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85)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85화(85/388)
85화. 잡았다. 요놈! (5)
돈 욕심을 부리는 장혁준.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단 인계장 좀 구해다 줘요.”
“인계장이요?”
“네, 과별로 전부 다요.”
진혁의 뜬금없는 요구.
장혁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인계장은 뭐에 쓰게요?”
“과별로 인턴들이 주의해야 할 일들이 쓰여 있잖아요. 그 부분도 참고해서 쓰려고요.”
“그건 우리 병원에 데디케이트 된 거잖아요. 다른 병원은 다를지도 몰라요.”
“어차피 필터링하면서 볼 거예요.”
“으음.”
장혁준이 재차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수별로 요구하는 스타일.
그에 따른 액팅 방법이 주로 쓰여 있는 인계장.
범용적이라기보다 아신 병원만의 스타일이 녹아 있었다.
하물며, 자주 쓰는 약제도 병원별로 다른 것이다.
“서신대 비전을 그대로 쓰면 안 돼요?”
“안 돼요.”
장혁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혁이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은 채 말을 돌렸다.
“그보다 아버님 친구분이 출판사를 운영하신다고 했죠? 선인세 좀 미리 당깁시다.”
“인세를 먼저 달라고 한다고요?”
“네, 조건이 안 좋으면 다른 데서 하고요.”
“그건 얘기를 좀 해 봐야…….”
장혁준이 연신 의아하다는 표정만 짓자 진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부모님이 여유가 없으세요.”
“……!!”
“아버지는 무급으로 일을 배우고 계시고, 어머니는……. 음. 아무튼 그래요.”
“…….”
장혁준이 말을 삼켰다.
이럴 땐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혁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 수익 쉐어를 원하면 장 선생도 그에 맞는 일을 해야 하고. 선인세도 알아봐요. 알았죠?”
“인계장 구하는 거 말고 또 있어요?”
“있죠. 수술 도구별로 사진도 찍고, 술기 장면도 다 촬영해야 하잖아요. 인턴들이 어려워하는 케이스도 수집하고요.”
“아…….”
진혁의 말에 장혁준이 입이 벌어졌다.
그러고 보니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다.
“시, 시간이 없잖아요.”
“시간이 왜 없어요. 오프 때 하면 되죠.”
“잠도 자고 데이트도 하고 그래야죠.”
“하기 싫어요? 그럼 수익 배분도 없어요.”
“흐윽.”
장혁준이 괴음을 토해 냈다.
금수저였지만, 자신도 용돈을 타 쓰고 있는 상황.
엄마는 괜찮았지만, 아빠는 무서웠기 때문이다.
프리인턴 교육 때 발렌타인 31년산을 훔쳐 갔다고 엄청 혼나지 않았던가.
“케이스까지 수집하려면……. 으으…….”
장혁준이 괴로워하자 진혁이 씩 웃었다.
의료 소송 사건이 터졌을 때 의리를 지켜 준 장혁준.
너무 몰아붙일 생각은 없었다.
물론, 수익 쉐어 비율은 조정할 테지만.
좋은 생각이 떠오른 진혁이 장혁준을 재촉했다.
“다시 『영닥터』 들어가 봐요.”
“다시 들어가라고요? 방금 껐잖아요.”
“점심시간 끝나가니까 빨리 좀 해 봐요.”
“……와. 이게 말로만 듣던 쿠데타인가.”
“아. 쫌!”
“넵! 넵! 합니다요!”
연신 구시렁대는 장혁준을 재촉해 들어간 『영닥터』.
진혁이 냉큼 마우스를 낚아챘다.
딸깍.
딸깍.
역시나 예상했던 게시판이 있었다.
레지던트와 인턴만 가입된 곳이니, 어찌 없을 수 있을까.
에 들어가자 인턴이 쓴 거로 추정되는 글이 보였다.
[C라인 잡을 때 Flush volume 얼마나 함?]└ 대충 적당히 주입하면 됨.
└ Flushing은 그냥 감으로 하면 되는 거야.
└ 친한 간호사 쌤도 그냥 적당히 하면 된다던데.
└ 이거 알려줄 사람 진짜 없냐. 레지던트 선배도 감으로 하라고 하던데.
정확한 답변이 달리지 않는 질문.
곧장 다른 글도 살펴보기 시작했다.
[드레싱 테이프가 말리면 어떻게 하냐?]└ 드레싱 테이프가 한두 개냐?
└ Hypafix사에서 나온 거 말하는 거임.
└ 그게 왜.
