 있었고, 박영진도 있었다.
게다가, 녹음본도 있지 않던가.
‘나라면 내부 고발 프레임으로 갈 텐데…….’
진혁이 말을 삼키던 순간.
박영진이 한 발 더 나갔다.
“아니, 아니지. 우리 이 선생이 무슨 잘못을 했지?”
“…….”
“잘못한 건 자네가 아니야. 자넨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거짓말을 한 것뿐이야.”
박영진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뭐, 선의의 거짓말이야 이해해 줄 수 있지. 그런데 말이야.”
“…….”
“이걸 트집 잡아 환자한테 전화까지 한 의사가 있어. 누가 잘못한 걸까?”
박영진의 말에 진혁이 곧장 대답했다.
이젠 나서도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일종의 내부 고발을 한 셈이군요.”
“그렇지. 동료 의식도 버린 놈이야.”
저쪽에서 만든 프레임을 뒤집겠다는 말.
역시 박영진도 만만치 않은 사내였다.
그가 고개를 돌려 김상혁을 바라봤다.
“녹음 파일은 PPT로 재생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놔.”
“네, 과장님.”
“난 먼저 일어나지.”
박영진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서자 김상혁과 진혁이 고개를 숙였다.
아마도 병원장을 만나러 가는 길일 터.
사칭 프레임을 되치기하려면 밑 작업이 필요했다.
* * *
다시 돌아온 경증처치구역.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들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특히 오태상은 진혁이 자신이 벌인 일을 고백했을까 봐 잔뜩 움츠려 있었다.
그가 머뭇머뭇하더니 진혁에게 다가왔다.
“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오태상.
진혁이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
오태상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다 털어놓았을까 봐 걱정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박영진이 방금 터진 ‘그 일’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모르는 거다.
‘뭐, 미리 알려 줄 필요는 없겠지.’
그간 쌓인 게 많은 상황.
20대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고 여겼지만, 오태상은 선을 넘었다.
괜한 용서랍시고, 손을 내밀 이유는 없는 거다.
아니, 용서라는 게 성립이나 할까.
상대가 반성을 안 하는데.
그때였다.
김지연이 진혁을 불렀다.
“이 쌤!! 여기 좀 봐주세요!!”
“네! 갑니다!!”
진혁이 곧장 자리를 옮겼다.
* * *
이진혁이 달려가는 걸 빤히 보던 오태상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묻고 싶었다.
과장님한테 다 일렀냐고.
왜 과장님이 부른 거냐고.
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만약 이진혁이 전부 고자질을 했다면 자신은 끝이었다.
왜?
이곳이 병원이라서다.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생사가 오가는 곳.
그게 병원이었다.
그래서 인턴을 엄하게 대하는 것이다.
면허만 땄지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한데, 그런 자신이 인턴 교육 담당이었다.
물론, 장길만도 담당이긴 했다.
하지만, 자신이 한 말이 문제였다.
– 노티 없이 그냥 액팅해요.
– 나한테 오더받았다고 해요. 나도 따로 말해 놓을 테니까요.
– 근데, 제대로 액팅이나 할 수 있겠어요?
인턴의 행동을 방기하고 부추겼다.
물론, 이진혁이 이렇게 잘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고.
방송이 나가지도 못할 거라고 여겼기 때문에 한 일이었다.
당장 의료 소송 건으로 난리가 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떡하니 의료 소송 건이 종결됐다.
게다가, 방송에서 이진혁이 아무런 지시도 받지 않고 움직이는 게 나왔다.
물론, 몇 번 그가 찾아왔었다.
하지만.
– 방송이 나갈 수나 있을 거 같아요?
– 이 선생은 통편집 당할 거 같은데요?
– 그리고 지금 그걸 걱정할 때예요?
그럴 때마다 매몰차게 굴었다.
물론, 방송에 그 장면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불안해 죽을 거 같았다.
누가 봐도 이진혁의 행태가 너무 이상했으니까.
그래서 출근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출근해야 했고, 억지로 병원에 왔다.
박영진이 자신이 오더하는 장면은 편집한 거라고 여기길 바라고, 또 바라며 출근한 것이다.
하지만.
컨퍼런스 때부터 표정이 좋지 않던 박영진이 이진혁을 불렀다.
과장실에 들어갔다 나온 이진혁이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기까지 했다.
그래.
다 말한 게 틀림없었다.
이제 어떻게 될까.
분원으로 쫓겨날까?
그래, 쫓겨나겠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 때였다.
이진혁이 달려와 말을 걸었다.
“저, 선생님.”
“허업!”
저도 모르게 나오는 침음성.
너무 놀라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말하려고 하는 건가?
그럼 난 어떻게 말해야 하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자신의 속도 모르고 이진혁이 말했다.
“62세, 남환, Low back pain(요통)을 주소로 내원했습니다. BP는 120/80…….”
“유, 유린 검사(Urinalysis) 했어요?”
“노티하고 하라고 하셔서 바로 왔습니다.”
“으으. 빨리해 봐요.”
“넵.”
이진혁이 태연한 얼굴로 다시 환자에게 달려간다.
왜 자신한테 온 걸까.
요통이 있으니, 소변검사는 당연히 해야 하지 않던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갑자기 이진혁의 행태가 떠올랐다.
그래, 이진혁은 한 번도 유린 검사 따위로 물어보러 온 적이 없었다.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듯 액팅했다.
다른 인턴들은 당연히 물어보는 아주 사소한 액팅은 물어보지 않았던 거다.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왜 이진혁이 껄끄러웠는지.
이진혁은 뭔가 묘한 선을 지키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주 사소하고, 당연하게 여길 만한 건 물어보지 않는다.
약제를 투약하거나, CT를 찍어야 하거나, 다른 과에 컨설트를 해야 할 만한 건 노티한다.
물론, 술기가 필요한 건 당연히 오더를 받고 진행했다.
그건 참 묘한 경계였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 안 했으니까.
이번 방송에서처럼 과한 액팅을 하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게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저, 선생님.”
“흐업!!”
너무 놀라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이진혁이 제 뒤에 있었다.
왜.
대체 왜.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뭐라고 할 틈도 없이, 이진혁이 말했다.
“54세, 남환, Chest Pain을 주소로 내원했으며, NRS(고통 강도 측정) 6~7점, 지속시간 5분입니다. Dyspnea(호흡곤란) 증상도 있습니다.”
“Chest PA 찍어 보고 와요.”
“알겠습니다.”
이진혁이 고개를 숙인 뒤 다시 환자에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액팅을 마친다.
다른 인턴들과 차원이 다른 거다.
그 모습을 보니, 절로 몸이 떨렸다.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저 행동에 함의가 있는 거 같았다.
넌 이제 끝이라고.
넌 이제 분원으로 내쫓길 거라고.
그게 아니라면 나가라고 할 거라고.
박영진의 스타일을 알지 않냐고.
한번 찍히면 끝이라고.
그렇게 두려운 눈빛으로 이진혁을 바라보고 있을 때.
또다시 자신한테 달려오는 게 보인다.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또, 또 왜요!!!”
“33세, 여환, Sore throat(인후염), Cough(기침), Sputum(가래) 있습니다. Fever(열)은 39도입니다.”
“으으…….”
“저, 선생님?”
“루틴 처방전대로 처방하고, 상태 지켜보다가 안 좋아질 거 같으면 IM에 콜해요.”
“알겠습니다.”
이진혁이 다시 환자에게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는 게 그렇게 괴로울 수 없었다.
차라리 박영진이 자신을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왜 바로 안 부르는 걸까.
이렇게 힘든데.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도 확인하지 못한 채 멍하게 있을 때였다.
이진혁이 저 멀리서 달려오려고 하자,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오, 오지 마!!! 끄으으윽.”
역시나 말리그는 건드는 게 아니었다.
* * *
어느덧 점심시간.
EICU(응급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장혁준이 달려왔다.
진혁이 의아한 듯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있죠. 대박이에요. 대박. 진짜 말하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고요.”
“뭐가요?”
“『영닥터』가 지금 난리 났다고요. 오늘 점심은 스킵입니다. 스킵. 빨리 와 봐요!”
“나중에 확인해 볼게요.”
진혁이 손을 내저었지만, 장혁준은 끈질겼다.
『엄마, 성형외과가 가고 싶어요!』의 저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거다.
“어차피 가입도 안 돼 있잖아요.”
“음.”
“빨리 와 보라고요. 저자 문제도 해결됐다니까요. 초 슈퍼 울트라 인턴이 인턴을 위한 책을 쓴다~!! 캬. 어때요.”
계속된 장혁준의 호들갑.
어깨를 으쓱거린 진혁이 그의 뒤를 따랐다.
어차피 사칭 프레임은 내부 고발 프레임으로 받아칠 테고.
오태상은 오태상대로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뭐가 문제겠는가.
진혁이 빙긋 웃었다.
* * *
인턴 휴게실.
장혁준이 천리안에 접속했다.
『영닥터』는 어제 방송된 『응급실 사람들』 얘기로 난리였다.