└ 한쪽 먼저 떼면 말아져서 불편하다고.
└ 서로 엉겨 붙으면 짜증 나긴 하지.
└ 성형외과 없냐. 좀 도와줘!!
└ 한 번에 둘 다 잡고 뜯어라. 양면테이프라고 생각하면 됨. 한쪽만 잡고 뜯으면 오히려 엉겨 붙어서 힘들어.
이런 것도 물어보나 싶은 수준의 글.
하지만, 모든 게 낯선 인턴이 쓸 만한 글이었다.
딸깍.
딸깍.
한참 다른 글을 읽던 진혁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장혁준을 바라봤다.
“사례집을 만듭시다.”
“?”
“Q&A 사례집도 만들자고요. 그냥 맨땅에 헤딩하라는 게 아니라 여기서 케이스만 수집하라는 거니까 쉽죠?”
“게시판을 긁어 오라는 거죠?”
“일단 그거부터 시작하죠. 못 따라오면 수익 배분도 없어요. 열심히 하면 20% 줄게요.”
순식간에 낮아진 비율.
장혁준이 황당해했다.
“반띵 하기로 한 거잖아요. 인턴이 어떤 부분을 힘들어하는지 알아야 쓰죠! 내가 알려 준다니까요!”
장혁준이 억울함을 토로하자, 진혁이 말없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어차피 여기 다 있다는 말.
그 함의를 알아챈 장혁준이 기함했다.
“와, 진짜!! 혁명 동지!!!”
“20%도 많은 거예요.”
“와……!!”
“제대로 안 하면 레베뉴 쉐어도 없어요!”
진혁은 가차 없었다.
그도 오랫동안 교수 생활을 했던 만큼, 아랫사람을 몰아붙여야 할 때는 몰아붙일 줄 알았다.
뭐, 이 정도면 의리는 지킨 게 아닐까.
아, 너무 많나?
그럼 조정하지 뭐.
* * *
진혁이 벽걸이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20분의 여유가 있는 상황.
당장 다른 컴퓨터 앞에 앉아, 자신의 아이디로 천리안에 접속했다.
그 옛날 비키니 사진을 보다가 어머니한테 걸린 후로 들어가지 않았었던 아이디였다.
비밀번호가 틀리길 수차례.
아이디야 기억났지만, 암호가 생각나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왔으니 당연할 수밖에.
그렇게 시간을 좀 허비한 뒤, 바로 『영닥터』에 접속했다.
불편한 UI로 버벅거렸지만, 상관없었다.
가입 후 곧장 닉네임부터 만든다.
『아신 병원 이진혁』
실명이나 다름없는 닉네임.
장혁준이 어이없어했다.
“닉네임을 왜 실명으로 만들어요?”
“장 선생도 실명 아니에요?”
“그야 혁명 동지를 모으려고 그랬죠. 인턴 혁명은 계속해야 하잖아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뜬금없는 말.
장혁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무슨 소리예요.”
“시간 될 때마다 여기서 답변을 달 거예요. 그래야 출판했을 때 반감이 줄어들죠.”
고작 인턴 주제에 책을 출판한다면 반감을 갖는 이들도 있을 터.
반발을 최소화하려면 사전 작업을 해야 했다.
진혁이 곧바로
게시판에 들어갔다.
[C라인 잡을 때 Flush volume 얼마나 함?]처음 봤던 질문 글.
바로 답변을 쓰기 시작한다.
타닥.
타다닥.
비터널식 주입용 카테터를 쓸 때 Flush volume은…….
1) 사용 전 patency 확인 : N/S 1-3mL
2) IV medication : N/S 1-3mL
3) 규칙적으로 사용 : N/S 1-3mL
.
.
.
.
타닥.
타다닥.
투석용 카테터를 쓸 때와 정맥 포트용 카테터를 쓸 때도 써 내려갔다.
물론, 그 속도는 차츰 느려졌다.
‘많이 하는 술기인데도 이런 건가.’
C라인을 잡는 건 인턴 술기 중 하나.
매일 같이하던 일이었지만, 막상 글로 쓰려고 보니 모든 케이스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 모든 게 휘발성이 너무 강한 탓.
의학이라는 학문이 너무 방대하고 깊은 지식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더 해야겠는데.’
뇌리에 깊숙이 박힌 파편을 끄집어내야 하는 상황을 깨달았지만, 오히려 좋았다.
질문에 답하다 보면 저절로 공부도 되리라.
어느 정도 마무리를 한 뒤.