[누가 나 좀 진단해 봐. 눈이 이상해진 듯.] [ER 인턴 아니었어? 왜 CS 가서 저러냐고.] [수술 씬 짜고 친 거 아님? 어떻게 저래?] [인턴이 저렇게 할 수 있다고?] [로컬 돌다가 온 거 아니야?] [이진혁이 진짜 대박이다.] [와, 진짜 쟤는 어떻게 된 거냐.] [욕 나온다. 누구는 맨날 쌍욕만 먹는데.]딸깍.
딸깍.
장혁준이 욕설이 섞인 제목을 클릭했다.
그러자 시기, 질투, 허탈감이 가득한 글이 보였다.
‘어제 방송 보고 잠이 안 오더라. 어떻게 벌써부터 저렇게 할 수 있는 건지.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라면, 나는 진짜 인생 헛산 거 같다.’
└ 솔직히 지렸음. 진짜 말도 안 됨.
└ 난 그동안 뭐 한 거냐. 맨날 털리기만 하는데.
└ 서신대 병원은 원래 빡세게 수련시킴?
└ 그건 아님. 원래 이진혁 저렇지 않았음.
└ 술기를 언제 저렇게 연습한 거지?
└ 연습한다고 실전에서 될 거 같음? 타고난 능력이야.
진혁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반응이 뜨겁긴 하네요.”
“뭐예요. 그 반응은!!”
“겨우 이거 보여 주려고 그렇게 호들갑을 떤 거예요?”
“와, 지금 100호 동지 반응 촬영해서 올리면 다들 멱살 잡으려고 할걸요.”
“…….”
“거만해요. 거만해! 거만하다고요!!”
어이없다는 장혁준의 반응.
진혁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밥이나 먹으러 가요.”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요.”
“?”
“이걸로 저자 문제는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라니까요!”
순간 진혁의 마음이 흔들렸다.
‘진짜 내 이름으로 출판해도 문제없으려나?’
진혁의 내심을 읽었는지 장혁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정도 반응이면 문제없다고요.”
“흠.”
“저자 이진혁. 거기에 자문의 세 명만 넣죠.”
“자문의요?”
“자문의를 넣어야 사람들이 까질 못하죠. 권위 있는 교수님들로 떡하니 박아 넣으면 그만이에요. 그러니까 빨리 서신대 교수님들한테 연락해 봐요.”
갑자기 나온 자신의 모교 병원.
진혁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서신대 교수님들이요?”
“서신대 비전을 편집해서 출판할 거 아니에요?”
“…….”
“그래도 원작자가 있을 텐데 예의는 지켜야죠. 도둑질을 해도 양심은 지켜야 하는 거예요.”
순간 진혁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도둑질과 양심을 어떻게 결부시킬 수 있단 말인가.
* * *
황당함도 잠시.
왜 이렇게 제 일에 진심으로 나서는지 궁금했다.
“근데 왜 이렇게 적극적이에요?”
“음? 무슨 뜻이에요?”
“아니, 막말로 인세는 내가 버는데 왜 이렇게 적극적이냐고요.”
“와. 지금 이 많은 돈을 혼자 먹으려고 했어요?”
“?”
“당연히 나눠야죠. 아이디어는 내가 줬잖아요. 출판사도 연결해 준다니까요?”
“수익 쉐어를 한다고요?”
“당연하죠!”
장혁준의 말에 진혁이 황당해했다.
출판사야 자신이 섭외해도 되지 않던가.
뭐라 반박하려던 순간.
장혁준이 손을 휘저었다.
“인턴들이 뭘 힘들어하고 어떤 걸 어려워하는지 잘 모르죠? 본인은 한 번에 다트 꽂듯이 성공하니까 잘 모르지 않냐고요.”
“!”
“거봐요. 거봐. 그러니까 내가 필요한 거라고요.”
“…….”
“페인 포인트(고충 사항)를 알아야 비전을 써먹든가 말든가 하죠.”
“장 선생이라면, 평범한 인턴의 눈높이에서 서술할 수 있다?”
“그렇죠. 하하하. 제가 좀 평범하잖아요. 하하.”
‘자랑이다 이놈아’라는 말이 절로 나왔지만, 진혁이 말을 삼켰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눈높이에 맞게 써야 더 잘 팔리긴 할 텐데. 흐음.’
상념도 잠시.
이어지는 장혁준의 말이 가관이었다.
“정확히 반띵 하자고요.”
“50% 하자는 말이에요?”
“너무 과해요? 그럼 49:51?”
돈 욕심은 부자일수록 더 심하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