답변을 그대로 올리자 입을 턱 하니 벌리고 있는 장혁준이 보였다.
“왜 이렇게 놀라요?”
“이걸 전부 다 외웠어요?”
“외웠다기보다.”
“?”
“많이 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돼요.”
“와……. 진짜 재수 없는 말투! 또. 또.”
장혁준이 이태희를 흉내 내며 혀를 내두르자, 진혁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장 선생이 할 게 없겠는데요? 10%로 줄일까요?”
“와! 어차피 서신대 비전을 쓰는 거잖아요.”
“없어요.”
“……?”
“비전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고요.”
“그, 그럼 어떻게…….”
“독학했어요. 독학.”
“말도 안 돼!!”
장혁준이 믿기지 않는 듯 소리쳤다.
자칫 잘못하면 1호 동지 자리를 내줄 판이었다.
* * *
장혁준은 화장실을 간다며 먼저 나간 상황.
홀로 남은 진혁이 천리안에 글을 남겼다.
혼자만 볼 수 있는 메모장 같은 공간이었다.
1. 술기 대회, 진행 확정(일정 미정)
2. 위약 대조 연구(논문), 진행 확정(일정 미정)
3. 안전벨트 캠페인, 미정
4. 가습기 살균제, 미정
5. 오태상, ??
6. 운영회의, 내부 고발 프레임으로 대처.
7. 『엄마, 성형외과가 가고 싶어요!』, 진행 중
8. 공개 검증, 진행 중
9. 『아신 재단 의료분쟁 조정중재원』, 진행 중
10. 부모님, ??
꽤 많은 일을 동시에 벌인 상황.
얼핏 부담도 됐지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아니, 빨리해야 했다.
특히, 4번 가습기 살균제 같은 경우는 지금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8번 공개 검증이나 9번 조정중재원 건은 자신이 더 이상 관여할 수 있는 게 없었다.
10번 부모님 옆에 물음표를 적은 진혁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부모님의 마음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머니, 저 잘하고 있는 거겠죠?’
지금도 거리에서 설문 조사를 하고 있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진혁이 쓰게 웃었다.
* * *
몇 시간 후.
부원장인 부재일의 요구로 긴급 운영회의가 열렸다.
긴급하게 열린 회의 특성상, 스케줄이 있는 과장들은 참석하지 못했기에, 대참자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암~! 이런 쓸데없는 회의는 대체 왜 하는 거야.”
대참자 중 한 명인 한동수는 무료한 표정이었다.
전날 밤을 꼴딱 새운 상황.
운영회의에 가서 잠깐 쉬고 오라는 말에 흉부외과장을 대신해 참석했지만, 차라리 라꾸라꾸 침대에서 자고 싶었다.
“하아, 졸려 죽겠다. 졸려 죽겠어.”
또다시 하품하는 한동수.
사실, 전날만 집에 못 간 게 아니었다.
거의 매일 집에 가지 못했고.
와이프 얼굴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상황이었다.
“보자보자, 내가 집에 언제 갔더라?”
핸드폰으로 달력을 확인한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세 달 전에 간 건가?”
그러고 보니 최근엔 집에 간 기억이 없었다.
그냥 피곤에 쩔어서 당직실 같은 데서 잠을 자거나, 제 방에 있는 라꾸라꾸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집에 가 봤자 다시 전화가 와서 달려와야 하니, 그 시간도 아까웠던 탓이다.
“흐음. 요즘 너무 피곤한데.”
한동수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러다 하나둘 다른 과 과장들이 들어오자 아는 척을 한다.
“어이쿠! 우리 천 과장님!!”
“어어, 한 교수, 자네가 여긴 왜 왔나.”
“에이,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겁니까!”
“끄으응. 그냥 조용히 있다가 가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끄으응.”
한동수가 다시 침음성을 토해 냈다.
너무 피곤했던 탓이다.
잠시 후,
시작된 긴급 운영회의.
한동수의 눈이 스르르 감기기 시작한다.
졸리기도 했지만.
애초에 잠이나 잘 생각인 거다.
그때, 논의 안건이 들린다.
“아아, 이번에 이렇게 모이자고 한 건 ER 인턴인 이진혁 선생의 징계를 논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한동수가 눈을 떴다.
막내인 이진혁.
아니 양아들인 이진혁을 건드리려는 놈이 나타났다.
공정의 육모방망이를 휘두를 때였다.
드루와, 드루와!
한동수가 공정이 뭔지 보여 주려는 듯 몸을 꿈틀거렸다.